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티르얀과의 듀오게임 (66/207)



〈 66화 〉티르얀과의 듀오게임

나도 반가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지라 굳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잠시 재회의 순간을 즐기던 그녀가 손을 놓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도 피해야 할 강자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한번 스윽 둘러본  이제 강자의 여유를 부리며 제법 여유롭게 플레이어들에게서 눈길을 떼고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 잠깐 사이 알아볼건 전부 알아보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영혼들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훑어본 바에 의하면 내 눈에 띄는 특별한 강자는 없는 것으로 보여 졌다.
그리고 솔직히 이제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티르얀과 헤어질때 그녀는 8급이었기 때문에 9레벨 파티원을 만나게 된다면 아무래도 불리한 것은 어쩔 수 없는지라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때 그녀도 내 마음과 같은 듯 주위를 모두 둘러본 후 조금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날 목 졸라 죽일 때 넌 아마 6레벨 정도인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날 죽이고 혹시 레벨업은 한거야? 아니면 다음 게임에서 승급은 했어? 나 사실 그 다음게임에서 9레벨로 승급했거든.”


그녀는 그때 내가 5레벨이었는데 날 한 레벨 더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굳이 그것을 밝힐 이유는 없어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나와 같은 9레벨로 승급했다고 하자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8레벨에서 9레벨로 승급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나 또한 은근히 그것을 기대하기는 했던게 사실이다.
하위 레벨자가 한 레벨 승급되기는 쉽지 않아도 상위 레벨자가 한 레벨 승급하는 그리 어렵지 않은게 이 게임의 특징이었다.

“나도 9레벨이야.”

“정말! 너 진짜 대단하다, 한 게임에서 3레벨을 승급하다니.. 난 네가 혹시나 6레벨에 머물러 있을까봐 사실 많이 망설였거든. 그런데 약속한 부분도 있고 혹시나 7레벨로 승급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사실 하고 듀오게임을 신청한 거였거든. 그런데 갑자기 9레벨이라니, 역시  눈이 틀리지 않았다니까.”


내가 그녀에 대해 안도하는 것보다 그녀는 더 좋아하고 있었다.
하긴 6레벨자와 같이 파티원을 이룬다면 그만큼 불리한 입장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약간은 호들갑스러움이 이해되기는 했다.

티르얀도 9레벨이라면 이제 이 맵 안에서 당연히 10레벨로 올라가 실버 티어로 승급했을 때를 생각해, 이 200명에게서 최대한 경험치를 획득해 놓아야 한다.
실버티어 맵을 11레벨로 참가하는 것과 12 또는 13레벨로 참가라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내가 잠시 생각하고 있는 사이 그녀가 웬일인지 나를 살짝 노려보며 무언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그림자 술사와 싸울 때 날 목졸라 죽였잖아. 그때  체력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것을 혹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다시 만난다면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때 사실 금방 죽을 줄 알았는데 바로 죽지 않자 당연히 체력이 완전히 바닥이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티르얀은 그림자 술사에게  부상을 당해 회복하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을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목을 누른 김에 그냥 계속 졸라 죽여 버렸던 것이다.
헌데 그걸 바른대로 말할 내가 아니었다.


“그랬어..? 네가 체력이 남아 있을 줄은 미처 몰랐어.”

내가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잠시 쏘아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한번 짓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쏘아보던 눈빛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좋아 사실 그때 네가 날 죽이지 않았다면 난 그 그림자 술사에게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게. 헌데 말야 정말 믿기지 않아서 그러는 건데  어떻게  번 게임에서 6레벨에서 9레벨까지 오른 거지? 혹시 그때 6레벨이 아니라 7-8레벨은 됐던  아냐?”

5레벨이었다고 말한다면 정말 그녀는 까무러칠지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6레벨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수 없단 말야..? 일반 플레이어들만으로 중위 레벨에서 단번에 상위 레벨로 올라갔다는게 도저히 믿기지 않거든.”


그녀가 하도 궁금해 했기에 굳이 숨길 필요는 없어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사실 하드 맵에 떨어졌었어. 그래서 운이 좋아 다른 생명체를 여럿 죽였고.”


그제서야 그녀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겠지, 그러니까 갑자기 그렇게 레벨이 올라간 거지. 헌데 하드 맵에서도 너 정도 레벨이면 오래 버티기도 힘들었을 텐데  무척 운이 좋았나 보다.”


“그런 편이라고 할 수 있었지.”

“하긴 나도 널 만나기  게임에서 하드 맵에 떨어져 5레벨에서 7레벨까지 승급할 할 수 있었으니까, 네가 운이 좋아 약한 존재들만 만났다면 충분히 3레벨은 올릴 수도 있었겠다.”

내가 그때 당시 6레벨이라고 단정 짓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자, 그녀가 이내 나와 같은 먼 하늘을 바라본 채 조금은 기대어린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너와 내가 모두 9레벨인데 이번 맵에서 10레벨까지는 당연히 승급할 수 있지 않겠어?”

“변수가 없는 한 그렇겠지.”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도 하드 맵에 떨어졌으면 좋겠어.”

“.......,”


“지금 여기 있는 200명으로도 충분은 하겠지만 그래도 하드 맵이라면 더 많은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을거 아니겠어. 내친김에 아예 여기서 실버티어인 11레벨까지 승급한 후 경험치를 충분히 더 올려, 다음 실버티어 맵에 떨어졌을 때 12-13레벨로 참가할 수만 있다면 정말 끝내주는 거잖아.”


티르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긴 이런 상황이라면 어느 플레이어가 됐든 모두 그런 생각은 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나도 그녀의 말처럼 이번에도 하드 맵에 떨어지기만을 마음속으로 은근히 고대하고 있기는 했다.


그녀와 몇 마디 주는 사이 다른 플레이어들의 영혼이 어느새 모두 도착했는지, 한쪽에 예의 커다란 흰빛의 구멍이 열리며 200여명의 듀오게임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이 그 구멍 안으로 한순간 모두 빨려 들어갔다.

***

“하아.. 하드 맵이 아니잖아.”

아름드리 나무들이 곳곳에 제법 많이 자라있는 드넓은 평야였다.
헌데 티르얀의 말대로 하드맵이었다면 풀벌레 소리라도 들려야 할 텐데, 주위는 바람 소리만 들릴  무척 조용해 하드 맵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수 있었다.


그녀도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도 내심으로는 조금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에 게임에서 하드맵에 떨어졌었는데 두 번 연속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확률상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보다는 실망감이 덜한 것 또한 사실이다.

넓게 펼쳐진 평야에 자라난 잡풀들은 그리 길지 않았고 끊임없이 펼쳐진 초원지대 곳곳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들을 보니 경관 하나는 정말 장관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만약 이곳이 피 터지게 싸워야하는 맵이 아니라면 정말 이런 곳에 집하나 지어 놓고 모든 걸 잊은  살면 딱 좋을 곳이었다.

나와 티르얀이 우선 할 일은 맵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헌데 맵을 열어보고 나는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의 수는 200명인데 고작 이 넓이라니. 정말 끊임없이 피 터지게 싸우라는 것인가.’

안전지대와의 거리가 불과 53키로 밖에 되지 않았고 자기장은 그나마 다행으로 6키로 뒤에 있었다.


언뜻 생각하기에 안전지대까지 53키로라면 넓은 것 같아 다른 플레이어를 만날 확률이 희박할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만약 안전지대가  중앙에 자리 잡고 플레이어들이 그 안전지대를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다면 부딪칠 확률이 그나마 적을 것이다.
하지만 안전지대는 항상 맵의  끝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이동해야 하는 플레이어들은 그만큼 만날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자기장이 계속 뒤에서 안전지대 방향으로 좁혀져오니 이 정도 거리라면 자주 부딪칠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다른 보통 맵이 안전지대까지 100키로 이상이었던 점을 감안해 볼 때 확실히 이 듀오 게임의 맵이 작은 것은 사실이다.
바로 전 하드게임에서 안전지대와의 거리가 처음 200키로가 넘어 있었으니 확실히  맵이 작기는 했다.


하지만 처음에만 맵이 너무 작다는 이유로 약간 놀랐을 뿐 이내 생각이 바뀌어 차라리 이렇게 좁은 맵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내 생각은 하급 레벨자들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상급인 나와 같은 플레이어들에게만 해당되는 생각일 터다.


티르얀도 처음에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차라리 우리에게는 이게 낫지?”

“물론이지.”


이제 드디어 내가 처음 경험해 보는 듀오게임이 시작됐다.
티르얀은 그래도 자신이 경험자라고 안전지대로 걸음을 옮기며 내게 여러 가지 조언을 했지만 듣기에 솔로 게임과 다른 점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말 그대로 2대2로 싸운다는 것뿐.


이제 거의 최상위 레벨이 되고나니 솔직히 아이템은 필요 없을  같았지만 내 생각은 써먹지 못하고 썩힐지언정 그래도 챙겨는 두기로 했다.

아이템의 효능으로 상대의 체력을 눈에 띄게 떨어뜨릴 수 있는 범위는 중상위 레벨자에게까지만 가능했지, 사실 9레벨인 내가 레이저 지뢰 정도를 밟았다고 해도 체력이 떨어지는 정도는 아주 미약했다.
내 체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 정도라면 8레벨 이상 되는 플레이어의 공격에 적중당해야 했다.


하지만 우주선에서 지급해주는 플라즈마 전차와 같은 화력이 강력한 아이템에 맞는다면 나라도 타격이 갔기에, 그건 내가 차지하지 않더라도 파괴는 시켜는게 안전했다.


물론 다음에 혹시라도 실버티어로 승급한다면 아이템의 효능이 티어에 걸맞게 더욱 강력해져, 그때는  아이템으로 다시 중상위 레벨자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어 죽으나 사나 다시 아이템을 획득해야 했다.

헌데 걸어가며 티르얀이 마치 나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한손바닥을 활짝 편 채 20여 센티 정도 자라난 초원의 풀을 위로 들어 올리자, 놀랍게도 그녀의 손바닥이 향한 풀들이 갑자기 길게 늘어나더니 서로 얽혀들며  팔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이제 풀잎까지 조종하게 됐나보군.”

“응, 이제 거의 모든 식물을 조종할 수 있게 됐어. 더군다나 그 식물을 더욱 강화해서 질겨지게  수도 있게 됐어. 하지만 강화시키는 것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야.”

길게 늘어난 풀잎 하나는 약했지만 그것이 수십 수백가닥이 늘어나 서로 얽히면서  팔에 감기니 나도 그 힘에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더군다나 그녀의 말대로 레벨이 올라갈수록 식물을 강화할  있는 능력이 더욱 높아진다면, 나중에는 식물을 강철과도 같이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처음에 그녀는  도사 능력을 무척 부러워했지만 이제 9레벨이 되고나니 자신의 직업도 제법 마음에 드는지 이제 내게 자랑까지 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녀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시각과 청각으로는 주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가고 있는데, 드디어 저 멀리서 아주 희미한 기가 느껴지고 있어 우리 둘은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그 미소는 누가 나타나도 자신 있다는 의미로 이제 상위 레벨이 되니 이런 여유까지 생긴 것이다.

거리는 대충 200여 미터는 될 듯싶었다.
몸을 최대한 낮추며 접근하고 있는데 100여 미터 정도 이르자 드디어 티르얀의 능력이 이 순간 빛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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