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하드랭크 게임
랭크게임을 하고 처음으로 지급품이라는 단어를 접해본다.
지급품은 우주선이 하늘을 날아가며 상급의 아이템을 맵에 표시된 지역에 두 세개 정도 떨어뜨려주는 것으로, 그 아이템을 차지하기 위해 근방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그 아이템은 일반 아이템과는 차원이 달라 일부 상위 레벨자들 또한 그 지역으로 모여들기도 했다.
상위 레벨자들은 원래 아이템 중 회복 포션 정도만을 취하는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급품은 가끔 엄청난 위력을 지닌 공격구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지급품이 혹시나 떨어질까 싶어 그것을 자신이 취하든지 아니면 파괴해 버리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또한 당연히 그 장소로 가면 경험치를 획득할 플레이어들이 득실거린다는 것이 그곳으로 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나 같은 5레벨이 하나라도 차지할 수 있을까?’
아이템은 한정되어 있고 플레이어들은 모여드니 나 같은 중급 플레이어가 차지할 확률이 있을지 미지수다.
하지만 꼭 지급품이 아니어도 여기서 내 전문인 두 놈이 싸우다가 죽기직전 기습을 하는 것은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기습을 하려면 정말 죽기 바로 직전에 해야 되는데 상급 놈들이 득실거리는 그곳에서 기습을 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바로 골로 가는 수가 있겠지?’
기습을 하려면 여러 가지 변수가 너무 많을 것 같았다.
잡다한 생각을 잠시 하고난 후 나는 곧바로 맵을 열어 보았다.
이 넓은 지역에서 지급품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내가 너무 간 것 같아 절로 웃음이 나왔다.
헌데 맵을 열어보니 지급품이 떨어질 장소는 맵 안에 전부 세 군데였는데, 그 중 한군데는 공교롭게도 내가 있는 곳에서 안전지대 방향 대각선으로 2키로 남짓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시간상으로는 킥보드를 최대한 빨리 달리면 지급품이 떨어지기 바로 직전에는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머리로는 잠시 고민했지만 킥보드는 어느새 그 장소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좋아, 혹시 약간의 건더기라도 건질게 있을지 모르지.’
될 수 있으면 나서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어떤 아이템이 있는지만 구경해 보기로 했다.
물론 그러다가 덤으로 하급 레벨자라도 걸리면 좋은 것이고.
서서히 좁혀져오는 자기장과의 거리도 5키로 남짓했기 때문에 자기장으로는 아직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얼마 후 맵에 나타난 표시대로 따라가 제법 높이 자란 잡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지급품이 떨어져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내가 숨어 있는 높이 자란 잡풀은 여러 군데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풀들이 바람이 부는 방향이 아닌 제멋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띠었다.
‘다른 놈들도 나처럼 숨어 있는 모양이군.’
당연히 숨어 있는 자들은 나처럼 능력에 아직 확실한 자신이 없는 놈들이거나, 또는 브론즈 티어 중 최상위 레벨자가 아닌 중상위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하급 레벨자 또한 떡가루라도 건질게 없을까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 자들도 있을 터다.
헌데 잠시 후 마치 고릴라의 모습과 아주 흡사한 플레이어 한명이 지급품이 떨어질 장소로 여유롭게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저자는 시작의 섬에서 내가 상위 레벨자로 찍은 자중 한명이었다.
‘10레벨 중에서도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놈일 테지.’
당연하게도 그런 자신감이 없다면 저렇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저런 여유를 부릴 수는 없을 터다.
놈은 주위에 분명 다른 플레이어들이 은신해 있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 또한 아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처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라 생각했다.
헌데 내 생각과는 달리 놈이 지급품이 떨어질 장소로 느긋하게 걸어가다 느닷없이 멈추더니, 20여 미터 떨어진 한쪽에 자라난 잡풀을 향해 한순간 한쪽 손을 휘젓듯 움직였다.
순간.
휘리릿!
마치 둥그런 자동 쇠톱과 같은 밝은 빛의 원반이 놈의 손에서 뻗어 나오며 엄청난 회전과 함께 잡풀을 베어 넘기며 한순간에 풀숲 안으로 사라졌다.
“크억.. 카으윽!”
원반이 잡풀 속으로 들어가고 곧바로 처철한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빛의 원반은 놈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듯, 풀숲에 숨은 플레이어가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 죽을 때까지 계속 공격을 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그냥 놔두지를 않는군. 하긴 놈 또한 경험치가 생명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겠지. 그나저나 내가 자리 하나는 잘 골라잡았군.’
혹시나 몰라 나는 지급품이 떨어질 장소와는 제법 거리를 두고 은신해 있었다.
잠시 후 비명이 멈추자 그제서야 놈이 빚의 원반을 회수해 소멸시킨 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놈이 저렇게 자만할 이유는 충분했다.
수백 수천억만의 맵이 될지도 모를 지금 전 우주의 플레이어들이 치루고 있을 브론즈 티어의 랭크게임에서, 100명으로 제한된 한 맵에 10레벨이 떨어질 확률은 고작 2-3명 정도로 생각해도 어쩌면 많은 숫자다.
그런 맵에서 10레벨이라면 당연히 무적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터다.
더군다나 같은 10레벨이 처음 맵의 외곽지역에 같은 장소로 떨어질 확률 또한 거의 없을 터다.
잠시 후 다른 두 곳에도 지급이 떨어질 테니 그 두 곳에 다른 10레벨이 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만약 놈이 10레벨이 확실하다면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설사 놈이 10레벨이 아닌 자신의 능력에 확신이 있는 9레벨이라 해도 저런 행동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헌데 놈은 걸어가면서 반경 30여 미터 정도 반경에 있는 풀숲에 숨어 있는 플레이어들을 어김없이 죽이며 지나가고 있었다.
놈이 걸어가는 방향에 은신해 있던 아직 죽지 않은 플레이어가 도망을 치려했지만, 달아나 거리가 멀어진 플레이어에게는 조금은 작은 빛의 원반을 날려 역시 죽을 때까지 난도질을 해댔다.
그것으로 보아 거리가 멀어질수록 원반의 크기는 작게 생성시키는 모양이었다.
놈이 한 놈을 막 처치하고 다시 걸음을 떼는 그 순간.
돌연 하늘 위에서 무소음의 거대한 비행체 한 대가 검은 그림자를 땅에 드리우며 낮게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장관이군.’
낮게 깔려 허공을 날고 있는 은빛으로 빛나는 우주선은, 지구의 우주선보다는 조금 더 세련돼 보였고 무척이나 거대했다.
곧바로 우주선 아래에서 흰빛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며 각기 다른 장소에 3개의 어떤 물체를 떨어뜨리더니 순식간에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세 개의 물체 중 한 개는 무척 큰 것이었고 두 개는 사람 몸통만한 상자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헌데 상자에 들어있는 지급품은 모르겠지만 큰 물체를 보는 순간 내 눈이 나도 모르게 번쩍 띄어졌다.
양 너비가 약 4-5 미터 정도 되는 무척 얍삽하게 빠진 은빛의 물체는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고, 앞쪽에는 무척 두껍고 기다란 포신이 약 4미터 정도 뻗어 나와 있었다.
또한 반중력인지 그 물체 역시 자동차와 같이 허공에 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플라즈마 전차다!”
교육원에서 여러 모양의 전차를 홀로그램으로 본 것 중 하나였다.
물론 지구에서나 플라즈마 전차로 불리우는 것이지 다른 행성에서는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린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저 전차만 획득할 수 있다면 한동안은 설사 상위 레벨자를 만나더라도 어느 정도는 버티며 안전지대로 정말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또한 전차의 내구력은 무척 강해 설사 10레벨자의 공격이라 해도 한순간에 파괴되지는 않을 터다.
게다가 플라즈마 포의 위력은 굉장해 10레벨자라도 섣불리 다가올 수 없었다.
물론 상위 레벨자 또한 한 두방 프라즈마에 적중 당했다고 해서 바로 죽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공격구에 비해 체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저 전차만 획득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텐데.’
나 뿐 아니라 여기 있는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헌데 그때 고릴라같이 생긴 외계 플레이어가 돌연 한손으로 빛의 원반을 생성시키더니 갑자기 전차를 향해 쏘아 보내는 것이 아닌가.
터텅!
“저런 미친 새끼!”
원반이 전차를 가격해 금속음이 들리자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플레이어 또한 만찬가지리라 생각했다.
놈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능히 짐작이 갔다.
놈은 어차피 전차와는 상관없이 누굴 만나 싸운다 해도 자신이 있는 놈이었다.
때문에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만한 전차를 누구도 획득하지 못하게 파괴하려 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먹기 싫은 떡 재나 뿌리자는 심보인 것이다.
하긴 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역시 전차의 내구력은 무척 강해 엄청난 회전력이 담긴 빛의 원반이 3번을 가격했는데도 기체만 덜컹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저대로 계속 놔둔다면 전차는 머지않아 소멸될 것이 뻔했다.
저대로 놔둔다면 전체가 사라질 판이었지만 누구하나 나서서 말리려는 자가 없었다.
그것은 설사 9레벨이 이곳에 은신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헌데 놈이 한쪽에서 전차를 부수려고 원반을 계속 날리는 동안, 갑자기 풀숲에서 한 플레이어가 재빨리 튀어나와 나무 상자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자 그것을 계기로 또 한명이 어디선가 뛰쳐나와 다른 상자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듯 뛰어갔다.
이대로라면 전차는 사라지고 튀어나온 두 명이 각자 하나씩 지급품을 차지하는 상황이 되어 버릴 판이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볼 고릴라가 아니었다.
전차에 연신 원반을 내던지던 고릴라는 두 플레이어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더니 입가에 음침한 미소를 지은 채 즉시 원반을 회수한 후, 전보다는 조금 작은 두 개의 원반을 다시 생성시켰다.
그리고 상자를 향해 달려가는 두 플레이어에게 곧바로 각기 하나씩 날려 보냈다.
휘리리릿.. 휘이이이잇
조금 작게 축소된 원반이 쏜살같이 두 플레이어에게 날아가자, 두 놈도 만만치 않은 능력을 지녔는지 재빨리 원반을 쳐내며 한 쪽으로 피해버렸다.
한눈에 보아도 두 플레이어가 고릴라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원반을 막는 것을 보면 분명 9레벨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저렇게 겁도 없이 튀어나온 것이겠지만.
원반이 막히자 고릴라는 무척 화가 났는지 코를 벌름거리며 다시 상자를 향해 달려가는 두 플레이어에게, 이번에는 더욱 회전력이 강해진 원반을 다시한번 날려 보냈다.
헌데 고릴라가 전차에서 눈을 떼고 두 플레이어와 싸움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전차와 제일 가까이 있던 또 다른 플레이어가, 다시 잡풀 속에서 튀어나와 전차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치 신호가 된 듯 곧바로 여기저기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중상위 레벨자들이 튀어나와, 이제는 전차와 두 상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근방은 아수라장이 되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지급품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저러다 뒤지면 모두 소용없을 텐데..?’
================작품 후기 =================
전 우주의 지적 생명체가 참가하는 랭크게임인데 지구의 아이템만 나온다는 의견이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 같아 이렇게 따로 올립니다.
댓글에 남겼지만 혹시라도 댓글을 안보시는 분들을 위해 후기로 남깁니다.
아이템의 이름은 지구인에게는 지구어로 그리고 다른 행성의 생명체에게는 그 각각의 행성 언어로 전해집니다.
예를 들어 지구와 7375광년 떨어진 나메크 행성에서는 반중력 자동차를 리크러이(예시) 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포션, 킥보드, 우주선, 플라즈마 전차 등등 앞으로 등장하게 될 모든 아이템 또한 행성마다 명칭이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행성인들 끼리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번역기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