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더 높은 목표 (33/207)



〈 33화 〉더 높은 목표

대화를 하는 중에도 경계를 하며 나아가기를 얼마 후, 마침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가지는 않고 잠시 거리를 두고 지켜보니, 싸우고 있는 두 플레이어들의 능력은 나는 물론 8레벨인 티르얀마저도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저 둘은 우리가 상대할 자들이 아냐, 9레벨 아니면 10레벨은  것 같아. 들키지 않게 어서 여기를 뜨자.”


얼핏봐도 도저히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님을 알고 군말 없이 그녀의 말에 따랐다.
헌데 아주 잠깐이었지만 두 플레이어중 한 놈의 싸우는 모습이 무척 인상이 깊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놈은 분명 그림자 술사였다.
다른 말로는 그림자 어쎄신이라고도 불렸는데, 놈이 상대방을 공격하던 모습이 뇌리속에 아직까지 맴돌았다.

‘본체는 제자리에 있고 행동만으로 그림자를 제어해서 움직인다..?’

잠깐이어서 비록 한번의 공격 포즈만을 엿본 것뿐이지만, 분명 그림자는 길게 그리워지게 해놓고 자신은 상대와 조금 떨어진 채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히 드리워진 그림자는 떨어진 본체가 취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얼핏 생각해보면 티르얀의 식물술사라는 직업도 식물을 제어해서 상대를 처치하는 것이었지만, 놈의 레벨이 높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자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티르얀의 식물 술사를 생각하자 문득 궁금한 점이 있어, 발자국을 죽인 채 옆에서 걷고 있는 그녀를 힐끔 보며 물어보았다.

“넌 주위에 식물이 없다면 무슨 수로 상대와 대적하지? 예를 들어 사막과 같은 맵이 정해지면 그냥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어야하는 건가?”


“내 정보를 너에게 말해 달라는 거야? 그러다가 나중에 혹시 너와 같은 맵에 또 떨어져 적이 되어 만나게 되면 어쩌라고?”

“말하기 싫으면 말고. 굳이 알고 싶은 것은 아니고 문득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꼭 말하고 싶게 만드네. 좋아,  특별한 것도 없으니까 알려줄게.”

“.........,”

“지금껏 사막 맵에 떨어진 적이 몇 번 있었어. 하지만 사막이라고 해서 모두 모래사장만 있는 것은 아니야. 곳곳에 선인장과 종류 식물들이 꽤 많이 있거든. 그리고 사막 같은 맵에 떨어지면 우선 근처에 있는 조그만 바위산에 서식하는 식물이나 나무를 찾던지, 아니면 군데군데 있는 선인장과를 우선 찾아 그 놈들을 데리고 다니거든. 그러면서  놈들을 이용해서 싸우는 거지.”


“그걸로 강적들과 상대가 될까?”

“지금 나를 걱정해 주는 거야? 이거 무척 고마운걸. 좋아, 내가 한 가지  알려줄게. 내가 7레벨일 때는 이미 생겨난 본연의 식물만을 제어할 수 있었지만, 레벨이 올라간 지금은 본연의 식물체에서 새로 싹이 나오게 해 싸울 수도 있어. 그것도 순식간에 자라나게 해서 말이지.”


“그렇다면 네 식물 술사도 대단한 직업인걸.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어.”


내가 칭찬을 해주자 그녀는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능력을 술술 불었다.
문득 걷고 있던 중간에 그녀가 손가락 굵기의 옆을 스친 나뭇가지 하나를 툭 꺾어들었다.


“잘 봐.”


그녀가 말하고 곧바로 가지를 허공에 살짝 던지자 정말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츠츠츠 스스슷


허공에 던져진 나뭇가지가 그녀의 앞에 떠있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손가락 굵기의 자그마한 가지에서 줄기가 여기저기에서 솟아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내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그녀가 신이 나서 방긋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이렇지만 레벨이 더 올라가면 이정도 꺾인 가지로도 엄청난 크기의 나무를 생성해 낼수 있어. 그뿐만이 아니라 그때는 어떤 나무라도 질량을 강철과 같이 단단하게 압축시킬 수도 있다고.”


말을 들어보니 식물술사라고 해서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티르얀의 식물술사라는 직업은 마치 나무의 요정과도 같은 직업 같았다.
단순하게 근처에 있는 나무로만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오판이었다.

역시 레벨이 올라가면 단순한 능력이라도 그와 연계되는 능력이 더 주어진다는 것을 알  있었다.

‘하긴 나도 레벨이 올라갈수록 능력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며 강화가 되는데, 다른 플레이어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겠지.’

하지만 도사라는 능력은 다른 능력과는 다르게 다양한 여러 가지 새로운 종류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이 있었다.

*


반경 200미터 안에서 돌어다니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는 여기저기서 싸우는 소리가 가깝게, 혹은 조금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생존자 수는 어느덧 16명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강자들만이 남아 있는 셈이다.


‘최소 6레벨, 아니 7레벨 이상만이 남아 있겠지?’

그녀와 힘을 합하면 어쩌면 아주 힘들게나마 9레벨까지는 상대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그것은 역시 모험이라 될 수 있으면 8레벨 이하와 붙어야 했다.

한곳에 숨어 있는다고 해도 다른 놈들을 피할  있는 것은 아니었다.
8레벨인 티르얀은 모르겠지만 이제 5레벨인 나는, 나보다 상위 레벨자가 근방을 지나친다면  내 기를 금방 알아채 숨어 있는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한곳에 숨어 있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약한 놈을 찾아다니는 게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반경 200미터 안의 공간에서 계속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은 역시 말이 되지 않아, 얼마 후 다시 두 플레이어가 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헌데 두 놈의 싸움은 벌써 막바지인 듯, 한 놈의 배와 가슴에서는 어느새 피분수가 뿜어져 나오며 쓰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쓰러지는 놈은 혼자 죽지 않겠다는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을 텐데도, 쓰러지며 손바닥을 일자로 세워 공격한 놈의 배를 마주 찔러갔다.

“큭! 이, 이 지독한 놈!”


죽어가는 놈에게 일격을 맞은 놈이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이를 갈았다.
아마도 두 놈의 레벨은 같았는데 한 놈이 조금 더 경험이 있던지 아니면 기력이 약간 센 모양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놈의 상처는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제법 강력한 공격에 맞아서 그런 지 한순간에 아물지는 않고 있었다.


“쓰러진 놈은 이제 곧 죽을것 같은데?”


티르얀이  놈을 바라본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땅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놈은 이제 체력이 바닥나고 기 또한 모두 소진 됐는지, 그녀의 말대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놈과의 거리는 20여 미터.

갑자기 네 손이 품속으로 들어가 부적 하나를 꺼내들고 급히 놈들이 있는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풍살.’


마음속으로 외치니 곧바로 부적이 타오르며 주위의 바람이 압축되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길쭉한 쇠꼬챙이 모양으로 뭉쳐져 곧바로 놈에게 쏘아져 나갔다.

쐐엑!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쇠꼬챙이는 곧바로 쏜살같이 날아가 금방 죽을 것 같은 놈의 머리통에 적중했다.
한순간에 구멍이 뻥 뚫리며 뇌수를 쏟아낸 채 놈의 몸체가 이내 산산이 부서지며 허공중에 사라져 버렸다.

“후유.. 드디어 이 독종같은 개잡놈이 죽었구나. 그런데 내 공격에 왜 바로 죽지 않고 지금 죽는 거지? 뭐 아무튼 죽었으니 상관은 없지.”


사라진  앞에서 그 놈과 싸웠던 놈이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모습을 보고 티르얀이 조금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잠시 말을 잊지 못하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너, 너 지금.. 네가 죽인거지?”

“맞아. 놈은 7레벨이었어.”


내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자 그녀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지은 채, 나와 저 멀리 앞에 있는 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멀리 있는 놈은 상태창을 확인해 봤는지 계속해서 고개만 갸웃하며 이상하다는 표정만을 짓고 있을 뿐이다.
 상태창은 방금 7레벨을 죽여 이제 80/500이 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해결됐다.
이제 지금 죽어 경험치가 삭감된다 해도 상관없었다.

티르얀은 할 말을 잊고 나를 계속해서 쳐다보며 잠시 멍만 때리고 있었다.

“저놈도 7레벨이 분명한 것 같아. 내가 망을 봐줄 테니까 저놈은 네가 먹어.”


내가 양보하듯 말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그녀가 헛웃음을 몇 번 터트리더니 이내 놈에게 달려 나가며, 놈 주위의 나무줄기와 넝쿨을 제어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놈 또한 7레벨이 확실했다.
티르얀이 레벨업을 하지 못했다면 막상막하였겠지만, 그녀는 이제 레벨업을 했기에 놈은 결코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1레벨 차이라 한순간에 놈을 처치하지는 못했지만 얼마  마침내 그녀가 놈을 처치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표정이 무척 밝아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 또한 경험치 삭감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것이 틀림없었다.


생존자수를 다시 확인해보니 우리가 죽인  놈 외에 다시 한 놈이 더 죽어, 이제 13명만이 남아 있었다.


‘3놈만 더 죽는다면 이제 10등 안에 든다.’


티르얀이 없었다면 정말 꿈과 같은 일이라 비록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고마운건 사실이었다.
솔직히 자신보다 하급 레벨자와 동업을 하려는 상급자가 어디 있겠는가.
비록 그녀도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서 나와 동업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듀오게임에 참가하더라도 동급과 참가하는 마당에, 이런 솔로게임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나는 이미 경험치 삭감의 부담을 덜어 그녀에게 놈을 양보한 것이기도 했다.


두 놈을 간단하게 해치우고 이제 나와 그녀는 지금 죽더라도 지금 레벨을 유지 할  있어 마음 또한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의 표정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레벨업을 한 거야?”


걸음을 옮기며 그녀가 묻자 역시 아무렇지 않게 내가 대답했다.


“부인할 필요는 없겠지. 가끔 상황이 그렇게 됐을  그러기도 했었어.”


“하긴 어떻게 해서든지 레벨업을 해야 하는게 우리 모든 생명체들의 숙명이니, 어떤 방법을 사용하던 상관은 없겠지. 나도 오늘 너한테 아주 좋은걸 배웠어.”

“그럼 수업료를 내야 하는  아닌가? 이건 지구의 내 동료들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건데.”

“네가 그런 농담을 하니 전혀 어울리지 않아?”

“농담 아냐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그녀의 말투가 부드러워지자 나도 어느새 조금씩 말투가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와 같이 다닌 시간이 비록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나도 어느새 그녀의 말투에 적응된 모양이다.

“농담이 아니라고..? 좋아, 그럼 수업료로 원하는걸 말해봐.”

나도 이제 확실한 5레벨이 되자 기분이 좋아 나도 모르게 농담을  것이다.
그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빙긋 웃으면서도 제법 진지하게 받아쳐 주었다.

“흠.. 생각해 보니 너에게 딱히 원할 것은 없군.”

“이런 곳에서 원할 것이 뭐가 있겠어. 원할 것이란 우리 둘이 한 놈을 제압하면 경험치를 양보해 달라는 것뿐이겠지.”


“별거 아닌 수업료로 그런  것을 원한다면 네가 퍽이나 들어 주겠다.”


“당연히 그건 안돼지, 이미 정한대로 자기 경험치는 자기 능력대로 획득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내가 방금 전 양보해준 경험치가 고마운 듯, 나를 보며 마치 고맙다는 듯 한쪽 눈을 찡긋했다.


확실히 이제 경험치 삭감에 대한 부담감이 없으니 그녀와 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음이 편하고, 별거 아닌 이야기로도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헌데 한동안 얘기를 나누며 가던 그 순간 갑자기 한쪽에서 아주 미세한 인기척 소리가 들려와, 재빨리 돌아선 우리는 한순간에 두 눈을 부릅떴다.

‘아직 안돼!’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그런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림자 술사.

미세한 인기척과 함께 나타난 놈은 바로 그림자 어쎄신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림자 술사였다.
놈의 능력을 멀리서 잠깐 지켜보았었기에 달아나다시피 피해왔는데, 기어이 놈이 우리를 따라온 것이다.

“싸우면서도 네놈들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지. 도망 다니려면 왜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온 거지? 그냥 자기장에서 죽으면  것을.”

우리보다 약한 놈을 찾아 싸우려 했다는 당연한 이치를 알면서도 저런 소리를 지껄인다.
어쎄신이라고 불리는 놈(?)답게 복면을 뒤집어 쓴 채 우리를 향해 비웃듯 말했다.
헌데 목소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계집인가?’


분명 인간족은 틀림없다.
또한 비록 억지로 목소리를 위장하려 남자의 음성으로 말했지만 다분히 중성적인 목소리다.
특히나 검은 복장에 허리를 질끈 묶은 버들가지 같은 허리를 보니 여자가 거의 확실해 보였다.

허나 지금 이자가 여자든 남자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벌써 이런 강자를 만났다는 것은 내가 이번 게임에서 10위 안에 들어갈 확률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다.


‘아직 13놈이나 남았는데..’

이놈과 싸우는 동안 다른 곳에서 3명이 죽는다면 10위 안에 들 수는 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놈들은 이제  맵 안에서만은 강자중의 최강자들일 터다.
때문에 쉽게 승패가 결정지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방법은 오직 하나. 얼마나 버티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이길 수 있다면 이겨야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오래 버텨야 했다.
그리고  사이 다른 놈들이 죽기를 고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야 돼, 저 여자는 내가 보기에 10레벨인 것 같아.”

티르얀의 말에 어쎄신이  눈을 치켜떴다.
아마도 티르얀이 여자라는 것을 단번에 간파해서 그런 모양이다.


티르얀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눈치  수 있다는 것을 어쎄신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9레벨이라면 그나마 이길 수도 있겠지만 브론즈 티어에서  레벨 차이는 무척 큰 편이다.


그 이유는 티어가 올라갈수록 능력치와 특수 능력이 제각각이라 실버 이상만 돼도  세 레벨 차이는 능력치와 특수능력, 그리고 숙련도에 따라 어느 정도 레벨 차이는 극복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8레벨인 티르얀이 10레벨이라고 했으니 그 말은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을 끌어 10위안에 들고 싶겠지? 하지만 내게 걸린 이상 그런 꿈은 아예 꾸지도 말아라.”


어쎄신은 마치  생각을 읽기라도  듯 족집게처럼 맞추었다.


곧바로 어쎄신이 공격을 할 것이라는 본능적인 느낌에 나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이템이 채찍밖에 없어 근거리 전투에 용이한 검을 곧바로 생성시켜 오른손에 움켜잡고 도력을 주입했다


또한 티르얀에 의해 주위의 가지와 넝쿨들이 마치 순식간에 자라나듯 길게 늘어나며 어쎄신의 주위로 뻗어오기 시작했다.

“솔로게임에서 티밍을 하다니, 너희 두 연놈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안기며 죽여주마.”

“날 강간이라도 하시게? 그럼 나야 대환영이지.”


마치 벌써부터 우리를 이겼다고 생각하는, 자만심이 가득한 어쎄신이 얄미워 내가 비웃듯 한 마디 했다.

“곧 죽어도 입은 살아 있구나, 어디 잠시 후에도 그런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지 두고 보마.”


“너처럼 무서워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못난 계집년이 나를 이겼다고 과연 내게 고통을 안겨줄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이득이 맞아 동업을 한 것이니  년이 그걸 상관할 필요는 없어. 말하는 꼴을 보니 누구도 너같이 더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는 년과는 동업을 하지 않으려하니 우리가 부러운 것이겠지”


“미친.. 난 누구와 경험치를 나눠가질 이유도 없고 또  혼자서도 충분히 레벨을 올릴 수 있으니, 너희처럼 더러운 협작은 하지 않는다. 시간을 끌려고 나를 자극해서 계속 주둥아리만 놀리려고 하는 모양인데 어림없다.”


“눈치 챘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가 곧바로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하니, 티르얀이 더  것도 없다는 듯 주위에 이미 뻗어낸 줄기들을 여자를 향해 쏘아 보냈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어 그림자 어쎄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겪어볼 차례다.

스스스스

줄기가 뻗어오자 순간 어쎄신의 다리 아래로 두 줄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한순간 어쎄신이 어느새 꺼내든 양손의 단검을 웬일인지 허공에 그어댔다.
헌데 그때 정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사사삭 퍼퍼퍼퍽

두 개의 드리워진 그림자가 어쎄신의 발끝에 닿은 채 본체가 움직이는 대로 그대로 따라하며, 뻗어오는 줄기들을 바삐 오가며 쳐내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그림자들은 어쎄신이 취하는 행동을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모두 따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의 위치를 마음대로 움직일  있어, 티르얀이 쏘아 보낸 줄기들은 어쎄신의 몸에 닿기도 전에 모두 잘려나가기 바빴다.

그 기회를 틈타 내가 재빨리 품속에서 부적을  개 꺼내 그녀를 향해 날려 보냈다.

‘열파! 화결!’


순간 부적이 불타오른 자리에서 머리통만한 불덩이와 길쭉한 불의 화살이 생성되어, 그녀의 머리와 배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화라라라랏 쏴라라라랏


 가지 공격에 그녀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림없다.”


 공격이 다가오자 그녀의  단검이 양손을 떠나 곧바로 내가 쏘아낸 두 불덩이를 향해 걱걱 쏘아져 나갔다.


퍼펑.. 파파팟

단검의 검신이 푸른색을 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오러가 입혀진 모양이다.
오러의 단검과 부딪친 두 불덩어리는 이내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나는 급히 다시한번 부적으로 바람의 화살을 하나 날리며 곧바로 화살과 함께 그녀에게 달려 나갔다.


그녀는 어쎄신답게 청각이 무척 예민했는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으로 화살을 쳐낸 후, 곧바로 다가온  검을  단검으로 막아냈다.


내가 부츠를 신고 있어 무척 빠른데도 그녀는 10레벨답게 민첩이나 힘이 함께 상승해, 모든 면에서 확실히 나를 앞서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그녀와 싸울 수 있었던건 역시 티르얀이 끊임없이 줄기와 넝쿨로 그녀를 계속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림자가 그녀와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은 내 착각이었다.
두 개의 그림자는 그녀가 나와 싸우는 중에도 각자 다른 동작으로 줄기들을 계속해서 쳐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내 분신술과도 같은 능력처럼 보였다.
다른게 있다면  분신은 나를 떠날 수 있었지만, 그림자의 발은 그녀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헌데 한순간 그녀의  단검이 내 검을 떨쳐내며 내가 기력에서 밀려 뒤로 물러난 사이, 돌연 다른 행동을 취했다.


그녀의 양손에는 단검 두 개가 사라지고 어느새 별 모양의 표창  개가 쥐어져 있었다.

휘리릿 쉬리리릭

물러난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쎄신이 곧바로 티르얀을 향해 갑자기 표창을 날려 보냈다.
헌데 그때 줄기를 어느 정도 쳐낸 두 그림자도 동시에 피르얀을 향해 양손을 뻗어내는 것이 아닌가.


스스스 츠츠츳

희한한 것은  그림자의 양손에서도 검은 물체가 티르얀을 향해 쏘아져 간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쏘아져 나가는  물체는 그림자와 같은 검은 색으로, 표창과 같은 별모양을 하고 있었다.

“위험해!”

내가 급히 소리치자 티르얀은 지금껏 정신을 그림자 쪽으로 두고 있어 검은 표창  개는 발견했지만, 나와 싸우고 있던 어쎄신의 표창은 발견하지 못한  조금 당황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나 또한 소리친  최고의 속력으로 티르얀에게 달려가 표창을 막아주려 했다.
하지만 화살과 같은 빠르기로 날아가는 표창은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티르얀은 잠시 당황했지만 역시 8레벨다웠다.
곧바로 자신 주위에 있는 나무에서 줄기가 뻗어 나와 그녀의 몸을 감싸며, 일부는 그림자가 쏘아낸 검은 표창을 향해 마주 쏘아져갔다.


퍼퍼퍼퍽


날아오던 네 개의 검은 표창은 곧바로 줄기에 부딪치며 이내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그 순간.


“으흑!”


티르얀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달려가면서도 자세히 보니 어쎄신이 던진 두 개의 표창이 교묘하게 가로로 날아가, 줄기로 감싸인 틈새를 통해 티르얀의 이마와 심장에 어느새 깊숙이 박혀 있었다.


가장 치명적인 급소 두 곳에 표창이 박히자 티르얀의 몸이 곧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상급자의 공격을 받으면 그만큼 기력 또한 자신보다 강한 위력의 공격이라 한순간에 회복 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표창은 지금도 박혀있어 티르얀으로서는 정말 치명적이라 할만 했다.
이내 내가 도착해서 급히 두 개의 표창부터 뽑아주고 쓰러지려는 그녀를 안아 바로 세워주었다.
잠시 어쎄신을 방치하는 사이 그녀는 어느새 티르얀을 안고 있는 내게 다가와, 역시 오러의 단검으로 나를 공격해왔다.


휘릿 쉬앗

티르얀이 쓰러지지 않게 잡고 있던 나는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 했기에 ,티르얀은 그대로 놔둔 채 급히 몸을 빙그르르 회전해 두 단검을 피해냈다.


내가 몸을 피하자 이제는 제어력을 읽은 줄기가 느슨해진 티르얀의 몸에, 다시 두 개의 단검이 다시 가슴과 배에 꽂히며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젠장, 힘들겠군.’

역시 10레벨인 어쎄신을 이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제 티르얀도 치명적인 공격을  군데나 연달아 받아 정신도 몽롱했지만, 체력이 급하락 했을 것이 뻔했다.


헌데 어쎄신은 찔러 넣은 단검을 뽑은 후 티르얀 먼저 죽이려는 듯 다시 가슴을 향해  단검을 꽃아 넣으려 했다.


‘이번에 맞으면 정말 끝장이다.’


티르얀이 정말 위험에 처하자 나는 급히 검을 치켜들고 어쎄신에게 달려 나가며, 그녀의 등을 향해 일검을 휘저었다.
하지만 어쎄신은 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티르얀 먼저 죽이려는 듯, 나를 힐끔 노려보면서도 그대로 두 단검을 티르얀의 양 가슴에 박아 넣었다.


푹 푹!


순간 티르얀의 몸이 눈에 띄게 바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 이제 그녀의 체력이 거의 바닥났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검을 피하지 않은 어쎄신 또한 내 일검을 등에 맞고 작은 신음성을 토해냈다.
내가 다시 급히 검을 회전시켜 이제 머리를 쪼개려하자 어쎄신은 이번 공격은 맞을 수 없었는지,  죽어가는 티르얀을 그대로 놔둔 채 급히 한쪽으로 물러났다.

어쎄신이 물러나자 나는 급히 티르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상처는 급격히 아물고 있었지만 이제 두 눈을  감고 인상을 쓴 채, 얼굴마저도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를 보며 역시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쎄신도 그걸 알고 있는 듯 물러난 상태로 이제 제법 여유를 부리며, 이제는 고통으로 인상을  채 두 눈을  감고 있는 티르얀과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졌다.


‘할 수 없군.’

한순간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검은 어쎄신이 보란 듯 그대로 두고, 왼손바닥을   슬그머니 들어 올려 티르얀의 목젖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곧바로 왼손에 힘을 주자 티르얀의 얼굴이 한순간 새빨개졌다.

‘빨리 죽어라.’

최대한 고통을 적게 주고 죽이려 손에 힘을 더 가하자 순간 티르얀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켁.. 켁!”

그녀가 두 눈을 뜨고 작은 소리로 켁켁거리며 나를 쳐다보자, 나 또한 조금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내 뜻을 전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애초에 네가 제안했으니 어쎄신이 네 경험치를 가져가는 것보다는 약속대로 내가 가져가는게 너도 마음이 편할 거야. 하지만 최대한 고통 없이 죽여줄게. ]


내가 눈빛으로 전하는 뜻을 그녀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헌데 힘을 더 주어 눌렀는데도 웬일인지 그녀가 아직까지 죽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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