〈 73화 〉티르얀과의 듀오게임
잠시 긴장의 시간이 흐르며 놈의 두 눈에 살기가 진득하게 베어날 즈음, 팔짱을 끼고 있던 놈이 느닷없이 발뒤꿈치를
차례대로 바닥에 찧는 것이 아닌가.
촤릇.. 차르츳.
뒤꿈치를 땅에 한번씩 탁탁 찧자 희한하게도 양 발 앞에서 30여 센티의 마치 오러가 입혀진 듯한 푸른 검날이 삐죽 튀어나왔다.
검이 발 앞에서 튀어 나오자 놈의 얼굴에 더욱 살기가 짙어지며 조금은 거만한 표정이 되었다.
무기가 나오니 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전에 비해 한층 더해진 모양이었다.
나도 곧바로 부적으로 검을 생성시켜 오러를 주입하니 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잘됐군, 발과 손의 검 대결이라..”
아마도 내가 검만을 사용하는 검사의 직업으로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굳이 사실을 말할 필요 없어 나도 씨익 웃어주기만 했다.
잠시 후 티르얀도 옆에 눈과 눈싸움을 한창 벌이다가 그쪽은 이내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헌데 잠시 지켜보던 나는 인상을 살짝 찌푸려야 했다.
놈은 도끼의 달인인 듯 전체가 쇠로 만들어진 그리 크지 않은 칙칙한 검은색 도끼를 양 손에 쥐고 있었는데, 도끼 전체에 푸른빛이 감싸고 도는게 놈 또한 기를 도끼에 주입한 채 결코 티르얀에게 밀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만 레벨업을 한게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앞에 서있는 발검사(?) 놈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인지 인상을 살짝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선 맛뵈기로 실버 티어끼리 이 맵에서 겨루는 셈이다.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보상 경험치는 물론 부상으로 능력치와 특수 능력까지 한 레벨 올릴 수 있어 무척 중요한 승부가 아닐 수 없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이겨 그 모든 보너스를 챙길 수만 있다면 혹시라도 다음에 실버 티어에서 이놈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확실한 선기를 잡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고.
놈은 정말 손은 사용하지 않으려는지 팔짱은 풀지 않은 채 내게 다가왔다.
스스슷
헌데 놈의 상체는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마치 상체와 하체가 따로 노는 듯 그 움직임이 보통 빠르고 예사로워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검을 곤두세워 앞을 방어하려하자 느닷없이 미끄러지듯 내가 다가오더니 다리 하나를 들러 올려 마치 손처럼 움직이며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손으로 펼치는 공격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교하기까지 했다.
사사삿.. 촤라랏!
차차창.. 챙챙챙..!
처음에는 한발만을 사용하던 놈이 이제 양발을 번갈아 사용하며 공격하는 통에 내 눈이 무척 어지러워졌다.
‘어디로 공격해 올지 모르겠군.’
양발의 움직임은 너무도 빨라 우측발이 올라왔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왼발이 다시 올라와 내 몸을 작살내려 했다.
이제 다른 플레이어는 없었기에 나는 놈의 재주가 어디까지인지 끝까지 한번 구경해 보기로 했다.
‘실버티어인 11레벨은 어느 정도 위력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겠지.’
물론 11레벨이면 실버티어의 최하위 레벨이라 전체를 놈의 실력으로 가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맛뵈기로는 조금이나마 그 수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 또한 11레벨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다른 11레벨의 실력을 보고 싶었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놈의 양발이 제법 빨랐지만 나 또한 레벨이 올라 도력이 상승해, 양발로 번갈아 좌우를 공격해 오는 놈의 검에 뒤로 조금 밀리고는 있었지만 차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헌데 한동안 팔짱을 낀 채 양발을 사용하던 놈이 그것으로는 나를 어쩌지 못하겠다고 판단했는지 한순간 갑자기 드러눕는 것이었다.
‘뭐하자는 거지? 여기서 자빠져 자려고 이러는건 아닐텐데..?’
놈이 분명 다른 공격을 해 오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일고 있던 터라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한후놈의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헌데 놈이 등을 땅바닥에 대자마자 두 팔과 등짝을 이용해 두 다리를 허공 높이 쳐들더니, 마치 비보잉의 윈드밀과 같은 기술로 온몸을 뒤틀고 회전 시키며 공격해 오는 것이 아닌가.
‘대단하군.’
놈의 공격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뒤로 물러서는 사이 어깨에 놈의 칼날이 살짝 스치기까지 했다.
[체력이 128로 떨어졌습니다.]
스쳐 피가 살짝 난 것뿐인데도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놈의 공격력이 강하다는 뜻이었다.
상처는 곧바로 아물었지만 놈의 화려한 공격에 눈썹이 저절로 모아졌다.
더욱 정신을 집중해서 살피지 않는다면 다시 상처를 입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만큼 놈의 이러한 공격은 무척 날카로웠고 실용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공격력으로 내게 잔부상을 입힐 수는 있겠지만 나도 이제 검술의 달인이 됐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었기에 치명상은 입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한동안 놈이 읜드밀과 때로는 물구나무를 서서 공격하던 것을 멈추고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마도 그 정도 공격으로는 나를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대단하군, 내 화려한 고급 공격을 모두 막아내다니.”
“미친놈.. 화려하긴 개뿔..!”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놈이 들은 모양이다.
한순간 얼굴이 울그락 붉으락해진 놈이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어렸다.
그러더니 다시 팔짱을 끼더니 처음처럼 두 다리를 이용해 좌우를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이런 공격은 분명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놈 또한 잘 알고 있을 텐데 다시 의미 없이 반복되자 놈의 능력이 이것뿐인가 생각하고 이제 내가 반격하려고 마음먹었다.
‘별 볼일 없는 공격력이군. 저 정도가 11레벨이라면 너무 약한 것 아닌가..?’
티르얀과 붙어도 놈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티르얀이 풀과 나무를 이용해 놈을 압박한다면 놈은 움직임에 많은 제약을 받아 어쩌면 놈과 티르얀은 상극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 왼손을 품속에 넣어 검과 도술을 동시에 사용하여 공격하려 할 때였다.
슈갓.. 촤르릇!
한순간 날카로운 두 개의 무언가가 쏜살같이 날아와 그중 하나가 내 뺨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언뜻 보니 그것은 푸른빛의 화살과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다시 쏘아져 오는 것을 보고 그것이 놈의 검날에서 날아오는 무형의 빛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놈은 검날에 주입된 기를 내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서서 두 발로 번갈아가며 내쏘던 놈은 그것만으로는 안되겠던지 다시 그 자리에 드러눕더니, 이번에도 윈드밀 기술로 두 다리를 휘저으며 어느 각도에서 날아올지 모르도록 연이어 오러의 기를 쏘아내고 있었다.
‘저러면 기가 엄청 많이 소모될 텐데..?’
기를 검신에 주입하는 것은 몸속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강자와 검을 부딪치지 않는 이상 큰 무리는 없는게 일반 상식이다.
하지만 저렇게 몸 밖으로 내쏜다면 기를 완전히 배출해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 무척 기 소모가 심할 것은 당연했다.
놈은 기력이 소모되더라도 그 공격으로 나를 어찌해 볼 수 있는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놈의 공격은 위력적이기는 했다.
놈의 화려한 움직임과 공격으로 인해 나는 한동안 계속 뒤로 밀리는 형국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른 손으로는 계속 날아오는 응축된 기를 쳐내며 왼손은 어느 사이 품속에 들어가 있었다.
‘지력붕!’
한순간 부적 한 장이 놈이 드러누운 근처로 쏘아져가며 땅에 꽂혀 불타올랐다.
쿠르르릉.. 콰르르릉!
순간 놈 근처 땅바닥이 꿀럭거리더니 마치 싱크홀처럼 놈 주변이 약 1미터 가량 아래로 푹 꺼져버렸다.
“뭐야..!”
놈은 드러누워 양발을 허공에 휘젓고 있었기 때문에 땅이 꿀럭거리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실대다가 땅이 한순간에 꺼져버리자 깜짝 놀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웃기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인가..? 갖은 폼은 다 잡더니만.. 쯧쯧...,’
놈의 얼굴은 심각해 보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웃기기만 했다.
놈이 꺼져간 땅속에서 튀어나오려고 발돋음을 하려고 하자 내가 다시 부적 두 개를 꺼내 놈이 들어가 있는 구덩이 속으로 불덩이와 칼날같은 돌개바람을 날려 보냈다.
휘리리릭.. 화르르릇..!
놈은 피할 곳도 없었고 불덩이나 돌개바람은 검이나 응축된 기를 날려 방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크아악! 뜨거워..!”
구덩이 위로 튀어 오르지도 못하고 두 가지 공격을 받은 놈이 한순간 온몸이 여기저기 걸레처럼 찢겨지며 불에 그을려 시꺼먼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11레벨답게 체력과 기력이 아직 남아 있어 상처는 곧바로 아물며 내가 다시 공격을 하기도 전에 고통을 참으며 순식간에 구덩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사이 잠깐 티르얀을 보니 도끼를 든 놈 또한 가지나 풀잎에 움직임을 제한 받아 그녀를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오러가 실린 푸른 도끼를 마치 실이라도 달린 듯 번갈아 내던져 줄기와 풀잎을 잘라내며 공격과 방어를 겸하고 있었다.
놈의 공격에 그녀는 온몸을 줄기와 기다란 풀잎으로 몇 겹을 감싼 채 방어를 하며 놈 근처에 있는 식물로는 계속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 사람의 승부는 쉽사리 결정나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기는 했다.
만약 여기서 그녀가 먼저 죽기라도 한다면 1위는 물 건너가는 셈이다.
곧바로 구덩이를 빠져나온 놈을 보자 옷이 전부 찢겨지고 불에 탄 채 무척 화가 난 듯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같은 11레벨인데도 놈에게 질 것 같지 않아 직업의 우월성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에도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네놈은 검사가 아니구나!”
“내가 언제 검사라고 했나?”
놈이 화가 난 중에도 내 직업이 궁금한 듯 물어왔다.
“마법도 사용하는 것을 보니.. 혹시 마검산가?”
“그건 네놈이 알아서 생각해라.”
비웃듯 말하는 내가 아니꼬웠는지 놈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더 이상 놈과 입씨름을 할 필요 없어 내가 검을 들어 다시 싸울 태세를 취하자 놈이 다시 자리에 드러누우려고 했다.
“다른 공격법은 혹시 없나?”
내가 묻자 놈이 인상을 구기며 잠시 나를 꼬나보더니 자려고 하는 것처럼 드러눕더니 이내 다시 두 다리를 허공으로 쳐들며 온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정말 정신 사나운 공격법이군.’
다른 공격법은 없는게 확실했다.
곧바로 두 팔과 등짝을 이용해 화려하지만 내게는 그리 효용적이지 못한 공격을 가해오려는 놈을 향해 품속에서 다시 한 장의 부적을 꺼내 들었다.
츠츳.. 촤르릇
다시한번 오러인지 검기인지 모를 푸른 빛살이 두 개 날아오자 하나는 검으로 쳐내고 나머지 하나는 급히 몸을 틀어 피한 후, 놈 근처 땅으로 부적을 날리니 놈이 이번에도 땅이 꺼지는 술법을 부리는지 알고 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쓸 내가 아니었다.
촤르륵.. 슈슈슈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