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생존을 위하여
비록 레벨이 낮아 도술이 약해 아직은 상대를 공격할 수준은 되지 못했지만 수색이나 정찰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곧바로 품속에서 노란색 부적 네 장을 꺼내 주문을 외우자 각 부적에 붉은색 글씨가 순식간에 새겨졌다.
주작, 청룡, 백호, 현무.
나를 수호하는 수호신들인 사신수다.
부적을 허공에 던지자 허공 네 군데에 빛이 반짝이며 그 빛났던 곳에서 순식간에 네 마리의 수호신들이 나타났다.
주작은 본래 불사조와도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은 내 레벨이 너무 낮아 마치 수닭과 같은 조잡한 모습으로, 온몸은 아직 불길을 내 뿜을 수 없어 깃털만 붉은 색으로 마치 작은 모닥불 정도의 열기만을 내뿜고 있었다.
백호 또한 바람을 다룰 줄 알며 양쪽에 뾰족한 이빨이 나온 거대한 흰 호랑이인데 지금은 흰색의 도둑고양이와도 같은 모습이었고, 청룡은 번개의 능력을 사용하는 거대한 용인데 지금은 한낱 구렁이 형상을 한 채 온몸에서 마치 전기가 합선되는 듯한 틱틱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현무는 대지의 능력수로서 원래 거대 거북이의 모습에 등껍질에는 여러 종류의 뱀이 함께 매달려 있는 형상인데, 지금은 일반 거북이에 커다란 지렁이가 붙어 있는 조금은 보기 흉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후우, 빨리 레벨업을 해야겠군.’
사신수의 처참한 몰골을 보니 레벨업이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됐다.
사신수는 나와 마음이 통하고 있었기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곧바로 건물 안으로 각자 흩어져 들어갔다.
사신수가 들어가자 나 또한 저택 안으로 들어가 사방을 살펴보니 이곳 역시 폐가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1층에만도 방이 10여개는 되어 보여 사신수를 소환해 내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주작과 청룡은 어느새 2-3층으로 올라가 있었고 1층은 청룡과 현무가 수색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의 약해빠진 사신수가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아 소멸해 버린다면 내 체력이 그만큼 줄어들기에 아직 공격용으로는 소환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곧바로 2층을 수색하던 청룡과 3층에 있던 주작에게서 무엇을 발견했다는 신호가 전해져 왔다.
급히 2층 6번째 방으로 가니 청룡이 보물 상자 허공을 빙빙 돌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다, 그만 돌아가거라.”
내 말에 청룡의 온 몸에서는 밝은 빛이 반짝이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청룡이 사라지자 보물 상자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니 이번에는 1.5미터 되는 허름하고 볼품없는 장검 한 자루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장검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이내 약간의 실망감에 젖어들었다.
이런 장검이라면 석궁에도 미치지 못하는 살상력을 지니고 있을게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살상 거리도 겨우 검의 길이인 1,5미터 정도가 고작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집어던질 수 있는 단검 한 자루가 더 유용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획득한 아이템이니 챙기긴 챙겨야 했다.
장검을 들자 역시 머릿속에서 울림이 전해져왔다.
[띠링! 고대 장검을 획득했습니다.]
고대 장검이라는 말에 나는 깜짝 놀라야 했다.
고대 장검이라면 결코 평범한 장검이 아니다.
일반 장검은 지금 내 레벨로는 그냥 평범한 검으로서만 유용했지만, 고대 장검에 내공이나 마나 또는 도력을 주입한다면 바위라도 가를 수 있는 막강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물론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은 일반 장검이나 고대 장검이나 관계없이 모두 에너지를 주입해 강력한 공격구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같이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은 고대장검을 이용해야 그나마 오러나 검강을 검신에 조금이라도 입힐 수 있었다.
그만큼 고대 장검은 일반장검에 비해 마나나 도력을 흡수하는 기운이 훨씬 우수했다.
‘도력이 너무 약한 것이 아쉽구나.’
아무리 고대 장검이라지만 1레벨로 검신에 오러를 입힌다는 것은 무리라 곧바로 석궁대를 집어던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자위하며, 장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바로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4번째 방으로 들어가니 주작이 보물 상자 위를 빙빙 돌고 있어 역시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고 상자를 열어보니 주먹만한 푸른 구슬이 밝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뭐지?’
곧바로 구슬을 집어 들자 맑은 울림이 머릿속에서 또다시 울려 퍼지며 나도 모르게 표정이 환해졌다.
[띠링! 고대 장검용 30% 도력 구슬을 획득했습니다.]
고대 장검을 획득하니 근처에서 도력 구슬을 획득한다라.
물론 마나를 익힌 플레이어가 획득했다면 마나구슬, 내공을 익힌 검사가 획득했다면 내공구슬을 획득했다고 울렸을 것이다.
교육원에서 알려준 대로 모든 아이템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들끼리 근처에 모여 있는 것이 확실해 졌다.
푸른 구슬은 내가 잡자마자 마치 뜨거운 열에 아이스크림이 녹듯 내 오른손에 순식간에 스며들어왔다.
이제 장검을 손에 들면 지금 내 능력의 30%가 더해진 도력이 장검에 주입된다.
물론 이 도력은 고대장검용 도력구슬에서 전해진 것이었기에 고대 장검에만 효력을 발휘한다.
마치 총에 탄창을 끼워 넣거나 활에 화살을 재워 쏘듯 말이다.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오른 손에 도력을 주입하자 푸르스름한 아지랑이 같은 오러가 검신을 감싸고돌았다.
스스슥.
한쪽 벽에 검 끝을 대보니 벽돌이 마치 무를 찌르는 듯한 손맛과 함께 벽돌 속으로 자연스럽게 박혀 들어갔다.
오러의 놀라운 힘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지금 내 장검에 입혀진 오러는 내 도력의 30%가 더해진 오러일 뿐이다. 그런데도 벽돌을 이처럼 쉽게 뚫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만약 4-5 레벨에서 고대장검과 도력 구슬을 얻었다면 어땠을까.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하면 검으로 총알이나 화살은 물론 거기서 더 나아가 레이저 등 웬만한 공격은 모두 방어할 수 있다는 교관들의 말을 순수하게 전부 믿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잠깐 오러의 힘을 시험해본 결과 그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아직은 내가 그 정도 능력은 되지 못했기에 곧바로 장검은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원거리 공격구인 소총을 집어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그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은 나타나지 않아 오토바이는 그대로 있어 다시 안전지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생존자수는 어느새 56명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자기장만 아니라면 이대로 숨어 있어도 좋겠지만 자기장은 그사이 벌써 1.6키로 뒤까지 좁혀져 있어서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가 다시 자기장이 4키로 밖으로 멀어졌을 즈음.
꽈꽈꽝.
쿠당탕.
“크윽!”
돌연 달려가던 오토바이 옆에서 폭발음이 터지며 오토바이가 허공으로 떠올라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나 역시 바닥에 처참하게 뒹굴어야 했다.
다행이 부상이 없었고 재빠른 반사 능력으로 땅에 떨어지자마자 급히 한쪽으로 몸을 굴려 굴곡진 언덕아래에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헌데 내 눈에 우측나무 뒤와 좌측 건물 모퉁이에 각각 두 플레이어들이 눈에 띄었다.
둘 중 누가 아무래도 나에게 수류탄이든지 소형 박격포 같은 것을 발사한 모양이었다.
가던 사람은 그냥 놔둘 것이지 왜 나까지 끼어들게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1레벨이니 당연히 만만해 보이기는 했겠지.
내 딴에는 시작의 섬에서 제법 강한 척 보이려 연기를 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먹히지 않은 모양이다.
잠깐 비친 두 플레이어들의 외모를 보니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존재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근육질이 우람한 드워프족 같았고, 건물 모퉁이에 고개를 빼곡히 내밀고 주위를 살피던 존재는 늘씬하게 뻗어 내린 몸매에 귀가 뾰족한 엘프족 여자였다.
확실히 엘프는 모두 미인이라더니 실제로 보니 아름답기는 했다.
나무 옆에 팔 길이만한 소형 포신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나를 공격한 놈은 아무래도 드워프가 확실해 보였다.
엘프가 있는 곳은 1층짜리 건물이었는데 그곳에는 아무래도 보물 상자가 있을 확률이 높아, 드워프가 먼저 와있던 엘프와 접전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드워프는 포탄 한방으로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를 공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반격할 차례였다.
두 플레이어들을 내손으로 죽인다면 경험치가 어느 정도 올라갈지 궁금했다.
두 플레이어들과의 거리는 어림잡아 50여 미터 정도.
소총으로 우선 드워프를 겨누고 머리가 나오면 쏘려고 작정하고 있는데 놈이 느닷없이 큼지막한 도끼를 쳐들고 엘프가 있는 건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헌데 그 모습을 보고 엘프 역시 두 손에 단검을 든 채 날렵하게 마주 달려 나오고 있었다.
드워프나 엘프는 내가 포탄에 맞고 죽은 것으로 안 모양이다.
하긴 달리던 오토바이가 허공으로 붕 뜨며 나와 같이 땅에 쳐박혔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두 플레이어가 총이나 화살 등을 쏘지 않고 저렇게 육탄전을 벌이려는 것을 보면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원거리 무기들은 사용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두 플레이어가 부딪친 곳은 어느새 나와는 30여 미터로 가까워져 있었다.
이쯤에서 나는 문득 한 가지 작전이 떠올랐다.
하니 잔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두 존재가 싸우다가 지치면 체력바가 바닥이 났을 때 내가 소총으로 쏴죽이면 두 연놈을 내가 잡은 셈이 된다.
이 게임은 과정은 필요가 없이 결과만을 중요시 했기에 누가 마지막에 사살하느냐가 모든걸 좌우했다.
작전을 세우자 나는 느긋하게 살며시 고개만 내민 채 두 플레이어들의 전투를 구경하기로 했다.
두 플레이어의 싸우는 모습을 보니 드워프는 역시 힘을, 그리고 엘프는 민첩을 위주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드워프가 레벨이 약간 높은 듯 시간이 지날수록 엘프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엘프가 두 번 치명타를 입을 때 드워프는 한번의 타격만을 받는 꼴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내 귀에 뽀족한 비명성이 들려왔다.
“아악!”
서로 엉켜 싸우다가 기어이 엘프가 옆구리에 도끼를 크게 한방 맞고 어느새 땅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비록 상처는 생겨나자마자 바로 아물겠지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었다.
고통을 느끼는 사이 드워프가 킬킬대며 엘프에게 다가갔다.
양손에 쥐고 있던 엘프의 단검을 두 발로 짓밟아 떨어뜨린 후 발로 멀리 차버린 드워프는 갑자기 음침한 괴소를 흘리며 돌연 엘프의 옷을 거칠게 찢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나는 예전 교관이 했던 말이 다시한번 떠올랐다.
[랭크게임에 참가하게 되면 상대를 죽일 때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라. 그 이유는 내가 상대를 잔인하게 죽일수록 다음에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상대가 나를 될 수 있으면 피하기 때문이다. 물론 복수를 하기 위해 더 악착같이 달려들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전보다 더욱 더 잔인하게 다시 죽여 버려라. 물론 여자라면 강간이라도 서슴치 말고 해서 너의 잔인성을 상대 뇌리에 똑똑히 인식 시켜야 한다. 그것이 네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해야한다.]
그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나도 얼마 전 머리 두 개 달린 놈을 죽일 때 머리를 뽑아서 죽인 것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강간을 하려는 모습을 직접 보니 조금은 거부감이 들었지만, 교관의 말대로 이것은 생존게임이고 내 잔인성을 상대에게 인식시키면 시킬수록 내 생존률이 높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여자가 강간을 무자비하게 당하면 당할수록 다음부터는 그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될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랐다.
물론 브론즈 티어는 전 우주에 너무 많아 다음에 다시 만날 확률이 적겠지만, 실버나 골드 또는 플레티넘 티어로 올라갈수록 다시 만날 확률은 더욱 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