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46화입니다. (46/75)



〈 46화 〉46화입니다.

“아무도 없을 거라며?”


“음… 에헷?”

“에헷은 지랄.”


자비없는 주먹이 옆구리를 쑤셨다. 건물이 허물어지듯 스르륵 주저 앉은 샬럿이 고통에 잘게 몸을 떨었다. 비올렛은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샬럿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과연 대욕탕이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라는 건지 이름만큼이나 거대한 공간이었다. 천장은 고개를 꺾어야 보일 만큼 드높았고 저택에 배정받은 방을 십수 개는 합쳐야 이곳과 같을 만큼 넓었다.

그리고 그런거대한 공간 가운데 웬만한 수영장보다 넓은 욕탕에서  남자가 여유롭게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하필이면 저놈이라니…”



“다 들린다.”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는 것처럼 가까웠다. 흠칫 놀라며 알폰스를 바라보니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이릴을. 비올렛은 한  앞으로 나아가 그의 시선을 차단했다.

“비켜라. 안보이잖나.”

나른하게 말하는 모습에 절로 다리가 떨려왔다. 당장 그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범해진 지 고작  시간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자지가 제 안을 들어와 날뛰던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제게 다가와 또다시 무자비하게 강간을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킬 수는 없었다. 이릴까지 그의 손에 더럽혀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더럽혀지는 건 오직 자신 하나면 족했다. 입을  다물고 노려보고 있으니 헛웃음이 들려왔다.

“주제를 파악하라고 했던 게 몇 시간 전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끝자리에 있던 알폰스가 비올렛의 앞까지 도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기가 떨어지며 바닥을 적셨다. 그의 커다란 양물이 덜렁거리며 존재를 과시했다.

마치 조각상같은 육체가 비올렛 앞에 섰다. 수건으로 몸을 가린 그녀와는 다르게 실오라기 하나 가리지 않은 몸으로 내려다봤다.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한가?”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에 비올렛이 겨우 입을 열었다.

"이릴은, 안 돼."

"안된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하지 않을 것 같나?"

그럴  없을 것이었다. 알폰스는 자기가 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렵지 않게 취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릴은, 안타깝게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분명 알에리 후작의노예이기는 했으나 알폰스는그와 무척이나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알에리 후작이 친교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릴을 내어줄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한 비올렛은  안쪽을 잘근잘근 씹으며 불안해했다. 어떻게 해야 알폰스의 관심을 이릴에게서 돌릴  있을지 생각해야 했다.

아무 말도  하고 가만히 있는 비올렛의 머리 위로 비웃음이 들려왔다. 작은 머리통 위로 턱 내려앉은 커다란 손이 그녀의 고개를 들게 했다.


짙은 남색의 눈동자가 자색 눈동자를 집어삼킬 듯했다.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그를 바라봤다.

시선을 먼저 피한  비올렛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릴은, 안 돼… 부탁이야."

숫제 애원하듯 말하는 목소리에 알폰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무어라 말을 내뱉기도 전에 그의 손에서 비올렛을 채가는 사람이 있었다.

텅 빈 손을 한번 보고는 비올렛을  껴안으며 뒷걸음질 치는 이릴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와 닮아있었다.

"...후작께서는 저희가 함께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주셨습니다. 메르씨엘 남작께서도 말이지요."

"그것과 이 상황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군."


"저희의 시간을 인정해주신다는 뜻입니다. 남작님. 저와 영진… 비올렛이 함께 있을 때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권리를 말입니다."

"그런 의미였던가?"


"해석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그 당돌한 말에 알폰스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유약하기 짝이 없는 외형에 버려진 사생아일 뿐이라생각했더니 이런 당돌함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비올렛과는 다른 의미로 흥미가 생기는 사람이었다.


알폰스는 손바닥을 보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장난일세 장난. 비올렛이 조금 과하게 반응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내가 먼저 사과하지."


"...괜찮습니다. 그보다 아래쪽을 가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음? 아아, 아직 처녀에게는 과한 자극이겠군."

그 말에 이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날카롭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시선을 아래로 내릴 수가 없었다. 알폰스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폰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웅크리고 있던 샬럿의 수건을 빼앗아 허리에 둘렀다.


“...왠지 저 취급이 나쁘지 않나요?”



졸지에 알몸이 된 샬럿이 볼멘소리를 내뱉었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알폰스는 한 몸인 것처럼 꼭 달라붙은 비올렛과 이릴을 바라봤다.

‘역시 그때 둘  가졌어야 했어.’

후작에게 양보한답시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었다. 하프 엘프가 아니라 엘프로 하나 제대로 구해준다고 했더라면 받아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후작 역시도 그것을 원했을 것이었고.


하지만 이미 시기는 지난 지 오래였고의식은 준비되는 중이었다.

비올렛에게 협박을 하듯 말하기는 했으나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는지경까지 왔단 말이었다.

‘아깝다, 아까워…’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알폰스는 눈을 한번 깜빡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방해꾼은 빠져줄 테니 좋은 시간 보내길 바라지.”

그러면서 비올렛의 머리에 스치듯 쓰다듬고는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이릴은 사라지는 알폰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내려 비올렛에게 물었다.


“괜찮아?”

“...응.”

비올렛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릴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메르씨엘 남작이  함부로 건들 수는 없을 거야. 나는… 알에리 후작의 소유물이니까.”


씁쓸한 말이었으나 사실이기도했다.

“그것보다도 난 네가 더 걱정이야, 영진.”


“...나도 괜찮아.”

“괜찮아보이지 않아. 방금도… 아니, 아니야. 내가 실언을 했네."


이릴은 그녀를 꼭 껴안고는 떨어졌다. 멀어지는 온기가 조금 아쉬웠으나 슬픈 눈으로 자신을 향하는 비올렛의 모습에 억지로 미소지었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면 기분이 조금 풀릴  같아. 그렇지?"


"...응, 그럴 거야."

비올렛은 여전히 물이 무서웠다.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물은 여전히 트라우마의 대상이었고 몸을 담그면 숨이 답답했다.


그러나 슬프게 웃는 이릴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할 뿐이었다.

-


"정말이지 비올렛이고 주인님이고 너무해요!"

따뜻한 물에 발만 담그고 있던 비올렛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샬럿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뭐야 갑자기.”



“아까만 해도 그래요! 저를 빼놓고 이릴 님과 둘이서 욕탕으로 들어가질 않나! 주인님은 쓰러져 있는 절 무시하고 수건을 뺏어서 그냥 가버리질 않나! 뭔가  취급이 너무 하지 않나요?!”

확실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비올렛은 불퉁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마사지를 해드려도 될까요?”


언제 분통을 터트렸냐는 듯 평소의 목소리로 돌아와서능글맞게 말했다. 보나 마나 허튼짓을 할  뻔해서 꺼지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의외의 사람이 반응을 보였다.


“마사지라니, 샬럿 님은 그런 것도 할 수 있으신 건가요?”

“모시는 분의 피로를 풀어들이는 건 종자의 소명이니까요. 무척이나 당연한 거랍니다?”



“그럼 제가…”

“잠깐, 이릴.”

비올렛의 말에 이릴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음수는 비단 알폰스만이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굳이 악랄함을 따지자면 이 녀석이지.’

같은 성별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제 욕망을 채우는 더러운 녀석.

알폰스가 난폭하며 잔혹한 인물이라면 샬럿은 음흉한 녀석이었다.

“뭔가 제게 나쁜 말을하고 있는 듯한 표정인데요.”



“맞아.”

“이젠 숨기지도 않으시네요, 비올렛. 그래서 어쩌시겠어요? 이래봬도 제 마사지 실력은 주인님도 칭찬해주실 정도랍니다?”

그럼 더욱 고민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알폰스가 칭찬해줬다는 건 분명 좋은 의미로 칭찬해줬던  아닐 것이었으니까.

“당연히 싫…”




“한번 받아봐도 될까요?”




“이릴?!”

배신당했다는 얼굴로 돌아보는 비올렛의 모습에 이릴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사지라는 거 한번 받아보고 싶었거든. 나는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아니, 그건…”

그렇게 말하면 말릴 수가 없잖아. 비올렛은 어깨를 늘어트렸다. 아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홱 고개를 들어 샬럿에게 말했다.

“너, 이릴에게 이상한 짓을 하면 내 손에 죽어.”



“제가  했다구요?”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자기가 한 행동을 잊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니면 폭력을 기억하던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는 샬럿에게 조용히 주먹을 들어 올리니 찔끔하며 고개를 돌렸다.

정도면 충분히 협박이 되었겠지.

“정말이지 난폭하다니까요.”



“네 주인만 하겠냐.”

“‘우리’ 주인이지만요.”



이게. 욕탕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자 후다닥 이릴의 손을 이끌고 멀리 도망친다.

그런데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어디까지 가?”


“이곳에 마사지 전용 시설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구요.”



메아리치듯 샬럿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대욕탕 안에는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건지 모를 문이 많았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욕탕으로 개조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결국 이릴과 샬럿이 밀실에서 단둘이 된다는 게 아닌가.


‘절대로 그렇게  수 없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이릴을 그런 음수와 단둘이 둔단 말인가. 비올렛은 욕탕에서 빠져나와 그들의 뒤를 밟았다.


샬럿은 이릴을 이끌고 어느 문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바깥에서 볼  있는 창이 나 있어서 안쪽을  수 있는 구조였다.


벽에 달라붙은 비올렛이 곁눈질로 안쪽을 바라봤다.

수건을 걷어내고 엎드린 이릴의 새하얀 등이 보였다. 갑작스레 보이는 살결의 향연에 비올렛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마사지를 하는데 당연히 벗고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갑자기 눈에 들어오니 어쩔  몰랐다.


비올렛이 여자의 몸이  것도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었으나 여체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남성에 가까운 것이었고 남자보다 여자가 좀 더 성적으로 좋았다.

몸을 보고서 얼굴을 붉히지 않게 된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친애인지 사랑인지 모를 여자의 나신을 보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비올렛은 이것을 계속 봐야할 지 어쩔지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마사지가 시작됐다. 그녀의  위로 노란빛이 감도는 오일을 뿌리고는 손으로 넓게 펴 바르며 뭉쳐 있던 근육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등부터 시작해서 팔과 손가락, 그리고 둔부에서 내려와 허벅다리에서 쭉 내려가는 손길.


의외로 제대로 된 마사지였다. 고간을 훑으며 움직이는 손길에도 음심이 깃들어 보이지 않았다. 이릴은 조금 부끄러워하는  같기는 했지만. 비올렛은 그렇게 생각하다 몸을 뒤집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 이상은 봐서는 안될 것 같았다. 비올렛은 황급히 소리 없이 움직여 욕탕으로 향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마사지를 끝낸 듯한  사람이 근처로 다가왔다.

“으응, 확실히 마사지를 받으니까 몸에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네요.”




“그쵸? 그것 뿐만 아니라 가슴을 집중적으로 마사지 받으면 좀 더 커질 수도 있어요.”

“그건 좀…”


“왜요? 남자들은 다 큰 거 좋아하는데.”

팔로 가슴 아래를 받치며 샬럿이 말했다. 확실히 그녀의 가슴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큰 존재감을 발휘했다. 이릴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고 비올렛만이 어이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누구 좋으라고 가슴을 키워?”

“음… 주인님?”

염병하고 있네. 이릴이 옆에 있기에 차마 내뱉지는 않았으나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보다 비올렛도 한번 받아 볼래요?”


“뭐?”



“마사지요. 마사지. 이릴도 이렇게 좋아하잖아요?”


도대체 언제 말을 놓은 거야. 어이 없는 눈으로 이릴을 바라보니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시선을 피한다.


“싫어. 네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에이, 그러지 말고 한번만 받아봐요~”

“그래, 한번 받아봐. 괜찮은 거 같아.”


“먼저 받은 이릴도 이렇게 말하잖아요?”




“아니…”

비올렛은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알았어. 대신에 정말로 허튼 짓하면 용서 안해.”




“제가 금붕어도 아니고 그러겠어요?”

그러면서 손을 잡고 아까처럼 이끌었다.

‘응? 이건…’


아까  이릴과 들어갔던 방을 지나친다. 비올렛이 그것을 보고 뭐라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을 말한다는 아까 마사지 하는 것을 훔쳐봤다는 걸 시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방을 하나 걸러서 들어간 곳은 문을 닫자 바깥과 소음이 차단된 듯 조용해졌다. 비올렛이 방를 살펴보고 있으니 준비가 끝난 샬럿이 침대 같은 매트 위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아, 엎드리시고 수건 벗으세용~”

“뭐야  말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순히 매트 위로 올라가 엎드리고는 수건을 벗었다. 벗은 수건은 샬럿이 받아들어 수건 걸이에 걸었다.

“정말 수상한  하면 바로…”



“알았어요, 알았어. 절대로 안할게요.”



거짓말이지만. 그녀의  위로 분홍빛이 감도는 오일이 떨어져 내렸다.


비올렛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마사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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