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7화입니다.
“주군, 준비가 끝났… 흠.”
문을 열고 들어오던 부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질펀한 정사의 냄새가 코를 괴롭혔다. 짜증을 숨기지 않으며 손으로 코를 막은 부관은 눈을 굴려 집무실 내부를 살폈다.
책상 위에는 정신을 잃은 비올렛이 널브러져 있었고 샬럿은 바닥에서 죽은 개구리 같은 모습을 하며 알폰스의 자지를 받아내고 있었다. 허리를 부딪칠 때마다 간헐적으로 신음을 내뱉고는 있었으나 그녀 역시도 의식을 잃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체액으로 더러워진 책상과 얼룩진 바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관은 코를 막은 손을 내려 깊게 호흡했다. 농밀하고 짙은 음란한 냄새가 코를 타고 폐와 머리를 가득 채웠다.
적어도 며칠은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야 빠질 것 같았다. 책상과 바닥은 닦아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교체를 해야 할 것이었다. 물건에 베인 냄새와 얼룩은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이 방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은 교체해야 할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부관은 길게 숨을 토해냈다.
이 집무실은 무슨 일이 있지 않는 한 부관이 항상 있는 공간이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니 먹고 자는 것까지도 이곳에서 해결할 때가 많았으니 사실상 그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원주인은 주군인 알폰스였으나 실거주자는 부관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물건에 애착이 강한 사람이었다. 노예로서 생활할 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천성이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꽤 제 물건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 맥락으로 부관은 이 집무실이란 공간과 물건을 제 것처럼 아꼈다. 손때가 묻어 더 이상 하얗지 않은 깃펜조차도 말이다.
“주군.”
“뭐냐.”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에 알폰스가 허리를 힘차게 부딪치며 답했다. 아래에서 자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바르르 떨며 체액을 뿜어냈다. 그것도 모자라 쪼르륵 노란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부관의 얼굴에 골짜기가 깊어졌다.
“나가 뒤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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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테 라움 알에리 후작. 그는 황실의 어른이자 현 황제의 숙부였다.
본디 후작이 아니라 대공이라는 작위를 물려받는 것이 마땅했으나 그것을 거부하고 기사가 되어 황실을 지키는 검으로 살았다. 죽고 싶지 않았기에.
아버지인 황제는 형인 황태자의 권력이 분산되길 원치 않았다. 그 자신 역시도 형제들에게 분산된 권력에 얼마나 휘둘렸던가.
피를 피로 씻어내리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황제가 되었으니 제 후계자 역시도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랐을 것이었다. 그것을 눈치채고 황족의 권리를 잠시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
아버지 황제가 죽고 황태자가 황제가 되고 나서도 그는 오랜 시간 기사로서 최전방에서 싸웠다. 칼을 맞대고 있는 적들보다 제 혈육이 무서웠기에.
그가 다시 수도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황제에게 병환이 들었을 때였다. 나약해진 황제는 하나뿐인 제 형제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대공의 작위를 내리려 했다.
하지만 그는 거부하였고 결국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드넓은 영지와 함께 알에리 후작이라는 작위를 받아들였다.
여전히 삶을 갈망했기에.
그는 알에리 후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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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을 받고 닷새가 흘렀을 때 메르씨엘에서 출발한 마차가 알에리에닿았다. 마부는 말을 몰며 길게 선 검문 줄을 지나치며 마차 안을 향해 말했다.
“주인님, 곧 알에리 저택에 도착합니다.”
대답 대신 억눌린 신음이 들려왔다. 쾌감을 참으려고 애쓰는 듯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토해내는 여린 목소리에 절로 마부의 바지춤이 불룩 솟아올랐다.
‘나도 한 번만 박아봤으면…’
쩝, 입맛을 다시며 고삐를 흔들었다.
그가 모는 마차 안에는 주인인 알폰스와 노예 하나가 타고 있었다. 비올렛이라는 이름의 여인이었는데 무척이나 아름답고 색기가 넘치는 요물이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늘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옆에 알폰스가 있는 게 아니었다면 저도 모르게 달려들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랬다가는 물리적으로 목이 달아날 테니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아무튼 그들은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쉼 없이 정사를 벌였다. 마차가 흔들릴 정도로 무척이나 격렬하게 말이다.
마부에게는 고역인 일이었다.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에 절로 비올렛의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져서 아래쪽에 피가 쏠렸다. 어쩔 수 없이 한 번씩 마차를 멈췄을 때 화장실을 간다는 명목으로 몰래 빠져나가 해결하고는 했다.
그 사이에도 두 사람은 끊임없이 몸을 섞었다. 주로 알폰스가 비올렛을 겁탈하는 것이었으나 마부에게도 아주 나쁜 일은 아니었다. 유흥이라며 사용인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그녀를 범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때 본 광경이 머리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았다. 얼굴을 발갛게 하며 손으로 가리고는 보지 말라며 앙앙 소리치는 모습은 정말로 살면서 봤던 몇 안 되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정욕이 끓어오를 때면 그때를 떠올리며 해소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멀리 알에리 저택이 보였다. 과연 황실의 어른이라는 것인지 저택이 아니라 성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크기였다. 커다란 대문을 지나 정원으로 들어서니 멀리서 마중을 나와 있는 무리가 보였다.
개중에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으나 기골은 장대하여 굽지 않았고 정장 위로도 숨길 수 없는 근육이 드러나 있었다.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웬만한 장정보다 강인해 보였다.
그리고 마부는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가테 라움 알에리. 제국에서 단 셋 밖에 가지고 있지 않고 황실의 직계만이 가질 수 있는 라움의 이름을 지닌 자 이자 전쟁 영웅으로도 불리는 위대한 기사.
그런 그가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마부는 황급히 마차 벽을 두드렸다.
한창 재밌을 때 방해를 받은 알폰스가 짜증어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뭐야?”
“주인님, 알에리 후작님께서 나와 계십니다.”
“벌써 도착했나.”
그렇게 중얼거리고 몇 번 살이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마지막 스피드를 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미 마차는 멈춘 지 오래였다.
마차 안에서는 여전히 정사가 격렬히 벌어지고 있었고 후작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시립해 있던 사용인들과 마부만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불안해했다.
제아무리 알폰스라고 하지만 상대는 전쟁 영웅이자 황제의 숙부였다. 그리고 작위 역시도 알에리 후작, 메르씨엘 남작이라는 지방 귀족의 이름과는 다르게 중앙정치에 발을 들이고 있는 대귀족이란 말이다.
그때 뒤따라오던 마차에서 문이 열렸다. 마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부관이 메이드장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메이드장은 기품있는 걸음걸이로 다가와 귀족의 예법에 맞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뵈어요, 후작님.”
마부는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주인도 아니고 일개 메이드장이 먼저 인사를 건네다니! 머지않아 노호성이 터지리라 예상한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대는 여전히 아름답군요.”
힘있게 묵직하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제 머리보다 작은, 외관으로는 손녀뻘인 메이드장의 손등에 부드럽게 키스를 하며 은은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노인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문이 벌컥 열렸다. 샬럿과 알에리 후작은 고개를 돌려 마차 안을 바라봤다. 백탁액으로 범벅이 된 비올렛이 넋이 나간 얼굴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검은색 드레스는 이미 제 색을 잃고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알폰스는 느긋한 얼굴로 바지춤을 추스르며 바깥으로 나왔다. 샬럿은 마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에 부럽다는 듯 비올렛을 바라보고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냄새 하나 없이 말끔해진 알폰스가 귀족답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알에리 후작 각하.”
“그대는 언제봐도 정력적이군.”
“젊으니 말입니다.”
“허허! 그래, 젊다는건 축복이지!”
후작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알폰스 역시 곧바로 마주 잡았다.
“잘 왔네. 자네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어.”
“제가 제일 늦은 겁니까?”
“다른 치들이 어떻든 자네와 샬럿 양만 있으면 되지 않겠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알폰스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런, 다른 분들이 들으면 속상해하겠군요.”
“괜찮아. 어차피 자네한테만 하는 소리가 아니니 말이지.”
노인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알폰스의 뒤를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저건 이번에 새로 산 노예인가?”
“예, 보다시피 백토 공주입니다.”
“어째 그런 귀한 건 그대가 다 가져가는 것 같아.”
“하하, 후작님도 이번에 아주 귀한 걸 구하셨지 않습니까?”
“이런, 벌써 그쪽까지 소문이 퍼졌나?”
단순히 편지에 적혀 있던 내용을 읊는 것이 아니었다. 후작은 그것을 깨닫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숨길 수가 없군그래. 일단 이렇게 바깥에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는 게 어떤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으로 나와 있던 사용인들도 그들을 뒤쫓았다.
샬럿은 그 모습을 보다 여전히 잘게 경련하고 있는 비올렛을 쿡 찌르며 말했다.
“살아있어요?”
“으, 읏…”
“부럽다. 나도 주인님이랑 같은 마차 타고 싶었는데…”
‘그럼 진작에 바꾸던가 썅년아.’
그렇게 내뱉고 싶었지만 쉬이 가시지 않은 절정의 여운이 입술조차 달싹이지 못하게 했다.
샬럿은 눈으로 욕하는 비올렛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는 마부들에게 말했다.
“말과 마차는 좀 있으면 후작님의 사용인들이 와서 인솔할 테니 사용인 숙소로 가던 무엇을 하던 자유롭게 행동하시길.”
작게 눈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려 저택으로 향했다. 조용히 그 뒤를 부관이 따랐다.
“...자유롭게 행동하라고?”
마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물론 제 역할이 이것으로 끝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돌아가기 전까지 딱히 할 일이 없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행동하라니, 마치 돌아가기 전까지 마차를 탈 일이 없다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자네는 여기 처음 오지?”
“예? 아, 예.”
메이드장과 부관이 탄 마차를 이끌었던 동료 마부가 말을 걸었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인 자신과 다르게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원래 여기 처음 오면 다들 그런 반응이더라고.”
“정말로 자유롭게 움직여도 되는 겁니까?”
마부는 의문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선배 마부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자네 돈 많나?”
“예? 아뇨, 많진 않습니다만…”
물론 이번 마차행으로 돈을 두둑이 받긴 했으나 이곳에서 쓰고자 받은 건 아니었다.
“그럼 최대한 쥐죽은 듯이 숙소에만 있게.”
“어째서입니까?”
“이유를 알려고 하진 말아. 그러다 목 달아나는 거 순식간이니까.”
그렇게 말한 선배 마부는 멀리서 다가오는 사용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서로 익숙해 보이는 것이 퍽 친숙해 보였다.
마부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들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를 건넸다. 떠오르는 의문을 뒤로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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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후기란이 없어서 불편한 것입니닷...!
갑작스러운 시간 점프지만 이렇게 해야 지루한 구간을 넘길수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연참으로 밀어버려야하는데 요즘 통 글이 손에 안잡혀서...
정진 또 정진하겠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