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도태자 사냥
은지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하자 서운했는지 다시 술을 계속 마셔대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은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그녀도 취했지만 나도 어제보다 더 취해 있었다.
이제 그만 나가려고 하는데 그녀는 역시 정신이 가물거렸는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녀가 역시 몸이 휘청이며 일어서지도 못한 채 다시 탁자 한쪽을 집으려했다.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까봐 내가 재빨리 다가가 부축하니, 한순간 그녀의 몸이 축 늘어지며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댄다.
‘젠장! 또 내가 계산해야겠군.’
곧바로 그녀를 부축해 계산대로 가니 종업원이 싱글거리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여기 얼마입니까?”
“네 손님, 98셀링이 나왔습니다, 손님.”
‘허걱!’
무척 친절한 안드로이드 여종업원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어제는 72셀링이 나왔는데 오늘은 26셀링이나 더 나오다니.
‘아.. 그러고 보니 안주를 하나 더 시켰지.. 은지가.’
왼손 등의 칩을 카드기에 대니 삐빅 소리와 함께 피 같은 98셀링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밖으로 나오니 그녀는 역시 걷지를 못해 다시 등에 업고 가야했다.
헌데 그녀의 집에 중간쯤 왔을까.
내 등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그녀가 자고 있는줄 알았는데, 밤바람에 정신이 드는지 문득 여전히 꼬부라진 혀로 중얼 거리듯 말했다.
“야 최준수, 너 내가 정말 그렇게 싫으냐?”
그녀는 내 등에 한쪽 볼을 누인 듯 기댄 채 혀는 꼬부라졌지만 조금은 진지하게 물었다.
만약 내가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물음이 끊임없이 나올 것 같아, 나도 술이 취해서인지 속마음을 선 듯 말해주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언젠가 여자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너와 사귀고는 싶어. 만약 내가 목표로 한 레벨에 오르면 그때는 네 뜻을 받아들일게. 물론 그때까지 네가 날 기다려 준다면 말야. 그러니 앞으로는 그런 얘기 다시는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말? 물론 난 기다릴 수 있지.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이런 얘기 다시는 꺼내지 않을게.”
내말에 그녀가 정신이 번쩍 든 듯 등 뒤에서 머리를 들며 갑자기 뒤에서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
“야, 나 죽일 셈이야.”
“미안 미안, 너무 좋아서..”
“너 술 깼지? 이제 내려놓는다.”
“아흐흥.. 아냐, 깨긴..,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단 말야.”
이제 그 사이 술이 조금 깬 듯 했지만 다시 등 뒤에 한쪽 볼을 기대오며 엄살을 부린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나는 피식 웃고 그냥 그 엄살을 받아주었다.
나도 이렇게 말해버리니 속이 후련하긴 했다.
헌데 한동안 걸어가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둥에서 머리를 떼고 내 양쪽 귀를 잡더니 우측으로 돌려 내 볼에 갑자기 뽀뽀를 하는 것이었다.
쪽!
“뭐하는 거야?”
내가 놀라 말하자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뭐하긴, 미래 내 남친한테 뽀뽀한 거지.”
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좋았다.
은지는 이제 마음이 편했는지 다시 내 목을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기댄 채 잠시 후 세근거리며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술이 취하긴 취했네.’
등 뒤에서 잠이 든걸 보니 그녀는 확실히 취하긴 한 모양이었다.
얼마 후 그녀의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눕힌 후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보니 정말 매력적이기는 했다.
붉어진 양 볼과 오똑한 코, 그리고 적당히 튀어나온 입술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알맞아 확실히 미인이라고 할 만 했다.
쪽.
너무 귀엽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이마에 뽀뽀를 한번 해주었다.
헌데 곧바로 방문을 열고 나가는데 은지가 두 눈을 살며시 뜨며 빙긋 웃는 모습을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내일 기억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하길 잘했어.’
솔직히 은지가 나에게 계속 대시를 했고 나 또한 그녀를 언젠가는 진정한 여자 친구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녀가 다른 남친을 만든다면 속은 무척 쓰릴 것 같았다.
*
다음날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랜트카를 빌려 대도시 외곽으로 향했다.
‘어제 술값에 오늘 또 랜트카에.. 이제 정말 거지다. 오늘은 무조건 찾아내야 해.’
물론 아침에 은지에게 전화가 와서 미안하다며 돈을 부쳐주겠다고 하는 걸 거절했다.
받을걸 그랬나 했지만 역시 그건 아니었다.
얼마 후 대도시를 벗어나자 곧바로 주작을 다시 소환해 어제처럼 칩을 이식한 후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한마디 했다.
“오늘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난 굶어죽으니 열심히 날아다녀야 한다.”
꾸어어어억!
알았다고 대답한 주작이 곧바로 불꽃을 일으키며 그리 높지 않게 하늘위로 날아올랐다.
곧바로 자동차로 주작을 따라가며 과연 어디로 가야 도태자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깊은 산속이나 무인도를 위주로 찾아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곳 역시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지각 변동으로 인해 수많은 인간들이 죽고 새롭게 대륙이 생성되어 이전의 지구보다 대륙의 크기가 거의 두 배는 넓어져 있었다.
아직 미지의 땅이 세계 곳곳에 수도 없이 많았고 아시아 지역 역시 그런 지역이 태반이다.
지금 내 능력으로 그런 미지의 땅에 들어선다면 어떤 위험한 일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물론 도태자들이야 이곳보다는 그나마 그런 지역이 더 안전했기에 할 수 없이 찾아들어가는 것뿐이었다.
레벨이 오른다면 모르겠지만 역시 지금은 무리라고 생각해 다시 주작과 정신을 공유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오전 내내 주작에게서는 아무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간단하게 준비해온 점심을 먹고서도 저녁까지 더 넓은 외곽지대로 수색했지만 놈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오늘도 도태자 사냥에 실패한다면 앞으로 정말 굶어죽을 판이다.
이제 어느 정도 지역을 넓히니 대도시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산기슭에 몇 채의 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들만 눈에 띄었다.
작은 마을 몇 곳을 둘러보았지만 역시 도태자는 없어 작은 마을 뒤쪽 거대하게 펼쳐진 산기슭을 올려다보았다.
‘할 수 없군.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초입 부분만이라도 수색해 봐야겠어.’
조금 위험하겠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맨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니 며칠이 걸리더라도 꼭 성공을 해야 했다.
‘그래, 일반 게임도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수련의 일부라고 생각하자.’
이런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곧바로 주작을 산으로 날아가게 하고 나도 차를 한쪽에 세워둔 후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두 번째 게임의 숲과도 환경이 얼추 비슷해 정말 랭크게임의 맵에 떨어진 기분이다.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어떤 짐승들이 나타날지 알 수 없어 위험천만했지만, 역시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 계속 조금씩 안으로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1시간 정도 숲을 헤매고 있는 사이 드디어 주작에게서 신호가 전해져왔다.
주작의 신호란 발등 칩에서 진동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진동소리의 파동은 전화와는 다른 처음 전해진 파동이었기 때문에, 그 신호가 기관에서 깔아준 어플에서 생성된 신호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후 주작에게로 가니 주작은 어느새 하늘에서 내려와 숲 사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어, 곧바로 발등의 칩을 터치하자 작은 홀로그램 창이 하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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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자
이름 : 김 기춘
LV 4 (브론즈)
도태자 경과 날짜 : 4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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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다행히도 나보다 낮은 등급이다.
만약 실버티어 레벨자라면 포기하고 그냥 돌아서야 했었다.
아니, 5레벨인 지금 나보다 조금이라도 상위자라면 그래도 돌아서야 한다.
지금은 한번 죽으면 영원한 소멸이라 절대 모험은 할 수는 없었다.
곧바로 내 위치와 도태자가 있는 위치를 확인한 나는 이제 주작은 소멸 시키고 조심스럽게 놈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해가기 시작했다.
놈과의 거리는 40여 미터라 얼마쯤 전진하니 작고 아담한 통나무집 한 채가 우거진 숲 사이에 나타났다.
놈은 혼자 외진 이곳에서 생활하며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할 운명이다.
10년 하고도 48일이 지나는 동안 레벨 4의 브론즈 티어라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죽임을 당하기 전에, 20레벨인 실버 티어를 벗어나 골드 티어로 승급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을 터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니어도 넌 키르맨이나 다른 권한증을 부여받은 레벨자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이다.’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지 그것이 관건이겠지만 역시 이런 초짜 도태자는 그리 오래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김기춘이라는 플레이어 또한 그것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넘는 동안 4레벨의 브론즈 티어라면 플레이어로서는 정말 최하급의 자질을 타고난 셈이다.
놈도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며 그것을 깨닫고 아마도 무척이나 마음이 심란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은 들었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곧바로 조심스럽게 통나무집으로 걸어가며 나는 부적을 꺼내 오러의 검을 생성시켰다.
4레벨이라면 놈이 어떤 공격을 펼치더라도 내 상대는 되지 못할 터.
더군다나 형편없는 자질을 타고난 플레이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곧바로 살며시 통나무집으로 다가간 나는 창문을 통해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놈은 역시 무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날짐승을 잡아 불은 피우지도 못하고 능력으로 익혀 먹은 듯, 생활에 필요한 자재도구는 하나도 없이 집안이 훵하기만 했다.
또한 이곳에 자리를 잡은지도 얼마 되지 않은 듯 통나무집에서는 쾌쾌한 나무 냄새까지 진동하고 있었다.
‘마지막 식사일 테니 남은 음식은 먹도록 기다려주마.’
놈이 죄를 짓고 이리 도망해서 사는 것은 아닌지라 마지막 배려로 식사는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