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티르얀과의 듀오게임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놈들과 싸울 수 있었지만 지금 놈들과 우리의 행동은 무언의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모든 플레이어 사냥이 끝나면 마지막에 겨루자는 약속이었다.
물론 그것은 나 또한 바라던 바였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다른 플레이어들을 사냥하는 동안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다는 두 파티원간의 법칙이 생긴 셈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놈들 또한 이제 서로 마주친다 해도 모른 척 그냥 지나칠 것은 당연했다.
이 맵에서 두 파티원만 남아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상태창을 확인하니 죽인 두 놈은 확실히 6레벨이 맞아 경험치가 120주어져 이제 525/1000 으로 어느새 기준치의 반이 넘어 있었다.
티르얀은 얼마 전 나보다 60점이 아래라고 했으니 그녀 또한 나와 비슷할 터다.
그때 타르얀이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놈들이 사라지자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불새를 그대로 둘 거야?”
이제 놈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지만 놈들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찾다가 주작이 놈들에게 발견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소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티르얀이 말했던 대로 주작이 설사 소멸되어 내 체력이 다소 떨어진다 해도, 소멸되기 전까지 사냥감을 더 확보해 레벨이 놈들보다 더 빨리 승급된다면 그것이 더 이득이라 생각해, 그대로 계속 주작을 이용해 플레이어들을 찾기로 했다.
“그래, 네 말대로 다른 플레이어들을 한명이라도 더 빨리 찾아 경험치를 획득하는게 나을 것 같아, 그만 가자.”
곧바로 주작에게 다시 다른 플레이어를 찾게 하고 우리는 그 뒤를 쫒아갔다.
장소를 옮겨오니 확실히 플레이어들이 제법 많이 이동하고 있어 안전지대에 7키로까지 다가가는 동안 5레벨과 6레벨 그리고 7레벨의 파티원을 각각 더 죽일 수 있었다.
경험치는 이제 885/1000이 되어 나는 6레벨 이상인 파티원을 한번만 더 죽인다면 마침내 실버티어인 11레벨로 승급이 된다.
하지만 티르얀이 나보다 60점이 모자라니 9레벨의 파티원을 죽이던지 아니면 5레벨 파티원 두 팀을 처치해야 그녀도 11레벨이 될 수 있었다.
생존자수를 확인해보니 어느새 42명으로 줄어 있어 이제 21 파티원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하위 파티원은 어느 정도 걸러지고 남은 파티원은 모두 상위 파티원만이 살아남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자기장은 어느새 1키로까지 가까워져 있었지만 빠른 걸음으로 간다면 간신히 안전지대 안으로 진입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몰라 인벤토리에서 말을 꺼내 자기장과의 거리에 여유를 주기로 했다.
“이대로 안전지대로 진입하는 거야?”
한참 달리고 있는데 티르얀이 뒤에서 내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니, 안전지대 근처에서 진입하는 놈들을 기다릴 거야.”
“그렇지? 아무래도 확실하게 레벨업을 하고 진입하는게 낫겠지?”
사실 이대로 안전지대로 진입한다 해도 아무 상관은 없었다.
10레벨 파티원과는 다른 파티원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서로 부딪치지 않기로 무언의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안전지대 안에서 혹시나 부딪쳐도 서로를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 파티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최상위 파티원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만약을 대비해 비좁은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레벨업을 해 놓는게 껄끄러움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후 100여 미터 거리에 흰빛의 막인 안전지대가 눈앞에 나타나자 말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안전지대를 등 뒤쪽에 둔 채 주작을 자기장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정신을 집중해 주작과 공명하니 100여 미터 아래의 지상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한동안 플레이어들을 찾아 날던 주작의 눈에 드디어 저 멀리 두 인영이 내려다 보였다.
티르얀을 데리고 그 쪽 방향으로 가려던 나는 순식간에 걸음을 멈추고 두 놈에게서 멀어지도록 주작에게 명령했다.
다시한번 내려다본 두 놈은 분명 10레벨 파티원들이었다.
다행히 주작이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놈들 또한 주작을 발견하지 못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제 놈들이 있는 장소를 알았으니 주작이 소멸될 확률은 더욱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아직 8레벨 이상이면 주작을 소멸시킬 수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기장이 벌써 5키로까지 다가와 있어 안전지대 막을 끼고 한쪽으로 이동하기를 얼마 후, 다시 또 한 파티원이 주작의 눈에 띄어 우리는 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두 놈이 부리나케 달려오는 것을 보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가오는 두 놈에게서 발산되는 기는 확실히 나와 티르얀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낮지도 않아 상위 레벨에 근접한 자들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9레벨이면 나와 티르얀이 동시에 레벨업을 할 수 있다. 이왕이면 놈들이 9레벨이면 좋겠는데.’
얼마 후 놈들이 다가올 곳에 미리 은신해 있다가 놈들 앞에 갑자기 불쑥 나타나자 역시 두 놈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도 상위 플레이어들이라 이내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 무척 거만한 표정으로 나타난 우리에게 한마디씩 했다.
“크큭.. 감히 우리 앞에 스스로 모습을 나타내다니..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주 좋은 선물이 되겠어.”
“그러게 말야, 저런 애송이들 때문에 우리가 또 한번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두 놈 또한 상위 파티원을 한번만 더 처치하면 레엡업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상위 파티원들만이 남아 있을 상황에서 저 정도 자신감을 보일 정도라면 8레벨은 넘어 9레벨이 분명할 터다.
이제 자기장이 3키로 앞까지 다와가 있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두 놈이 먼저 선재공격을 가하자 티르얀이 역시 풀과 근처의 나무줄기로 두 놈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나무의 뿌리까지 땅속에서 불쑥 솟아나와 가세하자 두 놈이 티르얀에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두 놈은 그제서야 우리가 자신들보다 상위 레벨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이내 내가 부적 공격을 몇 방 날려주며 지원해 주자 한 놈의 목의 나무줄기에 목이 꿰뚫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순간 내가 흙들을 쏘아 보내 온몸을 훑고 지나가자 놈의 몸체가 곧바로 허공중에 사라져 버렸다.
남아 있는 한 놈 역시 티르얀에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이내 온몸이 바스라지며 번쩍하고 사라져 버렸다.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보니 두 놈은 역시 9레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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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 최준수
종족 : 인간 (인간)
직업 : 도사
티어 : 실버
레벨 : 11
경험 : 65/1100
능력치 P: 도력 : Lv 11
특수능력 P : 도술 : Lv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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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에 나와 있는 실버라는 글자와 11이라는 숫자를 보면서도 선뜻 믿겨지지가 않았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티르얀을 보니 그녀 역시도 무척 기쁘면서 감격한 표정이 얼굴 가득 나타나 있었다.
“꼭 꿈만 같아, 내가 실버 티어로 승급했다니 말야.”
“그래,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 할 수는 없지.”
흥분된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히고 내가 결연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그녀도 주먹을 불끈 쥐며 내 말에 곧바로 동감했다.
“맞아, 이제 브론즈 티어로서는 마지막 싸움인데 1위는 먹어봐야 되지 않겠어?”
“당연하지.”
실버티어에서 다시 떨어져 내릴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꼭 1위를 하지 못하고 설사 2-3위가 된다 해도 그 보너스 경험치만으로도 한두 레벨은 더 승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마음을 가라앉힌 나와 그녀는 이제 어느 정도 편안한 마음으로 안전지대를 향해 걸어갔다.
문득 우리가 이렇게 레벨업을 했다면 놈들 또한 레벨업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1레벨이 되고나니 확실히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겨 입가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마디로 가진 자의 미소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것이라고 봐야했다.
안전지대 안에서는 자기장의 높이가 더욱 낮아 이제 주작을 소멸시키고 곧바로 안전지대 안으로 진입하니 조금은 긴장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제 생존자수는 24명.
다시 말해 지금 죽으면 12위가 되는 셈이다.
듀오게임은 솔로게임에 비해 안전지대 반경이 무척 좁아 고작 14키로밖에 되지 않았다.
안전지대로 들어선지 한 시간 정도 돼서 7레벨 파티원을 한 팀 처치하는 사이 생존자수는 순식간에 줄어 이제 3팀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2팀으로 줄어들었다.
우리와 나머지 한 팀.
보나마나 그놈들과 우리였다.
나와 티르얀은 무언엔가 이끌리듯 마치 놈들과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 듯 안전지대의 정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마 놈들도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으리란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후 마침내 맞은편에서 두 놈이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두 놈은 자신만만했는지 무척이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놈들 또한 조금은 긴장된 듯, 표정은 여유로움이 가득했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걸음걸이가 조금은 굳어 있는 듯 보였다.
“드디어 우리 두 파티원만 남았군.”
두 놈 중 우측에 있는 놈이 형식상 파티장이라도 된 듯 앞으로 한발 나서며 제법 예의를 차리며 입을 열었다.
“.........,”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놈이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싸울 적이지만 분위기를 너무 삭막하게 만들지는 말자고. 맵 밖에서 만나면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나?”
놈이 외계 생명체라서 맵 밖에서 만날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혹시 놈의 행성이 지구와 가까워 무척 강력한 다크 사이어돈이라도 출현한다면 그때 각 행성에서 차출된 플레이어들이 만날 수는 있겠지만, 같은 지구인들끼리 조차 보기 힘든 상황에서 그건 꿈과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놈의 말에 옆에 서있던 티르얀이 피식 웃으며 대신 한마디 했다.
“다시 만날 일 없으니까 빨리 싸우기나 하자고.”
티르얀은 역시 빨리 순위를 결정짓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 또한 시덥잖은 말장난을 하는 것보다는 티르얀의 생각과 같아 방금 말한 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싸울 상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방금 말한 놈은 내가 상대할 것이고 티르얀이 나머지 놈을 맡을 것이다.
놈도 내 의중을 알았는지 이내 얼굴을 굳히며 마치 기 싸움이라도 하려는 듯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