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의문의 여자
‘축지!’
순간 눈앞의 공간이 아지랑이가 낀 듯 스멀거리며 올라오더니 땅바닥이 흐느적거렸다.
곧바로 한발을 내딛자 그사이 나를 공격하려고 다가왔던 그녀의 세 가닥 옷자락 끝이 저 멀리 뒤로 물러나며 한순간에 내 몸은 벌써 저만치 앞으로 나가있었다.
두 번째 발을 대딛자 내 몸은 벌써 그녀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 그녀가 어느새 코앞에 다가간 나를 보며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잠깐 사이, 그녀에게 날아든 주작이 몸체에 최대한 불길을 일으켜 그녀의 머리를 세차게 들이받아 자살(?)을 했다.
곧바로 그녀의 머리통에 불꽃이 일며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악!”
비록 죽지는 않겠지만 그 고통만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할 터다.
그 순간 나도 역시 오러검으로 그녀의 목을 따기 위해 가로로 힘차게 일검을 그어댔다.
헌데.
“아흐흑!”
내 일검에 묵직한 손맛이 전해져와 기쁜 마음으로 급히 그녀를 보니 아뿔사.
주작이 머리를 들이박는 동시에 고통으로 그녀의 목이 뒤로 휘어지며 몸체까지 뒤로 같이 휘어져, 내 검이 정말 우연히도 그녀의 목 밑에 자리 잡은 양가슴을 가로로 가르며 지나가 옷이 길게 찢겨져, 탱글거리는 양쪽 가슴이 어느새 훤히 드러나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옷자락이 질겨 목을 겨냥한 것인데 아마도 주작의 공격으로 기력을 다스릴 수 없자 내 검에 옷자락이 찢겨진 모양이었다.
옆으로 길게 갈라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양쪽 가슴은 내 검에 의해 길게 상흔이 그어져 한순간에 피가 내 얼굴에 확 튀어 피 세례를 면치 못했다.
얼굴에 피가 뿌려지며 그녀의 몸에 드디어 상처를 내긴 했지만 축지술로 인해 내 도력이 급격이 소진돼 한순간 체력과는 상관없이 몸 안에 힘이 빠져버렸다.
“후우.. 후우..!
일검으로 젖가슴을 벤 후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이 그녀의 머리와 가슴에 난 상처가 급격히 아물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도력이 소진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회복 되지만 지금 그녀의 상처가 회복되고 정신을 가다듬는다면 나는 곧바로 그녀의 손에 의해 지구로 귀환해야 했다.
‘시간을 더 끌어야 한다.’
푹!
간신히 힘을 내고 다시 검을 들어 그녀의 목을 찌르려는데 그녀가 어느새 고통 중에도 정신을 차리고 급히 몸을 뒤로 물려 피하고 있었다.
그러자 공교롭게 이번에도 또다시 그녀가 물러나는 바람에 검 끝이 그녀의 탱탱한 오른쪽 가슴을 깊이 파고들며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여왔다.
“아하학!”
가슴에 검이 꽂혔지만 이번에는 머리에 치명상을 받지 않아 그나마 정신은 있는지, 몇 발자국 순식간에 뒤로 다시 물러나 내 검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에서 빠져 버렸다.
이 몇 번의 공격으로 그녀의 체력은 최소 3분의 1 이상이 떨어졌을 것은 분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뒤로 물러난 그녀는 가슴에서 고통이 밀려왔을 텐데도 급히 두 손으로 환히 드러난 가슴을 가리더니, 좌측 옷자락을 길게 늘어뜨려 찢겨져 나간 옷자락 대신 급히 가슴을 가리며 고통인지 치욕인지 모른 채 그 고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이, 이, 개새끼가 감히..!”
앵두 같은 고운 입술에서 저런 상스러운 욕이 튀어나오자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저런 말이 나올만도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패하면 강간까지도 당할 수 있는 처지에 저런 상스런 욕은 좀 아니라고 생각해, 도력이 소진되어 지친 중에도 지지 않고 한마디 대꾸해 주었다.
“이 개 같은 년아! 뭐가 감히야? 네년이 피해서 그런 꼴을 당해 놓고.”
“이 개 새끼야 그럼 목을 긋는데 그대로 맞고만 있으라는 얘기냐?”
“그건 내가 알바 아니지, 가슴을 보이기 싫었으면 그냥 목을 맞았으면 될거 아냐, 이 개 같은 년아!”
“저, 저 상스러운 새끼.”
“미친년!”
상스러운 욕은 자기가 먼저 해서 내 입에서도 그런 저질스런 욕이 나오게 해놓고 저년은 오로지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미친 새끼! 너 오늘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말어.”
“내가 바라는 바다, 이 미친년아!”
차라리 내게 고통을 주고 조금이라도 늦게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내가 정말 바라는 바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상대였기에 내 최대 목표는 방금 그녀가 한 말이었다.
‘더 욕을 해줘서 더 열 받게 해야 하나..?’
생각 같아서는 더 저질스런 욕을 해주어 화를 더 돋궈주고 싶었지만 이정도로도 충분히 열 받았다고 생각해 입이 더러워 질까봐 쌍욕은 그만하기로 했다.
체력은 그대로 60%가 남아 있었지만 그녀가 공격을 시작하게 되면 이제 나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어 지친 중에도 먼저 선공을 취하기로 했다.
이제 축지술은 쓸 수가 없어 온몸에 남아 있는 도력을 짜내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녀에게 먼저 검을 들고 달려 나갔다.
“흥, 어림없다, 전에는 내가 방심했을 뿐이다.”
내가 달려 나가자 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양 소매에서 급히 다시금 옷자락을 길게 늘어뜨려 내 양쪽 옆구리를 공격해 왔다.
쉬리릭..쏴아악
내가 달려 나가면서 두 소매를 쳐내자 언제 쏘아냈는지 젖가슴을 가리던 좌측 옷자락 외에 우측 등에서 나풀거리던 옷자락이 시간차로 날아와, 어느새 검을 들고 있는 오른 손목을 감아왔다.
확실히 도력이 소진되니 이처럼 쉽게 제압당한 것을 보고 속으로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이제 끝이군.’
한순간 오른 손목이 잡히자 양 소매 끝이 다시 날아와 한쪽 손까지 감아버려 나는 만세 자세로 허공에 둥실 떠있는 꼴이 되어 버렸다.
“너 이 새끼, 나에게 고통을 주고 감히 내 가슴까지 훔쳐봤겠다!”
그녀는 혼자 열을 내더니 나머지 하나 남은 길게 늘어뜨린 소매 끝을 뾰족하게 만들더니, 돌연 내 몸의 급소가 아닌 허벅지나 옆구리 어깨 등을 마구 찔러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크흠..!”
곧바로 온 몸 곳곳에서 엄청난 고통이 전해져 왔지만 나는 신음 한마디 뱉어내지 않고 그녀를 비웃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체력이 55%로 떨어졌습니다]
[체력이 51%로 떨어졌습니다.]
체력이 점점 소진되어 갔지만 이제 부적도 꺼낼 수 없고 검도 사용할 수 없으니 이대로 죽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때 생존자 수를 확인해 보니 11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체력은 어느새 24%까지 떨어져 있어 체력이 다 할 동안 단 1명만 죽어나가기를 고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녀는 내게 수모를 당했다 생각하고 있었는지 여전히 급소는 피한 채, 이제 늘어난 옷자락을 마치 칼날과 같이 만들어 내 몸을 깊이 찌르지는 않고 마치 칼로 난자하듯 온 몸을 그어대고 있었다.
그러던 한 순간 드디어 11명중 1명이 죽어나가고 드디어 생존자수가 10명으로 바뀌는 순간 엄청난 고통 중에도 내 얼굴이 나도 모르게 환해졌다.
그리고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그 동안 나를 고문하며 밝았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져 갔다.
그녀도 내 얼굴을 보고 내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짐작하고 생존자 수를 확인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튼 고맙다고 인사말은 해야겠군.”
내가 느물거리며 말하자 그녀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좋아, 어차피 이리 된 것 네 놈을 더욱 고통스럽게 해주마.”
“좋아 좋아, 아직 체력은 충분하니 어디 네 마음대로 맘껏 해보라고, 만약 내 입에서 신음 한마디라도 나온다면 다음에 혹시 지구에서 네년을 보면 널 업고 다니지.”
“좋다,, 체력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다니 그럼 어디 한번 실컷 당해봐라.”
사실 체력은 이제 6%밖에 남아 있지 않아 한번에 죽을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한순간 그녀의 칼날같이 일어선 옷자락이 내 어깨 살점을 한웅큼 베어낼 듯 살 속을 파고 들어왔다.
순간.
[체력이 0%로 떨어 졌습니다.]
체력바가 0으로 줄어들고 알림음이 전해져 오자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고맙다, 이제 난 지구로 귀환할 테니 혹시라도 지구에서 보게 된다면, 오늘 10위에 들게 해준 댓가로 술은 한잔 사주도록 하지.”
말을 마치자 내 몸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그때 문득 그녀를 보니 속았다는 것을 알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 식식거리고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다.
곧바로 정신이 돌아와 영혼이 흰빛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그녀를 내려다보니, 그녀는 내가 사라진 곳만을 멍하니 쳐다본 채 허탈한 표정만을 짓다가 이내 내가 사라지는 허공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왔던 구멍을 되돌아가 잠시 후 내 방 책상에 앉아 있는 내 본체로 다시 영혼이 들어왔다.
“흐음, 드디어 보너스 경험치를 획득했다!”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조금은 큰소리로 중얼 거렸다.
트롤 1마리에 6급 플레이어 한 놈 그리고 이리들 17마리에 10위안에 든 보너스 경험치까지.
전에 흑기사를 죽이고 난 후 확인한 670/700이후로 상태창은 열어 보지 못했었다.
트롤을 죽이며 8레벨로 승급했다는 것은 느꼈지만 그 후로 계속 싸움을 하느라고 다시 확인해 볼 시간이 없었다.
과연 레벨이 어느 정도 올랐는지 무척 궁금해 나는 곧바로 상태창부터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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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 최준수
종족 : 인간 (인간)
직업 : 도사
티어 : 브론즈
레벨 : 9
경험 : 565/900
능력치 P: 도력 : Lv 9
특수능력 P : 도술 : Lv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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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계산해 따져보니 트롤이 80점이고 이리 한 마리당 15점 그리고 6레벨자가 60점으로 계산한 후, 8레벨로 올라가기 전 30점을 제외하니 10등 보너스 경험치는 딱 1000점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10등이 경험치 1000점이면 9등은 1500점인가? 아니면 2000점..?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군.’
생각했던것 만큼 많은 경험치는 아니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보너스 경험치가 주어진다고 했으니, 9급 레벨로 다시 10등 안에 들기만 한다면 다음 게임 때에는 어쩌면 10레벨을 지나 실버 티어인 11레벨까지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브론즈 티어 내에서 최대한의 경험치를 획득해 실버티어에 진입해야 그곳에서 최하인 11레벨을 넘어 조금은 유리한 상태에서 게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브론즈 티어에서 1등은 한번 해봐야겠지. 그래야 보너스 경험치 외에도 능력치나 특수 능력을 공짜로 1레벨 올릴 수 있을 테니까.’
상태창을 확인하고 실버티어 랭크게임까지 생각하고 나자 책상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보았다.
시간은 랭크게임에 참가할 때와 같은 정오였지만 역시 사람들은 그리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있었다.
‘나도 오늘은 편히 쉬어줘야겠지.’
게임이 끝나고 나면 비록 육체는 본체로 돌아와 체력적으로는 힘든 부분이 없었지만 역시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쌓여, 수요일 하루는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편히 쉬어주는게 거의 일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곧바로 침대에 누워 잠이나 한숨 때리려고 하는데 문득 나를 죽였던 키엘렌 교육원출신 여자가 생각났다.
‘아마도 무척 약이 올라 있겠지?’
내가 레벨을 올리고 체력까지 속여 단숨에 날 죽이도록 했으니 암코양이처럼 약이 바싹 올라있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가 키엘렌 출신이라면 내가 사는 지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해, 혹시라도 지구에서 만나게 되면 조금은 어색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아주 가금은 우연히 랭크게임에 참가해서 서로 죽인 플레이어가 현실에서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말을 교관들로부터 들은 기억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