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더높은 목표
한순간 놈이 당황했지만 검으로 변한 양팔을 이내 번개같이 휘둘러 쏘아져오는 줄기들을 향해 휘저으니, 줄기들이 한순간 사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흑.”
하지만 굵은 줄기 몇 개는 반만 잘린 채 그대로 뻗어나가 기어이 놈의 몸을 몇 군데 꿰뚫었다.
놈이 비록 티르얀보다는 하수였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당한 이유는 물론 기습 때문이었다.
식물술사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이렇듯 아무 인기척 없는 은밀한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티르얀은 꿰뚫린 놈의 몸체를 허공으로 들어 올려, 고통으로 버둥대는 몸체를 향해 줄기 몇 개를 뻗어내 계속해서 찔러갔다.
퍽퍽퍽
온몸이 찔려 사방으로 피가 튀며 놈의 몸은 회복할 사이도 없이 축 늘어지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허공중에 사라졌다.
순간 티르얀이 전보다 더욱 환한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상태창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겠지.’
잠시 후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미소가 걸린 채 밝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만 가자.”
“레벨업은 됐어?”
“알거 없잖아.”
“.............”
한방 먹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니 그 말은 농담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싸움이 끝나자 나는 이제 주작을 불러들여 내 앞으로 오도록 했다.
허공에서 바로 사라지게 할 수도 있었지만 레벨업이 됐으니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화라라락
내 앞에 나타난 주작의 모습은 어느새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멋있다.”
주작이 내려오자 그녀가 내뱉은 찬사다.
확실히 주작은 변해있었다.
몸통은 그대로 공작새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양 날개는 이제 활활 타오는 불꽃으로 이글거렸다.
하지만 역시 아직까지는 그 열기가 강하지 않았다.
얼마 후 내 옆에서 걸어가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지은 채 말했다.
“나 레벨업 했어.”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다.
그녀는 방금 전 내게 알 필요없다고 말한 것이 못내 찜찜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미 그것은 잊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면을 볼 때 티르얀의 성격은 그리 모질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티르얀이 굳이 그걸 나에게 말하니, 그녀의 말처럼 이번 게임에서는 파티원이 됐으니 형식적이나마 한마디 해주었다.
“축하해줄 일이군.”
“웬일이야, 나를 축하씩이나 해주고.”
“우린 파티원이잖아.”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왠지 어울리지가 않네. 아무튼 고마워. 헌데 너도 레벨업을 한게 맞지?”
“주작을 봤으면 알거 아냐.”
“야, 레벨업 했다고 그냥 말해주면 안되냐? 레벨업 했다고 하면 누가 널 잡아 먹냐고!”
그녀는 내가 끝내 확답을 해주지 않자 장난처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척 했다.
하지만 주작을 봤으니 그녀도 내가 레벨업 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을 터다.
물론 나는 5레벨업 했지만 그녀는 6레벨로 오해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처음과는 점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녀의 처음 모습보다는 조금씩이나마 이렇게 발랄하게 변해가는 모습이 보기는 더 좋다고 생각했다.
헌데 확실히 해둘 점이 있어 그때 내가 분위기 깨는 말을 했다.
“약속대로 한 놈은 너에게 양보했으니 이제 다음 놈을 사냥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각자 능력대로 경험치를 가져가는건 알고 있겠지?.”
“그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네 능력으로 경험치를 가져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만 알아둬.”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훈훈한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았지만, 의외로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하는 바람에 그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됐다.
헌데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나는 분명 그녀가 레벨을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레벨을 짐작했었다.
물론 전에 내가 죽인 힘만 센 놈이 자신을 6레벨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녀의 레벨을 짐작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녀는 내가 몇 레벨인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레벨업을 했으니 그녀는 내가 6레벨이라 오해하고 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을 보면 혹시 도사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조금은 더 우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직업에 따라 조금 더 우월한 직업이 있을수는 있다고도 생각했다.
예를 들어 힘만 무조건 센 직업을 부여받았다면, 어찌 보면 식물 술사나 사슬 술사의 직업이 더 우월한 직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힘센 직업도 계속 레벨업이 되면, 아무리 단단하게 강화된 식물이나 사슬을 힘들이지 않게 끊어버릴 수 있는 능력으로 발전은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격의 쓰임새나 다양성을 따진다면 확실히 실용도 면에서, 힘만 센 직업보다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노동자와 의사라는 직업의 차이처럼 말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나는 도사라는 직업이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녀가 나를 6레벨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
두 시간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더 걷는 사이 안전지대와는 어느새 52키로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자기장은 5키로로 아직 여유가 있어 우리는 빠르게 걷던 걸음을 조금 늦추어 걸어갔다.
확실히 이번 자기장은 전보다는 많이 느리게 좁혀져 오고 있었다.
생존자 수는 두 시간 사이 7명이 줄어 있어 이제 22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정도로 적은 숫자라면 아직 52키로나 남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서로를 만나기도 쉽지 않을 터다.
이제부터 정말 자기장이 최대한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전지대로 들어가야 한다.
한마디로 거저먹어 보자는 심보였다.
만약 10위권이 목표가 아니었다면 최대한 다른 플레이어들을 찾아내 경험치를 올려야 했다. 허나 지금 그녀와 나는 10위권이 목표이니 최대한 상대 플레이들이 서로 만나 한 놈이라도 서로를 더 죽이기를 바라야 했다.
만약 이 숫자가 모두 안전지대로 들어간다면 비록 그녀와 동업했다지만, 10위권 내에 들어가기는 그리 쉽지 않을 터다.
‘10위안에 들면 경험치가 얼마나 주어질지 궁금하기는 하군.’
이런 경험치는 맵의 상황이나 아니면 맵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의 평균 강약을 고려해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원에서도 이런 것에 대해서는 경험치를 확실히 말해준 적이 없었다.
‘만약 등수 안에 든다면 한 레벨 더 승급될 경험치가 주어지면 좋을 텐데.’
그러면야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숲이라 보물 상자가 더 많을 것 같았지만 생각처럼 상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면 이번 맵은 아마 본신의 능력을 주로 사용해서 상대를 처치하라는 뜻일 거다.
한참이 지나 맵을 열어보니 기어이 안전지대까지 15키로가 남은 상태에서도, 다른 플레이어는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생존지수를 확인해 보니 35키로를 오는 동안 겨우 두 명만이 줄어, 아직까지 20명이나 남아 있었다.
이러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된 셈이다.
헌데 자기장을 보니 그 사이 1키로로 접근해 있었다.
마냥 느리게 좁혀져 올 줄 알고 확인을 하지 않았는데, 안전지대로 가까워져 오자 갑작스레 속도를 빨리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안전지대 안에서 20명이 모두 싸우라는 뜻인가?’
그러고 보니 이토록 넓은 맵인데도 첫 게임의 맵에 비해 안전지대마저 훨씬 더 좁아져 있었다.
“빨리 가야겠어, 이러다가는 자기장에 노출될 거야.”
티르얀도 맵을 열어보았는지 나를 재촉했다.
이번 맵은 안전지대 외곽에서 최소한의 플레이어만 사살되고, 모두 안전지대 안에서 피터지게 싸우라는 뜻이다.
그것도 전에 비해 훨씬 줄어든 안전지대 안에서.
그녀와 나는 뛰다시피 했지만, 갑자기 속도를 내며 좁혀져 오는 자기장을 떨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할 수 없군.’
그녀 역시 자기장의 속도가 너무 빨리 줄어들자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달리면서도 얼굴이 조금은 하예져 있었다.
“우리가 시간을 너무 지체 했어.”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지만 나는 다른 소리를 했다.
“난 지금 두 배 빨리 달릴 수 있는 부츠를 신고 있으니 너를 안고 달릴거야. 그게 싫으면 여기서 죽든가.”
“말을 해도 꼭..”
물론 나도 반 농담이었다.
곧바로 그녀를 안자 그녀가 자신의 몸을 고정시키느라 두 팔로 내 목을 감싼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닥..
확실히 부츠의 위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사람을 한명 안고 가니 무게 때문인지 1.5배의 속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냥 여기다 던져버리고 나 혼자 갈까..?’
티르얀을 그냥 나두고 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안전지대 안에서 나 혼자 버틴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것도 20여명이나 되는 강자들이 가깝게 모여 있는 공간에서 말이다.
어차피 들어가도 죽고 이대로도 죽는다.
더군다나 이번 목표는 10권이질 않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테르얀이 꼭 필요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혹시 나와 같은 상황이지 않을까도 자문해 봤지만, 역시 그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너무 지체했어. 얄굳은 작전 때문에.’
최대한 안전지대와 멀리 떨어져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지 않으려 했던게 불찰이었다.
그녀도 이대로라면 둘다 자기장에 노출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대로는 둘다 죽어, 그냥 너 혼자라도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가.”
자기장의 속도를 다시 확인해보니 어느새 300미터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헌데 안전지대는 아직까지도 12키로나 남아 있었다.
그녀는 나를 죽이고 부츠를 빼앗으면 될텐데도, 그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의리는 있군.’
마음 씀씀이가 제법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그냥 팽개치고 혼자 달릴 때의 속도와 안전지대와의 거리를 얼추 계산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티르얀을 내던지고 혼자 간다고 해도, 그 속도 또한 자기장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속도였다.
‘이제 5레벨이 됐으니 한번 시험해보자.’
순간 5레벨로 승급되고 새로 생겨난 도술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레벨이 올라가니 머릿속에서 자연적으로 떠오르는 몇 가지 도술이 있어, 그것을 시험도 해볼 겸 써먹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잔말 말고 잠시 내 목이나 꽉 잡고 있어.”
의도를 알 수 없는 내말에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두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내 목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달리면서 그녀의 몸이 확실히 고정되자 그녀의 등을 받치고 있던 왼손을 떼어내, 급히 품속에서 노란 부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처음이라 잘 될지 확신은 없었지만 어차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기에, 성공하기만을 고대하며 손가락 사이에 있는 부적을 앞으로 내던졌다.
화라라락
곧바로 부적이 땅바닥에 떨어지며 불타오르자 나는 불타는 부적을 재빨리 발로 밟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한마디 외치며 머릿속에는 한 가지 법칙을 생각한 채 도력을 다리에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