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40화입니다. (40/75)



〈 40화 〉40화입니다.

“엘프, 라는 종족에 대해서 알고 있나?”

“...잘 모릅니다.”


느닷없이 걸려온 말에 파렐은 조금 늦게 대답했다.

그는 황도로 가기 위해 마차를 타고 있었다. 힙킨스 남작의 저택에서 여비를 받고 출발한  닷새째였다. 말코를 가진 남자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하려했다.


아무래도 마차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게 심심했던 것 같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종족이라지. 긴 귀에 보석 같은 푸른 눈을 가지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추수기의 바흐렌 대평야처럼 황금빛이라고 하더군.”

“그렇군요.”

추수기의 바흐렌 대평야를 본 적은 없었으나 파렐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뿐인가? 대모신 라움의 첫 번째 자손이라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하지 않나. 우리 인간들은 육십 년을 살고 죽어도 잘 살았다고 하는 판에 그들은 천 년을 우습게 산다고 하니…”


“오래 산다는 게 좋은 건가요?”

“예끼 사람아. 그럼 죽는 것보다야 낫지!”


 당연한 걸 묻느냐는 것처럼 경을 쳤다.

“귀족들은 더 할 거야. 우리들이야 천년만년 살아도 농사나 짓는 게 고작인데, 그 치들은 평생을 넘게 군림할  있을 테니 말이지.”

이걸 굳이 조용히 말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어차피 마차 안에는 말코(이름을 모르니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와 자신 둘뿐이었는데 말이다.

말코는 마른 입술을 적시고는 다시 조용히 말했다.

“하여튼, 그런 강한 생명력 덕분에 이런 소문도 있다네.”

“소문, 이라고 한다면?”


엘프를 먹으면 그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소문.


파렐은 가슴이 섬찟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그저 식인 행위에 불과하지 않나.

굳은 얼굴로 말코를 바라보자 언제 진중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호탕하게 등을 두드렸다.


“하하!이 친구, 쫄았구만 쫄았어!”

“...농담이었습니까?”

“재미있지 않았나?”


개뿔이. 눈으로 그렇게 대답하니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말했다.

“뭐, 그런  있지 않은가. 오래 사는 자라나 거북이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으니 정력에 좋을 거다 같은 미신들 말이지. 자네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 믿지 않았나?”


“...아니라곤 말하지 않겠습니다.”

“에잉, 조금 놀렸다고 딱딱하게 굴기는.”

 소리를 내며 마차벽에 등을 기댄다. 잠시 마차 안에서 정적이 감돌았다.

파렐은 눈을 감고 있는 말코를 보며 말했다.

“엘프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엘프? 당연히  적 없지. 그 치들이 보이지 않게 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고 하니 말이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고.”


그 말에 말코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20대의 얼굴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늙음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티 내지 않고 말했다.

“보이지 않게 되었다니… 어째서죠?”

“글쎄… 인간이 미워지기라도 했나 보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두었던 모자를 눌러썼다. 아마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청할 생각인 것 같았다.

멋대로 말을 걸더니 멋대로 대화를 끊어버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으나 파렐도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덜컹거리며 마차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

“굳이 화장까지 해야겠어?”


“얼굴 펴요. 화장 일그러지니까요.”


단호하게 꽂히는 말에 비올렛이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그것을 붉은 연지를 바른 손가락으로 꾹 눌러 넣으며 샬럿이 말했다.

“이틀 뒤부터 이곳 알에리 저택에서 후작님이 주최하시는 파티가 일주일간 열려요. 그만큼 다른 귀족분들도 오시고요.”


“그게 내가 화장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죠. 비올렛은 주인님이 데려온 소유물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주인님의 위엄이 살지 않겠어요?”

그런 놈의 위엄 따위 살려주고픈 생각이 전혀 없지만. 비올렛이 속으로 툴툴거리다 문득 샬럿의 말에서 떠오른 것을 입에 담았다.


“파티? 이곳에 온 이유가 파티 때문이라고?”


“어머, 모르셨어요?”


“지쳐서 자고 있던 사람을 말없이 끌고 가놓고는 모르셨냐는 말이 나오냐?”


게다가 그 상태로 끌려가서 또 쉴 틈 없이 박혔다. 다시 떠올리니 절로 이가 갈렸으나 샬럿의 제지에 한숨을 내뱉었다.

“알에리 후작님은 주인님과 아주 긴밀한 관계이시죠. 일단 같은 전쟁에서 활약하시기도 했고요. 물론 고작 그런 이유로 이 파티에 초대받은  아니지만 말이죠. 일종의 파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거 관심 없어.”


“이다음에 나올 말이 정말로 중요한 정보라고요? 남들은 억만금을줘도 못 듣는 이야기예요?”

“오늘따라  이렇게 말이 많아?”


재잘거리며 귀를 간질거리게 만드는 통에 정신 사나울 지경이었다. 비올렛이 짜증을 내며 말하자 거울 속의 샬럿이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을 표했다.


“나중에 후회해도 저는 몰라요.”

“후회 안 하니까 빨리 끝내기나 해. 저기 기다리고 있는거 안 보여?”

그 말에 부서진 침대에 앉아 있던 레니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아차, 그러고 보니레니가 있었죠. 미안해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샬럿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비올렛을 치장시키는데 열중하다 보니 그녀의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레니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괜찮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비올렛이 저를 위해줬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도 그녀들을 찾느라고 저택의 방을 죄다 뒤진다고 허비한 시간이 많았다. 말을 하지 못하는 몸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직접 한  한 곳 전부 찾아봐야 했다.

그래서 치장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작은 불안감이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녀의 주인이 식당으로 모시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함이었을 텐데 이미 그런 시간은 훌쩍 넘은 상태였다.


거울 너머로 그런 불안을 읽은 비올렛이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나 때문에 늦었다고 해. 아니, 내가 그렇게 말해주지.”


레니는 그 말에 눈을 깜빡이다 작게 미소를 지었다.

말을   없어서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비올렛이 그렇게 말해봐야 역효과일걸요?”

“조용히 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주인님  분이라면 비올렛의 모습을 보고 납득해주실 테니까요.”


자아, 끝났답니다. 샬럿의 말에 몸을 일으킨 비올렛이 몸을 돌려 레니를 향했다.

레니는 작게 입을 벌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솔직하게말해서 레니는 비올렛을 처음 봤을 때 겁을 먹었다.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 머리 위에 큼지막한 토끼 귀 한 쌍을 달고 있는데  그럴 수가 있을까.

게다가 인상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샬럿과 대화하며 얼굴을 찌푸릴 때마다 섬찟하고 놀라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예쁘기는 했으나날렵한 눈매나 무뚝뚝한 행동거지가 그러니 외모는 뒷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레니는 살면서 봤던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어떤 표현을 써도 모자랄 그런 사람이.

멍하니 자신을 올려보는 시선에비올렛이 작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듯 긁었다. 레니가 어째서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내 모습이 이상한가? 의아한 눈으로 샬럿을 바라보니 작게 입을 가리며 웃는다.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몸을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나름 봐줄 만한 얼굴이었다. 화장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는 확실히 활기가 있어 보였다. 허리를 꽉 조인 덕분에 복부 쪽이 답답하긴 했으나  덕분에 잘록해진 허리를 따라 몸의 라인이 아름답게 이어졌다.


단정히 내려 빗은 머리덕분에 조금 차분한 인상을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날렵한 눈매 때문에 날카로워 보이기는 했지만.


딱히 이상한 구석은 없는 것 같은데. 이리저리고개를 돌려가며 거울을 바라봤다.

그런 비올렛의 어깨로 샬럿의 손이 올라왔다.

“자아, 거울은 그만 보시고. 이제 가야죠?”

엇 하는 사이 몸이 빙글 돌아 문으로 향했다. 그제야 레니도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다리를 움직여 그들을 따라잡고는 앞장을 섰다.


복도를 걷는 걸음마다 시선이 모였다. 지나치는 사용인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도 흘끔 눈을 돌려 비올렛의 얼굴을 스쳐 갔다.


멀리서 사내 몇이 모여 숙덕거리는 소리가 큰 귀를 타고 들려왔다. 들리지 않는다 생각하며 정욕적인 말을 내뱉는다. 자신을 범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단어가 되어 계속해서 귓가로 날아들었다.


비올렛의 얼굴이 옅게 찌푸려졌다. 성격대로라면 당장 걸음을 돌려 헛소리를 내뱉는 놈들의 뼈를 분질러 버렸을 것이었다. 그러지 않는 것은 눈앞의 작은 아이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여기서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친다면 난처해지는 것은 레니였다.


그렇기에 분노를 억눌렀다. 주먹을 쥐고 눈에 힘이 절로 들어가 평소처럼 사나운 눈빛이 되었으나 날뛰지 않는 것만 하더라도 비올렛이 많이 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커다란 문이 보였다. 병사  명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다가오는 일행을 보고는 문 안쪽으로 무어라 이야기를 했다.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병사는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열었다.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문 안으로 휘황찬란한 공간이 보였다. 길게 뻗은 식탁과 줄지어 정돈된 수많은 의자. 벽에 서 있는 수많은 사용인까지. 알폰스의 저택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으나 규모는 배로 컸다.

“조금 늦었군.”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레니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비올렛은 잘게 떠는 작은 등을 보며 시선을 돌렸다.


저 다부진 체격의 노인이 알에리 후작일 것이었다. 알폰스는 그의 오른편에 앉아 저를 흥미롭게바라보고 있었다. 비올렛이 그 시선에 주저 없이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려던 참이었다.


‘...응?’

그의 맞은 편으로 누군가 있었다. 비올렛의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 그 상대도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푸른 눈동자에 물기가 차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천천히 식탁을 돌아 비올렛에게로 다가왔다.

“비올렛?”

아무것도 모르는 샬럿이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불렀으나 이미 발은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감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한 걸음. 비올렛은 흐트러진 호흡을 내뱉으며 가까워진 이를 바라봤다. 뺨을 적시며 흐르는 눈물이 애달프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잘 지냈느냐라고 말하기에는 서로가 잘 지내지 못했을 거라는 것쯤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올렛은 제 멍청한 머리를 욕했다. 분명 다시 만난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많았는데 눈앞에 두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걸음. 본능적으로 해야될 행동을 떠올렸다. 해주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서로의 숨결을 느낄 만큼 가까워졌을 때 비올렛은 행동했다.


팔을 뻗어 그녀를 품 안에 안았다. 자신보다 키가 컸기에 안았다기보다는 제가 안긴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어깨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에 입이 작게 벌어졌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입을 열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한참이나 그러고서야 지그시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고마워, 이릴. 고마워… 정말로...”


나를 지탱해줘서. 나를 지켜줘서. 나를 잊지 않아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흘러나왔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 새하얀 드레스를 적셨다. 가슴팍이 젖어 드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이릴은 더욱 강하게 그녀를 껴안았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물기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드디어 만났네요.


 머릿속에서는 벌써 눈물 줄줄 뽑으면서 정말 띵작입니다 선생 하는 장면이었는데 막상 써놓고보니까 별로 그렇게 눈물 줄줄 나오는 정도는 아니네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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