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65화입니다. (65/75)



〈 65화 〉65화입니다.

*후기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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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렐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황궁에서 시중을 드는 메이드들이 허투루 일을 했을 리는 없을 테니 당연히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쉬이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태자의 부름이다. 제국에서 두 번째로 가장 높은 사람이 자신을 찾는데 어찌 마음을 놓을  있을까. 게다가 용사가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마음은 평민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황태자와의 독대가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단 말이다.

“휴우…”

파렐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맵시를 정돈해봐야 메이드가 해준 것보다 낫지 않았다. 오히려 망치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차라리 가만히 있을걸 괜히 손을 대어서. 의자에 털썩 앉으니 이번에는 다리가 멋대로 떨려왔다.

사실 이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황태자는 권위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가. 실제로도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마치 옆집 한스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풍겨오는 기품이라는 것이 있었다. 절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게 만드는 그런 아우라가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용사 파렐, 준비가 되었습니까?”

“아, 네!”

문이 열리자 신관 페이가 있었다. 그녀는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는 파렐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뭘 그리 긴장하고 계시는 겁니까?”

“하하…”

“실없는 웃음은 짓지 마십시오. 얕보입니다.”

그리고는 냉랭하게 몸을 돌려 걸어갔다.

“하아…”

시야에서 페이가 사라지자 파렐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신관, 아니 이제는 성녀 페이라고 불러야겠지. 황태자가 점지한  동료였으나 영 친해질 수가 없었다. 제게 숫기가 없는 탓도 있었지만, 저쪽에서도 차갑게 구니 더욱 그랬다.

벌써 황궁에 온 지도 한 달이 넘었고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거의 매일이었다. 언제 마왕이 나타나 군세를 일으킬지 알 수 없었기에 훈련은 무척이나 험난했고, 다치는 일이 빈번했기에 신관인 그녀의 힘이 필수불가결이었다. 당연히 치료를 해주지 않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딱 상처를 치료한  뒤돌아서는 모습은 아무리 파렐이라고 할 지라도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이런 걸 동료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하고. 물론 원치 않는 동행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페이는 황태자가 동료로 들어가라고 명령했을  무척이나 불쾌한 기색이었으니. 그렇기에 파렐 역시도 그녀의 기분을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달이나 반복되다보면 아무리 성격이 좋다고 하더라도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공적인 이야기 외에는  한번도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마치 친해지고 싶지 않아서 밀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도 그렇겠지.’

파렐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야 나중에 여정을 떠날 때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안 오십니까?”

“아, 지금 가겠습니다!”

일단 황태자를 만나는 것부터 생각할까. 페이의 불만어린 표정을 보며 황급히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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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왔군.”

황태자가 가벼운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그의 집무실에는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황태자의 집무실이라기 보다는 어떤 종이 창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국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파렐은 한 손을 가슴에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한달 동안 페이에게 귀가 닳도록 배운 예법이었다.

“됐네. 자네와  사이에 무슨.”

“전하.”

“페이, 자네도 마찬가지야.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자꾸 나한테 깍듯이 대하고 있는 건가? 이러면 나도 섭섭해.”

“읏…”

정말로 섭섭하다는 듯 목소리에 서운함이 감돌자 냉랭하던 페이의 얼굴에도 낭패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곧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심호흡하며 말했다.

“...전하께서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전하께서는 제국의 다음을 이끌 고귀한 존재이십니다.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예를 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에잉,  잔소리를.”

“전하.”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하지. 지금은 용사 파렐도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그건 단 둘만 있을 때로 하지.”

“다,  둘…”

파렐은 작게 입을 벌리며 얼굴을 붉히는 페이를 바라봤다. 그 냉랭한 성녀께서 저렇게 수줍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과연 황태자 전하…’

“자네는 왜 또 그렇게 보고 있는 건가…”

존경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니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늘 자네를 부른  다름 아닌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서라네.”

“부탁이라면…?”

“내 비록  작은 방에 갇혀 하루 종일 서류를 보는 신세이지만 그렇다고 귀가 닫혀 있지는 않단 말이지.”

작은 방? 그 말에 파렐은 주위를 둘러봤다. 서류 더미에 조금 좁아 보이는 느낌이기는 하지만, 고향에서 살던 집보다는 커 보였다.

“벌써 황궁기사단장 대리와 호각을 이룰 정도로 성장했다지?”

“단장 대리께서 손속을 봐주신 덕분입니다.”

“손속을 봐주었다 하더라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농민의 자식이었던 이가 단장 대리와 호각을 이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기본적으로 기사 한 명이  명의 병사를 혼자서 상대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최저치를 계산한 수. 평균적으로 기사 한 명이 병사 서른을 거뜬히 상대하고 상위 실력자로 간다면 그 수치는 배로 늘어난다.

그리고 그 기사를 이끄는 기사단장 즈음 된다면 왠만한 소국의 전력과도 비슷했다. 물론 단장이 아닌 단장 대리였으나 그 역시도 만만치 않은 실력자임은 확실했다.

그러나 앞으로 해야할 일을 생각한다면 겨우 호각을 이루는 정도로는 힘들 것이었다.

“용사 파렐.”

“예, 전하.”

“내게는 숙부가 한 명 계신다네.”

“숙부라 하심은…”

“일찍이 황족의 권리를 내려놓으시고 기사가 되어 제국의 번영을 가장 먼저 앞서 행하신 분이지. 기사 중의 기사, 제국의 영웅, 황실의 모범… 그를 표현할 말은 수도 없이 많았지. 나 역시도숙부를 존경했고 말일세.”

다르키안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로 놓으며 말했다.

“용사 파렐, 그리고 성녀 페이. 이제부터 이곳에서 들은 말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되네.”

“전하…?”

“황족이 악마와 결탁했다.”

그 말에 곁에 서 있던 페이가 숨을 들이키며 다르키안을 바라봤다.

“화, 황족이 말입니까?”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다만 숙부의 파벌에 속한 늙은이들이 젊음을 되찾았다는 목격담과 숙부께서 한 달째 두문불출 하고 계신다는 정황으로 보았을 때 황실 정보부에서는 그들의 외도(外道)를 의심했다. 그를 조사하기 위해 비밀리에 정보원을 파견하였으나, 이들 역시 행방불명 되었다.”

꿀꺽. 파렐은 긴장한 낯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숙부께서 저택을 걸어 잠그고 칩거하시기  적월이 떠올랐다는 것을 고려하여 정보부에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가페 라움 알에리 후작이 악마와결탁을 했노라고.”

“그렇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큰일? 고작 그런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 우리 비젠 제국의 시조는 최초의 용사. 마왕을 토벌하고 세상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진 국가다. 그런데 용사의 후손이 악마와 결탁을 해?”

고작 그것만으로도 황실의 정통성이 훼손될 것이었다. 그런 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다르키안은 분노로 붉어진 눈을 감았다 뜨며 냉정을 되찾았다.

“...물론, 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다. 어디까지나 정황이 그렇다는 것 뿐이지. 하지만 황실 정보부가 허투루 그런 결론을 내릴 리는 없어. 그들은 오롯이 제국의 안녕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니까.”

선대 황제 폐하께서 그리 만드셨다. 다시는 제국이 흔들리지 않고 영원하길 기원하며. 아버지 황제 폐하가 쓰러질 때까지도 그들은 오롯이 제국을 위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런 충성스러운 집단이 황족과 악마의 결탁이란 결론을 내렸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다르키안은 눈을 질끈 감으며  숙부, 아가페 라움 알에리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것이 벌써 십 여년도 전의 이야기였으나, 그는 제게 향하던 애정을 잊지 않았다. 자신에게 검을 가르친 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알에리 후작이었다.

그런 그가 악마와 결탁했다니…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러니 자네들에게 부탁이 있네. 어쩌면 용사로서 해야할 첫 임무라고 할 수도 있겠군.”

“경청하겠습니다.”

“겨, 경청하겠습니다.”

페이의 말에 파렐이 황급히 따라했다.

“알에리 영지로 가서 그의 동태를 살펴, 악마와 결탁했다는 증거를 찾게.”

“...그가 악마와 결탁했음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황궁으로 돌아오게. 하지만 증거를 찾은 순간 신성 마법을 하늘로 뿌린다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황실의 기사들이 자네들을 도울 걸세. 그러니 시간이 얼마나 늦어도 상관 없네. 확실한 증거를 찾아. 누가 보더라도 숙부가 악마와 결탁했음을 알 수 있는 증거를.”

“전하…”

괴로운 얼굴로 내뱉는 다르키안의 모습에 페이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숙부와 정면으로 가장 먼저 싸우게 되는  자네들일 걸세.”

제국의 영웅, 기사 중에 기사라 불리는 알에리 후작과 햇병아리 용사가 싸운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 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었다.

“모습을 드러네게, 아르윈.”

파렐은 눈을 흡뜨며 다르키안의 옆을 바라봤다. 분명 방금 전까지 아무 것도 없던 공간에서  여인이 불쑥튀어나왔다. 놀란 것은 파렐 뿐만이 아닌지 페이 또한 떨리는 눈으로 평소라면 하지도 않았을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저, 전하 이 여자는 도대체…?”

“무례한 여자군.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꼴이라니.”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미성이다. 파렐이 헤 입을 벌리며 바라보고 있으니 푸른 눈이 살풋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뭘 보는 거냐?”

“예? 아, 아니… 무척이나 아름다우셔서… 헙.”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갔다. 황급히 입을 손으로 가려보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없는 법이었다. 옆에서 페이가 쌍심지를 켜며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이글거리는 시선이곧 옮겨졌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요?!”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좋다. 나는 딱히 너희를 위해서 동행하는 것이 아니니까.”

“당신에게 물은게 아니예욧!”

“진정하게 페이. 그녀라면 충분히 믿을  있는 사람이야. 아르윈, 보여주게.”

다르키안의 말에 아르윈이라고 불린 여인은 느릿하게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겼다.

“에, 엘프?”

옆으로 길쭉하게 돋아 있는 귀. 황도 라우니안으로 오는 마차 안에서 말코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같았다.

“그래, 그녀는 엘프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확실히 그만큼 신용이 가는 건 없었다. 엘프라면 악마를 극도로 혐오하는 종족이었고 먼 옛날 용사를 도와 마왕을 처치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가 이번 여정에 참여하는 것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적임이기도 하였고.

그렇게 생각한 페이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그렇네요.”

“그럼 이야기는 이것으로 된 것 같군. 출발은 언제로 하겠나 파렐?”

“예? 그건… 전하께서 명하시는 대로…”

“쯧쯧, 그래서는 안된다네. 자네는 용사이지 않은가?”

그거랑 출발하는 날을 정하는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파렐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번에는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용사란 인류의 등불 같은 것이네. 인류에게 찾아온 어둠에 맞서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등불. 물론 그것이 이것과 무슨 상관이겠냐 생각하겠지만,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익숙해져야 중요한 선택의 기로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결정할 수 있지 않겠나?”

자네는 이제  알에서 깨어난 날짐승과 같은 상태이니 더욱이 말이지. 다르키안은 그리 말하며 생각에 잠긴 파렐을 바라봤다.

“그러니 다시 묻겠네. 출발은 언제로 하겠나?”

세 사람의 시선이 파렐에게 향했다. 그는 눈을 감으며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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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내려앉은 라우니안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열린 성문은 고작 마차 하나가 빠져나갈 정도로 열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닫혔다.

마차 한 대가 어둠을 가르며 길을 나아갔다.

목적지는 알에리 영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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