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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의문의 여자 (64/207)



〈 64화 〉의문의 여자

이제 자신이 취했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내가 다시 물어 보았다.

“취하신 것 같은 데 그만 드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아, 나 안취했다니까 왜 그러세요. 정말 간만에 이렇게 마셔서 그런지 멀쩡하다니까요.”

황설수설 하는 것을 보니 정말 취하긴 많이 취한 모양이다.


‘확실하게 가긴 갔군.’

얼마 후 내가 화장실을 갖다오자 이제 지아는 탁자에  팔을 포개고 한쪽 볼을 얹어놓은 채 쌔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무리 마스터라도 술기운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혹시나 마스터 정도 되면 알코올을  밖으로 배출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지아를 보니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녀의 차는 건물 주차장에 세워놓았을 것이고 집 주소는 내비게이션에 입력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녀는 그냥 차에 태워놓고 자율 주행으로 가게 하려했다.
도착하는 사이 깨어나면 다행이고 아니면 차안에서 하루 잔다 해도 내가 할 일은 다 한 셈이라 생각했다.


헌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런 씨발!’


또 계산을 내가 해야 한다.
지아가 사는 줄 알고 제일 비싼 안주로만 네 가지나 시켰는데.

‘우선 계산부터 치르고 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자 안드로이드 종업원이 나를 보며 생글거리고 있었다.


“8번 테이블 얼마입니까”

“아  손님, 310셀링 나왔습니다.”

‘허걱! 아무리 비싼 안주를 먹었기로서니  술값이 이렇게 나오냐..?’


그럴리는 없겠지만 바가지 쓰는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벙찐 표정으로 생글거리는 종업원에게 물었다.


“뭐가 이렇게 많이 나왔죠?”

“네 손님, 특제 훈제 소세지 한 접시 32셀링, 특제 소고기 육포 9가닥 28셀링, 특제 뼈 없는 훈제 닭발 30셀링, 특제 야채복음 35셀링, 그리고 카이스주 38병 드셨습니다.”


‘씨발! 괜히 특제 안주를 시켰네. 그리고 카이스주를 둘이 38병이나 먹었으니  여자가 저리 정신을 못차리지.’

내가 15병 정도 먹었다고 치면 나머지는 전부 지아가 먹은 것은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나중에 정말 술을 입에 들이붓다시피 하며 술이 술을 먹었었다.

‘저러다 차에서 오줌이나 안싸려나 모르겠네.’

아무튼 우선 계산은 해야 했다.
물론 나중에 꼭 받아낼 생각을 하고.
70셀링 정도라면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특제 안주를 잔뜩 시켜서 너무 오바라 그냥은 넘어갈  없었다.
비록 내가 시킨 것이었지만.

계산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그녀를 부축했지만 그녀의 몸이 축 늘어져 있어 들다시피 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그녀의 손등에 박혀있는 칩이 차와 공유되어 있어 한 대의 고급 승용차에서 삐삐 거리며 조명등이 반짝여 그것이 그녀의 차임을 알고 차 앞으로 다가갔다.


곧바로 칩이 박혀 있는 그녀의 왼손을 들어 손잡이 인식키에 갖다 대니 아무 반응이 없다.


‘어? 다른 방식으로 문을 열게 되어 있나?’

이번에는 오른손 엄지를 지문키에 갖다 대니 그래도 열리지 않았다.
왼손가락 역시 마찬가지.

‘눈동자로 인식키를 해놓았나..?’


그녀의 허리를 잡아 뒷머리를 잡고 숙이게 해 손잡이 칩에 그녀의 눈을 대는 감겨 있는 눈을두 손가락으로 벌려 대 보았지만 역시 감감무소식.

그렇다면 마지막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옆구리를 잡고 부축한 그녀를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콘크리트 바닥에 그대로 내려 놓고 차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옹알거리는 그녀를 흔들며 닦달하기 시작했다.


“이봐요, 이지아씨, 자동차 음성 인식키로 해 놓은거 맞죠? 음성 비밀번호가 뭡니까? 집에 가야죠.”

“.........,”

“이봐요, 정신 좀 차려요. 음성 인식키가 어떻게 되냐니까요?”


“음냐.. 음냐.. 옹알.. 옹알.”


“확 그냥 냅두고 갈까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그래도 마스터이고 국장도 꼼짝하지 못하는 거물 같은데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나중에 정말 골로 갈 수도 있을  같았다.


‘아 그렇지! 국장에게 연락하면 되겠구나.’

순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얼마  지아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는 술이 떡이  상태에서도 곧 죽어도 국장에게는 절대 비밀로  달라 그랬었다.

“이지아씨,  일어나면 정말 그대로 두고 갈 겁니다. 농담 아닙니다.”

협박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비록  번째 보는 것이었지만 마스터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도도함과 고고함으로 중무장한 그녀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니, 귀족 마스터도 술을 먹으면 역시 인간 본연의 행동이 그대로 나오는구나 생각했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몇 번을 더 어깨를 흔들며 다그쳤지만 역시 고개만 힘없이 앞으로 숙인 채 기절해 있는 것인지 옹알이만 계속 하고 있었다.


‘이대로 밤새 있을 수는 없겠지.’


곧바로 그녀를 들쳐 업고 건물 밖으로 나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캄캄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떻게 된게 나와 술을 먹는 여자마다 모두 왜 이 꼴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벌써 자정이 가까워져 무슨 조치를 취하긴 취해야했다.
잠시 생각한 끝에 마침내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 은지!”


어차피 지금 상태로 지아는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길바닥에 놔두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럼 은지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그녀 집에서 재우면  일이다.


곧바로 지아를 다시 내려놓고 건물에 등을 받치게 한  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헌데 은지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동기인 캐시와 술을 먹는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캐시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 역시 받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생각난 것은 두 술고래가 모두 지금까지 떡이 되도록 술을 먹고 뻗어있을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다시 들쳐 업고 은지네 집으로 우선은 가보기로 했다.
택시를 잡아탈까 하다가 그냥 이대로 밤바람을 맞으며 걷는게 좋아 멀지 않은 거리를 그냥 터벅터벅 걸어갔다.
지아는 정말 기절을 했는지  어깨 너머 앞으로 뻗은 두 팔이 축 늘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카이스 주가 목 넘김이 좋아  넘어가긴 하지. 그런데 그걸로 취하면 약이 없다는게 문제지.’


얼마 후 드디어 은지의  앞에 도착했다.
헌데 당연히 번호를 몰라 초인종을 누르니 아무 대꾸가 없었다.
전화를  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지아처럼 술을 먹고 뻗어서 자고 있다는데 내 모든 재산을 걸 수 있었다.
초인종과 문을 한동안 두드려 보았지만 역시 아무 반응은 없었다.


이제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나는 축 늘어진 그녀를 업은   보금자리로 향했다.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최선을 다했고 이 여자를 길바닥에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내 탓은 아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해 그녀를  침대에 팽개치듯 눕히고 나니 그녀의 정장 마이가 등에 겹쳐져 있는게 눈에 띄었다.


‘마이는 벗기고 재우는게 최소한의 예의겠지?’


아침에 일어나서 꼬깃해진 정장 마이를 생각하니 아무래도 벗겨 주는게 그녀에게도 좋을 것 같아 곧바로 그녀의 상체를 일으켜 마이를 벗겨주고 이불까지 덮어 주었다.

***


“아흠..!”


한참을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자고 일어나 눈을 뜨니 침대에 지아가 마치 시체처럼 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어나면 무척 황당해 하겠는걸.’

원룸이라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침대에서 자게하고 나는  밑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아무리 카이스주지만 많이 먹어서 그런지 속이 쓰려왔다.
아마 그녀는  그럴 것이라 생각해 나도 속을 풀 겸 콩나물과 명태를 넣은 해장국을 끊이기로 했다.

‘해장국 하면 역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전 방식이 최고지.’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인간의 기본 입맛은 변하지 않아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요리법이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의 기본 욕구는 먹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헌데 물이 끊어 재료를 넣는 사이 인기척이 들려와 뒤를 돌아보니 지아가 꼼지락 거리며 눈을 뜨는 모습이 보였다.


“일어나셨습니까?”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자 그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뜨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이게 어떻게  일이죠?”

“기억 안나십니까? 어제 술을 많이 드시고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었었습니다.”


“그럴 리가..”

“차를 열고 자동 주행으로 지아씨 집까지 보내려고 했는데  수가 있어야지요.”


“차는 제 음성 키로만 열수 있어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길바닥에 그냥 놔 둘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누추한 제집에 모시고 오게 됐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그녀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내 마이 혹시 준수씨가 벗긴건 가요?”


“아침에 옷이 꾸겨져 가시는 것도 이상할거 같아 제가 벗겼습니다. 뭐 잘못된거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요. 제가 그런 실수를 했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


“원래 술을 마시게 되면 조절을 하는데 어제는  그렇게 술이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오랜만에 카이스주를 마셔서 그랬나 봐요. 헌데 제가 어제 준수씨에게 실수 한 것은 없었나요?”

그녀가 문득 창피스러웠는지 얼굴을 조금 붉히며 요리를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얘기를 했다.

“뭐 특별히 실수라고까지  것은 없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온 거죠?”

그녀는 뭔가 짐작되는 부분이 있는지 다시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설사 택시를 타고 왔더라도 집안까지는 내가 데리고 들어온 것에 생각이 미친 듯 했다.

“그 술집과 저희 집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그냥 업고 왔습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녀는 내말에 인상이 살짝 일그러졌다.


“정말 대단한 실수를 한 거네요. 정말 미안해요.”


“아닙니다, 가벼워서 그럭저럭 업고 올만 했습니다.”

내가 업고 왔다는 말을 재차 하자 그녀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그녀를 본 채 피식 웃으며 내가 다시 요리 재료를 다듬으며 넌지시 말했다.


“아마 속이 많이 쓰릴 텐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 자랑은 아니지만 해장국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끊이니까요.”

내 말이 끝나자 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는 기척이 느껴졌다.

“정말 속이 너무 거북하네요. 술을 못먹게 조금 말려주시지 그랬어요. 그럼 이런 실수도 하지 않았잖아요.”


이런 엉뚱한 여자를 봤나.
어제 내가 몇 번이나 그만 먹는게 좋겠다고 했지만 취하지 않았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한게 누군데 이제 와서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있다.

“어제 제가  번을 말렸는데도 지아씨가 막무가내였었습니다. 정말 기억이 안나는 겁니까?”

“그랬나요? 아, 내가 정말  그랬는지 모르겠네. 준수 씨 앞으로 저 만나게 될 때 그때도 제가 만약 이렇게 많이 먹을  같으면 그냥 무조건 말려주세요.”

“그러다가 싸움이라도 나서 절 한방에 죽이면 어쩝니까. 그건 지아씨가 알아서 적당히 조절하십시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제가 준수씨를 죽이기야 하겠어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 아무튼 전 정말 지나씨 겁나서 그런  못합니다. 괜히 말리다가 술김에 화가 나서 한방 날렸는데 그게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자리에서 저는 바로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까요.”


이 말은 농담이었지만 진담이 약간은 섞여 있다고  수도 있었다.
그녀가 정말 마스터 티어라면 난 그녀 앞에서는 솔직한 말로 파리 목숨인 셈이다.

헌데 다음을 얘기하는 것을 보니 나를  다시 만나긴 만날 모양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국장 자신이 지금까지 나를 기관에 소속되게 하려고 꼬득였는데 그것이 실패하자, 그녀에게 부탁했을 것이라는 것은 눈감고도 뻔히 짐작할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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