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동업 (26/207)



〈 26화 〉동업

이로서 놈의 약점은 확연했다.
위쪽은 뚫을  없었지만 하체 쪽은 완전히 방어를 할 수 없었는지 이렇게 부상을 입고 있었다.
여자도 그것을 알아채고 곧바로 줄기들을 여러 개로 나누어 위와 아래를 동시에 공격하기 시작했다.
얼마간 놈에게 그렇게 공격을 하며 몇 번 부상을 입혔지만, 역시 여자도 기의 한계가 있었기에 공격을 하는 식물의 속도가 어느덧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놈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놈은 부상으로 인한 체력과 사슬의 회전으로 인한 기의 소진 때문에 어느덧 사슬의 회전하는 속도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체력이 아무리 높아도 기가 모두 소진되면 상대를 제압할 수 없어 기의 조절도 필수였다.


어느덧 그 넓은 공간을 둘러싸고 있던 엄청나게 많은 식물들도 거의 사슬에 잘려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가 비록 공격하며 부상은 당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기의 소모로 이제 식물을 제어할 수 있는 거리도 무척 짧아졌고, 속도 또한 무척 느려져 있었다.


하지만 놈 또한 부상과 기 소모로 인해 어느 정도 지쳤는지 이제야 처음의 그 여유만만 했던 표정은 모두 사라지고 인상이 어느새 계속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와 분신이 두 개의 사슬을 맡고 있는 동안 줄기와 사슬의 싸움이 계속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그 많던 줄기와 넝쿨들이 모두 잘려나가 버렸다.


이곳이 비록 숲이었지만 그녀는 이제 기를 너무 많이 소모했는지 근처의 다른 식물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주위에 있는 십여 줄기만이 그녀의 몸을 감싼 채 허공으로 하늘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유탄이 세발 남았는데 한방씩 갈겨버려 볼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지금 유탄으로 한방씩 맞았다고 해도 두 연놈 모두 죽으란 법이 없어 역시 기회를 더 엿보기로 했다.


만약 두 놈을 한꺼번에 사살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제 놈뿐만 아니라 여자에게까지도 공격을 받아야 해 신중하지 않을  없었다.


여자에게 이번 게임이 끝날 때까지 동업자로서 함께하자고 했지만 그건 역시 혹시나 해서 던져본 말에 불과했다.


밑져야 본전이다.
만약 놈을 처치하고 여자와 같이 살아남는다면 그리 확률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나마 게임이 끝날 때까지의 동업이라는 제의를 해 놓았기 때문에, 그녀가 나를 살려두고 정말 끝까지 동업자로 생각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기회만 되면 남자는 물론 여자도 죽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가 처음 동업을 제의 했을  내가 이번 게임이 끝날 때까지라는 단서를 덧붙인 것은 역시, 혹시라도 놈을 처치한 후 여자에게서 내 생명을 조금이라도 보장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보험과 같은 것이었지만, 역시 그건 믿지 못할 약속이었다.

하지만 놈이 나타났을 때의 상황은 정말 그녀의 동업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생각하며 사슬의 공격을 방어하는 사이 울타리의 줄기들이 모두 사라지자 여자도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고 숨을 고르고 있었고, 놈 또한 방어만 하고 있던 나와 분신을 제처 두고 사슬을 거두어들인  멀찍이 물러나 역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연놈이 그렇게 엄청난 기를 사용 사용했으니 체력은 모르겠지만 기력은 무척 소진됐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도력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놈이 물러나자 급히 분신을 사라지게 했다.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려 하자 그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두 연놈이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 싸우게 해야 내가 이득을 보는 것이었기에, 나는 제법 떨어져있는 놈을 향해 재빨리 부적을 날리며 술법을 발현했다.


새로 물질을 생성시키는 술법은 도력이 더 소모되기에 이미 어디에나 형성되어 있는 공기 중의 물질로 놈을 공격했다

휘류류류류  화라라락


곧바로 공기 중에 흩날리는 바람이 한곳으로 모이며 사람 몸통만한 그리 크지 않은 회오리가 생성돼 회전력을 일으키며 놈에게 날아갔다.
놈은 내가 공격을 하자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하위 레벨이 먼저 죽자사자 덤벼드니 가소로운 표정 같기도 했지만, 그냥 맞을 수는 없었기에 곧바로 놈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사슬 중 하나에 다시 회전력을 불어넣어, 내가 쏘아낸 자그마한 회오리 중간으로 사슬을 날려 보내 회오리 공격을 무산 시켰다.

 공격이 무산되자 나는 조금은 지쳐 보이는 그녀에게 다그치듯 소리쳤다.

“뭐하고 있는 거야, 네가 쉬는 만큼 놈이 기를 회복한단 말야, 쉬는 것은 놈을 사살한 다음에 쉬어도 늦지 않아.”

내가 소리치며 다시 놈에게 이번에는 불 공격을 퍼붓자 그녀의 얼굴이 지친 중에도 살짝 일그러지며, 할 수 없다는 듯 놈을 향해 몸에 두르고 있던 가지를 뻗어내며 다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르

끝이 뾰족한 줄기가 십여개 다가오자 놈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곧바로 사슬을 날려 맞대응을 해갔다.

사슬 5개를 그녀 혼자 감당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다시 부적을 꺼내 놈에게 날리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들고 놈에게 더 가까이 접근했다.


부우웅 부우우우

쐐에에에엑 슈아아아악

곧바로 땅바닥에 박혀있던 주먹만한 돌덩이 십여 개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놈에게 날아가고 내가 접근해가자, 놈이 사슬  개로 급히 쏘아져가는 돌덩이를 일일이 쳐낸  검을 들고 다가서는 나를 향해 사슬 두 개를 할애해 나와 맞서갔다.

여자는 사슬을  개 맞아 싸우자 남자에게 밀리지 않고 있었지만,  개씩이나 맞서야 하는 나는 놈의 공격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여자가 7레벨이었고 보아하니 남자는 8레벨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만약 남자가 9나 10레벨이었다면 나와 여자가 아무리 동업을 했다 해도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은 당연했다.

다행인 것은 얼마 전 드릴처럼 돌아가던 사슬은 이제 없어지고 그냥 단순히 사슬 끝에 매달린 은빛 단검과 송곳으로, 긋거나 찌르기 공격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 내가 상대할  있는 사슬 수는 한 개가 고작이다.
얼마  두 개를 맞아 싸웠을 때는 방어가 목적이라 여자와 등을 맞대고 싸워서 가능했지만, 이렇게 전후좌우가 전부 노출된 상황에서는 역시 아직  개는 무리였다.


‘한개만 와도 될 걸.’

레벨을 따져보면 사실 여자에게 4개 나에게 1개를 할애하는게 맞았다.
비록 그녀가 세 개를 맞아 아주 소소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단시간에 남자를 처치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을 보면 놈은 아마도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내가 얄미워 먼저 처치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같이 쉬어도 레벨이 높은 놈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력을 회복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내가 그렇게 서두른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내 생각이 맞는  놈은 여자의 공격에 방어만 하고 있는 반면 나를 공격하는 사슬에는 공격력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나도 그동안 적지 않은 도력을 소모했기에 체력은 비록 65%였지만 술법의 위력은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검으로 간신히 방어만을 하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 앞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후려쳐오는 단검이 달린 사슬을 검으로 마주 휘둘러 다행히 단검은 튕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옆에서 다시 송곳이 달린 사슬이 시간차로 공격해 와, 튕겨져 나간 검으로는 막을 시간이 없어 급히 왼손으로 부적을 날려 방어벽을 발현했다.

곧버로 송곳이 날아오는 방향의 땅바닥에서 사람 몸통만한 돌덩이 하나가 순간적으로 튀어 올라와 찔러오는 송곳의 앞의 가로막았다.

파팟


헌데 이게 웬걸.

송곳은 마치 살아있는 뱀의 머리처럼, 튀어 올라온 돌덩이를 순간적으로 우회해 검을 들고 있던 내 우측 어깨에 정통으로 적중했다.


퍼퍽

쨍그랑.


“크으윽.”


[띠링 체력이 55%로 줄었습니다.]

알림음과 함께 엄청난 고통에 나도 모르게 검을 떨어뜨리고 주춤 물러나는 사이, 이번에는 송곳은 물론 쳐냈던 단검까지 합세해 다시 날아와 나를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단검도 놓치고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되어 잠시 멍한 사이에도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저항을 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온 몸이 조여오는 느낌에 입술을 앙 물고 정신을 차리니, 차렸 자세로 단검이 매달린 사슬 하나에 온 몸이 꽁꽁 묶여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을 의식하고 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놈은 그런 나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이내 묶은 나를 바닥에 눕히더니, 곧바로 나머지 사슬 하나를 여자가 싸우는 곳에 합류시켰다.


놈의 이런 돌발 행동에 나는 그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고통을 준 후 죽이려는 수작이겠지.’

아마도  생각이 확실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내가 얄미웠던 것일까?

자살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하지 말아야했다.
랭크게임에서의 자살은 엄청난 페널티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자살을 한다면 내 죽음으로 인한 경험치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때문에 게임 내에서 자살을 한다면 상황이 어떻든 간에 전체 레벨이 하나 하락하는 동시에 능력치와 특수능력의 레벨까지 1레벨 함께 하락한다.

혹시 레벨1에 경험치가 0/100인 기본 수치를 지니고 있는 플레이어가 자살을 한다면, 그것은 레벨1 하락을 저축해 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플레이어는 나중에 레벨이 올라가더라도 전체 레벨과 능력치 그리고 특수능력의 레벨까지 자동적으로 하락하게 되어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상대가 고통을 가하더라도 어떤 플에이어든지 자살은 생각도 하지 않는게 철칙중에 철칙이었다.


자살도  수 없으니 이제 고통 받으며 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자 한편으로는 처량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슬이 하나  합류하고 나니 여자도 얼마가지 못해 잡히거나 죽을  점점 더 위태위태해 보였다.
만약 여자가 기력이 있어 근처에 있는 식물을 모두 제어할 수 있다면 4개의 사슬을 맞아 어느 정도는 버틸  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조건도 되지 못했다.

과연 내 생각대로 사슬이 합류한 공격을 여자는 얼마간은 간신히 버텨내고는 있었지만, 어느새 방어만을 하던 몇 가닥의 나무줄기가 부러지고 갈라지며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러기를 얼마 후 마침내 여자의 도력이 거의 소진 됐는지 이제 몸에 붙어있는 가는 줄기나 넝쿨마저도 제대로 제어를 하지 못하며, 끝내는 송곳에 허벅지가 깊숙이 찔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으으으.”


여자가 신음을 흘리면서도 일어나려고하자 남자가 순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한순간.

촤라락 촤르르르


갑자기 나를 옭아 묶은 하나의 사슬을 제외한 네 개의 사슬이 모두 여자에게 쏘아져갔다.

‘여자는 이제 죽는가보군. 다음 차례는 나겠지? 내가 죽여 경험치를 획득해야 했는데 아깝게 됐구나.’

네 개의 사슬이 여자에게 날아가자 나는 여자가 죽는 줄로만 알았다.
여자가 죽는 꼴을 지켜볼 필요는 없어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는데, 문득 여자의 비명성이 아닌 답답한 신음성이 들려와 다시 쳐다보니 의외의 장면이 연출되어 있었다.

“으으윽,”


온몸이 네 개의 단검과 송곳에 난자되어 죽을 줄로만 알았던 여자의 사지가 어느새 사슬 4개에 각각 묶여 속박당한 채 만세자세가 되어 있었다.


순간 놈이 처음 나타났을  여자의 몸매를 음흉한 눈빛으로 훑어보던 모습과, 방금 전 여자를 바라보았던 표정을 생각하며 놈이 하려는 행동을 곧 짐작할 수 있었다.

두 팔이 머리위로 올려진 채 손과 발이 묶여버린 여자를 보며 남자가 예의 음침한 미소를 흘리며 이내 다가가기 시작했다.

여자도 놈의 의도를 눈치 채고 큰 두눈을 더욱 크게 뜬  다가오는 남자를 조금은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