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31화입니다. (31/75)



〈 31화 〉31화입니다.

“후우.”


비올렛은 숨을 깊게 내뱉으며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


수위가 차오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호흡이 가빠왔다. 정신을 놓으면 곧바로 발작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버텼다.


 아래로 수면이 넘실거렸다. 온도는 따뜻하건만 한겨울처럼 몸이 떨려왔다. 엉덩이가 자꾸만 들썩거리며 욕조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래도 비올렛은 꿋꿋하게 버텼다.

시간이 지나자 떨리던 것이 조금 잦아들었다.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눈을 뜨니 일렁거리는 수면 위로 제 얼굴이 비쳤다. 재빨리 고개를 들어 천장을 향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욕실 천장이 거울로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겁에 질려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비올렛 자신이었다. 정말로 우스운 꼴이라 그것이 못마땅해 부러 물을 적신 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닦았다.


얼굴에 물이 닿자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물이 몸에 닿는 것보다 얼굴에 닿는 게 더 공포감이 느껴졌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하였지만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는 상태가 아니었다.


비올렛은 과호흡하는 것처럼 힉힉 거리며 숨을 마셨다.

“비올렛?”


바깥에서 샬럿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올렛은 가슴을 두드리며 억지로 숨을 내뱉었다. 컥 하고 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축 늘어지며 욕조 끝에 머리를 기댔다. 별거한 것도 없는데 기진맥진해졌다.

“흐, 왜?”


“아뇨, 갑자기 조용해졌길래 기절했나 해서요.”

“네가 있는데 여기서 기절 같은 걸 할까 보냐.”

 척 말하기는 했으나 까딱하면 정말로 그렇게 될지도 몰랐다.


비올렛은 억지로 목소리를 크게 하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데?”


“바구니 안을 보시면 옆으로  병이 하나 있을 거예요.”


“옆으로 긴 거… 이건가?”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하나가 보였다. 뚜껑을 돌려 보니 익숙한 아카시아 향이 났다.


“그걸 양손에 가득 사용하셔서  전체에 골고루 바르면 돼요.”

그녀의 말대로 살짝 점성이 있는 향유를 양손에 바르자 순식간에 욕실 안이 아카시아 향으로 가득 찼다.


비올렛은 그것을 바르면서 샤워 타올을 떠올렸다. 일일이 손으로 바르기보다는 그런 물건을 사용하는 게 더 쉽지 않나?


샬럿이 들었다면 코웃음 칠 생각이었다. 애초에 향유라는 것은 사치품이었다. 일반 평민은 꿈에도 못 꿀 물건. 그런 향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 부자이거나 귀족이라는 뜻이었다. 굳이 제 손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사용인을 시켜서 하면 될 일이었다.

오히려 비올렛이 이상한 것이었다. 애초에 홀로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었는데 굳이 혼자 하려고 하니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군말 없이 향유를 몸에 발랐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지나 손등을 거쳐 팔뚝으로 내려와 겨드랑이까지.


“읏.”

문제는 가슴을 지날 때였다. 봉긋 솟아있는 돌기를 스치고 지나갈 때 비올렛은 무언가 찌릿하고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화들짝 놀라 손을 떼니 언제 그랬냐는  허공으로 흩어졌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제보다는 덜 했지만, 그와 유사한 느낌에 비올렛은작게 당황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손을 올렸다. 목덜미를 밀어 올리던 손이 천천히 가슴으로 내려갔다. 살짝 볼륨감 있는 언덕 위로 빳빳하게 서 있는 돌기가 보였다.


비올렛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손바닥이 돌기와 스쳐 지나갈 때마다 저릿한 감각이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엉덩이가 절로 주춤거리며 뒤로 빠졌다. 그제야 그녀는 이 감각이 무엇인지  수 있었다.

이건 쾌락이었다.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느끼는 성적인 쾌락. 당장 가슴 근처를 서성거리는 손을 떼 내고 행위를 중단함이 옳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저릿거리며 올라오는 쾌락이 전날의 샬럿과의 행위를 떠올리게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아… 흣…”

가느다란 손가락이 돌기를 문지를 때마다 옅은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다른 손을 비부로 향했다.

-

‘이제야 효과가 돌기 시작했나요?’

욕실 안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샬럿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게도 비올렛이 갑작스레 자위를 시작한 이유는 그녀 때문이었다.


향유에 미약을 탔다. 하지만 전에 썼던 것보다는 몇 배나 약한 종류였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전희용이라고 할까. 조금 흥분을 하게 만드는 정도였다. 어느 정도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사리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저급한 물건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비올렛의 정신이 위태롭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샬럿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자신을 불렀을 때, 이번에야말로 제게 의존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었다.


갖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도라면 주인도 허락하리라.


“여기서  하는 거지?”

“으햑!”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샬럿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뭐, 뭐야? 무슨 일인데?”

그 목소리에 욕실 안에 있던 비올렛 역시도 당황하며 물었다. 샬럿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알폰스에게 말했다.


“어,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 아침 식사가 끝나가는데도 너희가 내려오질 않으니 말이지. 헌데 말이다.”

커다란 손이 샬럿의 뒷머리를붙잡았다. 머리카락이 당겨지는 고통에 신음하기도 전에 알폰스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마를 마주 부딪치며 그가 말했다.


“내가 분명 비올렛을 아침 늦지 않게 데려오라 하지 않았던가?”


“아차…”


이제야 기억이 떠올랐다. 샬럿이 조금 당황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다른 누군가 봐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이 티가 날 정도였다.


알폰스의 눈매가 아름답게 휘어졌다.

“샬럿.”

“네, 네엣…”

“주인의 말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지금 묻진 않으마. 그건 내가 너를 총애해서도 네가 유능해서도 아니야. 너를 체벌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그것을 미루는 거다.”


“가, 감사합니다…”


샬럿이 대답하자 머리카락을 억세게 쥐고 있던 손길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주인에게 체벌을 받는다는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샬럿은 알폰스가 자신을 체벌해주기를 바랐다.

그녀는 마조히스트였다. 다리가 풀린 것은 단지 체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알폰스 역시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주저앉아 있는 샬럿을 무시한 채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아카시아 향이 비강으로 들어와 가득 차 올랐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냄새였다.

“뭐, 뭐야 너!”

물속에 잠겨 있던 비올렛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중요 부위를 가렸다.

알폰스는 천천히 비올렛의 몸을 훑었다. 역시, 몇 번을 봐도 매력적인몸이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품에 안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성큼 다가가 비올렛의 몸을 껴안았다. 옷이 젖어 들어갔지만 알폰스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소름 끼치는 감각에 비올렛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이거 놔!”

“미약을 썼군.”

“뭐? 우왓!”

알폰스는 대꾸하지 않고 그녀를 들쳐멨다.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비올렛이 반항했지만, 허리를 단단히 조이는 팔을 풀기란 쉽지 않았다.

-철썩.


“힉!”


“가만히 있어라. 들고 있기 힘드니까.”


엉덩이를 때리는 손길에 비올렛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뻣뻣이 굳었다. 그리고는 곧장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너, 너…!”

“샬럿, 일어서.”


알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며 욕실을 나와 샬럿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망상에 빠져 얼굴을 붉히고 있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네, 주인님.”


“전에 썼던 미약 이름이 뭐지?”

“체르니에 라고 하는 이름인데 추출하는 꽃에서 따왔다고 해요.”

“그런 세세한 것까지는 궁금하지 않아. 원액으로 얼마나 있지?”

“두 병하고 반병 있어요. 혹시 비올렛에게 쓰실 생각이라면 추천하지 않아요. 원액은 희석된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강력해서…”

“샬럿.”


주절주절 내뱉는 말을 끊고 알폰스가 그녀를 불렀다. 샬럿은 그가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합 입을 다물고 가지고 있던 체르니에를 모두 꺼내 건넸다.


알폰스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병을 보고는 뚜껑을 땄다.

샬럿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근데 이건 어디에 쓰시려고…”


“입 벌려.”

“네?”


“내가 두 번이나 말해야 하나?”

말에 샬럿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 위로 새빨간 원액이흘러 들어갔다. 꿀꺽 삼키자 삽시간에 몸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다리를 배배 꼬며 애틋한 눈으로 알폰스를 올려다봤다.


“주, 주인니임…”

“뭐해? 계속 입 벌려.”

“에?”


멍청히 답하던 샬럿의 안색이 단숨에 창백해졌다. 그리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주인님 아무리 저라도 그걸 다 마시면 죽을지도 몰라요…!”


체르니에 원액 한 방울이면 희석해서 쓰는 체르니에가 열 병 가까이 나왔다. 전날 알폰스에게 썼던 것이 그것이었다. 그의 물건은 반나절 동안 샬럿을 범하고도 빳빳하게 서 있었다.


비올렛에게 썼던 건 그것을 다시 희석해서 열 병을 만든 물건이었다. 그걸 다시 원점으로 돌려보면 고작 한 방울을 희석해서 만드는 물건이 그런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원액을 한 병을 전부 비우는 것도 모자라서 나머지 1.5병을 전부 마셔야 한다고? 아무리 샬럿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성치 못할 것이었다.


그녀는 애원하듯 알폰스에게 말했다.


“그렇군.”

“주인님…”


그는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샬럿의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주인님이 제게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알폰스가 다음 말을 내뱉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인님…?”


“샬럿. 내게 두  말하게 하지 마라.”


결국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나머지 체르니에가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흐이잇♥♥♥♥♥♥”

그와 동시에 샬럿이 몸을 비틀며 교성을 내질렀다. 풍성한 메이드복 치마가 단숨에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온몸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폭죽 정도로 비유할 것이 아니었다.


폭탄이다. 커다란 폭탄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그녀에게 자극을 주고 있었다. 팔을 휘저으며 받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도 자극받아 쉽게 절정에 도달했다.


샬럿은 몸을 웅크리며 알폰스의 발치에 꿇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하더라도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쥬인님♥ 제발, 힛♥ 쟈지를 쥬세효옷♥♥”

흰 눈을 보이며 땅을 바르작거리는 그녀가 달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으나 알폰스는 그녀를 무심히 지나치며 말했다.


“부관, 샬럿을 집무실로 보내. 샬럿, 넌 내가 올 때까지 일체 성욕을 해소하는 행위를 해선  된다.”

“예.”


“하아앙♥ 너무해엣♥♥♥”

존재감 없이 조용히 있던 부관이 대답했다. 이윽고 그는 사용인 몇을 불러 애달프게 우는그녀를 데리고 사라졌다. 쾌락에 찬 교성이 멀어진다.

“드디어 우리 둘만 남았군.”

알폰스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있는 비올렛에게 말했다.


그 말에 그녀는 몸을 움찔 떨었다. 샬럿이 보여주고 간 모습이 임팩트가 너무 컸다. 설마하니 자신도 저렇게 될까 두려웠다.

“뭐,   셈이야?”

“누가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떨 필요는 없다. 아직은.”

“누가 떨었다고!”

잠깐, 아직은 이라고?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몸이 내려졌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우왁, 뭐야 이거?!”


황급히 팔을 휘저으며 걷어내니 옷이었다. 그것도 바지와 하얀 셔츠로 구성된.

비올렛은 그것을 들고 알폰스를 바라봤다.

그는 으쓱이며 말했다.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좋다면 말리진 않으마.”

“그런 걸 좋아한다고   없어.”


비올렛은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너무 짧거나 길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몸에 맞춰서 만들어진 것처럼 딱 맞았다. 셔츠를 입을 때 귀 때문에 조금 버벅거렸으나 알폰스가 도와줘서 수월하게 입을 수 있었다.

딱히 그가 도와주지 않아도 입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을 테지만.

비올렛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래서, 무슨 속셈이야?”

“흐음…”

알폰스는 대답하지 않고 비올렛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적당히 승마복 같은 것을 입혀놨는데 꽤 볼만했다. 그녀의 성격 때문인가 오히려 드레스보다 이쪽이 좀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올렛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쯤에 알폰스가 말했다.


“뭐, 별거 아니다. 일전에 했던 말의 연장선이지.”

“일전에 했던 말?”

“검을 배우는 것 말이다.”

검을 배우는 것.

그 말에 표정 위에 떠 있던 일말의 불안감 같은 것이 걷어졌다.

불안감이사라지자 날카로움이 자리를차지했다. 온전한 살의가 올곧게 알폰스를 향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 변화가 기꺼웠다.

본래는 곧바로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쉴  없이 그녀를 몰아붙이며 검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루의 유예를 둔 것은 비올렛이 안정적인 환경을 맞닥뜨렸을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안락함에 취해 잠깐이라도 흐트러 진다면 주저 없이 그녀를 철저하게 성노예로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는이곳을 거친 여느 노예들과 다르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제게 날을 세우고 죽이고자 하고 있었다.


알폰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감정을 잊지 않도록 해라. 의외로 검을 배우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은 증오니까.”

“잘됐네. 나도 빨리 네 녀석을 죽이고 이 빌어먹을 저택에서 나가고 싶으니까.”

“부디 그날이 빠르게 오길 바라지.”

그는 진심으로 유쾌하게 말했다.

-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저택 한구석에 박혀 있는 공터 였다. 연무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한 공간. 그나마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그럭저럭 모양새는 갖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검을 잡아본 적이 있나?”

“전혀.”

“검을 쓰는 녀석과 붙어본 적은?”

비올렛은 잠시 고민했다. 죽도를 들고 다니는 녀석과 싸운 적은 있었으나 알폰스가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닐 게 분명했다.

“그것도 마찬가지.”

“그래, 완전히 생초짜라는 거군. 받아라.”

날아오는 것을 붙잡았다. 묵직한 무게의 진검이었다.


이걸로 어쩌라고?


“무게에 익숙해져라.”

비올렛이 그런 눈으로 바라보니 알폰스가 말했다.


“무게에 익숙해지라니?”


“말 그대로다. 네가 휘두를 검의 무게에 익숙해져라. 검을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신체의 일부라. 비올렛은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생각보다  번 휘두르지 않았는데도 살짝 숨이 차올랐다. 하기야 쇳덩어리를 손에 들고 아무렇게나 휘두른다고 생각하면 아주 이해 가지 않는 일은 아니었다.

“비올렛.”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비올렛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이리로.”


손을 까딱거리며 부르는 꼴이 가기 싫었지만 다른 손에 들린 물건을 보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알폰스의 손에는 열쇠가 들려 있었다. 손목에 달린 노예의 인장을 풀 수 있는 열쇠.

비올렛은 인장을 차고 있는 팔을 내밀었다.


그는 열쇠를 덜그럭거리며 말했다.


“검을 배우는 동안에는 인장을 빼고  수 있게 해주지. 나와 대련을 때도 있을 테니까.”


“용감하네. 그러다 내게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일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겠지.”

덜컥, 하고 손목에 걸려있던 노예의 인장이 땅을 향해 떨어졌다.

비올렛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을 알폰스를 향해 걷어차 올리며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는 곧장 달려들어 사선을 베었다.

“이런 걸 내가 예상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흥.”


얼굴을 향해 날아온 인장을 잡아챈 알폰스가 검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허공을 벤 비올렛이 콧방귀를 뀌며 애꿎은 칼로 땅을 쳐댔다. 그 말대로 그녀 역시 알폰스가 이런 기습 따위로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알폰스는 체온으로 덥혀진 묵빛 철을 만지작거리며 비올렛에게 말했다.

“내기를 하나 할까.”

“내기?”


“검을 수련하고 난 뒤에 마지막엔 항상 대련을 하는 시간을 가지겠다. 그 대련에서 네가 내게 상처를 입힌다면 어떤 소원이라도 한 가지 들어주지.”

어떤 소원이든. 비올렛은 잠시 그 말에 혹했으나 곧 냉정하게 말했다. 그가 제게 유리한 조건을 내걸리가 없었다.

“대련이 끝날 때까지 그렇지 못했다면?”

“그렇다면 간단한 이야기지.”


알폰스는 웃으며 말했다.

“네가 원래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다.”

노예로서의 일.

비올렛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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