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두번째 랭크게임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른 플레이어를 사살하고 득템한 아이템을 빼앗는 것이 경험치와 아이템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일이라, 굳이 보물 상자를 일부러 찾아다니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템은 솔직히 약자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레벨이 높은 강자들일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직업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아이템에는 거의 무관심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브론즈 티어에서 골드 티어로 승급을 하게 되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 플레이어는 브론즈 티어에서는 아이템이 필요 없었지만, 골드 티어에서는 다시 최약자로서 참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템의 힘을 빌려야 했다.
한마디로 보물상자의 아이템도 티어가 올라갈수록 위력이 강해진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티어에서 아무리 강력한 아이템을 얻는다고 해도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상위 플레이어를 사살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당연히 상위 티어로 올라갈수록 그건 더 어려운 일이었고.
내가 첫 게임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플레이어를 사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조금 얍삽하게 머리를 굴리는 능력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동안 달려가면서도 나는 연신 부츠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 평소의 달리는 속도 두 배 속력으로 계속 달리고 있는데도 걷는 것과 같은 체력이 소모된다면, 하루 종일 달려도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신기하기까지 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문득 한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 소리가 들려와 급히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혹시라도 인기척의 임자가 나와 레벨차이가 있는 상위자라면, 아무리 부츠를 신고 있다고 해도 나와 빠르기에서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나를 쫓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벨에 따라 각자 지니고 있는 마나나 내공 도력 등이 차이가 있어 그 기로 인해 빠르기를 상쇄할 수 있다.
내가 부츠의 원래 주인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이 내 기가 놈보다 강해 도력을 다리에 주입해 속도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기 때문임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나무 사이를 오가며 인기척 소리를 따라가자 20여 미터 앞에 한 놈이 몸을 바싹 움크린 채 조금은 겁먹은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안전지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보물 상자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헌데 놈은 시작의 섬에서 보았던 내가 초짜라고 단정 지은 밥이라고 생각했던 놈들 중 한 명이었다.
‘저절로 굴러들어온 밥은 먹어줘야겠지.’
경험치를 쉽게 올릴 수 있는 저런 밥을 그냥 보내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곧바로 놈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 후 도력으로 놈에게 원거리 공격을 가한 후 재빨리 검을 생성시켜 달려가 가슴을 몇 번 찌르니 순식간에 놈의 몸이 반짝하며 사라졌다.
상태창을 열어 경험치를 확인해보니 34/300으로 올라가 있어 처음 생각했던 대로 역시 1레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험치 10점이면 어디인가.
더군다나 내가 이처럼 쉽게 놈을 처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내 원래 속도에 부츠의 능력까지 더해진 것이라 할 수 있어 부츠를 한번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부츠를 다음 게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이번 게임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여러 놈을 죽이다보면 이런 부츠를 또다시 획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아가는 중에 나는 다시 1레벨 두 놈과 2레벨 한 놈을 더 사살하니 경험치는 어느새 74/300이 되어 있었다.
두 시간을 더 달려 이제 안전지대와의 거리는 160키로까지 접근해 있었고 좁혀져 오는 자기장과는 어느새 4키로까지 멀어져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장과 안전지대의 좁혀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겠지만 아직까지는 게임 초반이라 좁혀지는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아 다행이었다.
헌데 약 20여 분을 더 나아가고 있는데 한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나무숲 사이로 아주 조심스럽게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접근해갔다.
‘혹시라도 서로 양패구상하려는 상급 레벨의 플레이어들이 있다면 좋을 텐데.’
첫 게임에서 그런 식으로 레벨업을 했기 때문에 또다시 그런 운이 따라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조심스레 다가가 나무 사이로 보니 역시 두 플레이가 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여자는..?’
헌데 다투는 두 플레이어는 괴상하게 생긴 한 놈과 여자였는데, 그 여자는 바로 시작의 섬에서 나를 깔보듯 비웃음을 머금고 쳐다보던 같은 고향별인 지구출신 서양여자였다.
두 플레이어가 싸우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니 여자가 조금은 우위에 있어 보였다.
언뜻 보기에 그녀는 나와 같은 3레벨 정도 수준으로 시작의 섬에서 나를 보며 도도한 표정으로 비웃던 모습이 문득 생각났다.
약간은 화가 나기도 해서 그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혹시라도 다음에 날 만난다면 다시는 그런 표정을 짓지 못하게 해주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두 플레이어의 승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사내는 1레벨의 수준은 넘어 2레벨은 되어 보였다.
상위자가 하위 레벨자에게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은 아까워 모든 상위 플레이어들은 될 수 있으면 득템한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 본신의 능력으로만 상대를 사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하위 레벨자가 엄청난 아이템을 사용해 위험해진다면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만 그건 아주 가끔 있는 일이었고, 여자도 역시 아이템은 사용하지 않고 본신의 능력만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괴상한 외계 플레이어가 죽고 나자 그녀가 죽은 놈의 보물 상자를 열어보더니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닫은 후 안전지대로 향하려 했다.
지금 내 체력이 비록 75%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설사 부츠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있었는데 두 배의 속력을 내주는 부츠까지 획득했으니 그 자신감은 더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안전지대로 향하려하자 나무 뒤에 있던 나는 제법 여유를 부리며 나무에서 나와 그녀에게 다가갔다.
“응..?”
그녀가 내 인기척을 느끼고 재빨리 뒤돌아보더니 나인 것을 확인하고 의외인 듯 다시 그 예의 도도한 표정과 함께, 입가에는 역시 비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의외인데? 나를 발견하고 먼저 싸움을 걸어오다니.”
그녀의 표정과 말투로 보아 역시 그녀가 나를 무척이나 얕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같은 지구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자존심을 세우느라 그런 것인지도.
“같은 지구 출신이라 난 반가운데 넌 아닌 모양이지?”
“그렇기 때문에 네가 더 싫은 거야. 같은 지구에 살다보면 혹시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나에 대해서 네가 조금이라도 안다는게 싫어.”
“그 넓은 지구에서 널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라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 혹시 아주 기막힌 우연이라면 모를까.”
“바로 그 우연이라는것 때문에 싫은 거야. 아주 오래전에 같은 맵에서 지구인을 만난 적이 있었지. 헌데 정말 우연히도 그 놈과 내가 길거리에서 만난거야. 물론 그때 놈은 내손에 죽은 놈이었지. 아무튼 내가 죽인 놈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왠지 찜찜해서 말야.”
“별 시덥지 않은 이유로군.”
“그래, 아무튼 넌 외모를 보니 아시아 지역인거 같은데 나와는 아무리 우연이라도 그닥 만날 확률은 없는 것 같군. 하지만 같은 지구인이 나와 같은 맵에 참가했다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랜덤으로 정해지는 것을 나더러 어찌하란 말인가.
그녀의 도도한 표정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니 철저히 짓밟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사실 랭크게임에서 철저히 유린당했다고 해도 밖의 육체에는 아무 해가 되지 않았다.
랭크게임에 참가하는 육체는 계속 새로 생성되기 때문에 매번 참가할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육체가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은 지울 수 없겠지만 말이다.
또한 저렇게 나를 깔보고 무시하는 표정은 정말 한번쯤 크게 혼을 내줘야 다음에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저런 표정이나 말투가 고쳐질 것 같았다.
한마디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은 것뿐이었다.
서로 잠깐의 대화를 마치자 그녀와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싸울 태세를 취했다.
도사가 내 직업이듯 그녀는 검사 쪽은 아니었고 아마도 그런 부류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열 손가락 사이에 아주 얇은 단검을 각 손가락에 3자루씩 모두 6개를 끼더니 나를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은 마치 독 오른 암코양이가 기다란 발톱을 잔뜩 치켜세운 꼴과 같아 무척 앙칼지게 보였다.
헌데 자세를 잡으며 그녀는 내공을 흘려보낸 듯 6자루 단검에 모두 푸른 아지랑이가 입혀지며 흐릿한 검강이 희미하게나마 빛을 내고 있었다.
‘제법인데.’
장검 한 자루보다 비록 단검이었지만 저렇게 6개의 검에 모두 기를 골고루 불어 넣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속으로 그녀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주었다.
그녀가 검으로 공격을 하자 나는 도술로 상대를 하려다가 검술에 대한 실전 경험을 수련한다는 의미에서 곧바로 품속에서 노란 부적을 꺼내 마음속으로 검이라 외쳤다.
이제 3레벨이 되니 검 정도는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어 편리하기는 했다.
물론 이 검은 아이템이 아니라 내 직업에 의한 능력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 랭크게임 밖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다.
곧바로 부적이 불타오르며 그곳에서 검이 생성되어 오른손에 쥐고 도력을 주입하니, 그녀의 검강과 비슷한 푸른색 오러가 검신에 아지랑이처럼 맺혔다.
만약 그녀의 검술이 뛰어나 검술로 상대가 안될거 같으면 그때 도술을 사용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곧바로 그녀와 내가 서로를 마주쳐 뛰어가며 단검과 검이 한차례 맞부딪쳤다.
채챙
비록 단검이었지만 확실히 그녀는 나와 같은 3레벨이라 결코 기에서만은 나에게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부츠라는 더없이 유용한 아이템이 있었다.
속도에서 나를 따라잡지 못한 그녀는 잠시 나에게 밀리는 듯 했지만, 이내 좌우로 빠르게 오가며 공격하는 내 검을 감각적으로 팔의 속도를 높여 적절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내 다리가 빠른 만큼 그녀의 팔을 움직이는 속도 또한 빨라 한순간에 쉽사리 제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검술에 대한 재능은 있는 모양이군.’
그녀의 본능적인 순발력은 엄청 빨라 내가 재빨리 앞뒤로 오가며 퍼붓는 공격에도 한동안 그녀를 어쩌지 못하자 할 수 없이 도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껏 내가 정식으로 겨룬 것은 사실상 그녀와의 전투가 처음인 셈이다.
물론 얼마전 2레벨과 두 번 겨루었지만 그들은 나보다 한 레벨 하수라 정상적인 결투는 아니었다.
그리고 첫 게임에서는 나보다 상위레벨에게 정상적인 결투가 아닌 듣기 좋은 말로 기습을 한 것이라 그 또한 정상적인 싸움은 아니었다.
이렇게 같은 레벨의 플레이어와 정상적으로 붙자 내 투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그녀는 나처럼 단시간에 레벨이 오른게 아닌 꾸준히 게임에 참가해서 경험을 쌓으며 3레벨에 오른 듯, 무척 빠른 내 공격을 제법 여유롭게 막아내며 때로는 반격을 하고 있었다.
내 주특기는 검술이 아닌 도술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검으로 상대하고 나자, 검으로는 도저히 그녀를 어쩌지 못할 것아 내 본연의 능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도 자기장은 계속 다가오는데 다른 일도 마치려면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첫 게임에서 1레벨로 2-3 레벨을 처치했고 2레벨로 비록 수류탄 기습이었지만 6레벨까지 처치한 나는 자만심같기도 했지만 솔직히 같은 3레벨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그리고 같은 3레벨인 그녀와 싸우면서도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