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하드랭크 게임
나와 두 신수가 제법 많은 불개미를 처치했는데도 아직 7레벨로 승급이 되지 않아 상태창을 열어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이 와중에 그럴 수는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무조건 한 놈이라도 더 처치하는 수밖에.’
답이 없었다.
생각한 대로 무조건 한 놈이라도 더 처치하는 수밖에는.
헌데 잠시 후 다리에 다시 액체 한방을 맞자 체력이 85%로 줄어버렸다.
‘이러다가는 가랑비에 옷 젖는 겪이 되겠군.’
이렇게 조금씩 체력이 떨어진다면 아직 수많은 불개미들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내가 먼저 죽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어떤 방법이 없었다.
격전을 벌이며 한발 한발 옮겨가는 사이 상자와는 어느덧 20여 미터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헌데 내 옆쪽을 보니 제법 상위레벨로 보이는 한 플레이어 역시 나 정도 거리로 상자에 다가와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다른 놈에게 뺏길 수는 없지.’
놈이 비록 나보다는 상위레벨로 보였지만 놈 또한 이미 그동안 기력이 많이 소모되었는지 표정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물론 도력 소모가 심했지만 언젠가부터 부적은 사용하지 않고 도력이 가장 적게 드는 기본 오러만을 발산한 채, 검으로만 불개미들을 상대하고 있어 놈보다 조금은 나은 상태 같기는 했다.
놈은 9레벨은 아니고 7-8레벨자로 짐작됐는데 어쩌면 머지않아 죽을 것도 같이 공격을 하는 중에도 액체에 한번씩 맞을 때마다 몸을 약간씩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사이 내 강철 방탄복의 내구력도 어느 사이 45%로 감소해 있었다.
만약 방탄복이 없었다면 고스란히 체력이 거의 바닥났을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한번 방탄복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내가 검을 휘두르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플레이어에게로 다가가자 불개미들 역시 나를 공격하며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말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이 몰려오는 놈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로 끈질기게 다가오는 놈들이었다.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를 보니 외모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의 행성에서 태어났는지 그의 모습은 키가 1미터 정도에 무척 뚱뚱했고 다리 굵기는 엄청나게 긁었다.
또한 양 이빨이 뾰족 튀어나와 코는 없이 구멍만 얼굴에 두 개 뚫려있어 마치 괴상하게 생긴 돼지가 이족 보행을 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했다.
이런 종류의 생명체는 보통 중력이 강한 행성 출신일 가능성이 컸다.
내가 다가가자 돼지가 싸우는 중에도 지친 표정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곧바로 돼지가 웃음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빙긋 미소 지으며 다가가 주저 없이 등을 맞대자 그가 나를 경계하며 주춤거렸다.
내 뜻은 혼자 사방을 경계하며 싸우는 것은 힘드니 서로 믿고 등을 맡기자는 뜻이었다.
물론 돼지는 처음에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맞댄 등을 떨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등을 대며 앞과 옆만을 보고 공격과 방어를 하자, 어느덧 돼지도 당연히 서로 등을 맞대고 싸우는 것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이내 내 뜻에 따라 주었다.
확실히 두 플레이어가 등을 맞대니 싸우기가 훨씬 수월했다.
한동안 이렇게 싸우고 있으니 이제 돼지는 완전히 나를 신뢰하는 듯 뒤쪽은 이제 신경을 쓰지 않고 완전히 내게 맡기고 있었다.
나는 싸우면서도 돼지와 함께 의도적으로 서서히 상자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흑!”
한순간 돼지가 방탄복도 없는 가슴에 액체를 맞고 눈에 띄게 온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제 거의 죽을 때가 된 모양이군. 하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다오. 돼지야.’
확실히 기력이 이미 거의 바닥났는지 돼지의 움직임이 얼마 후부터는 눈에 띄게 더 느려져 있었다.
이제 상자와의 거리는 5-6미터.
돼지는 이 상황에서도 상자에 욕심이 생기는지 싸우면서도 계속 힐끔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몇 발자국 더 움직여 이제 상자는 우리와 2미터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헌데 그때 바로 내 위 허공에 떠있던 청룡이 급히 내게 정신 공유를 보내오며 아래 상황을 보여주었다.
허공에서 지상 광경을 내려다 본 나는 입가에 살며시 비웃음과 함께 잔인한 미소도 머금었다.
돼지가 날카로운 갈고리와 같은 기다란 손톱에 푸른 오러를 입힌 채 한손으로는 불개미를 공격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내 옆구리를 찍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놈이 여기 또 있었군.’
나도 물론 돼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하마터면 내가 한 타임 늦을 뻔했다.
곧바로 놈이 나를 내리치기 위해 한손을 뒤쪽으로 움직이려는 찰나 나는 급히 두 신수에게 내 앞의 불개미들을 맡긴 후, 급히 오러의 검을 급선회해 뒤로 꺾으며 놈보다 한순간 빠르게 등을 맞댄 놈의 옆구리에 검을 냅다 꽂아 넣었다.
푹!
“커억!”
순간 놈이 단말마의 비명성과 함께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마도 기력과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내 검에 치명타를 입은 모양이다.
“끄르르르.. 왜..?”
“몰라서 묻냐?”
쓰러진 놈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음표를 던지자 내가 차갑게 대답했다.
놈을 향해 내가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대답한 후 곧바로 검을 옆구리에서 뽑아 이번에는 놈의 눈깔에 다시 검 끝을 깊이 박아버렸다.
곧바로 검을 뽑아내자 커다란 눈알이 같이 달려 나와 나는 그것을 털어내고 다시 놈의 이마 한가운데에 마지막 일검을 박아 넣었다.
쓰쓰쓰쓰
번쩍!
기어이 놈의 육체가 허공중에 사라져 나는 재빨리 두 신수를 도와 근처의 불개미들을 떨쳐내 버렸다.
곧바로 아주 잠깐의 여유가 생기자 나는 재빨리 쇠로 만들어진 지급품 상자를 열어보았다.
“어..? 이건..?”
쇠상자 안에는 전 게임에서도 본적 있는 아이템이 하나 들어 있었다.
‘헬멧..!’
상자 안에는 의외로 방어구인 헬멧이 들어 있었다.
전 게임에서 획득했던 헬멧은 LV1 인 오토바이 헬멧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강철 헬멧도 아닌 은빛으로 빛나는 LV3의 아다만티움 헬멧이었다.
어찌보면 플라즈마 전차에 비해 한없이 미약해 보이는 상급 아이템이었지만 지금 이거라도 나에게는 절실했다.
아니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특히 강철 방탄복보다 내구력이 더 뛰어나 이제 머리에 어떤 공격을 받더라도 웬만해서는 이번 게임에서 머리만큼은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욕심이지만 한 순간 LV3인 아다만티움 방탄복도 함께 들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보통 헬멧보다 커다란 헬멧을 곧바로 쓰자 헬멧은 희한하게도 내 머리에 딱 알맞게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강철 방탄복에 은빛 헬멧 그리고 검을 들고 있으니 제법 멋있어 보일 것 같기는 했다.
확실히 헬멧을 쓰고 나니 마음이 한층 더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 다시 경험치를 사냥해 보자.’
곧바로 다시 불개미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 저 멀리 보스 불개미가 일반 개미들에게 둘러싸여 전장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보스 개미는 과연 얼마의 경험치가 주어지는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다른 불개미들에 비해 덩치가 더 큰, 마치 호위병과 같은 50여 마리의 불개미들에게 둘러싸인 보스를 나 혼자 처치하기에는 무리라 생각했다.
이때 고릴라가 전에 전차를 부수려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마치 전차를 타려는 듯 그쪽으로 향해가는 모습이 보였다.
놈은 지금껏 전차를 노리고 있었는지 내가 상자로 다가가는 사이에 어느덧 전차와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물론 전에 전차를 부수려고 했었으니 원래부터 전차와는 가장 가까웠던 놈이다.
불개미들은 고릴라가 전차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지만, 놈은 두 개의 강력한 회전을 머금은 빛의 원반을 계속해서 날려 보내 불개미들을 죽여 가며 조금씩이나마 전차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교육원에서 들은 바로는 우주선이 아닌 조그마한 전차에서는 용량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플라즈마 포를 쏠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다고 했다.
물론 포신이 작고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양도 적어 위력 면에서도 전투 우주선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보통 강철 전차가 10발 지금처럼 최상급 전차가 20발 정도 발사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 정도로는 지금 넓은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불개미들을 모두 처치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플라즈마 포를 지금 발사하게 된다면 남아있는 10여명의 플레이어들까지도 타격을 입게 된다.
놈이 전차를 이용하려하는 것을 보니 분명 나머지 플레이어들의 생사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전차를 획득하게 된다면 나라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은 당연했다.
하긴 전차를 타고 플레이어들을 처치한 후 안전지대로 향하면 그만이니 고릴라로서는 일거양득인 셈이다.
놈이 처음에 전차를 타지 않고 소멸시키려 했던 이유는 물론 전차 안에 타고 있으면 상대가 공격해 왔을 때 활동에 제약이 있었고, 또 만약 전체가 파괴라도 되어 사라지게 된다면 자신의 체력에도 심각한 타격이 가해지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다른 차와 충돌하면 안에 탄 사람이 충격을 받듯이 말이다.
그때 문득 놈 또한 싸우면서도 힐끔 보스 개미가 있는 곳을 연신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놈도 보스개미가 죽으면 얼마의 경험치가 주어지는지 궁금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보스개미가 죽는다면 수하 불개미들이 지리멸렬할 것이라 생각이라도 하는 것일까..?’
놈의 생각은 알 수 없었지만 그 표정을 보면 보스개미를 처치해야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놈이 보스 개미가 있는 곳에 플라즈마 포를 한 두방만 갈겨준다면 보스 개미를 죽이지 못할 이유도 없겠지.’
보스 개미가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겠냐는게 내 생각이다.
지금 문제는 보스 개미 한 놈이 두려운게 아니고 그 주위에 있는 50여 마리의 호위 불개미들이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헌데 플라즈마포로 인해 호위 개미들이 죽거나 분산되게 되면 보스개미는 혼자서도 충분히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