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의문의 여자
그때 국장의 말을 자른 여자가 이내 예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최준수씨의 사정을 잘 알고 있고 또 제가 원해서 하는 식사인데 당연히 제가 지불해야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와 몇 마디 주고받으니 성격도 무난했고 마음 씀씀이 또한 쾌활하고 괜찮은 여자 같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하지만 웬일인지 국장의 표정은 마치 똥 씹은 표정을 계속 짓고 있었다.
상황이 어찌보면 국장이 나와 여자를 소개팅 시켜주는 분위기 같아 나도 모르게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헌데 여자를 슬쩍 보니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살짝 웃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무척 많았지만 그중 굳이 단 한가지를 꼽으라면 국장이 저리 쩔쩔 매는 것을 보니 여자도 순위가 제법 높은 마스터급은 분명할 텐데, 하찮은 브론즈 티어인 내게 왜 이런 대접을 하고 또 다음에 왜 날 만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짐작돼는 부분은 충분히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을 바꿔 기관 요원으로 들이자는 수작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미인계에 넘어갈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무튼 나중에 여자에게 정말 연락이라도 온다면 마스터급과의 식사라고 해야 할지 데이트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고급 음식점답게 과연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식사 중 최고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꼽으라면 당연히 이곳이었다.
그것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교육원에서 제한된 음식으로 단체 식사밖에 하지 않았으니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고급술이 들어와 한잔 마시며 대화를 하는 사이, 그녀와는 이내 어느 정도 부담감이 줄어 이제 조금은 친숙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실 처음 그녀가 방문을 열고 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솔직히 고고해 보이는 그녀를 보며 무척 도도하게 행동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술이 약이 됐는지 그녀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녀에게서는 고고함이나 도도함과는 거리가 있는 귀여운 모습이 내 눈에 더 많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는 국장마저도 될대로 되라는 식인지 이제 똥씹은 표정은 사라진 채 평소와 같아져 나와 더불어 술잔을 자연스럽게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국장과도 많이 친숙해진 느낌이 들며 어느 사이엔가 서로 가끔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어느덧 자리를 시작한지 3시간이 흘러가자 이제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게 됐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그녀는 먼저 가겠다고 하며 내게 다시 악수를 청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에 제가 국장님께 연락처를 받아 연락할 테니 그때 다시 자리를 한번 마련하도록 해요.”
“시간이 되면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악수를 하고 나자 그녀가 다시 조금은 고고하면서도 도도한 모습으로 국장을 돌아보며 마치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그럼 국장님께서는 최준수씨를 잘 모셔다 드리세요.”
“알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히 들어가십시오.”
국장이 그녀에게 90도로 깍듯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내가 궁금해 그녀의 잘빠진 뒷태를 바라보며 은근 슬쩍 물어 보았다.
“저 여자가 누군데 그렇게 쩔쩔 맵니까?”
“후우! 그건 말할 수 없고 그냥 내 상관이라고만 생각하면 되네. 그리고 내가 말한 대로 자네 팬이기도 하고.”
“팬이라..? 저런 끝내주는 팬이 있다면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죠. 얼굴도 미인이지만 뒷태가 정말 끝내주는 저런 팬이라면야 대환영이죠.”
국장과 어느새 친해진 마음이 들었는지 그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본 채 농담을 하며, 슬쩍 입맛을 다시자 국장이 대경실색하며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리고 혹시 다음에 단 둘이 만나더라도 괜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 거네. 괜히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까.”
“골로요..? 국장님도 그런 말씀을 쓰시네요.”
“그럼 나도 사람인데 그런 말 좀 하면 안되나?”
“아니.. 그건 아니지만요. 하긴 연세가 몇 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겉모습은 나와 같은 젊은 모습이니 그리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내 나이 이제 고작 1853살밖에 되지 않았네. 아 참, 아직 시간도 그렇고 하니 내 사무실로 가서 차나 한잔 하고 가지.”
뭐라고 대답할 사이도 없이 국장이 앞장서 근처에 있는 자신이 근무하는 중앙 기관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3시 밖에 되지 않아 나 또한 집에 가서 특별히 할 일도 없어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나이가 정말 1853살이나 되셨습니까? 전 국장님 나이가 그렇게나 많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그렇게 많이 먹은 편이 아니지. 지구의 다른 마스터들을 보면 3천살이 넘어가는 분들이 대다수니까. 사실 나는 계속 다이아 티어와 마스터를 오가며 50년 전에야 비로소 마스터 안정권에 들어섰다네. 솔직히 다른 마스터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빠른 셈이지.”
국장은 자신의 자질 또한 나쁘지는 않다고 은근히 과시하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것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꼴이라 대놓고 내게 말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스터 안정권이요..?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중에 겪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마스터로 올라간다고 해서 계속 마스터를 유지할 수는 없다네, 계속 밑에서 치고 올라오니까. 하지만 전 우주에 100만의 마스터가 있는데 이제 난 9십만 위 안에 들었으니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든 셈이지. 그래서 챌린저님께서 나를 중앙기관의 국장으로 임명하신 것이고. 사실 나는 오래전 챌린저님이 나오신 교육원 교관이었다네.”
“그래요..? 그럼 낙하산이신거군요.”
“뭐,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구에 몇 십명 되지 않는 마스터이니 결코 낙하산이라고는 볼 수 없다네.”
국장은 마스터인 것이 무척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듯 그 말을 할 때에는 얼굴 표정에 자부심이 가뜩 서려 있었다.
헌데 말을 끝내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웬일인지 조금은 내 눈치를 보듯 힐끔거리며 다른 말로 화재를 바꾸었다.
“헌데 이걸 어쩌지, 자네가 네게 연락할 것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앞으로 자주는 아니겠지만 가끔은 전화를 해야 될지도 모르는데.”
“그건 왜.. 입니까?”
내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대꾸하자 그가 짐짓 난처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챌린저님께서 자네를 눈 여겨 보고 계시기 때문이지.”
“챌린저님께서요..?”
“그렇다네, 예전에도 관심을 보이셨지만 이제 자네가 3번째 게임에서 9레벨로 귀환을 했으니 더욱 그러신 거지. 사실 챌린저님께서는 대단한 자질을 타고 나셨지. 첫 게임에서 2레벨로 귀환하시고 실버 티어로 승급되기까지 채 일년도 걸리지 않으셨네.”
“.......?”
“아, 물론 자네에 비해서는 챌린저님의 그 자질도 무색하지만 말야. 그래서 챌린저님께서 자네를 더욱 눈여겨보고 계시는 것이기는 하지만.”
“저야 그저 운으로 그렇게 된 것 뿐입니다.”
사실 나는 내 자신이 그렇게 플레이어로서 자질이 있다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머리를 좀 굴린 것뿐이고 도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에 비해 조금 우월하다는 정도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국장의 말을 듣고 챌린저마저도 실버티어로 승급하는데 자그마치 1년이 걸렸다는 말을 듣고, 내가 정말 자질이 우수한 것은 아닐까 하고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그 이유는 물론 다음 네 번째 랭크게임에 참가하게 된다면 10 레벨은 물론 실버 티어로까지 승급될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9레벨인 지금 10위안에 든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면 보너스 경험치가 주어져 별다른 변고가 생기지 않는 한 필히 실버 티어로 승급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단정을 짓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을 국장도 알고 있는 듯 옆에서 걸어가는 나를 힐끔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는 지금 세 번째 게임에서 9레벨까지 오른 것이 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나 챌린저님께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실상 다음 게임에서는 분명 실버 티어로 승급될 것이고 그것은 한달만에 이룬 성과네. 아마 전무후무한 기록이 되겠지.”
“저로서는 그게 전무후무한 성과인지는 모르겠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게임에 참가하면 그저 최선을 다했던 것뿐입니다.”
“후훗, 겸손하구만. 아무튼 자네가 우리 아시아 지역에 산다는게 정말 고마울 뿐이네. 다른 유럽이나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요사이 마스터가 한명씩 또 탄생했다네. 사실 우리 아시아 지역에 상위 티어들이 부족해 챌린저님께서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라네. 그래서 내가 이토록 인재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기도 하지.”
국장의 말을 듣고 나자 나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하나 생겨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되물었다.
“교육원에서 알려준 대로라면 지금 지구의 챌린저님들은 모두 다섯 명으로 각 지역을 다스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헌데 만약 혹시라도 또 한명의 챌린저가 지구에서 탄생하게 된다면 어찌되는 것입니까?”
“왜..? 자네가 챌린저라도 되고 싶은겐가?”
“그야 모르는 일이죠. 혹시 압니까 제가 나중에 그렇게 될지도요.”
국장이 말을 놓고 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정도 말하는 투가 편해지면서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굳이 예전처럼 딱딱한 말투로 다시 바꾸지는 않았다.
내가 반농담조로 대꾸하자 국장이 빙그레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원래 오래전에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기는 있었네. 하지만 새로운 챌린저가 탄생되더라도 기존의 챌린저 순위를 뛰어 넘기란 정말 힘들다고 할 수 있지. 만약 새로운 챌린저가 기존의 챌린저 순위를 뛰어 넘기만 한다면 지역의 주인이 새로 바뀐다고 보면 되네. 그리고 낮은 순위는 2인자가 되는 것이고.”
“생각보다 복잡하지는 않군요.”
“그런 셈이지. 그리고 또 한가지, 새로 챌린저가 등극했다고 해도 그 아래 기관에 종사하는 요원들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면 된다네. 그 이유는 예를 들어 기존기관에 종사하던 마스터나 다이아 같은 플레이어들을 해고 시켰다가 앙심을 품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버린다면, 그만큼 자신 지역 내에 인재가 줄어들어 타격이 가기 때문이지. 그리고 혹시라도 2인자가 됐었던 챌린저가 다시 또 상위 순위를 차지한다면 그때는 1인자와 2인자만 자리가 바뀌는 셈이 되는 것이네.”
“간단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꽤 복잡하군요.”
“그렇게 복잡할 것도 없네. 사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혹시라도 생긴다면 그 지역은 축복받았다고 할 수도 있는 셈이지. 가끔 지역간에도 분쟁이 생기는데 한 지역에 챌린저가 두 명이 있다면 감히 누가 도전을 할 수 있겠는가.”
국장의 말을 들어보면 한 지역에 혹시라도 챌린저가 두 명 탄생한다면 그건 불운이 아니라 행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헌데 그런 것을 생각하고 나자 또다시 떠오르는 의문점이 하나 더 있어 그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더 있습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차나 마시며 얘기하지. 그리 급하게 집에 가야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어느새 기관 건물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오늘은 정말 할 일도 없어 국장 말대로 느긋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헌데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왠지 모르게 반발심이 들고 딱딱한 분위기였었는데, 그래도 두 번째 와 보는 것이라고 눈에 익어 많이 자연스러워지고 분위기 또한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