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레벨업을 하라
그것은 어쩌면 두 번 게임에 참가하며 한번도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남들이 어렵다고 한탄을 하는 것만큼 게임이 그렇게 힘들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방금도 같은 3레벨을 큰 무리 없이 사살하지 않았는가
아무튼 지금은 그런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지만 항상 운이 따라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때문이다.
특히 랭크게임에 참가할 때에는 언제나 조심성 있게 움직이고 어떤 상황에 닥치더라도 한번 더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속으로 다짐 또 다짐했다.
달리면서 맵을 확인해 보니 자기장이나 안전지대가 의외로 첫 번째 게임 때보다는 눈에 띄게 느리게 줄어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번 맵이 숲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동 수단 아이템이 없어 그런 것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됐다.
그렇다면 굳이 나 혼자 빨리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안전지대는 솔직히 최대한 늦게 들어갈수록 더 안전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기장이 어느새 8키로까지 멀어져 있자 나는 달리던 것을 멈추고 일부러 최대한 늦게 걸어갔다.
물론 이제는 서서히 걸어가며 보물찾기를 해볼 심산이다.
한편으로는 무작정 이렇게 달려온게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급 플레이어들은 거의가 외곽에서 죽어나가는게 대부분이고 안전지대와 가까워질수록 상급 플레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게 랭크게임의 시스템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자기장이 더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리며 보물 상자나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운 좋게 하급 레벨자라도 만나서 사살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고.
사신수를 소환해 찾아볼까 했지만 역시 아직 힘이 약한 녀석들이 누군가에게 당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괜스레 체력만 줄어들 것 같아 시간도 넉넉했기에 그냥 혼자 찾아보기로 했다.
여기저기 한동안 숲속을 헤맨 끝에 마침내 우거진 수풀 안에서 그리 크지 않은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을 열어보니 이번에는 공격구가 아닌 방어용 아이템이 나왔다.
[띠링! 1회 방어용 오토바이 헬멧을 획득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템중 하나였다.
어떤 무기를 머리에 맞든 한번은 보호해주는 방어구다.
어떤 공격이든 머리에 한번이라도 적중하게 된다면 치명상으로 체력이 무척 많이 떨어질 것이기에, 아직 그리 강하지 않은 나에게는 무척 쓸모가 있는 아이템이었다.
핼멧을 쓰고 문득 생각해 보니 공격구가 지금은 채찍밖에 없어 공격구 아이템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원거리 공격구가.
다시 눈에 불을 켜고 보물상자 찾아다니기를 10여분이 지나자 이번에는 조금 길쭉한 상자 하나가 큰 나무 아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급히 가서 열어보니 이번에는 총 한자루가 들어 있었다.
헌데 생김새가 일반 소총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아니 소총에 다른 부착물이 하나 더 첨가되어 있는 아이템이다.
곧바로 들어보니 울림이 전해져 왔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아이템이었다.
[띠링! 총알 150발과 유탄 발사기 탄약 3발이 장전된 돌격 소총을 획득했습니다.]
총알보다 레이저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나마 바라던 대로 원거리 공격구를 획득하고 나자 확실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아직은 레벨이 높지 않아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리 멀리 나가지 않은 도술 공격으로는 아무래도 적과 싸우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돌격소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시각과 청각을 최대한 곤두세워 경계를 하면서 다시 근처를 이잡듯이 찾아다니기를 얼마나 됐을까.
바싹 곤두선 내 귀에 또다시 싸우는 소리가 문득 들려왔다.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보물찾기를 계속 할 수는 없어 몸을 최대한 낮추고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가보니 역시 두 놈이 한창 죽기 살기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드디어 내 전문이군.’
두 놈이 싸우다가 거의 체력이 바닥났을 때 죽이는 것이 어느덧 내가 바라는 최고 순간이 되어 버렸다.
바로가나 돌아서가나 어찌됐든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두 놈의 싸우는 능력을 보니 나보다는 확실히 우위라고 생각하자 내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보통 다른 하급 플레이어들은 자신보다 상위 레벨자를 보면 피하거나 실망을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진다가 언제 레벨업을 할 수 있겠는가.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부딪치고 보자는게 내 신조였다.
또한 강한 놈과 싸워 설사 죽는다고 해도 결코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강한 놈과 싸우고 나면 그만큼 실전 경험이 붙어 다음에 나와 같은 레벨과 싸우게 된다면 그 경험이 무척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지금 상황은 일대일로 붙는게 아니라 다른 상위 레벨자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이었고, 나는 최고의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두 놈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최적의 타이밍을 잘못 판단하면 도리어 내가 죽임을 당할수도 있겠지만, 한번에 높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 모험은 감수해야 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문득 최적기를 잘 선택하는 것이 또 다른 내 능력중 하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다른 하급 플레이어였다면 이 상황을 피하려고 했겠지만, 나는 두 놈에게 들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접근해 나무 뒤에 몸을 꽁꽁 숨기며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만약 두 놈이 싸우는 중이 아니었다면 내가 30여 미터까지 접근했을시 들킬 확률이 높았겠지만, 지금은 두 놈이 다른데 신경쓸 여유가 없었기에 나는 무사히 놈들과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돌격소총을 꺼내들고 두 놈 모두 체력이 바닥나기만을 숨죽이며 기다리는 시간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만약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너무 일찍 나서거나 또는 늦게 나선다면, 두 놈중 한 놈이 먼저 죽거나 아니면 아직 체력이 바닥나지 않아 내가 죽는 경우가 있을수도 있다.
두 놈은 확실히 레벨이 높은 듯 본신의 실력으로만 싸우고 있었다.
움직이는 속도는 역시 상위 레벨자들답게 부츠를 신고 있는 내 속도와 엇비슷했다.
물론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를 하는 순간적인 육체 민첩성은 나보다 훨씬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나보다 적어도 두 세 단계는 상위 레벨자로군.’
한눈에 보아도 무척 강해보이는 두 놈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첫게임에서 2레벨로 6레벨 두 놈을 수류탄으로 잡은 경험이 있어서 그때의 기억을 잘 살린다면 이번에도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완전히 모험이다.
두 놈에서 도망쳐 다시 하위 레벨자를 찾아다니며 비록 낮은 경험치지만 안전하게 레벨업을 하느냐, 아니면 죽기를 각오하고 두 상위 레벨자에게서 한번에 높은 경험치를 얻느냐 중 나는 조금은 위험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런 결정은 내가 첫 게임에서 정말 운좋게 성공해 자신감이 붙어서였지, 만약 첫 게임때 실패하고 무참히 죽었다면 다시는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나는 총탄과 유탄을 언제든지 발사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속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문득 우측 허공을 보니 생존자수는 아직까지 74명이나 남아 있었다.
맵이 워낙 넓다보니 시간이 지났는데도 서로 만나지를 못해 이런 수치가 나온 것이었다.
두 놈 모두 허공을 자유자제로 점프하며 싸우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 문득 머릿속에서 알림음이 전해져왔다.
[띠링! 10분후 레드존이 형성됩니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맵을 확인하고 레드존 지역을 벗어나기 바랍니다.]
레드존이라는 소리에 나는 재빨리 맵을 외치고 레드존이 형성될 지역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하필이면.’
재수없게도 랜덤으로 정해진 레드존은 내가 있는 지역이었다.
반경 1키로로 둥글게 형성된 붉은 색의 레드존은 내가 현재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고, 나는 그 지역의 거의 한가운데에 자리해 있었다.
지금 빠져나간다면 간신히 탈출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간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두 놈은 지금 서로 싸우느라 레드존을 확인할 새도 없을 것이다.
두 놈 또한 알림음이 전해져 왔겠지만 확인할 새가 없어 아마도 이 지역이 아니기만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을 터다.
레드존을 빠져나가 두 놈의 경험치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다시 모험을 하느냐.
그 결정은 오래가지 않아 나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몸을 낮추며 다시 움직여 근처에서 제일 커다란 나무 아래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제 또다시 운에 맡겨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숨은 나무 굵기는 얼핏봐도 최소 내 몸의 다섯배 정도 두께는 되어 보여 그나마 조금 안심 할 수 있었다.
두 놈이 싸우는 지역은 숲이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공터가 형성된 지역이라 레드존이 발동하면 두 놈 모두 분명 위험에 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두 놈중 한 놈이 우선은 맵이라도 확인하자고 제의를 한 후 이곳을 빠져나간 뒤 다시 싸우자고 말한다면 나머지 놈도 분명 그 말에 따르겠지만, 두 놈 모두 자존심이 강했는지 여전히 싸우기만 할뿐 맵을 확인하는 놈은 없었다.
교육대로라면 레드존이 형성된 지역에 있다고 해도 꼭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레드존이란 우주선이 공중을 날며 그 지역에만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지금 나처럼 나무 뒤나 동굴 또는 커다란 바위 아래에 숨어있으면 피해를 입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것도 운이 따라야하는 것이었지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허공 높이 나뭇잎들 사이로 중형 우주선 3대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시작이군.’
이제 폭격이 가해질 시간이 됐는데도 두 놈은 아직까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미련하게 싸움질만 계속하고 있었다.
폭격으로 인해 놈들이 죽지는 말고 체력만 줄어들기를 고대하며 나무에 더욱 바싹 달라붙어 만반의 준비를 있는 그 순간.
슈우우우.. 슈우우우
꽈꽈꽈꽈꽝.. 쿠아아아앙.. 쿠르르르르릉
사방에서 정말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드디어 무지막지한 폭격세례가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두 놈 모두 깜짝 놀라며 각자 흩어지려 했지만 순식간에 1키로 반경에 수백발의 폭탄이 한꺼번에 떨어지니, 이미 늦은 감이 있어 두 놈은 동시에 폭탄에 맞아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다행히 두 놈은 레벨이 높아 한순간에 죽지는 않겠지만 폭탄에 맞은 충격으로 인해 바로 일어나지를 못하고 몸만 꿈틀거릴 뿐이었다.
폭탄세례는 한번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5분 동안 연쇄적으로 가해지기 때문에 두 놈이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또다시 떨어져 내려, 쓰러진 상태에서도 완전히 노출이 되어 계속해서 폭격에 신음만 흘리고 있어야 했다.
물론 내 주위에도 계속해서 폭탄이 떨어졌지만 나는 두터운 나무 뒤에 숨어 있어 그나마 아직까지는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헌데 하늘을 주시하며 폭탄이 떨어져 내릴 위치를 가늠하고 있는 그때 내 근처로 떨어지는 마치 드럼통만한 폭탄 한발이 눈에 띄었다.
나는 폭탄이 떨어질 위치를 대충 가늠하고 재빨리 나무를 돌아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폭탄이 떨어져 내리는 속도는 내가 피하려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 미처 나무를 돌기도 전에 땅바닥에 내리 꽂히며 엄청난 폭음과 함께 터지고 말았다.
꽈꽈꽝
“크윽!”
한순간 옆구리가 시큰거리며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지만 다행이 이미 나무 뒤로 이동하고 있던 터라 직격으로 맞지는 않았다.
[띠링! 체력이 95%로 줄었습니다.]
정통으로 맞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20%나 체력이 줄어들었다.
비록 두 놈의 레벨이 높아 쉽게 체력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저렇게 완전히 노출되어 계속해서 폭탄을 맞게 된다면 머지않아 두 놈은 죽을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