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더 높은 목표
마음속으로 외친 것은 5레벨이 되어 새로 도력이 높아지자 자연스레 머리에 떠오른 축지술이었다.
축지술은 땅을 접으며 달리는 술법의 한 종류로, 공간을 접는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아직 도력이 부족하고 미숙해서 잘 될지는 모르겠다.
곧바로 그녀를 안은 채로 달리기 시작하며 머릿속에 축지술법을 주문하자, 정말로 아지랑이처럼 저 멀리 있는 공간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좌우의 나무들이 순식간에 뒤로 쏜살같이 지나쳐 가기 시작했다.
“이, 이거 뭐야..!? 정말 말도 안돼.”
갑자기 일어난 일에 무척 놀란 듯 그녀가 내목을 더욱 꽉 끌어안으며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팔에 힘 좀 풀어, 달릴 수가 없잖아.”
“미안, 그런데 너 정말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
"오래는 못달려."
사실 5레벨로 펼치는 축지술은 도력이 많이 소모되어 오래 달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자기장을 벗어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듯 했다.
약 20-30초 정도 달렸는데도 상당한 거리를 온 것 같아, 흘려 넣던 도력을 다리에서 거두어들이고 멈춰서 그녀를 땅에 내려놓았다.
"후우.. 도력 소모가 너무 심해 당분간 축지술은 사용하지 말아야겠군, 특히 전투중에는 더욱.'
맵을 열어보니 그 사이 안전지대는 어느새 13키로까지 다가와 있었다.
또한 자기장과는 2키로가 떨어져 있어 빠른 걸음으로 가면 이제 자기장의 위협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부럽다. 이번 게임에서 너와 동업한건 정말 내 신의 한수였어.”
“알았으니까 그만 팔 풀어.”
내가 땅에 내려놓았는데도 그녀는 아직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마치 내가 여전히 달리고 있기라도 한 듯 아직까지 그대로 내 목에 팔을 감고 있었다.
내가 한마디 하자 그제서야 그녀가 팔을 풀며 조금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팔 푸는걸 깜박했네.”
“지체할 시간 없으니 빨리 가기나 하자.”
내가 무뚝뚝하게 한마디 하고 먼저 앞장서 가자, 그녀가 인상을 살짝 쓴 채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급히 나를 쫒아왔다.
한참을 걷던 그녀가 마치 지금껏 생각하고 있던 것을 묻듯 엉뚱하고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너 나와 같은 휴먼인 맞지?”
“그래.”
“그런데 너희 지구라는 행성의 남자들은 혹시 같은 성인 남자들끼리 연애하냐?”
“그게 무슨 말이지?”
“아니 내 말뜻은 너희 지구인은 여자가 아닌 남자끼리도 연애하냐구.”
“가끔 그런 인간들도 있긴 있어.”
“아~ 그렇구나. 그래서 네가 그런거구나?”
그녀가 나를 이상한 얼굴로 힐끔 쳐다보더니 잠깐 동안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이지?”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서 뭔가를 느낀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묻자, 그녀가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나를 다시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네가 날 여자로 보지 않는 것 같아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여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난 지금 널 여자로 보고 있는게 아니라 파티원으로만 보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그래? 그거 다행이네. 난 또 너도 남자끼리 연애하는 사람인줄 알았지.”
황당한 말에 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날 보며 씩 웃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빠르게 달려오는 사이 어느덧 저 멀리 안전지대인 흰색막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싸움을 벌여야 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100명 중에 20명만이 남았다면 5레벨이 들어왔을 확률은 희박하다.
만나는 모든 플레이어가 나보다는 상위레벨자로 생각해야 한다.
혼자서라면 물론 두 번째 게임에서 감히 10위안에 드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역시 도전해 봐도 될 듯하다.
사실 첫 번째 게임에서 3레벨을 올리고 16위를 차지한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 따라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내가 조금은 얍삽하게 레벨업을 했다지만, 그것 역시도 운이 너무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헌데 두 번쩨 게임에서 만약 10위안에 든다면..?
그것도 역시 첫 게임에서 3레벨을 올린 것만큼이나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 3레벨을 올린 것보다 오히려 더 대단한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남들이 보기에나 그렇지 사실 8레벨과 동업을 했다고 한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8레벨까지는 이제 우리의 밥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이 맵에 9,10 레벨이 10명 안쪽이라면 당연히 우리는 10위안에 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럴 확률도 무척 높은 편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레벨이 높을수록 플레이어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브론즈부터 첼린저까지의 티어별 플레이어 숫자를 문양으로 표시하면 피라미드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은 20-21레벨 사이, 즉 실버와 골드 사이인 도태자가 발생하는 티어가 존재해도, 피라미드 법칙은 깨진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또한 역시 처음 만나는 상대가 중요했다.
20명이 좁은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선다면 각자가 상대플레이어를 만나 싸워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헌데 재수 없게 처음에 10레벨을 만나게 된다면 모든 꿈은 그야말로 완전히 허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 그냥 죽어버린다면 잃는게 너무 많았다.
우선은 경험치 삭감으로 다시 4레벨로 하락해, 다음 게임에서는 시작부터 불리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티르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는 이런 좋은 기회를 다시는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솔로게임에서 비록 티밍(두 게이머가 협력해 상대를 죽이는 것)의 제약이 없다지만, 이렇게 티밍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 이유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듀오게임에 참가하는게 낫기 때문이다.
나와 티르얀도 한명을 제압하고 나면 누가 경험치를 가져갈지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게 현실이다.
물론 상위자와 하위자는 서로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솔로게임에서는 티밍을 하지 않는다.
우선 하위자는 경험치를 상위자에게 빼앗길 확률이 높아, 아무리 상위자가 티밍을 하자고 제안해도 당연히 하지 않는다.
그냥 이용만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솔로게임에서 혹시라도 티밍을 하려면 당연히 동급일 수밖에 없다.
헌데 적의 경험치를 나눠가질 수도, 그렇다고 한 플레이어만이 가져갈 수도 없어 결국에는 반목이 생기게 마련이다.
때문에 그럴바에는 티밍을 하려면 마음 편하게 듀오게임을 하려하지, 아무도 솔로게임에서 하려하질 않았다.
나와 티르얀은 서로가 이익이 맞아떨어진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야했다.
때문에 이번 기회가 나 같은 낮은 레벨이 언감생신 10위를 바라볼 수도 있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죽는다면 또 하나 아쉬운 점은 10위안에 든다는 가정하에서의 경험치 획득이다.
솔직히 그때는 얼마의 경험치가 주어질지 무척 궁금한게 사실이다.
하급자들은 누구나가 마찬가지겠지만 나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에 10레벨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꼭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티르얀의 음성이 들려왔다.
“레벨이 오른 지금도 나 혼자라면 10위안에 든다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있어서 그런지 조금 자신감은 있어. 우리 한번 잘해보자.”
“그래, 둘이 힘을 합한다면 어쩌면 가능 할지도 모르지.”
문제는 역시 둘이 협공해서 상대를 죽이고 나면 누가 경험치를 가져가느냐 였다.
하지만 10위안에 들어간다는 보장만 있다면 보상 경험치가 주어지기에, 처치하는 경험치는 그녀가 가져가도 상관은 없었다.
문제는 장담을 할수 없으니 역시 죽기 살기로 빼앗아 와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후 눈앞에 안전지대를 두고 나와 그녀는 마치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듯 잠시 서로의 눈과 마주쳤다.
곧바로 흰 막을 통과하고 기를 최대한 끌어올려 주위를 경계하며, 레벨이 낮은 놈이 걸려들기만을 고대하며 앞으로 전진해갔다.
지금 목표는 오로지 하나, 10위권에 드는 것뿐이다.
이제 자기장도 벌써 안전지대의 막과 어느새 겹쳐져 있었다.
안전지대의 반경 또한 첫 게임에서는 300미터였던 것이, 이번 맵에서는 반경 200미터까지 좁혀져 있었다.
“아까 그 희한하게 생긴 새를 다시 날려 보내 놈들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안될까?”
그녀가 주작을 써먹지 않는 것이 아쉬웠는지 나를 보며 말했다.
“내 레벨이 낮아 지금 날려 보내봐야 소용없어. 괜히 도력과 체력만 낭비할 뿐이야.”
내가 딱 잘라 말하자 그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의아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좁혀진 안전지대 안은 허공 높이도 100여 미터 남짓이다.
그 높이에서 날아다니다가는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들 능력으로도, 충분히 주작을 공격해 소멸시킬 수 있는 거리였다.
물론 내 레벨이 더 올라 주작이 자신의 몸을 완전히 불로 감싸고, 또 내가 그보다 더욱 더 레벨을 올려 초고열의 열기를 발산한다면, 주작의 방어력과 공격력 또한 더 높아져 그때는 안전지대 안이라 해도 마음 놓고 날려보낼 수는 있었다.
처음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단순한 그 이치를 알아차렸는지 곧 빙긋 웃으며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리고 지금 방금 생각난 것인데 혹시 말야..?”
“.........,”
“아니, 한 가지 너에게 부탁할 것과 제안할 것이 있어.”
“뭐지?”
그녀는 왠지 모르게 잠시 말을 하지 않고 뜸을 들이고 있었다.
한동안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또다시 생각하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난 여자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패한다면 사내놈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너에게 부탁할 것은 혹시라도 네가 살아있고 내가 힘을 쓸수 없어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그 전에 네 손으로 날 처치해줘.”
“그건 당연한거 아냐?”
“역시 너다워. 그럼 제안하기도 편하겠네. 나 또한 네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내가 어떻게든 먼저 너를 죽일테니 그렇게 알아.”
“그것도 당연한 얘기야. 내가 체력이 바닥나 죽을 것 같으면 주저 없이 날 죽여.”
단호한 내말에 그녀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것은 내 말이 맞았기에 그녀도 할 말이 없는 듯 했다.
헌데 잠시 후 그녀가 나를 힐끔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야, 혹시라도 다음에 나와 솔로게임에서 적이 되어 만나서 만약 내가 패한다면 너도 날 강간할거야?”
“자기장이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근처에 없다면, 당연히 해야겠지. 그래야 다음에 혹시라도 또 나를 만난다면 나를 꺼림직하게 생각할거 아니겠어?”
“그야 그렇지만.. 하지만 만약 다음에 만났을 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패해서 네가 그런 짓을 한다면, 난 널 죽을 때까지 저주하면서 살거야.”
“그건 네 마음대로 해, 내 알바 아니니까. 조금 비열한 짓이긴 하지만 이 게임에서 너와 티밍을 했다고 해서 너와 나 사이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다음에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넌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적일뿐이야. 그러니 그때는 당연히 널 다른 플레이어들과 똑같이 대할거야. 그러니 너도 날 그렇게 대하는게 좋을거야.”
“정말 쌀쌀맞기가 극치중에 극치구나. 나는 아예 비교도 되지 않네. 날 아는 우리 행성의 휴먼인들도 날 쌀쌀맞다고 했는데 너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알면 됐고.”
그녀에게 확실한 선을 긋지 않으면 나중에 혹시라도 게임에서 만나게 된다면 조금은 골치 아플 것 같았다.
솔직히 이렇게 모질게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러지 않으면 그녀나 나나 나중에 게임에서 만난다면 모두 곤란해질 것은 뻔해, 그냥 깨끗하게 상황을 정리해 놓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