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하드랭크 게임
한순간에 투구 속 시커먼 얼굴에 오러 검이 파고들자 마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놈이 엄청난 괴성을 질러댔다.
휘리리릭
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찔러 넣은 검을 좌우로 마구 휘저었다.
쨍그랑!
그 순간 드디어 놈이 온 몸을 연신 부르르 떨더니 마침내 손에 쥐고 있던 대검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놈의 몸체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으며 그 자리에는 몸체가 사라진 채 갑옷과 투구만이 남아 있었다.
“후우! 이런 놈이 이 맵에 수두룩하다면 중상급 레벨자들도 살아남기는 힘들다.”
7레벨인 나도 이렇게 고전한 것을 생각해볼 때 나보다 하위 레벨자들은 도저히 이 산맥을 뚫고 안전지대까지 도착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 각 레벨에 걸맞는 놈들이 나타나는 건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알 수 없는 존재가 아무리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전우주의 수많은 하드맵에서 싸우고 있는 레벨자들에게 맞춤형으로 이런 놈들을 일일이 보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그 존재 밑에 수많은 하류신이나 부하 신들이 있다면 모를까.
잠시 놈에 대해 생각하고 난 후 나는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놈은 과연 경험치가 얼마나 주어졌는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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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 최준수
종족 : 인간 (인간)
직업 : 도사
티어 : 브론즈
레벨 : 7
경험 : 670/700
능력치 P: 도력 : Lv 7
특수능력 P : 도술 : Lv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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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치가 고작 100점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내심 실망하며 그 이유를 잠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한 무리의 보스는 부하들이 있어 그만큼 처치하기 어려워 그런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어찌됐든 일반 랭크게임이었다면 10레벨자 한 놈 또는 하위 레벨자 여러 명을 죽인 셈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30점만 올리면 다시 레벨업이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흥분되기는 했다.
곧바로 생존자수를 확인해보니 그 사이 9명이 죽어 이제 19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10위권 안에 들기 더럽게 힘들군.’
안전지대까지는 아직 167키로나 남아 있는데 이러다가는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문득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도 상황은 모두 동일할 것이라 생각하니 그나마 안심은 됐다.
문득 경험치 30점 미달로 레벨업을 할 수 없게 되자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일반 불개미 두 놈을 더 처치했어야 됐는데.’
문득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앞일을 알 수 있었다면 벌써 브론즈 티어를 벗어나 실버티어로 승급했을 터다.
또 내가 너무 앞서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버티어로 승급해 이제 11레벨 이상의 플레이들과 싸우려면 그곳에서는 또다시 최하위 레벨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순간 힘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머리만 잘 쓴다면 꼭 최하위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는 했다.
얼마 전 고릴라는 한눈에 보기에도 이 브론즈 맵 안에서 11레벨로 승급했었다.
그렇다면 그는 이 맵 안에서 분명 1등을 차지할 것이고 그렇다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경험치 보상이 따로 주어진다.
게다가 능력치와 특수능력 또한 레벨업과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각각 1레벨씩 또 올라가고, 거기에 더해 이곳에서 죽인 플레이어들이나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만큼 또다시 경험치를 챙길 수 있다.
한마디로 10레벨로 승급된 후 무조건 1등을 차지하고 최대한 경험치를 뽑아낼 수만 있다면 실버티어 맵에 처음 가서도 최하 레벨로의 시작은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플레이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터인데 모두가 그 바람대로만 된다면, 실버티어로 승급된 후 최하위인 11레벨로 시작하는 플레이어들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역시 고릴라처럼 모든게 운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혹시라도 10레벨로 승급된 후 다른 10레벨자에게 곧바로 죽어버린다면 지금 생각한 것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다만 10위안에 들어간 보상 경험치만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훗! 생각한 대로만 된다면 도태자도 생겨나지 않을 테고 벌써 모든 플레이어들이 챌린저가 됐겠지.’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한 후 다시 안전지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혹시라도 경험치 30점 이상 되는, 처치하기 쉬운 최하급 생물체를 만나 레벨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안전지대에 도착하기 전 어떻게든 8레벨로 승급된 후 들어서야 생존율이 더욱 높아지는 것은 당연해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지만 역시 모든게 내 뜻대로 이루어질리 없었다.
한참을 전진하다보니 어느새 그리 높지 않은 산 정상을 지나 이제 비탈이 그리 심하지 않고 비교적 평탄한 숲길이 나타나자, 웬일인지 자기장이 점점 더 빨리 좁혀져와 할 수 없이 인벤토리에서 킥보드를 꺼내 속도를 더욱 높여 안전지대로 향해갔다.
이제 안전지대로 들어서게 되면 하급 레벨자는 찾아볼 수 없고 예외 없이 최강의 플레이어들만을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자, 안전지대가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이제는 최하급이 아니라 얼마 전 나타났던 놈 정도의 존재라도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얼마 전 죽인 놈보다 더 강한 놈이 나타난다면 내가 당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선다면 행운은 더 이상 바랄 수 없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흰 막으로 둥글게 펼쳐진 안전지대가 저 멀리 보였지만 끝내 위협이 될만한 생명체는 한 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건 다른 놈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는지 여기까지 오는 그 오랜 시간동안 생존자 수는 그대로 19명이 남아 있었다.
얼마 후 안전지대로 들어서자 그 동안 잠깐 헤이해졌던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 온 몸에 긴장감이 전해져 오며 주변 또한 어쩐지 조금은 살벌한 분위기로 변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정말 강자존이 되겠군.’
살아남은 19명은 이 맵 안에서 운으로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단 한명도 없는 진정한 강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드맵이 아닌 노멀맵이라면 혹시라도 전에 나처럼 운과 얍삽함으로 안전지대까지 올수 있었을지 모르나 이 하드맵에서 그런 운은 통할 수가 없었다.
자신만의 본 실력으로 싸우라는 것인지 외곽 지역에서 나타난 보물상자 외에는 다른 아이템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안전지대의 반경은 600미터밖에 되지 않아 나는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고 바깥쪽으로만 돌며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안전지대 안은 모두 같겠지만 조금이라도 바깥에 있다면 그만큼 더 오래 생존해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와 나무 사이로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니, 한 플레이어가 괴상하게 생긴 생명체가 싸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놈은 트롤이라는 몬스터 같은데..?’
교육원에서는 대체로 잘 알려진 몬스터나 괴수 또는 언데드들을 교육생들에게 틈틈이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며 특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앞에 놈은 분명 트롤이 틀림없었다.
카우우웃!
트롤이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나고 지상에서 오우거 다음의 먹이 사슬을 차지하고 있는 강한 몬스터라지만 역시 안전지대까지 들어온 플레이어를 당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트롤이 저항을 하고 있었지만 놈은 플레이어에게 연신 공격을 받으며 괴성을 지른 채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트롤도 만만치 않아 한동안 두 놈의 전투는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허나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역시 트롤이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자 나는 플레이어의 실력을 가늠해 보았다.
물론 내가 상대할 만한 자라면 뛰쳐나가 두 놈 모두의 경험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언뜻 보기에도 놈은 나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한 레벨 낮은 플레이어로 판단됐다.
‘얼마 전 나와 싸운 흑기사 같은 놈보다 조금 약해 보이는 트롤을 저 정도로밖에 요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분명 6레벨이나 잘해야 나와 같은 7레벨 정도 될 것 같군.’
흑기사를 어렵게 처치했지만 그래도 트롤 정도로 저렇게 시간을 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6레벨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나는 이제 트롤이 거의 죽을 시기가 되자 재빨리 앞으로 뛰쳐나갔다.
“엉! 뭐야 이놈..?”
내가 뛰쳐나가자 역시 트롤 못지않게 괴상하게 생긴 외계 플레이어가 놀라 소리쳤다.
다 차려놓은 밥상을 내가 거저 낼름 먹겠다는 속셈이라는 것을 눈치챈 플레이어가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내가 다가오기 전에 트롤을 죽이려는 듯, 마치 오러가 입혀진 것 같은 흰 빛의 기다란 발톱을 재빨리 트롤의 가슴을 향해 내뻗었다.
하지만.
퓨슈슉.. 쏴라락
뛰어나가며 곧바로 부적을 두 개 꺼내 하나는 놈을 향해 공격하고 다른 하나는 트롤을 향해 재빨리 쏘아냈다.
놈이 트롤을 공격해 죽인다 해도 내 공격을 맞을 수밖에 없는 기막힌 타이밍이라 놈은 화가 무척 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멈추고 뒤로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곧바로 놈이 뻗어낸 손톱을 물리고 뒤로 급히 물러나는 사이 트롤이 놈과 내 공격에 당황하며 주춤하는 사이 이내 내 바람의 화살이 배에 정통으로 적중했다.
카우우웃!
쿵! 쿵! 쿵!
진한 녹색피를 흘리며 놈이 배를 움켜쥔 채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그 사이 나는 벌써 트롤게게 접근해 가장 빠른 살상력을 지닌 오러검으로 배를 움켜쥐고 연신 고통을 호소하는 트롤의 목을 단 일검에 베어버렸다.
‘승급했다, 8레벨!’
트롤의 경험치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레벨이 승급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7레벨일 때도 외계 플레이어와의 싸움에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 8레벨이 되니 놈 또한 이제 내 제물이 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됐다.
“이, 이 비겁한 새끼!”
‘미친놈!’
놈의 말에 내가 한마디 쏘아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험치를 획득해야 하는 이런 곳에서 비겁하다고 말하는 놈이 가소로웠다.
놈에게 도력을 낭비할 필요 없이 오러검으로만 처치하기 위해 내가 한마디 해주고 바로 달려들자 놈이 당황하며 역시 기다란 양 손톱을 앞으로 내밀어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내 귀로 이상한 소리가 연이어 들여오는 것이 아닌가.
컹컹컹!
워우우우우.. 커우우우욱
‘뭐지 이 소리는..?’
놈에게 달려가는 사이 들려오는 소리에 나뿐 아니라 놈 또한 발톱을 치켜든 채 소리가 들려온 곳을 힐끔거렸다.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는 한소리가 아니라 최소 20여개는 되어 그 수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급히 놈에게 달려가던 발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소리로 보아 분명 플레이어들은 아니고 몬스터나 괴수가 분명해 어쩌면 혼자 당해내지 못할 수도 있어 우선은 놈과 동업이라도 해야 할지 몰라 잠깐 살려두기로 했다.
들려온 소리는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지 어느새 무척 가까운 곳에서 들여오고 있었다.
외계 플레이어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나를 경계하던 눈빛이 조금 사라지고 이내 나와 같은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잠깐 사이 의문의 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오며 숲 한곳에서 풀들이 흩날리며 20여 마리의, 마치 개와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 재빨리 튀어나와 조금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워우우웅.. 우워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