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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하드랭크 게임 (45/207)



〈 45화 〉하드랭크 게임

여전히 풀숲에 움크린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뛰쳐나간 플레이어들이 조금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눈앞에 상당한 가치가 있는 아이템에 눈이 멀어 순간적으로 판단력을 조금은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내 귀에 스산하면서도 듣기에 무척이나 거슬리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스스슷.. 쓰쓰쓰쓰.. 쏴르르르릇

언제부터 들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분명 바람 소리나 풀잎 스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들이야 당연히 이 미세한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 뻔했고,  나처럼 은신하고 있는 레벨이 낮은 자들은 싸움터와 지급품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것은 당연했다.


또 한가지 내가 제일 먼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외곽 풀숲에 숨어 있는 내 뒤쪽에서 들리는 소리니 당연히 제일 먼저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 뒤로는 아무도 없어 슬그머니 잡풀을 헤치고  쪽으로 간  고개를 길게 빼고 드넓은 초원을 둘러보았다.

헌데  멀리 초원의  지대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는데 바람결에 흩날리는 풀들과는 달리, 꿈틀거림의 색깔이나 움직임이 녹색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저게 뭐지? 저쪽 지역에만 붉은 색의 풀들이 자라 있나..?’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나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유는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지역은 내가 이 잡풀에 은신하기 전 분명 거쳐 왔던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미세했던 소리는 어느새 점점 더 확연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이 맵이 하드맵이었지!’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이 나는 급히 주작을 소환해 그쪽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지금 모든 시선은 지급품과 싸움터에만 집중되어 있어 멀찍한 곳에 위치한 내가 있는 쪽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 후 주작이 허공 높이 떠서 보여주는 광경은 정말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니 조금은 징그럽다는 표현이 맞는 말일 거다.
곧바로 주작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 보내자 지상의 광경이 주작의  눈을 통해 더욱  또렷이 보였다.

붉은 색깔로 꿈틀거리며 재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존재들은 바로 붉은 개미들이었다.
놈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징그러운 모습으로 우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움직이는 그 속도가 만만치 않았다.

몸집과 생긴 것은 얼마 전 죽인 흰개미와 같이 어린 아이만한 크기에 머리에 뿔이 하나 솟아나 있었는데, 양쪽 이빨 역시 흰개미와 다를 바 없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몸 색깔과 날개가 없다는 것뿐이다.

헌데 족히 500여 마리가 넘는 놈들의 행동에서 나는 흰개미와 다른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치치칫.. 츠츳

주작의 눈에 놈들이 입안에서  색깔과 같은 붉은색 액체를 마치 물총과 같이 가끔 쏴대고 있는 모습이 비춰졌다.
헌데 놀랍게도 액체에 맞은 풀들이 순식간에 스르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산성 종류인가..?’

흰개미보다 더 위험천만한 놈들이라고 생각한 나는 급히 뒤를 돌아보며,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들과 하급 레벨자들이 숨어 있을 만한 잡풀을 돌아보았다.

‘나에게는 오히려 잘된 셈인지도 모르지.’

지금 싸우며 지급품을 차지하려고 하는 플레이어들은 얼핏 보아도 7급 이상이었다.
그리고 풀숲에 숨어 있는 자들은 보나마나 나정도 되는 중급 레벨자나 그 보다 더 낮은 레벨자들이 뻔할테고.

이제 불개미들이 이곳을 습격하면 숨어 있는 플레이어들도 모두 풀숲에서 뛰쳐나와 함께 싸워야 한다.


‘어수선한 틈을 타서 혹시라도 지급품을 하나라도 취할  있을지 모르지. 꼭 그게 아니더라도 불개미와 하급 레벨자들을 죽여 경험치를 획득할 수도 있고.’

숨어 있는 레벨자들 또한 불개미의 습격을 눈치 챈다면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복불 복이다!’

사실 10레벨 한명을 처치하는 것보다 불개미 10마리를 죽이는게 모든 면에서 이득이라, 하급 레벨자들은 불개미 몇 마리를 죽인 후 자신이 죽이느냐에 따라  레벨업을 할 수 있어 결코 이런 여건이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라 생각했다.

전에 흰개미 1마리 경험치가 15점이었으니 붉은 개미도 분명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확실히 불개미 10마리 죽이는 것이 10레벨 한 놈을 처치하는 것보다 위험성이나 경험치 면에서 훨씬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생각을 바꿔 지금 당장 놈들이 다가오는 방향에 레이저 지뢰를 매설 한 후 사신수까지 모두 소환해 싸운 후 죽어도, 최소 7레벨까지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하지만 역시 맵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죽을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불개미들이 이곳을 습격한다면 모든 플레이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분명 한시적으로 동업을 할 것은 뻔한 노릇이다.

혹시 아는가.
불개미는 당연히 죽여야 했고,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하급 레벨자와 그리고 다 죽어가는 상급 레벨자까지도 내 전문성을 살려 덤으로 죽일 수 있을지.
그리고 생존해서 이곳을 빠져 나가 더욱 높은 레벨을 올릴 수 있을지도.

더군다나 나는 지금 지급품의 위력과 하드맵에 대해 무척 궁금한 상태다.
바로 눈앞에 지급품이라는 상위 아이템이 있는데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확인도 해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경험치도 경험치지만 지급품과 하드 맵에 대한 경험도 해보지 못한 채 지구로 귀환한 것에 대해 무척 후회할 것만 같았다.


플라즈마 전차야 어느 정도 짐작이 갔지만 사실은 두 상자에 어떤 아이템이 들어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궁금증은 참지 못하는 내 성격상 설사 조금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확인은  한번 해보고 싶었다.
물론 내가 차지할 수 없다면 확인해 볼 길이 없기는 했지만.

‘이래서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다는 거겠지.’


아직은 외곽이고 외곽 지역  군데에 지급품이 떨어졌다면 그 세 장소에 거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다른 두 장소도 이곳과 같은 상황이라면 좋을 텐데.’

만약 현재 상황이 두 곳 모두 여기와 같다면 무조건 오래 버티는 놈이 승리자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는 세군데 모두에서 플레이어들이 엄청 죽어나갈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된다면 혹시 10등 안에 들어 보상 경험치가 얼마나 나올지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너무 갔나..?’

보상 경험치까지 생각하자 너무 간 것 같아 이 엄중한 와중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불개미들과의 거리는 이제 나와는 50여 미터 안 밖이다.
문득 생존자수를 확인하니 78명이 남아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세군데 장소에 나뉘어져 있다면 평균 한 곳에 26명이 있는 셈이다.


‘한 군데에서 최소 20명씩만 죽어다오. 물론 나만 빼고.’

 군데에서 60명이 죽고 나머지 18명이 살아남는다면 어떻게 비벼서라도 10등 안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제 경험치 몇십 점만 더 획득하면 6레벨이 되니 이곳에서 살아만 남는다면 최소 7레벨까지는 오르지 않을까 생각되어, 10등 안에 드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우선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게 최우선 전제 조건이 되어 버렸다.

헌데 잠시 생각을 하며 주작의 눈을 통해 놈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사이 웬일인지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쓰쓰쓰쓰.. 촤르르르릇

한데 뭉쳐서 오던 불개미들이 돌연 멈추어서더니 갑자기 일사 분란하게 좌우로 정렬하듯 넓게 분산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  500여 마리가 넘는 불개미들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자, 마치 초원에 붉은색 선이 한줄 그어진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일렬로 늘어선 불개미들이 모두 좌우로 늘어서고 나자, 곧바로 마치 군대가 행군하듯 다시 이곳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헌데 말이다.. 놀랍게도 놈들은 지능이라도 지니고 있는 듯 일렬로 다가오던 진영을 마치 초승달과 같은 모양으로 변형시키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놀랄 일은 그 뿐만이 아니다.

불개미들은 마치 전에도 이런 일을 겪어 봤다는 듯 재빨리 이동을 하며 안전지대로 향하는 방향 쪽으로 자리를 이동 시키고 있었다.

‘대단한 놈들이군. 안전지대로 향하는 방향을 완전히 차단하려 하고 있어.’


모든 플레이어들은 항시 뒤에서 자기장이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죽으나 사나 안전지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
헌데 놈들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길목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나 나까지 위험해 질수 있어 소리라도 질러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알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그들에게 미리 알려 불개미의 포위망이 무산되는 일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역시 모든 플레이어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야 플레이어들끼리 동업을 하며 불개미들을 맞아 싸울 것이고,  사이에 나도 낑겨 불개미를 죽여 레벨을 올리며, 또 눈치를 봐서 내 전문인 곧 죽으려 하는 레벨자도 눈치껏 처치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살아나는 문제는 그 다음 다시 생각할 문제다.

불개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연신 찬사를 보내고 있는 사이 주작의 눈에 또다시 새로운 광경이 비춰졌다.


‘중간에 저놈은 뭐지..?’

주작의 눈은 마치 매와 같은 시력을 보유하고 있어 허공에서 날고 있었지만 지상의 상황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었다.


뭉쳐있을 때는 몰랐는데 일자로 늘어서니 가운데가 뭉특했다.
곧바로 주작의 눈을 그 쪽으로 돌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린아이만한 일반 불개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어른 몸집만한 더욱 커다란 불개미가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저놈이 보스인가보군. 아니 여왕개미라고 해야 하나?’


한눈에 봐도 놈이 불개미들의 보스라는 것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불개미들의 이런 작전은 보스 머리에서 나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보스를 죽이면 경험치가 더 주어지려나?’

아마도 당연할 것이라 생각했다.
플레이어도 상위 레벨자를 처치하면 더 높은 경험치가 주어지는데 놈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플레이어들이 아직까지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덧 놈들의 이동이 모두 끝나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불개미의 존재를 눈치  수 없었던 이유라면 불개미들은 플레이어들이 있는 장소에서 50여 미터 떨어져 움직였고, 또 초원의 풀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은신이 됐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상위 레벨자들은 지금 난장판이 되어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풀숲에 숨어 있는 하급 레벨자들 또한 지급품을 어떻게든 손에 넣어 보려고 다른 곳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세워야 할 계획이나 작전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본능과 느낌대로 움직여야 했다.

진용을 갖춘 불개미들이 이제 한순간에 빠른 속도로 플레이어들이 있는 장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풀숲에 숨어 있던 최초의 희생자가 발생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카아악! 살려줘.”


놈은 1-2급 레벨자가 분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저렇게 어이없이 당하는 것일 테지.

불개미들은 아마도 우선은 산성으로 공격한 후 흰개미처럼 플레이어의 피를 빨아먹으며 체력을 고갈 시키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비명소리가 들리자 이제  이상 숨어있을 필요가 없어 나는 급히 잡풀 속에서 뛰쳐나가며, 상위 레벨자들이 싸우고 있는 장소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습격이다! 불개미 떼가 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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