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하드랭크 게임
놈의 의도를 눈치챈 나는 서서히 불개미들을 죽여 가며 보스개미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해 갔다.
어차피 놈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놈을 물리치고 전차를 내가 획득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제남아 있는 불개미의 숫자도 많이 줄어 300여 마리 정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보스 개미의 호위 불개미들은 제외한 숫자다.
또한 당연히 지금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최소 나와 같은 레벨자들임은 분명해 보였다.
한 플레이어당 평균 30여 마리의 불개미들이 달라붙어 있었지만, 모든 플레이어들은 그 사이 기력과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 이제는 그 30여 마리들을 상대로도 무척 힘겨워 하고 있었다.
물론 내게도 30여 마리의 개미들이 붙어 수시로 공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주작과 청룡이 허공에서 놈들의 주위를 분산시켜주어 움직이기가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많이 용이한 편이다.
주위에는 이미 죽은 플레이어들이 남긴 보물 상자들이 3개나 있었지만 지금 그것들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아마도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했거나 또는 벌써 모두 소진한 모양이었다.
하긴 죽는 마당에 아이템을 아낄 이유는 없었으니까.
한걸음 한걸음 불개미들을 처치하며 보스개미에게 다가가는 사이 나는 잠깐 생각해 보았다.
한 놈당 경험치가 예전 흰개미들과 마찬가지로 15점이라면 7급으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600점을 획득해야 한다.
그럼 40마리를 죽여야 600점이 되는 것이다.
6급으로 승급되기 전 몇 마리를 죽여야 된다는 것을 감안해도 내가 45마리는 처치해야 7급으로 승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까지 그 정도는 처치한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긴 이 불개미들은 흰개미처럼 이빨로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산성종류와 같은 액체를 쏘아내기 때문에 처치하기가 더 까다로운 놈들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45마리는 넘게 처치한 것 같았은데..?’
혹시나 흰개미보다 경험치가 적을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상식적으로 더 강한 놈이 경험치가 낮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생각한 끝에 결국 내가 흰개미 때보다는 힘을 더 쏟는 바람에 더 많이 죽였다고 착각한 것이라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불개미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나만이 움직이자 보스개미와 호위개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와 두 미완의 신수로는 자신들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눈길을 다시 전차 근처에 있는 고릴라에게로 향했다.
보스 개미가 전차로 인한 혹시 모를 위험에도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헌데 일반 개미의 습성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개미들은 보통 후각적 페르몬과 촉각 그리고 미세한 음파로도 서로 간에 대화가 가능하다.
헌데 보스 개미가 다른 개미들과 거리가 너무 멀어지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아마도 전투를 하던 불개미들은 불안감을 느껴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뇌리를 스쳤다.
아마도 내 생각이 맞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안한 눈빛과 행동을 보이면서도 고릴라 쪽만을 바라보며, 이제 다른 곳에서 싸우던 개미들을 지원 보내면서까지 굳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10여 군데에서 플레이어들과 싸우던 불개미들이 한곳에서 2-3마리가 이탈해, 몇 십 마리가 고릴라 있는 곳으로 지원을 갔지만 역시 고릴라의 능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개미의 시체가 늘어가더니 그가 기어이 어느 순간에는 점프와 함께 전차의 윗부분에 올라타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리고 이내 전차로 기어 올라오는 불개미 몇 놈을 처치한 후 곧바로 뚜껑을 열어 전차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고릴라가 전차 안으로 들어가자 순간 보스 개미를 비롯한 호위 개미들이 잠시 놀란 듯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놈들은 뒤로 물러나지는 않으면서도 웬일인지 이내 일사 분란하게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이동을 하는 것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조준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여져 보스 개미는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플라즈마 포는 포물선이 아닌 직선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호위 개미들은 이내 보스 개미의 앞쪽에 늘어서서 벽을 쌓으며 호위를 하려했다.
이것도 아마 전에 겪어 봤기에 이처럼 신속하게 움직이며 대응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나는 개미들이 꼭 전쟁터에 나온 훈련된 지적 생명체 병사들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50여 마리의 호위 개미들이 신속하게 보스 앞에 진을 친 상태로 좌우로 계속 움직이기를 얼마 후.
파슝!
꽈꽈꽝!
마침내 포신에서 푸른색의 발광체가 생성되며 보스 개미가 방금까지 자리했던 근처로 떨어져 커다란 웅덩이가 깊이 파여졌다.
보스는 몰론 호위개미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빨라 포신이 좌우로 움직이며 조준을 했지만 그리 쉽게 맞출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퓨슝,, 푸슈슝!
곧바로 또다시 발광체가 연이어 날아왔지만 역시 고릴라의 조준 실력은 형편없었는지 계속 뒷북만 치고 있었다.
헌데 이때 고릴라를 공격했던 50여 마리가 넘는 불개미들이 전차의 양 옆에 늘어서더니 일제히 전차를 향해 액체를 뿜어대는 것이 아닌가.
액체가 닿자 은빛의 전차는 이내 푸시식 소리를 내며 부식은 됐지만 상급 아이템답게 녹아내리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액체를 맟기 전에 이미 고릴라로부터 원반 공격을 몇 차례나 받은바 있는 전차의 내구력이 많이 감소되어 있을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한순간에 부식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쯤 고릴라는 전차 안에서 자신이 얼마 전에 전차에게 했던 짓을 절실히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50여 마리가 동시에 뿜어대는 액체는 전차 곳곳에 계속 뿌려져 한순간에 그 찬란했던 은빛의 색깔이 어느 사이엔가 거무스름해지며, 포신이 좌우로 움직일 때는 이제 삐그덕 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고릴라는 화가 났는지 쉴새없이 포신을 움직여 보스 개미를 맞히고자 플라즈마 포를 연신 갈겨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쿠아앙!
카가가각! 그르르륵!
호위개미들이 개미답지 않은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사방으로 튀어 올라갔다.
전차가 제 기능을 하며 빠르게 움직일 때는 맞추지 못하더니, 이제 거의 부식돼 20여발을 모두 쏴 됐을 쯤에야 기어이 한방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파급 효과가 나타났다.
앞쪽에 포진해 호위를 하고 있던 불개미들 앞에 마침내 포가 작렬하자, 십여 마리가 동시에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나가떨어져 한순간에 호위벽이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잠시 호위병들이 우왕좌왕하는 하는 사이에 다시 한발이 더 날아와 또다시 10여 마리가 더 죽어버리자, 이제 호위 개미들은 물론 보스 개미까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때 전차를 향해 액체를 쏟아 붓던 불개미들은 이제 전차가 거의 움직이지 못하자 몇 마리를 제외하고는 재빨리 보스개미가 있는 장소로 이동해 가기 시작했다.
헌데 전차 안에 있던 고릴라는 기어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다시 한방을 날렸는데, 이번에는 보스개미가 있는 곳이 아닌 한 플레이어와 불개미 30여 마리가 한창 싸우고 있는 장소였다.
퍼펑!
카가각.. 가가각..
“크아악!”
앞쪽에 있던 10여 마리의 불개미들과 플레이어가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저 씨발 새끼가 감히..!”
불개미들은 한방에 10여 마리가 죽어나갔지만 플레이어는 역시 체력만 떨어졌을 뿐 상처는 이내 아물었다.
헌데 플라즈마가 날아간 곳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맨 처음 지급품을 차지하기 위해 고릴라와 싸움을 벌였던 두 9급 플레이어중 한 놈이 싸우던 곳이었다.
그것으로 보아 결코 우연은 아닌 듯 싶기도 했다.
아무튼 이 포격으로 9급 플레이어를 공격하고 있던 불개미 10마리도 죽었으니 결과적으로 체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제 싸우기가 한결 수월해진 듯 지친 중에도 9급 플레이어는 다시 불개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헌데 이때 전차가 있던 곳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이때 나는 보스개미를 처치하고자 달라붙은 불개미들에게 연신 검을 휘두르고 액체를 피하며 전차가 있는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몇 마리 남아 있는 불개미들이 계속 쏘아댄 액체에 이제 전차는 내구력이 완전히 떨어졌는지 서서히 녹아내리며 몸체나 포신이 주저앉고 있었다.
헌데 연신 쇠 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위에 뚜껑이 열리지 않아 안에서 고릴라가 원반으로 탈출하기 위해 전차의 한쪽을 자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차는 서서히 녹아내리더니 어느 순간 안에 들어가 있던 고릴라까지도 액체를 듬뿍 뒤집어 써 인상이 잔뜩 일그러진 채, 털은 물론 가죽까지 홀라당 녹아 엄청난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비춰졌다.
하지만 남아 있던 불개미들은 전차가 사라지고도 껍질이 홀랑 벗겨진 고릴라에게 연신 액체를 쏘아대고 있었다.
전차 안에서는 이렇게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어 고릴라가 처음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파괴해 버리려 했다는 것 또한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크으으..!”
역시 10레벨은 달라도 뭐가 달랐다.
고릴라는 엄청난 그 고통 속에서도 한손은 땅바닥을 짚고 나머지 한손을 들어 올려, 곧바로 빛의 원반을 생성해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불개미 몇 마리를 단숨에 베어 버렸다.
힘겹게 몇 마리의 불개미를 처치한 고릴라는 그래도 아직 기력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었는지 상처가 서서히 회복되며 이내 다시 털복숭이 고릴라로 변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부상을 당했다면 고릴라의 체력과 기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을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