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돈이 필요해
보조금을 받는다면 저들에게 신세를 지는 셈이라 나중에는 결국 저들의 뜻대로 기관에 들 수밖에 없을 터다.
속보이게 국장도 그것을 노리고 저러는 것임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고집이 정말 세군. 하지만 언제든지 마음이 바뀐다면 제게 연락을 주게. 물론 새벽에도 상관없어. 이거 챌린저님께 보고를 해야 하는데 정말 난감하게 됐군.]
“알겠습니다. 헌데 제가 한 가지 부탁드릴 부분이 있습니다.”
[뭔지 말만 하게.]
국장은 내가 혹시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닌가 했는지 조금 긴장된 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듣는 순간 국장의 얼굴이 다시 실망감에 젖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마음이 바뀌면 제가 연락을 드릴 테니, 이제 제게 이런 전화는 하지 말아달라는 겁니다.”
[후우.. 알겠네. 그럼 언제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겠네.]
곧바로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국장의 말대로 정말 첫 월급을 받은 돈으로 나머지 한 달을 버티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처음 지급받은 3천 셀링 중 지금 남아 있는 돈을 모두 합쳐 봐야 800셀링이 전부다.
그 동안 가상현실 룸에서 거의 매일 일반게임을 돌렸던 것이 무척 큰 타격이었다.
그렇다고 수련을 멈출 수는 없다.
사실 돈만 넉넉하다면 일반 가상 게임으로 상위 플레이어들이 싸우는 모습을 관전 할 수 있어, 수시로 그것은 꼭 보고 싶기도 했다.
돈을 필요로 하는 상위 플레이어들 중 일반게임으로 서로 겨루는 가상 게임이 있다.
그것은 같은 티어급들끼리 전투를 할 수 있고, 하급 레벨자들이 수련 목적으로 관전하게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당연히 관전비는 실버티어끼리 겨루는 장면이 가장 쌌고 상위 티어로 올라갈수록 페이를 더 지급해야 관전할 수 있다.
또한 관전용 게임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는 플레티넘 급만 되어도 생활비가 무척 넉넉하게 지급되어, 관전용 대결을 하려는 플레이어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관전용 가상 대결은 실버티어부터 가능했기에 지금의 나는 참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실버나 골드티어 중에는 그것을 신청하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아, 그것 역시 랜덤으로 운이 좋아야 선택받을 수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하급자들이 관전하는 댓가로 돈을 벌수도 있고 가상 게임이라 죽을 일도 없다.
그러니 개나 소나 신청하는 것이 관전용 가상게임이다.
그렇다고 딱히 페이가 센 것도 아니다.
그것은 참가하려는 숫자가 너무 많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신청해 놓고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꼴이라, 내가 설사 실버티어로 승급이 되어 참가 자격이 된다 해도 나는 관전용 게임은 신청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재미로 또는 수련의 일종으로 게임을 신청하는 플레티넘급 이상 되는 상위 플레이어들도 가끔은 있었다.
그런 상위티어는 한마디로 자신의 얼굴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속된말로 아주 오래전에 말하는 연예인병이 있는 플레이어들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그런 플레이어들의 게임을 관전하고 싶은 것이다.
실상 상위 레벨자가 관전 게임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지 않는 이유는, 어느 정도 상위 레벨에 오르면 능력이 노출되거나 되지 않거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능력이 뛰어나다면 랭크게임에서 혹시라도 자신의 능력을 관전한 지구인을 만난다 해도, 정보를 알고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비싼 돈을 들여가며 관전을 하는 이유가 수련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누구나가 자신보다 상위 티어의 게임을 관전하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아무리 관전 게임에 참가한다고 하더라도 랭크게임에서 관전 참가자와 마주칠 일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월급 외에 부수적으로 돈을 벌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일은 너무 위험해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관에 속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위험하더라도 해보기로 이내 마음을 굳혔다.
내가 생각한 그 일이란 바로 10년 안에 골드 티어로 승급을 하지 못한 도태자를 처치하는 일이었다.
가끔 도태자들도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뭉쳐 다니는 경우도 있어, 골드나 플레티넘도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생각해 꺼리는 일이 이 일이기도 하다.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마음먹은 데에는 도태자들 중에 물론 10레벨 이상의 실버티어도 많았지만, 플레이어의 자질이 형편없는 자들은 10년 내내 브론즈에 머무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위 레벨의 브론즈로.
또한 이것은 랭커 게임이 아닌지라 도태자와 싸우다가 한번 죽게 되면 완전한 소멸이라, 일반적인 모든 플레이어들은 아예 하려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도태자를 전문적으로 처치하는 기관 요원인 키르맨들이 있었지만, 도태자들의 수가 워낙 많아 그들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일반 플레이어들이 중앙기관의 각 지점에 신청을 한다면, 도태자를 사살할 수 있는 임시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기관의 요원이 되기는 싫고, 지금 당장 돈은 필요하니, 위험했지만 그 일을 한번 해보기로 다시한번 마음을 굳혔다.
물론 생명수당이 붙어 그 일은 페이가 무척 셌기에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목숨을 건 수련이라..?’
무척 위험한 수련이 되겠지만 나는 이것 또한 수련의 일종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
다음날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다가 점심을 먹고 오후쯤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중앙 기관의 한 지점을 찾아갔다.
38층의 그리 높지 않은 건물 꼭대기 사무실로 들어서자 여자와 남자 요원 둘이 나를 맞아주었다
“도태자를 사살할 입시 권한증을 부여받으러 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우선 자리에 앉으시지요.”
도태자를 사살하는 일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 그런지, 이일을 하려는 플레이어들은 없어 사무실은 무척 한산했다.
“우선 생존번호를 여기에 적어 주십시오.”
생존번호란 오래전 주민증과 같은 것으로,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나만의 고유 번호였다.
생존 번호만 치면 공개적인 내 개인기록을 모두 알 수 있어 남자 직원은 곧바로 나에 대한 기록을 한번 훑어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도태자를 사살하는 일은 일반 플레이어들에게는 너무 위험한 일이라 사무실이 이렇게 한가합니다.”
“..........,”
“헌데 브론즈 5레벨이 권한증을 신청한다니, 다른 지점은 모르겠지만 우리 지점에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안되는 겁니까?”
“아니 그런게 아닙니다. 권한증은 티어에 상관없이 어느 플레이어든지 신청하면 발급은 됩니다.”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플레이어들이니 이렇게 해서라도 인구수를 줄이려는 것일거다.
“그럼 발급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왼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절차는 무척 간단했다.
내 왼손등에 박혀있는 칩을 꺼내더니 컴퓨터에 집어넣고 다시 꺼내 손등에 역시 다시 이식 시킨게 끝이었다.
칩을 이식하고 남자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도태자로 낙인찍힌 플레이어가 반경 50미터 안에 나타난다면 칩이 알려줄 겁니다. 물론 도태자의 정보가 뜨니 최 준수씨보다 높은 레벨이라면 상관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하지만 도태자의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수당이 더 올라가니 그건 최준수씨가 알아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만약 최준수씨가 도태자를 마지막에 사살하면 수당은 통장으로 자동 입금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가도 되는 겁니까?”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
“도태자들이 가끔 거리를 활보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도태자들은 인간이 없는 무인도나 아니면 숲속 깊은 곳에서 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그런 곳에서 모여살고 있기도 하니 만약 그런 지역이 저희 정보망에 포착되면 그때는 최준수씨에게 문자로 연락이 갈 겁니다.”
“그런 곳에 투입되는 것은 필수조건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경우는 물론 키르맨들이 가게 되며, 권한증을 지급받은 플레이어에게 연락이 가면 참가여부는 본인이 결정하면 됩니다. 물론 대부분 권한증을 지닌 일반 플레이어들은 너무 위험해서 그런 지역에 참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 참가만 한다면 한번에 많은 수당을 벌 수 있으니 아주 드물게는 권한증을 소지한 플레이어가 참가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건 그때 다시 생각해 봐야겠군요.”
권한증을 부여받는데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이 손등의 전화 칲이 울려왔다.
혹시 또 귀찮은 국장의 전화가 아닌가 했지만 이름을 확인하니 은지였다.
일반통화와 화상 통화가 있어 화상통화를 터치하자 곧바로 은지의 방긋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뭔가 좋은 일이 생긴 듯 평소에 비해 훨씬 기분이 좋아 보였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해서 물어보려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