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71화입니다. (71/75)



〈 71화 〉71화입니다.

울다 지쳐 품에서 잠든 비올렛을 보며 알폰스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방치한 것은 용사 일행과 바제리 백작의 전황이 바삐 돌아간 탓도 있었지만, 어느정도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도 있었다.

비올렛은 벽에 막혀 있었다. 너무 단기간에 급격한 성장을 이뤄낸 탓이었다. 경험도 없이 교본에 박힌 검술을 그대로 배웠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대련을 함으로써 그 시기를 늦추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결국 그 재능이 문제였다. 물론 벽을 부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 또한  재능이 해결해줄 일이었으나, 그것을 저가 도울 수 있는  아니었다.

그러니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방치한 것이었다. 그녀의성격대로라면 이런 식의 방법이 먹힐  같아서. 그래서 언제 집무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한판 붙자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갈 줄이야. 알폰스는 비올렛을 품에 안은 채로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집무실에 눕혀두고 싶었지만, 사람이 앉을 자리를 제외하고 온통 서류 더미에 깔려있었다.

그러니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 주는 것 외에는 할  있는 일이 없었다.

'왜 나였던 거야?'

걸음마다 조금 전 비올렛이 외치던 말이 떠올랐다.

어째서 그녀였을까. 솔직히 말하면 단순한 흥미였다. 낙원에서 소동을 일으킨 이가 마물 중에서도 최약체라고 평가 받는 백토 공주였고, 재능이 보였다. 그래서였을 뿐이었다.

분명 그랬을 뿐이었는데. 알폰스는 내리깐 눈으로 잠든 비올렛을 바라봤다.

함께 지내면서 꺾이지 않는 정신력에 감탄했고 굽히지 않는 그 성격에 다시 한번 흥미를느꼈으며 물을 흡수하듯 자신의 가르침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재능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에 걸리게 된 거다. 계기라고 할 것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감정에 스며들었다. 그녀의 몸짓 하나, 눈길 하나가 자꾸만 신경쓰이게 되었다.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껴안았던 것도 충동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아서. 굳세기만 한 것처럼 보였던 비올렛이 길을 잃은 아이처럼 우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워서. 그래서였다.

분명. 알폰스의 걸음이 멈춰졌다. 복도 위로 이어진 물자국이 방울방울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열려있는 그녀의 방에서부터 자신의 집무실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의 물자국이 가장 커다랗게 남아 있었다.

알폰스는 가라앉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겨 비올렛의 방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흐트러진 이불과 바닥으로 흘러내린 침대보에 어쩐지 그녀의 행동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손으로 그녀를 안은 채로 침대를 정리했다. 그러고 있으니 아주 옛날이 떠올랐다.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셨고 아버지의 눈을 피해 여관을 전전하던 시절이.

그때는 여관의 어린 시동으로 일하며 푼돈에 불과한 삯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 생활이 나쁘다고 생각들지는 않았다.

적어도 공작가에서 살게 되었을 때보다는 나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때는 어머니가 살아 있었으니까.

어머니. 천한 하녀에 불과했던 그녀는 과욕을 부리다 죽었다. 구질거리는 삶이 싫어 발버둥을 치다가 죽었다. 자신은  구질거리는 삶 또한 함께여서 좋았는데도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죽었을 때는 실망감이 몸을 지배했다. 자신을 출세의 물건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렇기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자식으로 보지 않았으니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생각했다.

그렇게 결심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것이었다.

여관을 전전하며 어머니와 살았던 생활이. 어쩌다 구해 온 과일을 반으로 나눠 먹던 때가. 자신이 아플 때 옆에서 자리를지켜주던 모습이.

아무리 저를 출세의 욕구로 사용하려고 했다 하더라도 그 기억들은 쉬이 잊혀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나씩 떠오르자 겉잡을 수 없이 그리움이 피어올랐다. 마치 전염병처럼 몸 전체로 퍼져서 눈물이라는 형태로 흘러나왔었다.

기억하길, 태어나서 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수 년 전에 죽었기에.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나마 그것을 해소하기로 했다.

어머니를 죽인 자를 죽임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제국의 삼공작 중 하나였고 자신은 이제 막 기사가 된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전쟁에 참전했다. 빠르게 작위를 얻고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악마와 계약을  것도, 알에리와 손을 잡은 것도 전부 그것을 위해서였다.

그것도 이제는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한 듯 하지만 말이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바제리 백작이 몰락하고 있었다. 샬럿을 보내었는데도 이 속도라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이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는 정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그녀를 놓아주어야 할지, 아니면 부관의 말대로 전력으로 포함시켜야 할지.

알폰스는 비올렛을 침대에 눕혀 이불을 끌어올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그녀를 바라봤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모습은 무척이나 위태롭게 느껴졌다.

역시, 놓아주는 것이 맞겠지. 분명 그녀 역시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었다.

알폰스는 그리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안자고 있었나?”

소매를 붙잡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 비올렛을 바라봤다. 언제 잠들어 있었냐는 듯 자주빛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지마.”

“내가 밉다고 할  언제고 지금은 가지말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모르겠군.”

“네가 미워.”

“아이처럼 구는군.”

알폰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비올렛은 삐죽 입술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네가 미운 것도 사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냐?”

“옆에 있어줘. 같이 자달라고는 하지 않아. 그냥, 내가 잠들 때까지만이라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자고 일어나서도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내뱉기에는 아직 자존심이 흔적처럼 남아 입을 꾹 다물게 만들었다.

그녀의 말에 알폰스가 미소를 지으며 짓궂은 어투로 말했다.

“같이 자달라고 말해도 상관없는데 말이지. 우린 항상 같이 잠들었지 않았나?”

“...네 녀석의 머릿속에는 그런 것 밖에 없는 거냐?”

불쾌해. 인상을 찌푸리던 비올렛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뭐?”

“빨던, 쑤셔 박던 마음대로 하라고.”

대신.

“아침이 올 때까지 나를 꼭 안아줘.”

뼈에 사무치는 고독이, 몸을 떨리게 만드는 외로움이 생각나지 않도록.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비올렛은 그렇게 말하며 소매를 끌어당겨 알폰스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핥기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를 말캉한 혀가 오갔다. 금새 질척거려진 손가락을 하압, 소리를 내며 입에 물더니 천천히 빨기 시작했다.

츄릅, 츄웁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알폰스는 멍하니 자신의 손가락을 빨고 있는 비올렛을 바라봤다. 설마 그녀가 먼저 이런 것을 해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쪼옥,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입에서 뗀 비올렛이 숨을 내쉬며 알폰스를 올려다봤다. 물기어린 눈동자가 절실하게 그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이렇게 먼저 유혹하고 빨리 끝날거라 생각하진 않았겠지?”

“상관 없어. 마음대로 해.”

그 말에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알폰스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췄다. 짧게, 그리고 다시 길게. 혀를 섞으며 질척이는 키스가 이어졌다.

비올렛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제는 하면서 숨이 막히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흐읏…”

입술에서 시작된 키스는 점점 아래로 향했다. 새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지분거리며 손으로는 아담한 가슴을 움켜쥐자 비올렛이 달콤한 숨을 내뱉었다.

뜨거운 숨결이 제 살에 닿을 때마다 속에서 움틀거리는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미 아래는 축축하게 젖어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알폰스 역시도 비올렛이 벌써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수 있었다. 수도 없이 몸을 섞어왔다.

그녀가 쉽게 느끼는 곳이 어디인지 정도는 보지 않고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옷 위로 발딱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때리듯 튕기니 히약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들썩거렸다. 그것을 보며 웃자 이마를 때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남의 몸으로 장난치지마.”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 않은 채 불퉁한 얼굴로 투덜거리던 비올렛은 알폰스를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입고 있는 실크 드레스를 벗으려고 했다. 부들거리는 팔이 어깨 까지 올라가지 않았다. 한참을 씨름하던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것 좀 벗겨 봐.”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군.”

그러면서도 알폰스는 순순히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왔다. 입고 있던 옷을 한꺼풀 벗겨내자 금새 새하얀 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 번을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몸이었다. 분명 새까만 어둠 속에 있는데도 빛이 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지마. 부끄러우니까.”

벗겨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제멋대로인 말이었다. 하지만 알폰스는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마도 정말로 말을 내뱉었더라면 부끄러움을 못이기고 펑하고 터질 지도 몰랐다.

“큭.”

그런 상상을 했더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뭘 웃는 거야 대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재밌는 상상이 떠올라서 말이지.”

“이런 때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니 너도 참 대단한 녀석이야.”

“칭찬으로 듣지.”

“칭찬이 아니거든. 너도 빨리 벗어. 나만 벗고 있는 건 불공평하니까.”

어깨를 툭툭 때리는 주먹이 생각보다 매웠다. 하기사 벽을 뚫는 주먹인데 아무리 약하게 때려도 아픈 것이 당연하겠지.

손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이리저리 받아내며 다른 손으로 옷을 벗었다.

침대 위에 나신의 남성이 추가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분명 서로의 몸을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기묘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 맴돌았다.

먼저 침묵을 깬 쪽은 비올렛이었다.

“...안아줘.”

그녀는 두 팔을 벌리며 그렇게 말했다. 알폰스는 말없이 비올렛을 깊게 껴안았다.

단단히 팔을 허리를 두르고 두 사람 사이의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신을 밀착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뜨거움이 맞닿은 피부로부터 전염되었다.

"흐으…"

비올렛은 어깨에 턱을 기댄 채로 깊게 숨을 내쉬었다.

몸을 서늘하게 만드는 추위는 여전했으나 이전 만큼, 서글플 정도로 감정이 사무치지는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그 안도감에 전부 나왔던 걸로만 알았던 눈물이 다시금 차올랐다.

알폰스는 귓가에서 흐느끼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깜빡였다.

떠올려보면 누군가와 이렇게 오랫동안 품에 안고 있어  적이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있었을까. 성년이 넘어서는 타인과 악수 이상의 접촉을 해 본 적도 없었고 여자를 품을 때도 철저히 정욕을 풀기 위해서만 움직였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타인과 교감하는 듯한 행위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가슴께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 박동이 울려퍼지고 서로의 체온을 공유하여 곧 따스함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여전히 뜨겁다고 느껴졌다.

특히나 맞닿은 가슴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그 감각에 알폰스는 무언가를 알아차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 했건만."

"킁,  소리를 하는 거야?"

어깨에 기대고 있던 비올렛이 몸을 세워 바라봤다. 눈가는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가 애달펐다.

그 모습에 충동적으로 입술을 맞췄으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에 팔을 두르고 적극적으로 키스를 해왔다.

"후아…"

달뜬 숨을 내뱉으며 멀어진 비올렛이 알폰스를 퉁명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뭐야, 느닷없이. 할 거면 적어도 신호는 주고…"

"좋아한다, 비올렛."

"...해, 엑?"

동그랗게 눈을  모습이 퍽이나 귀엽게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한 비올렛이 허둥거리며 말하려했다.

"자, 잠깐. 무슨 소릴, 웁."

멋대로 말을 내뱉으려는 입술을 다시금 입으로 막아버리고 침대로 몸을 기울였다. 고백에 대한 대답 같은 건 들을 생각은 없었다. 처음부터 말할 생각도 없었던 것을 충동적으로 내뱉은 것 뿐이었다.

그러니 비올렛. 너는 대답을 할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넌 영원히 나의 것으로 기억될 테니.

알폰스의 장담대로 밤은 무척이나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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