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돈이 필요해
이러다가 어쎄신이 눈치 채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나마 티르얀의 경험치마저도 획득하지 못할 것은 당연했다.
보아하니 이제 10위안에 들기도 글러 먹었다.
목을 조이면서도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을 보니 혹시 체력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됐지만, 그렇다고 다시 멈출 수는 없었다.
헌데 힘을 더 주려고 하던 그때 뒤쪽에서 어쎄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작별 인사는 그만 나누시지.”
어쎄신의 말을 들으며 나는 더욱 급해져 왼손에 도력까지 주입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끄르르르..”
티르얀이 가래 끊는 소리를 내며 드디어 죽어버렸다.
정말 끈질긴 생명력이다.
혹시라도 체력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어쎄신을 이기기는 애초에 글렀기 때문에 잘 내린 결정이라고 자위했다.
곧바로 티르얀의 몸체가 유리가루처럼 부서지며 허공에서 번쩍 사라지자, 어쎄신이 놀란 듯 다급히 입을 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왜 손도 안댔는데 그냥 죽어 버린 거지?”
“그야 나도 모르지. 네년이 너무 잔인하게 손을 써서 회복이 안돼 지금 죽은 거겠지.”
시치미를 뚝 떼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런 경우도 있나? 정말 희한한걸.”
그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축지술을 써서 우선은 이 자리를 피해보려고 했지만, 안전지대로 들어오며 한번 사용했고 또 지금껏 싸운 덕에 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이 자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는 사이 곧바로 다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헌데 왜 경험치는 그대로지?”
속으로 뜨끔했지만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다시 대꾸했다.
“그걸 지금 나한테 묻는 건가? 그건 나도 알 수 없으니 네년이 직접 이 게임을 창조한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물어보지 그래.”
“말끝마다 년년 그러는데 네놈이 정말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구나.”
그녀는 내 말이 무척 거슬렸는지 무척이나 못마땅한 듯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나를 공격해 왔다.
양손에 단도를 치켜든 그녀가 이내 그림자 두 개를 내 쪽으로 향하게 하며 곧바로 양손의 검을 휘저었다.
솨앗.. 쉬잇!
순간 두 그림자가 내 좌우로 갈라지며 나를 협공하기 시작했다.
슈릿.. 쉬잇.
“큭.”
잠깐 버텨보았지만 역시 나는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어, 싸움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깨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녀는 나를 쉽게 죽이지 않으려는 듯 두 그림자를 시켜, 급소가 아닌 곳만 골라 공격하며 내게 고통을 주려 했다.
예를 들어 허벅지나 어깨 같은 곳은 체력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당장 죽지는 않은 채 계속된 칼질에 고통만을 연신 느낄 뿐이었다.
기력이 나보다 훨씬 높은 그녀의 공격에 의한 상처는 평소보다 아무는 속도가 느려 고통 또한 조금은 더 배가됐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이대로 그냥 죽을 수 없지.’
계속되는 부상에 이제 나는 방어만 하려던 생각을 바꿔 부상을 당하건 말건 조금은 무모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띠링! 체력이 75%로 떨어졌습니다.]
[띠링! 체럭이 65%로 떨어졌습니다.]
알림음 소리가 연신 들려오는 가운데 왼손을 품속에 넣어 부적 두 장을 급히 꺼내 내 좌우로 한 장씩 날려 보냈다.
‘분신.’
마음속으로 외치자 곧바로 부적이 불타오른 자리에 내 분신이 좌우에서 나타나 두 그림자를 맞아갔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
두 분신 역시 잠시 동안만 그림자를 막을 수 있을 뿐이다.
그녀는 갑자기 내 분신이 나타나 두 그림자를 막아가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두 그림자에게서 벗어나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화라라락 쏴아아앗
다가가면서 바람과 불의 공격을 시간차로 날려 보내며 나중에는 손에 쥐고 있던 오러의 장검마저도 그녀에게 날려 보냈다.
쐐에에엑!
연달아 날아가는 세 가지 공격을 그녀로서도 우선은 차례대로 방어부터 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오른손을 인벤토리에 넣어, 마지막 남은 얇은 쇠송곳이 촘촘히 박혀 있는 10여 미터 길이의 채찍을 재빨리 꺼내 들었다.
쉬아아악
“흐윽...?”
마지막으로 날아가던 장검을 쳐내던 그때, 내가 쏜살같이 날린 채찍 끝이 정말 간신히 그녀의 얼굴을 스치듯 가격했다.
찌이익!
순간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복면이 송곳에 걸려 길게 찢겨져 나갔다.
“이, 이...!”
복면이 찢겨진 채 바람에 흩날리자 그녀의 무척 화난 얼굴이 내 눈앞에 여과 없이 드러났다.
‘동양인..?’
그녀는 의외로 동양인이었다.
미모 또한 은지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맵으로 흡수될 때 지구인도 있었던가?’
내가 먼저 흡수되고 나중에 내 뒤를 따라 흡수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아니면 다른 행성의 동양인인도..
이유야 어찌됐든 그 답답한 복면을 벗겨내니 속은 후련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드러난 것에 대해,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내 장검을 쳐낸 후 정말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띠링! 체력이 55%로 떨어졌습니다.]
[띠링! 체력이 45%로 떨어졌습니다.]
굳이 보지 않아도 그사이 내 두 분신이 소멸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나는 우측에 있는 생존자수를 재빨리 확인했다.
‘이제 11명.’
한명만 더 죽어 나갈 때까지 버티면 된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벼텨야 한다.
나를 노려보던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단검을 휘두르자, 곧바로 내 분신을 소멸시킨 두 그림자가 다시 나를 공격해 왔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마저 나를 향해 한순간 다가와 두 그림자와 같이 나를 협공했다.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진 상태로도 중간이 휘어져 내 좌우를 공격했고, 그녀는 내 정면을 공격하고 있었다.
“크흑!”
그녀의 공격을 막고 나니 좌우에서 동시에 두 그림자가 내 양 옆구리에 그림자 단검을 찔러 넣었다.
[띠링! 체력이 15%로 떨어졌습니다.]
이제 정말 끝이다.
‘조금만 더 바티면 될 것 같은데. 차라리 날 고문이라도 했으면.’
내가 죽기 전 한명만 더 죽으면 된다.
그러면 10위 보상 경험치가 주어진다.
다시한번 그녀가 새로 생성시킨 내 검을 쳐내자, 도력마저도 거의 소진된 내 검은 저 멀리 날아가며 곧바로 소멸해 버렸다.
“감히 내 얼굴을 보다니 네놈의 몸을 산채로 찢어 죽여주마.
한순간에 찢어 죽이는게 아니라 서서히 고통을 주며 죽여 달라 말하고 싶었다.
말을 마친 그녀가 곧바로 다가와 내 배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이제 생존자 수가 11명 남았지만 이대로 널 죽이지 않으마. 대신 넌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될거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내 얼굴이 아픈 중에도 그녀 모르게 환해졌다.
비록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뻤다.
고문을 받는 사이 분명 한 놈은 더 죽어나갈 것은 당연할 터.
어떤 고통이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테니 최대한 늦게 죽여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녀가 걷어차여 바닥에 쓰러진 내가 다가오며 음험하면서도 잔인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치 나를 곱게 죽일 수 없다는 듯이.
그녀가 내 앞에 서더니 허리를 굽혀 곧바로 내 한쪽 팔을 붙잡아 역으로 꺾어 버렸다.
우드드득!
‘크음!’
순간 엄청난 고통에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만 신음은 속으로만 삼켰다.
하지만 바로 죽이지 않은 것이 아픔 중에도 고맙기까지 했다.
헌데 바로 그 순간.
쏴라라랏
그녀는 보이지 않는 등 뒤의 대각선인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번쩍 빛나더니 내게로 날아왔다.
그것은 길쭉하게 빛나는 쇠막대기 같은 것으로 피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내 머리통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안돼!’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빛의 길쭉한 물체는 어느새 내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그때 그녀의 뒤쪽에서 한 괴상하게 생긴 존재가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를 기해 그녀의 일그러진 모습과 함께 알림음이 전해져왔다.
[띠링! 체력이 0%로 떨어졌습니다.]
내 몸이 유리알처럼 부서지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며 나도 정신의 끈이 한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제발 내가 죽기 직전 다른 플레이어 중 한 놈이 죽었길..,’
지구에 도착해서 확인해 보면 알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잠시 내 모든 감각이 멈춰졌다.
***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쎄신이 일어나며 다가오는 괴상한 놈을 향해 마주서 있었다.
내 영혼은 곧바로 왔던 통로로 빨려 들어가 다시 방안에 앉아 있던 본체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흐음.”
잠시 죽기 직전의 마지막을 떠올려보니 새로 나타난 놈도 분명 10 레벨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그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나타나 것이겠지.
막상 상태창을 확인해보려니 괜시리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래도 제법 시간은 끌었어. 마지막에 놈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엄청난 고통은 당했겠지만 분명 등수 안에 들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할수록 아쉽기도 했고 새로 나타난 놈에 대해 화가 났다.
잠깐 사이 한 놈이 죽었기를 고대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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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 최준수
종족 : 인간 (인간)
직업 : 도사
티어 : 브론즈
레벨 : 5
경험 : 149/500
능력치 P: 도력 : Lv 5
특수능력 P : 도술 : Lv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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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역시나군.”
티르얀을 죽인 80점이 주어졌고 11점이 삭감된 경험치만이 올라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아까웠다.
단 5분, 아니 1분만 더 시간을 끌었어도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더 생각해 봐야 속만 계속 쓰릴 것 같아 그만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첫번째 게임에서 3레벨, 두 번째 게임에서는 5레벨..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지.’
속으로는 그렇게 자위를 했지만 상태창을 확인한 후 왠지 모를 허무함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왔다.
손등에 이식된 핸드폰을 터치하자 눈앞에 홀로그램 화상이 나타나며, 아시아 지역 중앙기관의 국장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자네 정말 대단하더군. 다른 행성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지구의 3레벨 중에서는 자네가 제일 마지막으로 귀환했네. 그것도 5레벨로.]
“.........,”
왜 전화를 했는지 뻔히 짐작이 갔다.
과연 곧바로 국장이 미소를 지운 채 조금은 진지한 표정을 바뀌더니, 내가 짐작하고 있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솔직히 나와 챌린저님은 첫 게임이 끝난 후, 혹시 자네가 정말 운이 너무 좋아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네. 하지만 두 번째 게임에서 5레벨로 귀환한 것을 보고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네. 물론 챌린저님께서도 나와 같은 생각이시고. 그래서 말인데 정말 우리 기관에 들어올 생각은 없는 건가?]
“없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전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보수 문제라면 특별히 더 생각할 수도 있네. 그리고 당연히 지금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고. 솔직히 말해서 우린 그저 자네가 우선 우리 기관에 소속되어, 혹시나 모를 다른 지역에 스카웃 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하는 것뿐이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아무리 좋은 대우와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받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그들의 명령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해, 나는 역시 기관에는 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내가 다시한번 단번에 거절하자 국장이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브론즈 티어라면 지금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을 텐데, 그럼 우리쪽에서 조금 보조금을 보태주는 것은 어떻겠나?]
“아닙니다. 그건 받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