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의문의 여자
곧바로 건물 맨 꼭대기에 있는 국장실로 들어가자 안드로이드가 아닌 여자 요원이 차를 두잔 갖다 주었다.
“궁금한게 뭔가?”
국장이 자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내 내게 묻자, 나도 차 한 잔을 마시고 곧바로 궁금한 점을 물어 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명이 무한해 골드 티어로 승급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도태자라는 명명하에 죽지 않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제가 궁금한 점은 도태자들은 그렇게 처단된다지만 골드 이상 되는 플레이어들은 랭크게임에서도 죽지 않고 그렇다고 지구에서도 죽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그렇게 영원히 무한하게 살게 된다면 나중에는 상위 플레이어들만 온 우주에 넘쳐나지 않겠습니까?”
“흠.. 그것은 그렇지 않다네.”
“..........?”
“자네가 처음 여기 왔을 때도 내가 잠깐 말을 꺼낸 적이 있었지.”
“.........?”
“암흑 물질에 대해서 말일세.”
“아, 생각납니다. 우주각지에 퍼져 있는 암흑 물질에서 생성된다는 다크 사이어돈이라는 엄청난 괴수에 존재한다고도 하셨잖습니까. 또 놈들이 출현하게 된다면 그 근방의 행성에 사는 플레이어들은 놈들과 대적해야 된다는 것도 기억납니다.”
“그래, 사실 그 놈들 때문에 상위 레벨자들의 숫자도 그리 넘쳐난다고 볼 수는 없는 형편이네. 다크 사이어돈이 출현하게 된다면 각 행성에서는 용병이라는 명칭하에 랜덤으로 플레이어들을 차출하지. 그것 때문에 챌린저님과 나는 자네가 혹시 차출이 되더라도 보호를 할 수 있게 기관에 들게 하려는 것이었고.”
“그 문제는 이제 꺼내지 마십시오.”
“후우, 고집도 어지간 하구만. 아무튼 하위 레벨자도 랜덤으로 차출이 되지만 다크 사이어돈을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상위 플레이들이 가야하기 때문에, 랜덤도 상위 플레이어들이 더 많이 나오도록 컴퓨터를 설정해 놓은 상태라네.”
“다크 사이어돈이라는 괴수가 그렇게 대단한 놈입니까? 각 행성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단합할 정도로..?”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한마디로 수만의 상위 플레이어들이 놈과 상대해서 반수 이상이 죽어나간다고 보면 될 것이네. 그것도 상급이 아닌 중급 다크 사이어돈인데도 말일세.”
“그럼 챌린저님이 직접 나가서 처치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허 참, 이보게, 챌린저님은 각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란 말일세. 생각해보게, 만약 우리 지역의 챌린저님께서 놈과 싸우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우리 지역은 다른 지역에 언제 먹힐지 모르는 먹잇감 신세가 될 것일세. 물론 서로 견제하느라고 한동안은 괜찮겠지만 결국에는 가장 힘이 강대한 다른 지역에 합병될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도 있겠군요.”
“헌데 만약 다크 사이어돈이 우리 은하의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 나타났는데 상위 플레이어들조차 놈이 너무 강력해 막을 수 없다면, 그 근방의 행성내 챌린저님들이 합의하에 함께 나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건 역시 최후의 수단이라고 보면 된다네.”
국장의 말대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했는데 그 모든 것이 통하지 않을 때 비로소 챌린저들이 마지막에 출동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만약 그 싸움에서 어떤 챌린저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 지역은 주인이 없는 지역이 되버려 다른 지역의 살아남은 챌린저 먹잇감이 되는 것은 당연할 터다.
그래서 혹시라도 한 지역에 두 명의 챌린저가 탄생한다면 그것은 축복인 것일 테고.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집으로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웬일인지 국장이 만류하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왜 그런가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국장이 그제서야 내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자네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서 내가 점심 먹기 전에 미리 연락해 놨네. 이제 잠시 후면 도착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게.”
“또 어떤 사람입니까?”
“사실 특별한 사람은 아니고 우리가 얼마 전에 스카웃 한 사람이라네. 물론 그 플레이어도 자네보다는 못하지만 자질이 우수했기 때문에 스카웃을 한 것이지.”
“.........,”
“2년이 채 되지 않아서 10레벨까지 오른 사람이라네. 그 정도면 정말 뛰어난 자질을 타고 났다고 볼 수 있지.”
“그 사람을 제가 왜 봐야 합니까? 전 그냥 가보겠습니다.”
이제는 스카웃 한 사람을 통해 나를 꾀어보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 챈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내 팔까지 잡아가며 억지로 자리에 앉게 했다.
“그냥 인사라도 하라는 것일세, 정말 다른 뜻은 없네.”
“아니,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과 무슨 인사를 하라는 겁니까?”
“그러지 말고 내 체면을 봐서라도 그냥 인사만 하게. 내가 그 사람에게 자네 같은 대단한 플레이어도 있다고 자랑을 해 놓았거든.”
얼마 전 처음 국장의 모습을 봤을 때는 무척 사내다운 인상으로 각인 됐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조금은 얍삽해 보이기까지 했다.
국장의 체면을 내가 생각해줄 필요가 없어 그냥 뿌리치고 나가려는데 국장의 더 얄미운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 사람도 자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기 때문에 자네는 그 사람 차를 타고 가야 할 걸세.”
“저를 데려온 두 요원은요?”
“아, 그 두 요원은 다른 볼일이 있어서 이미 이곳을 떠났네. 물론 반중력 전절을 탈고 갈 수도 있겠지만 인사만 하면 편히 갈수도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지 않겠나?”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텐데 태연히 저런 말을 하자, 과연 국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국장의 저런 애닮은 부탁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냥 인사만 나누고 편하게 가는 쪽을 택한 채, 소파에 다시 앉으며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행동에 국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며 나를 스카웃하려는 마음이 절실하기는 한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기관에 소속되지는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온다는 사람이 아무리 집으로 가는 동안 설득을 한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속으로 국장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설사 챌린저가 직접 와서 무릎을 꿇고 빈다 해도 아닌건 아니었다.
과연 얼마 후 노크소리가 들려오고 한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냥 소파에 앉은 채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내 누군가 들어오자 국장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며 곧바로 내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어서 오게, 내가 대단한 플레이어를 한명 소개시켜 준다고 했지? 자네도 브런즈 티어 10레벨이고 이 사람도 9레벨이니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어쩌면 앞으로 실버 티어 맵에서 만날지도 모르겠군. 혹시 그때 만난다면 서로 고통 없이 죽여주는 것도 좋은 일이니 얼굴이나 알아두라고 자리를 마련한 것일세. 자자.. 어서 서로 인사들 나누시게.”
국장이 일어서서 억지로 나를 일으키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어? 그런데 눈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아니, 정확히 눈앞에 서 있는 여자의 얼굴이 많이 낮익었다.
동기일리는 절대 없을 테고..?
누구일까?
헌데 눈앞에 보이는 검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가 나를 보는 순간, 마치 나를 알고 있다는 듯 무척이나 매력적인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곧바로 말을 더듬으며 차디차게 한 마디 뱉어냈다.
“너, 넌 그때 그 새끼..!”
“그때.. 그 새끼..?”
그때 그 새끼가 무슨 뜻인지 몰라 내가 표정에 의문 부호를 달고 고개를 갸웃하며, 한동안 그녀를 쳐다보니 그제서야 내 뇌리를 스치듯 뭔가 번쩍하고 지나갔다
“아..! 넌 그때 그 년!”
이제야 그녀가 누군지 생각났다.
그랬다. 그녀는 바로 티르얀과 내가 티밍을 하고 싸우다가 마지막에 티르얀이 그녀 손에 죽을 줄 알고, 내손으로 잘 죽지 않는 티르얀을 목 졸라 죽이게 만든 장본인인 그림자 어쎄신이었다.
그때 어쎄신은 복면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송곳 채찍으로 그녀의 얼굴을 찢어놓아 얼굴을 봤던 것이다.
물론 그깟 얼굴을 봤다고 그녀는 나를 고문하다가 나는 다른 곳에서 쏘아져온 무언가에 머리통을 정통으로 꿰뚫려 직사했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티르얀과 내 경험치는 획득하지 못했었고.
“두 사람 알고 있었나? 서로 맵에서 기적적으로 만난 적이 있었던 모양이군.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렇게 살벌하지?”
국장이 멋도 모르고 지껄이고 있었지만 지금 소리는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맵에서 만나 내가 특별히 기억하는 플레이어는 모두 4명이었는데 그 4명 모두가 공교롭게도 모두 여자였다.
첫 번째 여자는 첫 게임때 검붉은 전투복을 입은 금발의 외계여자로, 나를 엄청 무시하고 치욕을 안겨준 덕에 언젠가 다시 만나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구출신의 서양 여자로 그녀 또한 언젠가 만나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고 있었고, 세 번째가 바로 이 그림자 어쎄신이었다.
이 어쎄신은 개임에 참가한 후 처음으로 내게 고통과 치욕을 안겨줘 벼르고 있던 참에 지금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어제 나를 죽인 마법 옷의 키엘렌 교육원 출신 여자로, 그 여자는 내 검에 의해 가슴을 드러내놓아 그 덕에 탱탱한 가슴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내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여자였다.
하긴 그로 인해 내가 10위 안에 들어 보상 경험치를 획득해 아주 만족스런 고통이긴 했었지만.
아무튼 기억에 남는 네 여자 중 한명을 보니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이 솟구쳤지만, 랭크게임에서 일어난 일로 귀환해서까지 다툴 수는 없었기에 이내 그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그녀는 앙금이 남아 있었는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입술까지 살짝 깨물고 있었다.
‘뭐 저런게 다 있어.’
내가 화가 났으면 났지 제깟게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얼굴이 노출 돼 지금 내가 알아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를 더 괴롭히다 죽여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화가 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자, 랭크게임에서의 일은 그쪽 일이고 여기서는 다 같은 한편이니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국장이 그녀와 내 손을 잡고 억지로 자리에 다시 앉혔다.
헌데 눈치 없게 국장은 우리 두 사람을 같은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우리 앞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정말 눈치는 더럽게 없군. 저러니 낙하산이지.’
그녀로서는 얼굴이 노출 됐다는 그 단순한 이유 하나 때문에 나를 노려보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정말 똥싼 놈이 성질낸다는 경우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인사를 나누었으니 저는 그만 사라지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국장도 더 이상 나를 말리지 못하고 내가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아무튼 인사를 하긴 했으니까 말이다.
‘오늘 똥 한번 밟았다고 치자.’
식사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국장이 쓸데없는 짓을 해서 그나마 괜찮았던 기분만 망쳐버렸다.
브론즈인 그녀에게 차가 있다는 것은 기관에서 아마도 자질이 우수하다고 판단해 특별대우를 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차를 얻어 타고 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자존심 문제도 있고 또 차 안에서 역시 서로 어색할 것 같아 나는 그냥 반중력 전철을 타고 가기로 마음먹고 기관 건물을 나와 전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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