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동업 (29/207)



〈 29화 〉동업

결정은 내려졌다.
티르얀을 이번 게임에서 죽이지 않기로.

하지만 현재 4레벨이니 어떻게 해서든지 최소한 5레벨까지는 올려야한다.

‘이러다가 내가 4레벨인게 뽀록나면 티르얀이 나와 파티원을 할 리가 없지.’


지금 그녀와 동업을 하고 있으니 이번 게임에서 어쩌면 손쉽게 5레벨로 올라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머리를 잘 굴려야 한다.
그녀가 거의 죽여 놓고 끝에 가서 어쩔  없이 내가 죽였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그녀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생각보다 까칠한 여자는 아니다.
아니 알고 보니 조금은 부드럽기도 한 여자였다.

안전지대를 향해 조금 속도를 내서 걷고 있는 사이, 그녀가 문득 생각난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쥴스야,  내가 듀얼 게임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기회를 봐서 날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뜨끔했다.

“쥴스가 아니고 준수다.”


“쥴수..? 발음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티르얀보다는 나아.”


“말 돌리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봐. 나도 사실 사슬 술사가 죽고 나서 동업이고 뭐고 널 죽일 생각을 잠시 했었으니까.”


“네 말대로 기회를 봐서  죽이려고 했던건 사실이야. 하지만 널 죽인 경험치 70보다 너로 인해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방금 생각을 바꿨다. 헌데 넌 왜  죽이지 않은 거지?”

어차피 알아차렸다면 숨기는게 더 이상할 것 같아 속마음은 가감 없이 털어놓고 내가 다시 반문했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나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도 너와 비슷한 생각을 했어. 너의 도사라는 능력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 한마디로 지금  뒤통수를 쳐서 죽이는  보다는 나중을 생각하기로  거지. 느낌이지만  레벨이 금방 오를 것 같았거든. 물론 솔로 랭크게임에서 다시 만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듀오 게임에서는 원할 때 함께 참가  수도 있잖아.”

“속셈은 나와 비슷했군.”

“너도 알다시피  식물 술사야. 능력이라고는 식물을 제어할  있는 능력밖에 없지. 물론 레벨이 더 올라간다면 지금보다 더 큰 식물을 제어할 수도 있고, 또 식물의 강도를 더 높일 수도 있어. 하지만 공격 패턴이 너처럼 다양하지가 않아. 그래서 8레벨과 싸웠을 때처럼 네가 주위를 끌어준다면, 비록 나보다 한 레벨정도 상위자가 나타나도 어느 정도는 대등하게 싸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살려둔 거야.”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어. 하지만 나도 당연히 레벨을 올리는게 목적이니 너에게 이용만 당할 수는 없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도 생각하고 있겠지만, 이런 솔로게임에서 동업을 한다면 아무래도 너와  둘은 타협이 꼭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말하려는 요지를 그녀도 생각하고 있었는지 내 말뜻을 단번에 알아챘다.

“듀어 게임이 아닌 갑자기 이루어진 솔로 게임에서의 파티원이니 당연히 우리 둘 중 먼저 적을 죽이는 사람이 임자겠지.”


그녀는 레벨이 높다는 이유로 자신이 유리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이었기에 밑져야 본전인 셈이다.
경험치를 얻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그렇게 억울할 것은 없었다,
허나 어차피 살아난 목숨, 이왕이면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얻어야 했다.
그래서 티르얀을 죽이려고도 했던 것이었고.

그녀의 생각대로 만약 이번 게임에서 나 없이 8레벨을 만난다면 그녀는 당연히 죽을 것을 먼저 생각했을 터다.
하지만 나와 함께라면 조금은 비벼볼 건덕지는 있다고 생각해,  뒤통수를 치지 않고 나와 임시 파티원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은 이미 짐작한 바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솔로 게임에만 참가하는 상위 레벨자들은 자존심, 그리고 누군가와 경험치를 나눈다는 것 때문에 혼자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는 나도 동감이다.
어차피 여기서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으니까.

“좋아, 그렇다면 우리 둘이 협공해서 적이 확실하게 제압됐다고 생각됐을 때, 너와 상관없이 나는 나대로 행동하겠다. 그게 싫다면 당장 지금  죽이든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눈치채고 그녀가 이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 말은 한마디로 설사  혼자 적을 제압했다고 해도 너는 눈치껏 경험치를 챙기겠다는 말이지? 얼마  6레벨을 내가 죽이기 직전에 네가 먼저 총으로 쏴죽였듯이.”

“네 말이 맞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나는 너한테 이용만 당하는 셈이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어.”

“좋아 그건 네 말이 맞는  같아. 그건  능력껏 알아서 해봐. 단 내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야.”

“당연히 나도 적을 제압할 때는 같이 손을 쓸 거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라.”

꼼수를 부릴 필요 없이 이렇게 까놓고 말하니 속은 시원했다.
티르얀은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성격 하나는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이런 티르얀을 생각하자 첫 게임에서 나를 죽이기 전에 수모와 치욕을 안겨준 10레벨 여자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티르얀과 성격이 대조가 돼서 그런 것일까.


아니지,
타르얀도 처음에는 나를 무시했었다.
그럼 그 10레벨 여자도 알고 보면 괜찮은 여자일까?

그런건 상관없다.
나에게 수모를 안겨준 여자였기 때문에 설사 그녀가 알고 보면 좋은 여자라고 해도 댓가는 치러야한다.

‘나중에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물론 내가 그 계집년과 비슷한 레벨이 되거나 더 강해진 후 만난다면 더욱 좋을 텐데.’


첫 게임이라서 그런지 그녀에게 받은 수모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떠올라 잠시 생각한 후 생존자 수를 보니 어느새 43명으로 줄어 있었다.
생존자수가 나와 상관없이 줄어든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었다.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죽은 후 삭감되는 경험치 수치가 줄어든다는 것이 장점이다.
단점은 생존자수가 줄어들수록 상위 레벨자들만 남는다는 것이었고, 내가 경험치를 올릴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힘들어 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 같은 하위 레벨자는 차라리 숫자가 줄어들기 전에 외곽에서 플레이어들을 만나 싸우는 것이, 그나마 경험치를 획득할 확률이 높았다.
재수 없게 외곽에서 상위 레벨자를 만날 수도 있어 한번의 싸움에서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싸워 경험치를 올리는 것이 당연히 백번 낫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누구도 처치하지 못하고 숫자만 줄어드는 것을 바라만 본다면 평생 레벨업은 할 수 없다.

 시간 정도를 더 가는 사이에도 플레이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만큼 이번 맵이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대로 안전지대로 들어간다면 경험치를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아. 자기장은 아직 멀리 있는데 안전지대는 벌써 78키로까지 접근했어.”

티르얀이 걸음을 멈추고 말하자 나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안전지대로 가까워질수록 강자들이 우글거렸기에 자기장의 위치를 틈틈이 확인하며 전진해야한다.
그리고 적당히 거리를 조절한 후 플레이어들을 찾아야 그나마 약한 놈들이 걸릴 확률이 높다.

물론 10레벨이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눈치껏 속도를 조절해서 가고 있는데, 혼자만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가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마 다른 플레이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지금 우리와 같은 위치에서 서로를 찾고 있을 터다.

한동안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근처를 수색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광범위해서인지 플레이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지? 이대로 더 수색을 해야 할까?”


티르얀이 나를 돌아보며 인상을 살짝 쓴 채 물었다.

“어쩔  없군, 체력이 조금 줄어드는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


1레벨  털 빠진 수탉과 같았던 사신수 중 주작은, 4레벨이 됐으니 모습이 많이 변해 이제 날 수도 있다.
청룡 또한 날수 있었지만 굳이 두 신수를 내보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기장이 마치 비누거품처럼 대지는 물론 허공까지 둥글게 막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하늘을 보면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어 주작이 높이 날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7-8백 미터 정도.

만약 레벨이 높은 능력자가 원거리 공격이나, 또는 다른 어떤 플레이어가 총이나 화살 그리고 레이저와 같은 공격구로 주작을 쏘아 맞춘다면 내 체력은 당연히 줄어든다.
하지만 마냥 숲을 헤매고 다닐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었다.


곧바로 품속에서 부적을 한 장 꺼내 허공으로 날려 보내며 술법을 발현했다.

번쩍

부적이 불타오르며 반짝 빛나더니 이내 주작이 날개를 퍼득이며 생성됐다.
헌데 1레벨 때의 털 빠진 주작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치 공작새와 같이 화려한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하지만 역시 불사조와 같이 온몸이 불꽃으로 변하려면 아직 멀어, 붉은 색의 전기막 만이 몸 전체에 생성되어 틱틱 거리며 합선된 소리만  뿐이다.

“별 능력이  있군. 나는  너 같은 능력이 전해지지 않았나 몰라.”

“랜덤으로 정해진 것이니 운이라고 봐야겠지. 하지만 너도 레벨이 오를수록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질 테니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티르얀의 눈빛을 보니 내 능력이 무척 부러운 모양이었다.

이제는 커다란 독수리만해진 주작이 곧바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주작과 정신을 공유하기 위해 기를 집중했다.
비록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주작이 내려다보는 지상을 나 또한 느낌으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군데군데 건물들이 보이며 주작은 공유한 내 정신이 시키는 대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너무 먼 곳에는 우리가 갈수가 없어 우선 반경 1키로 내에서만 날아다니게 했다.
주작의 시각은 매보다 뛰어나 몇  미터 허공에서도 뱀과 같이 작은 놈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예리했다.

한동안 근방을 날던 주작의 눈에 뭔가가 포착됐다.


“플레이어다.”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티르얀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내가 주작과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한마디 했다.

“정말 부럽다니까. 그리고 너를 죽이지 않길 천만다행이다. 이렇게 쓸모가 있으니 말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자.”

“알았어, 정말 쌀쌀맞기는.”

내가 앞장서자 그녀가 투덜대며 나를 따라왔다.
50여 미터를 전진하자 저 멀리 인간족이 아닌 희한하게 생긴 외계종족이 까만 점으로 보였다.
점으로 보이는 놈이 어떻게 희한하게 생겼는지 알  있는지는 주작의 눈을 통해서다.

주작이 보는 모든 물체는 비록 느낌이었지만 내가 보는 것과 같다고 할  있었다.
주작이 놈의 허공에 떠서 모습을 고스란히 내게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놈이 나무 사이를 수색하고 있는 것을 보니 보물 상자를 찾고 있는 모양새다.
놈과의 거리는 어림잡아 250여 미터.

다행히 내가 더 높은 위치에 있어 시각적으로나마 점으로  수 있었다.
나무 사이를 돌며 아이템 찾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니 그리 높지 않은 레벨임이 분명하다.


“저놈은 나한테 양보해.”

내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하자 웬일인지 그녀가 내말에 동의했다.

“알았다. 네가 발견했으니 네가 한번 처치해봐. 어차피 저 먼 곳까지 가기도 귀찮으니까.”

사실은 새로 획득한 레이저 저격총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낸  조금  높은 위치로 이동했다.

나무가 시야를 가려 놈의 모습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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