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강한 자들
“크큭, 그냥 곱게 죽어준다면 고통은 없이 죽여주마.”
“웃기지 마라, 내가 죽더라도 네놈 체력은 최대한 떨어뜨려 놓고 죽겠다.”
“내가 레벨업이 되는게 배 아픈 모양이군.”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네놈이 체력이 남아 다른 누군가를 또 사살해 레벨이 올라간다면, 다음에 네놈을 혹시라도 다시 만났을때 나는 지금처럼 버티지도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내가 이대로 그냥 곱게 죽을 것 같으냐.”
“그건 네년 말이 맞는 것 같군. 그럼 네년 소원대로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줘야겠군. 그래야 다음에 만나더라도 감히 나에게 대들지 못하고 벌벌 떨 테니 말야.”
“흥! 어림없는 소리 말아라 나도 쉽게 당하지는 않는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사내놈은 정말 전보다 더 거세게 여자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처음에 비등했던 싸움은 이제 시간이 흘러가 조금이라도 능력치가 우위에 있는 사내가 점점 확실한 우위를 점해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마침내 여자의 가슴에 놈의 주먹이 엄청난 힘으로 틀어박히자 여자의 몸이 순간적으로 저만치 나가떨어지며 땅바닥에 털썩 나동그라졌다.
“으으으.”
땅바닥에 쓰러진 여자가 곧바로 몸을 일으켰지만 충격이 워낙 큰지 한순간 몸을 크게 휘청거렸다.
그럴 여자를 가만히 놔둘 사내가 아닌지라 곧바로 그의 몸이 일어난 여자의 몸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가며 한순간에 뾰족한 손톱이 1미터가량 길게 솟아나왔다.
“이제 끝이다!”
사내가 소리치며 달려오자 인상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바라보던 여자가 휘청이던 몸을 억지로 바로 세운 채, 마치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두 눈빛을 반짝 빛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곧바로 달려오는 사내를 향해 여자 역시 힘겨워하면서도 허공을 박차며 사내를 향해 마주 달려 나가며,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의 길이를 1미터가량 쭉 늘렸다.
‘양패구상하려 한다.’
순간 나는 여자가 무엇을 결심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마주 달려오던 사내는 전투에만 신경쓰고 여자를 죽이려는 생각밖에 없어 여자의 그런 결심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여자의 결심을 알아챌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제3자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싸움을 지켜봤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과 행동에서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양패구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여자는 죽고 남자는 체력 저하만을 가져올 확률이 무척 높았다.
하지만 여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만족하려 이런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가장 최적의 타이밍을 찾아야 한다.’
두 년놈이 부딪치려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양손의 수류탄과 가스총을 더욱 꽉 움켜쥐며, 기회가 되면 바로 뛰쳐나가려고 다리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었다.
슈아앙.
채챙.
“커윽!”
“어흑.”
한순간 두 무기가 한차례 부딪친 후 곧바로 남자의 긴 손톱이 여자의 배에 박히며 여자의 검 또한 남자의 오른쪽 가슴에 깊이 박혀, 두 연놈들은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서로 껴안은 상태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때 사내는 고통을 참으며 여자를 밀쳐내 가슴에 박힌 검을 빼내려했다.
헌데 그 순간 여자가 갑자기 검을 잡은 손이 아니 다른 한손으로 남자의 등을 꽉 끌어안은 채 팔에 힘을 주고 놔주지 않으려 했다.
“이, 이 미친년이.”
죽어가는 여자의 힘이라 보기에는 무척 샜었나보다.
“네놈 체력을 조금이라도 더 떨어뜨려주마.”
여자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손에 잡고 있던 검자루를 빙글 돌리는 것이었다.
“아아악. 이, 이 돌아이 같은 년.”
사내가 소리치면서도 여자의 힘에 의해 빠져나오지 못하자 나는 재빨리 들고 있던 수류탄을 두 연놈이 껴안고 있는 중간에 힘을 잘 조절해서 굴려 넣었다.
“으으으. 이, 이건 또 뭐야..? 어떤 개잡놈이.”
사내놈이 발아래로 갑자기 굴러온 수류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순간.
쿠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허연 연기가 하늘로 두둥실 솟아올랐다.
과연 고성능이라 할 만한 폭발력이었다.
수류탄이 터지자 나는 재빨리 건물 모퉁이에서 나와 두 연놈이 얼싸안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자는 그 순간 온몸이 벌써 유리조각이 되어 반짝하며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헌데 사내놈은 수류탄을 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이 어느새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수류탄이 터져 온몸이 산산조각 난 몸의 휴유증 때문인지 얼굴에 고통이 빛이 한껏 드러나 있었다.
퓨슝.
망설였다가는 내가 골로 갈수가 있어 나는 주저 없이 독가스를 놈의 얼굴에 발사했다.
“카으으흣. 네, 네놈은 뭐..냐?”
놈은 얼굴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중에도 말을 하고 있었다.
헌데 놈은 레벨이 높고 그만큼 체력수치 또한 높은지 흐물 거리던 얼굴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고대 검을 꺼내 도력을 주입했다.
순간 2레벨이 된 도력을 주입받은 고대 검은 흐릿했던 아지랑이에서 이제는 약간 푸른빛을 띤 검신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폭
“크아악.”
지체 없이 내 검이 놈의 왼쪽 심장에 꽂히자 놈이 엄청난 괴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놈은 수류탄을 맞고도 검에 맞고도 죽지를 않고 있었다.
‘끈질긴 놈이군.’
푹 푹 푹 푹 푹.
쉬이익.
검을 빼내 다섯 번을 연달아 다시 찌르고 마지막에 목젖을 그으니 놈이 그제서야 자리에 푹 고꾸라졌다.
그러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어 등짝에 다시한번 검을 더 찔러 넣으니 그제서야 몸체가 산산조각 나며 빛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또 성공했군. 그렇다면?’
나는 떨어진 상자를 미처 확인할 새도 없이 재빨리 건물 모퉁이로 다시 돌아가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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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 최준수
종족 : 인간 (인간)
직업 : 도사
티어 : 브론즈
레벨 : 3
경험 : 20/300
능력치 P: 도력 : Lv 3
특수능력 P : 도술 : Lv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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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은 6레벨로 두 연놈을 합쳐 경험치 120을 획득해 단숨에 3레벨이 되었다.
게다가 20점까지 여유가 주어졌다.
곧바로 우측 창을 보니 생존자수는 19명이 남아 있었다.
여유경험치가 있어 지금 죽어 19점이 삭감된다 해도 1점이 남아 레벨 3을 유지할 수 있다.
정말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내 체력은 풀인 100%다.
체력은 포션이나 체력에 대한 아이템을 획득했을 때나 100%를 넘어설 수 있었지, 레벨업을 하면 그냥 100%가 한계치로 더 주어지지는 않았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3레벨에 체력 100%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레벨로 첫 랭크게임에서 3레벨까지 올라왔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혹시 건물에 보물 상자가 있나 해서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건물은 1층이라 굳이 사신수를 부를 필요가 없어 그냥 내가 움직이기로 했다.
또한 지금은 공격력과 방어력이 약한 사신수를 불러 죽기라도 하면 체력만 낭비하는 꼴이라 사신수가 강해지기 전까지는 될 수 있으면 부르지 않을 작정이다.
건물 안을 돌아보았지만 방금 죽은 두 연놈 중 누군가가 벌써 획득했는지 보물 상자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고대 검이 아직 남아 있었으나 역시 아직은 원거리 공격구가 필요했다.
내 직업인 도술이 있었지만 역시 3레벨로는 별 힘이 없어 아직은 도술로 누구와 싸울 정도는 되지 못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당연히 체력이 남아있으니 자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기로 했다.
이제 오른손에 쥐고 있는 고대 검은 한층 짙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보물 상자를 찾는데 주력해야한다.
아무 아이템도 없이 행운을 바랄 수는 없었다.
행운도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건물 밖을 나와 주위를 살피니 여지저기서 희미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경 300미터 안에 19명이 모여 있으니 조금만 움직여도 누군가를 만날 것이었다.
그 사이 생존자수는 또다시 1명이 죽어 18명이 되어 있었다.
헌데 내가 다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보물 상자를 찾아보려 걸음을 떼려는데, 저 멀리 누군가가 나에게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누군가를 죽이고 상대를 찾고 있다가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좋아, 3레벨이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시험해보자. 이제 정말 죽는다 해도 상관없다.’
솔직히 폭이 얼마 되니 않는 안전지대 내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한계도 있고 해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무척 자신감이 넘쳐있다는 뜻으로 결코 레벨이 낮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헌데.
‘인간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상대방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는게 분명 인간이었다.
그것도 금발의 짧은 커트를 하고 있는 대단한 미인의 서양여자.
헌데 복장이 희한했다.
‘전투복인가?’
검붉은 색의 마치 딱딱한 스티로폴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은 상의와 바지.
이상한 복장은 몸에 꽉 낀듯해 상당히 색시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검을 늘어뜨린 채 서있는 나에게 다가온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다.
“강하지 않은 자로군. 어떻게 그 능력으로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나에게 묻는 것인지 아니면 혼자 중얼거린 것인지 몰라 대답을 하지 않았다.
헌데 저 여자는 시작의 섬에서 내가 보지 못한 여자였다.
하긴 구석에 숨어 있었다면 내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
알 수 없는 점은 저 여자는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오래전 교관이 했던 말 중에 능력의 차이가 크게 난다면 상대의 기로 그 능력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여자와 나와의 능력 갭이 크다는 소리인가.
여자의 무게감으로 볼 때 아마도 내 생각이 맞을 듯싶다.
그렇다면 내 첫 랭크게임은 이것으로 종료된다고 봐도 무방할 터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결코 내가 저 여자를 이길 수 없다는.
하지만 당연히 최선은 다해볼 것이다.
헌데 그때 여자가 의외의 말을 했다.
“난 10레벨이다 넌 2-3 레벨쯤 되나?”
역시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10레벨이라면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어찌해볼 수 없는 까마득한 상위 레벨이다.
내가 무슨 수를 쓰든 그녀를 이길 수는 없었다.
한순간 허탈했지만 결코 표정에 내색하지는 않았다.
저 여자는 자신감이 있고 나 따위 능력으로 어떻게 안전지대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저러는 것일거다.
“3레벨이다.”
내가 무심하게 대답하자 그녀가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피식 웃었다.
“정말 대단하군. 그 하찮은 능력으로 이곳까지 들어와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니.”
내가 1레벨로 들어와 여기서 3레벨이 됐다는 것을 안다면 아마 까무라 칠 기세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밝힐 이유는 없겠지.
“나는 이제 조금만 더 경험치를 채우면 실버티어로 승급된다. 네가 조금이나마 나를 도와주어야겠다.”
“나보고 죽어달란 소리를 그렇게 돌려 말할 필요는 없어.”
“훗, 그래. 그럼 시작해 볼까. 그리고 획득한 모든 아이템은 한번 써보도록 해라. 써보지도 못한 채 죽었다고 억울해 하지 말고. 물론 원거리 공격구를 써도 좋아.”
“아이템은 이 검 하나뿐이다”
“그래? 그렇군. 하지만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설사 네가 원거리 공격구가 있다 해도 날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웬만한 강자들에게 정상적으로는 원거리 공격구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오러의 검으로 총알이나 레이저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아까 다른 놈들에게 했던 비정상적인 기습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내가 볼 때 여자는 가진 자의 여유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것도 입가에 비릿한 비웃음을 머금은 채.
더 이상 할 얘기도 없고 할 이유도 없어 내가 도력을 검에 주입했지만 여자는 그런 나를 뻔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정말 재수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