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72화입니다.
바제리 백작령 최심부 도시 알카디. 그곳에 위치한 성의 최상부 대회의실에서는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바제리 백작, 디젤로 바제리는 가라앉은 눈으로 좌중을 둘러봤다. 한 때 알에리 후작을 중심으로 뭉쳤던 파벌의 중진은 자신을 포함해 이곳에 있는 네 명의 귀족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는 다섯이 있었지만…'
육체가 젊어져 젊었을 적의 혈기를 되찾은 탓일까, 전쟁 초기에 선봉대로나섰던 옛 친구는 용사와의 일전에서 목이 달아났다. 고작 일합을 나누고 말이다. 과거 장군으로 활동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패퇴에 패퇴를 거듭해서 이 꼴이었다. 가문을 휘어잡는데 성공했던 다섯 가문의 병력은 한줌의 모래처럼 얼마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매일같이 탈영병이 생기는 와중이었다.
물론 썩어도 준치라고 전쟁을 지속할 능력은 있었다. 이곳 알카디 성은 요새라고 불릴 정도로 튼튼했으며 남은 한 줌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용사 측의 공세를 오랫동안 막을 수 있었다. 식량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으니 농성은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결국 죽음을 뒤로 유예할 뿐이었다. 이미 전세는 용사 측으로 기울었으며 승리를 점칠 수있는 요소는 모조리 파훼당하고 말았다.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는 것은 마지막 발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알기에 대회의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디젤로는 한숨을 푹 내쉬며 한탄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된 건지 모르겠군.”
“각하께서 살아계셨더라면…”
어느 노귀족의 말에 절실히 공감했다. 자신들의 주군, 알에리 후작이 그렇게 죽지 않았더라면 분명 전세는 달라졌을 것이었다. 이곳에 모이는 것도 고작 다섯 가문이 아니라 제국의 1/5이 모였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알에리 후작이 가지는 명성은 남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역모로 처형당하고 대부분의 귀족들은 혹여 불똥이 튈 세라 황급히 접점이 될만한 것들을 모조리 치워버렸다.
‘배은망덕한 것들. 각하께서 이 제국을 위해 어떤 일을하셨는데…’
절로 이가 갈리는 일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이 제국에서 역모라는 것은 역사에서 지워질 정도로 무거운 죄였다.
작위와 영지를 모두 몰수당하는 것은 물론이오, 직계의 4대는 반드시 처형당하고 방계 역시도 천민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니 가문이 몰락, 아니 존재조차 없어지는 것은 금방일 것이었다.
이곳에 앉아 있는 네 명의 귀족들 역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문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충심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들 모두 알에리 후작에게 구명을 받고 살아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신하된 자들로서 주군을 저버리는 짓을 할 수는 없는법. 설령 그 주군이 명을 달리하더라도 말이다. 디젤로는 마른 세수를 거듭하며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 승하하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본격적으로 거사를 일으키기도 전에 황실에서 어떻게 눈치를 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일어난 것은 일어난 것.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지 않겠소?”
“앞으로의 일이라! 이미 전세가 기울대로 기울었는데 더 무슨 생각을 한단 말이오? 이미 용사와 황실의 군대는 알카디 코앞까지 다가왔고 농성한다고 한들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할 텐데!”
“여기 있는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니 그리 역정내지 마시오.”
젠장! 테이블을 내려치며 머리를 헤집는 노귀족을 보며 디젤로는 혀를 찼다. 이자도 먼저 목이 날아간 그 친구처럼 젊어지면서 성격이 젊었을 처럼 다혈질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면 늙어서도 그랬으나 기력이 없어서 하지 않았던지.
아무튼, 디젤로는 고개를 돌려 다소곳하게 서 있는 메이드를 바라봤다.
“샬럿 양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바제리 백작님의 말이 옳습니다. 어차피 저희들 전부 패배가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미 황실을 상대로 군사를 일으킨 마당이니.”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그 말에 조금 전까지 침울하게 있던 노귀족들의 고개가 들려 샬럿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된 와중에도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예. 물론 쉬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만… 만약 할 수 있다면 아주 약간의 승산이라도 생길지도 모르겠군요.”
“상관없다! 놈들을 물리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다혈질인 노귀족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역시나 파이안 백작님.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입에 발린 말은 되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뭐지? 당장 말해!”
“성질도 급하시긴, 그리 말하지 않으셔도 알아서 해드릴 텐데…”
섬섬옥수 같은 손이 느릿하게 올라와 파이안 백작을 향했다.
“조금 아플 거예요?”
그리고는 쏘아진다. 다섯 가닥의 촉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노귀족의 머리와 심장에 박혀들었다.
“끄아아악! 으아아악!!!”
“미친! 이게 무슨 짓이오!”
“진정하세요, 바제리 백작님.”
“진정하라고?! 이 꼴을 보고 어떻게 진정하게 생겼소!”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샬럿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촉수가 파이안 백작의 신체를 뚫고 무언가를 주입하듯 꿀렁거리고 있었고 촉수에 꿰뚫린 파이안 백작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근처에 있던 다른 노귀족들 역시도 낯빛이 창백해져 거리를 벌리고 있었으니 저 꼴을 보고도 샬럿에게 소리치는 디젤로가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저는 파이안 백작님을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랍니다. 진정하시고 봐주시겠어요?”
“머리와 심장을 꿰뚫은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거짓말을…?”
어느 순간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디젤로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파이안 백작을 바라봤다. 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더 이상 발버둥은 없어보였다. 그러자 몸을 꿰뚫었던 촉수들이 서서히 빠져나와 샬럿의 몸으로 돌아갔다.
기이하게도 분명 꿰뚫렸던 머리와 심장 부근에는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꿰뚫렸을 것이라 생각될 법한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변화가 시작되었다.
“이, 이게 무슨…”
뿌득, 뿌드득, 우직. 마치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디젤로는 그 광경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서서히 대회의실 위로 그림자가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것을 보는 이들의 고개가 위를 보며 머무를 쯤에 샬럿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파이안 백작님?”
[...나쁘지 않군.]
마치 맹수가 그르렁 거리는 목소리였다.
[몸에 감도는 활력도, 느껴지는 힘도 모두 만족스럽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이 느껴졌다. 이 힘이라면 용사도, 황실도 모조리 부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파이안은 이빨이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으며 디젤로를 바라봤다.
[디젤로! 이 힘이라면 가능하다! 이런 답답한 성에 박혀서 기다릴 필요도 없이 놈들을 깨부술 수 있을 게야!]
“레, 레온 자네 괜찮은가?”
[괜찮냐고?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넘치는 기분이다! 내 생에 있어 이토록 즐거운 기분이 드는 것은 처음일 정도로!]
짐승이 웃는 소리가 대회의실을 흔들었다. 모두가 창백한 얼굴로 파이안 백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샬럿은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한 일은 간단했다. 악마의 계약에 관여한 순간부터 몸 속에 심어져 있던 가능성을 자신의 마력을 집어 넣어 억지로 개화시킨 것. 그 결과 파이안 백작은 훌륭하게 악마로 자라났다. 아주 성공적으로 말이다.
물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억지로 개화시킨 것이었기에 부작용은 없지 않았다. 저렇게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하루에 불과할 것이고 사흘이나 그 이전에 신체가 붕괴되기 시작할 것이었다. 이를 테면 시한부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악마로서 제 기능을 다할터. 지금부터는 시간싸움이었다.
샬럿은 할말을 잊고 멍하니 파이안 백작을 올려다보는 디젤로에게 말했다.
“파이안 백작님의 의견이 그러시다니 보내드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
그는 순간적으로파이안 백작이 어디있는지를 찾았다. 기억에 있는 모습을 찾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샛노란 안광을 뿜내고 있는 악마를 바라봤다.
“허, 허어어…”
그리고는 힘이 풀린 것처럼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대로 하게. 가서 날뛰던, 놈들을 물리치건 상관하지 않겠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콰아앙! 발돋음 한 번에 대회의장의 바닥이 움푹 패이고 벽이 무너져 내렸다. 훤히 드러난 바깥으로 파이안 백작의 모습이 점으로 멀어져갔다.
그 모습을 보며 디젤로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걸지도 모르겠군.”
자꾸만 짐승의 웃음 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다는 감각은 무척이나 오랫만에 느끼는 것이었다.
천천히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비올렛은 멍하니 그 빛을 바라보다 허리를감싼 두꺼운 팔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몸을 움직여 좀 더 신체를 밀착시켰다.
그러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쾌감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흐읏…”
그제야 비올렛은 자신의 안에 무언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 아래를 보니 교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양물을 삽입한 채로 잠들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다 떠오르는 기억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하앗, 흑, 빼, 빼지마앗…’
“미친년.”
알폰스가 아니라 자신이 해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별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자신이 잠든 사이 그가 빠져나가도 알 수 있게 하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거지. 비올렛은 제 행각에 한탄하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말해도 변명할 수 없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약을 먹은 것도 아니라 맨정신으로 그런 말을 해놓고 이제와서 아니라 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미치도록 부끄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비올렛이 제 멍청한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있으니 허리를 잡은 팔이 움찔거렸다.
"으음… 비올렛…"
"잠꼬대로 날 부르지마 멍청아."
"...아침부터 기운차군. 어제랑 다르게."
"흥. 어제는 잠시 내가 정신이 나가앗?!"
"여기도 기운차고 말이지."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양물에 비올렛이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배가 꽉차는 느낌이 익숙해질 법도 했건만 이 감각은 도저히 익숙해 질 수가 없었다.
"너, 너어… 아침부터 무슨…"
"아침이니까 다."
"바, 바보 같은 소릴, 히잇?!"
앗, 앗. 허리를 쳐올리며 안쪽을 찌르는 감각에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거긴, 흐아앙?!"
허리를 감싸던 팔이 내려와 공알을 매만지자 절로 몸이 굽어지며 달콤한 비명을 내질러졌다.
'이 망할 몸뚱아리 같으니!'
알폰스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정직하게 쾌감을 느끼니 도저히 주도권을 되찾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자신이 움직일 수 있으면 쾌락을 컨트롤 할 수라도 있을 텐데, 이렇게 되면 멍청히 신음을 내뱉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흐으윽!!!"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몸은 착실히 알폰스의 행동에 반응해서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절정에 달했다. 둥글게 말린 몸이 움찔움찔 거리면서 떨려왔다.
"하으아?!"
"뭘 혼자 멋대로 절정하고 있는 거냐? 나는 아직 남았는데 말이지."
"나, 나 지금, 가고 이써엇, 히윽!"
"알고 있다."
"히이잇!!"
비올렛의 비명에 알폰스가 즐거운 목소리로 허리를 움직였다.
질내가 바들거리면서 양물을 꽉꽉 조여오는데 절정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그마아안! 흐아앙!!!”
"아침까지 꼭 안아달라고 한 건 너였다."
깊숙한 곳을 쿡쿡 찔러주니 아예 자지러지며 버둥거리기에 양팔로 꽉 붙잡아 품 안으로 가둬 넣으며 속삭였다.
그 말에 비올렛이 바르르 몸을 떨며 다시 한 번 절정했다. 양물을 꽉 조이며 물을 토해내는 질내에 알폰스는 참지 않고 가장 깊숙히 박아넣으며 정액을 토해냈다.
“흐으읏…!”
울컥거리며 안을 가득 채우는 감각에 비명과도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사정의 여운에 잠긴 숨소리를 내뱉으며 비올렛을 끌어안은 알폰스가 중얼거렸다.
“좋은 아침이다, 비올렛.”
“...너무 늦어.”
상기된 얼굴로 팔을 깨물은 비올렛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