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의문의 여자
지아의 확실한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말을 하지 않고 얼버무리니 계속 캐묻기도 뭐해, 그냥 국장과 친분이 있는 더 높은 순위의 마스터이겠거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 후 콩나물 명태 해장국이 끊어 식탁에 놓자, 그녀가 연기 나는 곳에 얼굴을 대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냄새는 그럴싸한데 맛도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 혹시 이 해장국만 믿고 다음에도 또 술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드실까봐 그게 걱정일 뿐입니다.”
“후웃, 설마 그렇게까지 맛있으면서 쓰린 제 속까지 풀어 줄 수 있을려구요.”
“자, 한번 드셔보기나 하십시오, 제 말이 거짓말인지.”
내가 국자로 그릇에 덜어주자 그녀가 수저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보듯 한입에 후루룩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녀가 먹고 난 후 반응이 어떤지 궁금해 내가 쳐다보자, 곧바로 그녀가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정말 진심인 듯 얼굴색이 환해지며 찬사를 보내주었다.
“햐아! 속된 말로 정말 끝내 주내요. 매콤하고 시원하고 맛도 있고.. 뭐라 그럴까? 한마디로 해장국으로 최고예요.”
그녀는 지금 도도하고 고고한 모습의 마스터와는 거리가 먼, 정말 해장국을 맛있어하는 일개 평범한 여자로 비춰졌다.
문득 마스터로 보이는 저런 대단한 여자가 어떻게 저런 평범한 모습을 보일까 생각했지만, 그녀도 인간인 이상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맛에 대해서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역시 그녀에게서는 뭔지 모를 아우라가 뿜어져 나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어떤 무형의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 언뜻 언뜻 들기도 했다.
‘나도 마스터 티어로 승급되면 다른 하급 플레이어들이 나를 마주할 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들까?’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후 그녀는 정말 아주 맛있게 밥 한그릇과 함께 덜어준 해장국까지 말끔하게 비워버렸다.
“준수씨가 말한대로 정말 이거 믿고 다음부터 술 많이 먹어도 될 것 같은데요.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쓰린 속이 멀쩡해 졌어요.”
“그럼 다음에도 여기서 잔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아무튼 그만큼 내 입맛에 맞고 속도 괜찮아 졌다는 뜻이죠.”
“입맛에 맞았다니 그건 다행이네요. 그런데 지아씨에게 한가지 청구할 것이 있습니다.”
“청구요..?”
“네, 다른게 아니고 어제 술값입니다. 310 셀링이 나왔는데 300실링만 주십시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아 참! 내가 깜박했네요. 그야 당연히 드려야죠. 통장 번호 보내주시면 제가 바로 넣어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알다시피 브론즈 티어 월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 나중에 제가 실버 티어로 승급되거나 다른 부수입으로 돈을 벌게 되면 그때는 제가 한잔 쏘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그때까지는 제가 쏠 테니 그렇게 부담 느끼기 없기에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나자 이제 나도 도태자를 사냥해야 했고 그녀도 볼일이 있다며 차를 가지러 갔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다시 랭크게임에 참가해야 한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정말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런 게임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는 스릴 만점의 인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재능이 없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어쩌면 죽느니만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가 나가고 나 또한 곧바로 밖으로 나와 다시 렌트카를 빌려 주작을 먼저 날려 보낸 후 차를 몰고 그 뒤를 열심히 쫒아갔다.
이제 도시와는 제법 먼 거리로 이동해서 차는 산기슭에 두고 걸어서 조금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오전이 지나 어느 정도 깊은 숲으로 들어 왔을 때 오늘은 운이 좋았는지 주작에게서 신호가 왔다.
“찾았다!”
곧바로 주작에게로 달려가 칩을 터치하니 홀로그램으로 된 상태창이 칩 위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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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자
이름 : 최 광오
LV 6 (브론즈)
도태자 경과 날짜 : 1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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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일이라면 꽤 오랜 시간 들키지 않고 살아남은 셈이다.
놈 또한 역시 깊은 숲에 어설프게 나무로 집 한 채를 지어 놓고 혼자서 살고 있었다.
이제 내가 9레벨이 되고나니 눈만 높아져 6레벨은 양에 차지도 않았다.
통나무집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창문으로 슬쩍 엿보니 놈은 안에서 무슨 생각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의 고단한 삶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겠지.’
도태가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는 어떻게 해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전부일 것이다.
두고 볼 것도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놈이 처음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삶을 포기한 듯 제법 태연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차라리 잘됐다. 계속 불안했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군.”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최광오 또한 전에 도태자와 마찬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
촤광오를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도태자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역시 그들의 숙명이니 안타까워 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자위했다.
6레벨의 도태자를 죽이니 6천 셀링이 들어와 이제 내 통장에는 1만 셀링이 저축돼 있었다.
하지만 골드 티어의 전투를 관람하려면 2만 셀링이 있어야 하니 한참 더 모아야 한다.
월급으로 들어오는 3천 셀링을 생활비로 사용한다고 치면 2만 셀링은 순전히 도태자 사냥으로만 충당해야 했다.
하루 밤 자고 일어나 내일은 랭크게임에 참가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쉬기로 했다.
헌데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다가 저녁에 갑자기 머릿속에 낮익은 기가 전해져와 순간 깜짝 놀라야했다.
“티르얀..”
그렇다.
머릿속에 갑자기 전해져온 기는 두 번째 게임에서 듀오 게임에 대한 말이 오갔던 식물 술사인 그녀만의 고유 주파수와도 같은 기였다.
내일이 랭크게임에 참가하는 날인데 하루 전인 지금 기를 보내온 것을 보면 분명 내일 듀오게임에 함께 참가하자는 일종의 선신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티르얀이 그 당시 8레벨이었는데..,’
나는 이미 9레벨이라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5레벨에서 9레벨로 승급했으니 그녀의 8레벨로 9레벨이 되는 것은 더 쉬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사이 10레벨로 승급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그녀가 아직 8레벨이라 해도 나와 동업한다면 듀오게임에서 10위안에 드는 것은 크게 무리가 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솔로게임에 참가해도 이제 혼자 10위안에 드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고.
‘듀오게임을 한번 경험해봐..?’
솔직히 듀오 게임이라는 것을 한번쯤은 경험해보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게임에서 나는 10위 안에 드는 것은 물론이고 사실은 1위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9레벨에서 10레벨로 승급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티어의 특성상 그 맵에서 최상위 티어는 잘해야 2-3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운이 정말 좋다면 나 혼자일 수도 있을 테고.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그 맵에서 나는 실버 티어로 가기 전에 충분한 경험치를 획득해, 11레벨은 물론 12-13레벨까지도 승급을 할 수 있어 다음 실버티어 맵에 처음 참가해도 무척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 경험치를 획득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둘이 힘을 합치는 것이 나은지는 계산을 해봐야 했다.
하지만 그 저울질은 오래 가지 않았다.
‘둘이 한 명을 죽여도 경험치가 반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명분을 모두 가져올 수 있고, 또 몇 명을 죽여도 그 경험치는 동일하게 가져올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어차피 솔로 게임에서 일등해도 혼자 힘으로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를 죽여야 한다면, 듀오게임에는 200명의 플레이어들이 참가하고 있어 더 많은 경험치가 돌아다니는 셈이다.
다음 게임에서는 솔로든 듀오든 분명 10레벨은 넘어설 것이 분명했고, 1위까지 차지해 보상 경험치는 물론 능력치와 특수 능력이라는 스킬 레벨까지 올리고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듀오게임에서도 물론 10레벨로 승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고 1위를 차지하는 것 또한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처음 상대가 10레벨 파티원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긴 솔로 게임에서도 처음 10레벨자를 만날 수도 있으니 그것은 순전히 운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을 터다.
‘어차피 마음먹었잖아.’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괜히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다짐하듯 한마디 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하기는 했다.
사실 티르얀이 아직 8레벨이라 해도 둘이 힘을 합한다면 그녀 또한 그 맵 안에서 10레벨로 승급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이 맞고 레벨이 비슷한 플레리어를 만나 듀오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것으로 우선은 만족하자.’
시간이 되자 침대에 누워 한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잠이 들어 버려 눈을 뜨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식사를 마친 후 마음의 준비를 한 채 차분히 기다리다가 정오가 가까워오자 책상에 앉아 티르얀의 기가 전해져 오기를 기다렸다.
‘내 생각이 맞는 것이겠지..?’
어제 티르얀이 기를 보내온 것이 장난이나 치자고 보낸 것이 아닌 다음에야 분명 듀오 게임에 참가하자는 신호가 분명할 터다.
내가 지금 그녀에게 기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어찌됐든 그 당시에는 그녀가 상위 레벨이었으니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헌데 12시가 거의 다 되어갈 즈음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아 머릿속에 다시 그녀의 기가 전해져와, 나 또한 그녀에게 기를 보내 서로의 기를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번쩍!
눈앞이 환해지며 시간이 멈춘 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내 영혼은 셀 수도 없는 수많은 다른 영혼들과 함께, 하늘에 생성된 거대한 횐 빛의 구멍 속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큰 구멍에서 갈라진 엄청난 숫자 중 한 곳인 작은 구멍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간 나는, 잠시 후 작은 구멍에서 튕겨지듯 빠져나오니 마침내 저 멀리 시작의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으음.”
곧바로 내 육체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간 나는 평소대로 우선 주위부터 살펴보려 했다.
헌데 고개를 돌리자마자 풀밭 위 바로 옆에 눈에 익은 한 인영이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요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인영은 티르얀이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군.’
이곳 시작의 섬은 지구와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지구와 2천 몇 광년 떨어진 행성에 살고 있어서인지, 반수 이상의 영혼이 도착했는데도 아직까지 꿈적도 하지 않고 있었다.
헌데 2주 만에 본 것도 본 것이지만 그래도 잠깐 동안 파티원을 했다고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니 반갑기는 했다.
“으흠.”
그녀를 바라보는 사이 어느새 영혼이 도착했는지 그녀는 서서히 두 눈을 뜨며 한숨과도 같은 짧은 신음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쥴수야! 오랜만이다.”
“쥴수가 아니고 준수라고 했잖아.”
“이름이야 아무렴 어떠냐.”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정말 반가운지 내게 다가오며 무척이나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헌데 그녀는 내게 다가오더니 마치 10년 지기라도 만난 듯 갑자기 내 두 손을 확 잡으며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녀도 예전에 처음 나와 마주쳤을 때는 자신이 7급이라고 무척 도도하고 깐깐하게 굴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그 벽이 허물어져 지금은 마치 연인이라도 다시 만난 듯 무척 반가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