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도태자 사냥 (39/207)



〈 39화 〉도태자 사냥

[어제  들어갔어?]


“잘 들어갔지. 그런데  괜찮아? 어제 조금 취한  같던데.”

[으, 응.. 날 업고 집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어제는 정말 많이 취했었어.]

은지가 그리 말하자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집까지 업고 데려다 준 것까지 알고 있다면 분명 그 전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중간 중간 필름이 끊어져 술집에서 내가 했던 말은 기억이 나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그래, 그런  같더라. 그런데 어제 있었던 일은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너 어제 실수 많이 했거든.”

[알아, 술집에서 탁자 엎은 것과 그리고.. 그리고...,]


허걱! 은지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마음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 말을 끝까지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마음을 알고 있으니 자존심 때문에 저리 끝까지 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녀가 내가 한말에 대해 말을 꺼낼까봐 나는 재빨리 다른 말로 화재를 돌렸다.


“탁자 엎은 것도 기억하는구나, 아, 그건 술을 많이 먹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렇지? 이해해주는 거지? 그리고 어제 내가 쏠려고 했는데 네가 계산했겠다. 미안해서 어쩌니, 내가 너 통장으로 쏴줄 테니까 통장 번호 보내줘. 너 일반 게임 계속 수련해서 돈도 없을 텐데.]

“아냐 됐어, 너도 레벨업을 했지만 나도 했잖아. 그러니 나도 너한테 축하를 받았으니 누가 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내가 만나자고  놓고 미안해서 그렇지. 그럼 다음에는 내가  쏠게.]


“알았어, 그건 신경 쓰지마.”


사실 피 같은 돈이 아깝긴 했지만 그렇다고 준다고 해서 치사하게 낼름 받을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안드로이드들이 못하는 일을 기관에 신청해서 해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되면 수련을 하지 못할뿐더러 국장이 그걸 이용해 무슨 수작을 꾸밀지도 모를 일이라 그 생각은 그만 두었다.

물론 안드로이드들이 못하는 일은 거의 오너 일들이라 틈틈이 수련은 할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은 대부분 도태자를 벗어난 기관 소속의 골드 티어 이상 레벨자들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 은지가 빙긋 웃으며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따 저녁에 다시 만날래? 미안해서 도저히 안되겠어. 난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잖아.]

그 사이 내가 또 보고 싶은 것일까?

오늘은 레벨이 낮은 도태자를 찾아다녀 볼 생각이었다.
낮에는 도태자를 찾아보고 저녁에 어떻게 될지 몰라 확답은 하지 않았다.


“낮에 볼일 좀 보고 저녁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만나자.”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니 은지가 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수 있었다.

솔직히 얼굴이 그렇게 잘난 것도 아닌 나를 그녀가 좋아한다는 것은 역시 내 레벨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 저녁에 전화할게.]


“아냐, 내가 볼일이 끝나면 전화할게.”


[알았어.]

통화를 끝내고 그래도 한가한 시간에 집에 외롭게 홀로 있지 않게  찾아주는 친구가 있어 그녀가 고맙기도 했다.
은지에 대해 잠깐 생각하고 나자 이내 오늘 할 일인 도태자를 찾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디를 가야 도태자를 만날 수 있을까.’

도태자를 찾는다고 해도 레벨이 최대한 낮고 홀로 도망다니는 자를 만나야 한다.
또한 지금의 내 레벨로 과연 도태자를 처치 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랭크게임에서처럼 아이템은 사용할 수 없고 본신의 능력만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상급 레벨자들과는 감히 싸울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했다.

‘사신수가  강했다면 무척 유용했을 텐데.’


사신수는 내 본신 능력이라 랭크게임이 아닌 곳에서도 소환 할  있었다.


무작정 돌아다니며 찾는다는 것은 분명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잠시 생각한 끝에 기가 막힌 방법을  가지 생각해 냈다.


나는 곧바로 부적을 꺼내 얇고 무척 예리한 조그만 단도를 하나 생성해 냈다.
그리고 왼손 등을 살짝 가른 후 이식된 손톱만한 무척 작은 칩을 꺼내 들었다.
이 칩은 전화기 용도로도 쓰이지만 초소형 컴퓨터이기도 했다.


‘기관에서  칩에 도태자를 찾을 수 있는 어플을 깔아 놓았다고 했겠다?’


직원의 말대로라면 이 칩이 있는 곳 반경 50미터 안에 도태자가 있다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신수는 어디에 있든지 나와 정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에 있든 그 위치는 내가 알  있었다.

곧바로 다시 부적 하나를 꺼내 이번에는 주작을 소환했다.


꾸워워억.. 꾸어어억!

주작은 밖으로 나오자 괴성을 한번 내지른 후 내가 생각하는 대로 책상에 얌전히 날아 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레벨이 낮아 아직은 날개에만 생성된 불꽃을 소멸시킨 후 마치 공작새의 모습과 같은 화려한 깃털을 뽐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내가 빨리 레벨업을 해야 너도 본 모습인 불사조가 되는데.”


꾸어어억.. 꾸워워워워

주작이 말로만 그러지 말고 그럼 빨리 레벨을 올리라고 한다.
주작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나는 주작의 발등을 칼로 살짝 갈라  손등에서 뽑아낸 칩을 이식한 후, 갈라진 조그만 상처는 도력으로 치료해 주었다.


“이제 너만 믿는다, 날아가서 도태자를 찾아라.”

창문을 열어주자 주작의 날개가 다시 활활 타오르며 쏜살같이 창문을 빠져 나갔다.
나는 곧바로 정신을 공유한 주작에게 대도시를 빠져나가 외곽으로 향하도록 했다.


‘랜트카를 빌려 쫒아가야겠군.’

축지술은 도술이 너무 소진되어 안되고 또 구름을 부리려니 그 또한 아직 레벨과 도력이 많이 모자랐다.
또한 소형우주선을 빌리자니 돈이 문제였고.

곧바로 집밖을 나와 근처에서 140셀링을 주고 랜트카 한 대를 빌려 주작이 향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도로 바닥과 30센티 정도 떠서 날아가는 자동차는, 자동이 아닌 수동으로 내가 직접 운전했다.


공작은 벌써 상당히 멀리 날아가 이제 대도시를 거의 벗어나고 있었다.
반중력으로 떠서 달려가는 자동차의 속도는 무척 빨라 나 또한 2시간 정도가 지나자 거대한 대도시를 벗어나, 이제 가구수가 얼마 되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나 군데군데 있는 집들을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지금 지나치는 곳은 이미 주작이 지나간 자리였다.

나는 주작을 이제  이상 날아가지 못하게 하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차차 외곽으로 넓혀가기로 했다.


대도시의 외곽지대에는 산이 둘러 싸여 있고  산들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나 곳곳에 가끔 보이는 집들은 천민인 브론즈 티어들이나, 때로는 도시 생활을 떠나 전원을 즐기며 살고 싶은 상위 레벨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미 이정도 거리는 키르맨들이 모두 지나쳐 갔는지 대도시를 중심을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도태자의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찾기 쉬운 곳에 살고 있을 리가 없겠지.’

한편으로는 긴장되고 조금은 겁나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한 소멸이라 솔직히 그런 마음이 아예 안 든다면 그건 정말 거짓말일 것이다.

대도시 외곽으로 차차 범위를 넓혀가며 오후까지 찾아보았지만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역시 찾기가 쉽지 않겠어.’


키르맨들의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도태자들은 끊임없이 늘어나니 분명 찾을 수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운이 따라야 하는 모양이다.


어느덧 해가 뉘엿해질 즈음이 되자 나는 주작을 다시 불러 들였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당분간은 계속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무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수고했다. 내일 또 보자.”


꾸워워워웍!

알았다는 소리를 내자 주작의 발등에서 칩을 꺼내 소멸시킨 후 칩을 다시 원래 자리했던 내 손등에 이식했다.


하루 종일 자동차를 달렸더니 정말 시원한 카이스 한잔이 절로 생각났다.
곧바로 은지에게 연락을 하니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볼일 끝났어?]

“어, 어제 거기서 8시에 보자.”

[알았어.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돈 걱정은 하지마.]

“알았어.”

전화를 끊고 다시 대도시를 향해 달리며 생각해 본다.


남은 800셀링 중에 어제 술값으로 72셀링, 렌트비로 140셀링이 사라졌다.
내일 또다시 렌트를 하려면 다시 140셀링이 또 사라진다.
하루빨리 도태자를 찾아야 했다.


‘내일은 찾을 수 있겠지.’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에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은지에게 신세 좀 져야겠군.’


솔직히 그녀도 처음 나와 같은 3000셀링을 받아 빠듯할 것이긴 하겠지만 그나마 나보다 사정은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을 넘게 다시 달려와 랜트카를 반납하고 술집으로 가니 은지가 이미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조금 늦은 감이 있어 그녀는 이미 먼저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혼자 벌써 3병을 마신거야?”

30분 정도 늦었는데 벌써 빈병이 3개나 탁자에 놓여 있었다.


“이깟 카이스가 무슨 술이라고.. 이건 음료수나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어제 그런 음료수를 마시고 그런 진상을 부렸냐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 음료수지.”


내가 약간 비꼬듯 말하자 그녀도 어제 일이 생각났는지 나를 흘겨보았다.


“어제는 내가 빈속에 너무 한꺼번에 마셔서 그런거야.”

“그래, 어제 있었던 일은 말하지 말자.”

혹시라도 은지가  말을 꺼낼까봐 내가 미리 못을 박았다.
설사 그녀가 어제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고 해도 내가 이리 말했으니, 그 말에 대해서는 다시 꺼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뭐가 그리 바빴던 거야? 약속 시간도 늦고 말야. 저번주에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반 게임을 하느라 이제 너 돈도 거의 없었을 텐데 하루 종일 뭐하고 다닌 건데?”

그녀에게 굳이 권한증을 부여받아 도태자를 찾으러 다닌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말하면 분명 죽자사자 말릴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도태자를 죽이려 하는 일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 일반 플레이어들은 꺼리는 일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대충 얼버무리고 내가 술을 마시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이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헌데 그녀는 오늘도 어제 못지않게 계속해서 술을 입에 들이붓고 있었다.

“야,  천천히 마셔 또 어제처럼 취하려고 그래?”


“이깟 음료수같은 카이스는 암만 먹어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어, 끄륵.”

왠지 조짐이 이상했다.


“너 혹시 어제처럼 또 취한다면 그냥 놔두고 갈 테니까 그렇게 알어.”

“그래 알았어, 어제는 빈속에 마셔서 조금 특별했던 경우고 오늘은 간단하게 속도 채웠으니 취할 걱정은 없으니 안심해.”


속을 채웠으니 괜찮다고 하면서 어제 못지않게 마셔대는 그녀를 보며 불안한 생각이 조금씩 더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도태자를 찾아다녔더니 나도 술이 목에 잘 넘어가 한창 마시고 있는 중에 어느덧 그녀는 기어이 다시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야, 최 준수,,우! 너는 내가 그렇게 싫으냐?”

“너  취했다. 그만 마시자.”


“아직 취하지 않았거든. 묻는 말에나 대답하란 말야.”


“이게 정말.. 만약 어제처럼 또 주정부리면 정말 그냥 놔두고 갈 테니까 알아서해.”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하란 말야, 자식아.”

욕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취한게 맞았다.

‘아이고 두야..!’


이미 취해버린 그녀는 자신이 취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연신 내게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난 아직 여친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좋아 좋아, 네가 나 같은 보물을 마다하는데 그러다가  엄청 후회할거다.”


“후회해도 어쩔  없어, 지금은 여자 친구 만들 생각 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이렇게 만나는 것도 좋잖아.”


“미친.. 야, 내가 남자 친구 생기면 너하고 이렇게 부담 없이 만날 시간이 있겠냐?”


“그땐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나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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