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20화입니다.
“주군, 도시가 가깝습니다.”
괜히 소란피우지 말라는 뜻이었다.
“괜찮아. 꽤 거리가 있는 곳이니까.”
“시선을 생각하십시오.”
이번에는 조금 한심하다는 듯한 어조였다. 물론 그런 말은 알폰스에게 씨알도안먹힐 소리였다.
부관도 자신의 주군이 노출증 같은 이상성욕 기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영진은 가슴이 주물러지는 감각에몸서리를 쳤다.
쾌락이라던가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살을 쥐고 주무르는 감각 그것 뿐이었다. 다만 그런 것보다 주물러지며 떠오르는 기억이 문제였다.
서커스장, 부러진 팔, 음부를 해집고 들어오던 양물, 목을 조이는 커다란 손. 기억들이 플래시백 되어 머릿속을 헤집었다.
영진은 덜덜 떨리는 몸으로 나즈막히 말했다.
“...손 떼.”
“뭐라고 했나?”
“내 몸에서, 손 떼라고!”
발작하듯 팔을 흔들어 제 가슴을 잡고 있는 손을 쳐냈다. 그러면서 제 실수를 깨달았다.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노예의 인장의 존재를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진은 이를 악물며 다가올 전격을 기다렸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질끈 감았던 눈을 뜨며 생각했다. 자기 방어는 상관 없는 걸까? 아니면 이 정도는 주인을 해하려 한다고 판단되지 않는 걸까.
어쨌든 전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진은 황급히 물살을 헤치며 알폰스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래봤자 몇 발자국 되지 않았지만, 고작 그정도로 쿵쾅거리던 심장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알폰스는 그녀 제게서 멀리 떨어져 가슴을 부여잡고 심호흡 하고 있는 것을 유심히 바라봤다. 꽤나익숙한 반응이었다. 그가 사들였던 노예들 대부분이 보였던 것이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저것을 완화시킬 수 있는 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다. 알폰스는 기쁘게 웃었다.
‘저런 상태일수록 재밌단 말이지.’
쾌락에 빠져 헥헥 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직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바칠 것처럼 구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재미가 없었다. 죽기 직전 까지도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시체를 안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저런 상태가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을 무서워하고, 끔찍히 여긴다.
제 손을 거부하고 살을 섞는 것조차 혐오하며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죽이려 든다.
실제로도 그런 일이 몇 번 있었고그럴 때마다 그는 기쁘게 그들을 제압하여 범했다.
알폰스는 스릴을즐겼다. 노예의 인장은 만능이 아니었다. 일정 힘을 가진 자들은 우습게 그것을 부수고 탈출할 수 있었으며, 알폰스 역시도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렇게 된 상태에서 범했을 때 내지르는 비명이 끔찍하게 좋았다. 그것을 상상하니 축 늘어져 있던 양물이 어느새 배에 닿을 것처럼 빳빳하게 서있었다.
“주군.”
부관은 옅게 한숨을 내쉬며 그를 불렀다. 이미 스위치가 들어간 상태인 알폰스를 말릴 수 있을리 없었다.
“적당히 하십시오.”
“아무렴, 적당히 하고 말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는 영진이 그랬던 것처럼 느긋하게 물살을 헤치며 다가갔다.
알폰스가 다가오는 것을 영진이 모를리 없었다. 자주빛 눈동자에 절망이 차올랐다. 그녀에게 있어 공포란 저항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를 테면 귀신 같은 것이었다.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온다면 주먹으로 후두려 패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귀신은 실체가 없기에 팰 수 없었다. 그러니 도망을 가야한다. 그것이 영진이 생각하는 공포였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었다. 알폰스를 주먹으로 때리려고 한다면 목걸이에서 전격이 쏘아질 것이었다. 등을 돌려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것으로 전격이 발동될 것이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영진은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땅 위로 올라갈 생각도 못한 채 물살을 거스르며 말이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항거할 수 없는 것을 맞닥 들었을 때 인간이 취하는 원초적인 행동.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거냐?”
“흐익! 힉!”
뒤에서 그리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진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도망쳤다.
강의 수면이 그리 깊지 않았다. 허리까지가 최대였고 유속도 그리 빠르지 않았기에 이동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당연히 그녀에게 어렵지 않다는 건 알폰스에게는 더욱 쉬운 일이었다.
영진이 두 발자국이면 갈 거리를 알폰스는 한 발자국이면 되었다. 벌어져 있던 거리가 무색하게 두 사람의 간격은 금방 좁혀졌다.
“잡았다.”
“아악!”
두피가 잡아당겨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팔이나 어깨를 잡아 세울 수 있었음에도 알폰스는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 그 편이 비명을 듣기 좋았다. 그리고 행동을 제한하는대도 좋았다. 한 차례 머리카락을 휘감아 당겼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영진이 비틀거리며 그에게 끌려 왔다. 커다란 손이 턱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붙잡았다. 겁에 질린 눈동자가 알폰스를 담았다.
큼지막한 자주빛 눈동자가 자신을 담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를 떠올렸다.
“그래, 비올렛. 비올렛이 좋겠어. 자안을 가졌으니.”
그녀의 눈을 닮은 꽃이 남부 휴양지에서 많이 피었다. 올해에는 시기를 놓쳤으니 본다면 내년일 것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말이다.
“비올렛?”
생각을 하느라 턱을 잡은 손이 느슨해졌다. 그 사이로 영진이 우물거리며 물었다.
“그래. 이제부터 네 이름은 비올렛이다.”
“아냐! 내 이름은…! 웁!”
내 이름은 비올렛이 아니라 영진이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느슨해졌던 손이 다시금 으스러드릴 것처럼 조여왔다.
새까만 눈동자가 코앞까지 다가와 말했다.
“아니, 네 이름은 이제 비올렛이다. 이전에 무슨 이름을 가졌건, 주인인 내가 내리는 이름이 너의 이름이다.”
“으읍!”
잠시 사그라들었던 공포가 다시금 머리를 쳐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사라질 일은 없었다.
알폰스가 그녀를 이끌고 땅 위로 향했다. 영진은, 아니 이제 비올렛이 된 그녀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
“크읏!”
뭍 위로 던져진 비올렛이 작게 신음했다. 다친 팔을 걸고 있던 천은 이미 떨어진 뒤였다. 그녀는 몸에 베인 습관대로 빠르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보다 머리를 붙잡는 손이 더욱 빨랐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땅 위로 내리찍혔다.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군.”
머리통이 울려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풀이 무성하고 땅이 물러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비올렛은 팔을 허우적 거리며 머리를 붙잡은알폰스를 붙잡았다.
“그만, 그만…”
“그만하라고 하면 적들이 알겠다고 물러나던가?”
다시 한 번 내리찍힌다. 비올렛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자꾸만 끊어지려는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고 답을 갈구 했다.
머리가 들린다. 영진은 재빠르게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적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느니 죽는 게 낫지 않겠나?”
뒤통수를 짓누르는 힘이 강해졌다. 흙이 눈을 파고들어와 무척이나 따가웠다. 다시 한 번머리가 들렸다.
“...”
“침묵이라. 나쁜 선택은 아니지.”
돼, 됐나? 미약한 기대가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잔혹한선고가 내려진다. 대비도 하지 못한 채 땅으로 머리가 쳐박혔다.
“하지만 정보도 내뱉지 않는 적을 살려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비올렛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지 몰랐다.
아니, 애초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제 머리로 판 구멍에 시체가 되어 파묻히게 될 것 같았다.
알폰스는그런 비올렛을 보며 웃었다.
이 행동에딱히 어떤 의미는 없었다. 그렇기에 명확한 답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즐기기 위한 행동이었다.
“보, 봉사하겠습니다.”
“호오?”
두 번 쯤 더 반복했을까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말하리라 생각조차 하지도 않고 있었기에 의외였다.
그것이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모르겠으나 비올렛은 다급하게 덧붙였다.
“잘 할 수 있습니다! 한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몇 시간 전에 자신에게 짜증을 부리던 이와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애절한 목소리였다.
알폰스는 잠시 고민했다. 굳이 이럴 필요도 없이 강제로 그녀를 취하면 될 일이었다. 그 편이 더 즐거울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알폰스는 머리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비올렛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그를 올려다봤다.
“좋아. 해 봐.”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부관이 높이가 낮은 의자를 가져와 알폰스의 뒤에 배치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배치된 의자에 앉아 한참 전 부터 하늘을 향해 솟아있던 자지를 껄떡거렸다.
비올렛은 긴장으로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무릎 걸음으로 다가가 알폰스의 아래로 향했다.
우뚝 솟은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을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