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녹색의 섬 애란갤
두발이 다시 내 옆 땅을 파냈지만 나는 잡풀이 조금 더 높게 자란 곳으로 이동해 앞으로 계속 전진했다.
보통 권총의 총알은 15발이다. 이제 놈의 총알은 11발 밖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50여 미터에서 이제 20미터까지 접근하자 놈이 이번에는 5발을 연달아 갈겨댔다.
타타타타탕!
“큭! 젠장.”
다섯발 중 기어이 한발이 다리에 맞았다.
[체력이 75%로 줄었습니다.]
다행히 다리에 맞아서 체력이 그리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만약 가슴이나 배에 맞았다면 최소 50퍼 이상은 떨어졌을 것이다.
물론 채력바가 0이 되는 순간 나는 죽어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20여 미터라면 이제 석궁의 사정거리 안이다.
나는 석궁으로 놈이 나무 뒤에서 튀어나오기를 기다리며 정조준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놈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나무 뒤에는 놈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헌데 바로 그때 2발의 총성이 다시 울려왔다.
탕! 탕!
나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몇바퀴 굴리며 나무 전체를 스캔했다.
‘저기 있군.’
놈이 어느새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 사이에 은신해 있었지만 가지 사이로 놈이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나무 아래에 있었다면 더 나았을 것을, 한번에 죽일 수도 없는 권총 따위의 아이템으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나무위에 은신한 것을 보면 놈은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낮은 레벨임에 틀림없었다.
‘운이 좋은 편이군.’
첫 게임에서 만난 상대가 낮은 레벨이라는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상대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이제 놈에게 남은 총알은 4발.
나는 위험하더라도 조금 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 가까이 접근하기로 했다.
놈이 나무 위에 있으니 이 거리에서 포복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내 위치는 놈의 눈에 확연히 띠일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생각을 마치고 난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그재그로 놈에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크윽!”
고통과 함께 좌측 어깨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체력이 70%로 줄었습니다.]
몸에 상처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총상을 입은 것과 같은 고통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대신 놈의 총알을 이제 모두 떨어지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놈과의 거리가 10여 미터로 줄어들자 나는 제자리에 정지해 재빨리 석궁을 정조준한 후 한발을 날려 보냈다.
쉭!
“크읍!”
놈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명중이다.’
최소한 놈의 배에 적중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한손은 허공에 넣은 채 인벤토리를 마음속으로 외치자, 허공중 찢어진 공간에 내 손이 어느새 들어가 있었다.
마음속으로 화살을 외치자 손바닥에 화살이 잡혀와 재빨리 다시 장전을 하고 놈을 겨루어 방아쇠를 당기니, 놈이 나무 위에서 뛰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날린 화살을 피한 놈이 달아나려 했지만 곧바로 인벤토리 안에서 화살을 꺼내 다시 날리자 놈의 등짝에 화살이 정확하게 꽂혀버렸다.
꽃인 화살이 빛과 함께 사라졌지만 놈은 고통으로 인해 달아나던 몸이 잠시 주춤거렸다.
곧바로 다시한번 화살을 연달아 두 번 날리자 두 발 모두 놈의 어깨와 허벅지에 적중했다.
4발의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는 것은 놈의 레벨이 높거나 석궁의 성능이 저조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레벨보다는 석궁의 성능에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내 화살이 모두 떨어지자 놈이 고통에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놈은 시작의 섬에서 얼핏 보았던 놈으로 인간형 생물체에 머리가 두 개 달린 외계인 플레이어였다.
내 화살이 모두 떨어진 것을 놈도 알고 있는 듯, 놈이 곧바로 내게 달려 나오며 갑자기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다다닥!
화르르륵!
순간 놈의 손바닥에서 시뻘건 화염 덩어리가 2미터가량 솟아나오며 나를 향해 뿜어내면서도 마치 검사처럼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놈의 직업이 혹시 마법사인가 생각했지만 마법사가 검사처럼 저렇게 길게 뻗어 나온 불덩이를 휘두르는 것을 보면 마검사인가도 생각해 보았다.
만약 놈의 레벨이 높고 능력치가 높았다면 저 시뻘건 불덩이는 얇게 정제되어 단단한 검의 위력을 발휘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놈이 나에게 달려들며 연신 불덩이를 휘둘러대자 나는 뒤로 한없이 물러서야 했다.
확실히 나보다는 높은 레벨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석궁에 4발씩이나 맞았으니 놈의 체력바는 바닥일 것이 틀림없어 어떻게든 놈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려야했다.
한방으로 죽일 수 있는 공격력이 지금의 나로서는 그리 많지 않았다.
놈의 공격권인 2미터 이상을 유지하며 물러서던 나는 할 수 없이 불덩이가 스쳐지나가자 손에 들고 있던 석궁을 놈의 머리를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퍽.
“카악!”
정말 운 좋게도 석궁의 끝 뾰족한 부분이 놈의 네 개 눈알 중 한곳을 파고들자 놈이 고통에 못 이겨 눈을 감싸 쥐며 주저 않았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재빨리 놈에게 다가간 나는 놈의 한쪽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미미한 도력이나마 두 손에 한껏 주입한 채 한쪽 발 또한 놈의 어깨에 올려 고정시킨 후 힘껏 머리를 뽑아 올렸다.
“크으으으..!”
푸아악.
있는 힘을 다 주어 머리를 좌우로 비틀며 힘을 주자 잠시 후 머리통이 놈의 몸체에서 뽑혀 나오며 놈의 몸체가 힘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파스스스
쓰러진 놈의 몸체는 곧바로 마치 유리가 산산이 부서지듯 수천 조각으로 갈라지며 번쩍 빛나더니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후우, 드디어 한 놈 처치했다.”
랭크게임에서 드디어 첫 성과를 올린 것이다.
이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뿌듯하면서도 짜릿한 이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말 대단한 느낌이었고 결과물이었다.
잠시 이 기분을 느끼고 난 후 곧바로 놈이 어느 정도 레벨이고 경험치가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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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 최준수
종족 : 인간 (인간)
직업 : 도사
티어 : 브론즈
레벨 : 1
경험 : 20/100
능력치 P: 도력 : Lv 1
특수능력 P : 도술 : Lv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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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치가 20점 주어진 것을 보니 놈은 2레벨이었다.
경험치는 항상 사살한 상대방 레벨에서 열배의 숫자가 주어졌고 이것 또한 모든 티어가 동일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죽은 순서대로 등수가 정해지는데 상위 열 명을 제외하고 11위부터는 순서대로 경험치가 1점씩 삭감이 된다.
예를 들어 100등이면 경험치 100이 삭감되고 11위면 11점이 삭감된다.
물론 경험치가 0이라면 삭감될 점수가 없으니 그대로 0을 유지했다.
그 사이 생존자수가 87명으로 줄어들었으니 나는 지금 죽는다 해도 87등이었다. 물론 87점이 삭감되어 경험치는 다시 0이 되겠지만.
상태창을 확인하고 난 나는 바닥에 떨어진 석궁을 주어 혹시나 몰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다시 안전지대가 위치한 화살표 방향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걸어가며 생각해보니 지금은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좁혀져오는 자기장을 피할 수 없어, 결국에는 체력이 모두 소진되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동 수단이 필요하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이동 아이템이 필요했다.
좌우를 살피며 화살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 나무 아래에 다시 보물 상자 하나가 눈에 띄어 재빨리 다가가 열어보니 일반 소총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띠링! AR소총을 획득하셨습니다.]
소총이라면 그나마 어느 정도 나은 아이템이다. 아니 석궁에 비하면 한참 상위의 아이템이었다.
‘좋았어.’
소총을 득템하자 더욱 자신감이 생겨났다.
얼마 후 역시 머지않은 나무 아래에서 150발이 들어 있는 탄창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
소총에 탄창을 장전하고 나아가기를 10여분이 지났지만 이동 아이템은 나타나지 않아 마음이 점점 초조해져 가기 시작했다.
전투를 벌이다가 죽는 것이 아닌 자기장에 의해 죽는다는 것은 정말 억울했다.
‘맵’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며 마음속으로 맵을 외치자 곧바로 현재 내 위치와 자기장의 좁혀진 위치 그리고 역시 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안전지대가 둥근 원으로 표시되어 나타났다.
안전지대까지는 아직까지 80킬로 이상이나 남았는데 자기장은 내 뒤 1.2킬로로 어느새 좁혀져 있었다.
헌데 이번에는 붉은 색으로 표시된 반경 3킬로의 레드존이 서북 방향에 생성되어 있었다.
폭격시간은 10분후.
다행히도 내가 있는 지역과는 조금 떨어진 장소라 안심 할 수 있었다.
아니, 지금은 레드존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장 때문에 할 수 없이 곧바로 빠른 걸음에서 달기로 전환해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달리면서도 시각과 청각을 곤두세워 주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훅.. 후욱.. 후후..!”
그렇게 달리기를 얼마 후.
‘찾았다!’
마침내 굽이치듯 울퉁불퉁한 언덕 한쪽에 오토바이 한 대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르릉!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 자리에 앉은 후 시동을 걸자 곧바로 오토바이가 땅위에서 30센티 정도 허공에 떠올랐다.
기어를 당기자 정말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해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며 맵을 확인해보니 안전지대와는 이제 70킬로가 조금 넘어 있었고 자기장과는 5킬로가 멀어져 있었다.
이 상태로 안전지대까지 간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좁혀진 안전지대로 들어갈수록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을 것은 당연해, 소총 말고 다른 성능이 더 좋은 아이템을 획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벨과 능력이 낮으니 지금으로서는 아이템에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헌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섬 한쪽이 번쩍하고 빛나더니 연달아 폭격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꽈꽈꽈꽝. 쿠쿠쿠쿠쿵.. 쿵쿵쿵쿵..!
드디어 레드존에 폭격이 가해진 것이다.
폭격이 개시되자 우측에 있는 생존자수의 숫자가 급격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81.79.78.75.73.70.68.
많이 죽어나갈수록 내 등수는 올라가 나중에 경험치 삭감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했다.
‘최대한 죽어라.’
내가 살고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남들이 한 놈이라도 더 죽어나가는 것을 기원해야했다.
잠시 후 폭격이 멈추고 난 후의 생존자 수는 62명.
그런대로 많이 죽어나간 편이다.
처음 시작한 랭크게임에서 62등도 대단히 만족한 수준이다.
물론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 숨어 있으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자기장에 의해 죽음을 면치 못해 끝없이 안전지대로 이동해야만 하는 것이 참가한 모든 플레이어들의 숙명이었다.
부르르르릉. 부르르르.
한동안 안전지대 방향으로 달리던 나는 근처에 3층짜리 제법 커다란 건물이 하나 나타나 오토바이를 멈추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런 곳에는 필시 보물 상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생존율을 높이려면 소총보다는 더 확실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물론 이런 지역을 발견하면 다른 놈들도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해 만사 조심하며 더욱 경계에 만전을 기해야했다.
‘레벨과 능력치만 높다면 검으로도 총알이나 웬만한 공격구의 공격은 막아낼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아직 나에게는 요원한 일이었다.
검에 오러나 내공 또는 도력을 주입할 정도의 레벨이 된다면 검 자체만으로도 상위의 공격과 방어를 겸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날이 오겠지.’
레벨을 올리다보면 정말 그런 날이 오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저택의 문 앞에 서서 잠시 청력을 기울여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저택이 넓어 혼자서 수색을 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나는 미비하나마 도술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