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16화입니다. (16/75)



〈 16화 〉16화입니다.

마누엘이 제국 군인의 근접격투술이라고 했지만,단순하게 말해서 복싱이었다.

어릴적의 이야기였다. 영진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폭력적이었고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 없이 시비가 붙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이겼다. 하지만  싸움에서 영진은 코뼈가 부러졌고 잠깐이지만 정신을 놓을 뻔 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상대는 근처 체육관을 운영하는 관장의 자식이었다.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대회 전  영진과 싸움이 붙었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당연히 대회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영진은 코뼈가 부러졌지만 상대는 손가락이 부러졌다. 주먹을 써야하는 선수가 손을 부상당했으니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원장은 관장과 함께였다. 아무리 마음씨가 좋은 원장이라고 할지라도 허구언날 사고를 치는 영진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당연히 그녀는 영진을 다그치며 상대에게 사과하라고 했으며 당연하게도 영진은 그것을 가볍게 무시했다.

관장은 하나뿐인 아들이 다치고 영진이 그런 태도를 보였으나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말했다.


‘소질이 있어 보이는데 복싱을 해보지 않겠느냐?’


당연하게도 원장은 반대했으나 관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영진은 짧게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즉흥적인 선택이었으나 아주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영진은 누군가와 싸워서 질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저보다 덩치를 큰 놈들과도 싸워 이겨봤고 여럿이 덤비는 것도 버겁기는 했으나 어렵지 않게 이겼었다.


 나이대의 불량배들이 잘 싸워봐야 얼마나 잘 싸우겠냐만은 적어도 영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보다 작은 체구인 녀석에게 질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녀석의 주먹은 여태까지 상대해온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했다.


거리를 조절하는것이 능숙했고, 때문에 영진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속절 없이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도 약간의 운과 상대의 미숙함 덕분이었다.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는 선수라고 하나 상대는 중학생에 불과했고  밖에서의 싸움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영진은 개싸움에 능숙했고 굴러다니던 돌을 헛디뎌 살짝 균형이 흐트러진 상대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영진은 이겼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패배한 상대를 조롱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관장의 제안을 넙죽 받은 것 역시 그런 이유였다.

코뼈가 낫고 나서 영진은 1년 정도를 관장에게 복싱을 배웠다. 그저 본능대로 휘두르던 주먹에 길이 생겼고 갈 곳 없어 마구잡이로 분출되었던 분노가 해소되었다.


그렇게 영진은사람이 바뀐 것처럼 사고 하나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

처음에 반대를 하던 원장 역시도 그 변화를 기꺼워했다. 허구언날 사고치던 문제아가 얌전해졌으니 그녀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오히려 영진이 집중할  있게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사고만 치는 영진이 원망스럽기는 했지만, 사정을 아주 모르지도 않았기에 아픈 새끼 손가락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영진에게도 썩 나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목적 없이 방황만 하던 시절보다 무언가 목표가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선수를 해볼 생각이었다. 체육관 내에서 영진과 비슷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그나마 관장의 아들이 비등했지만, 그 마저도 영진이 간소하게 승률이 높았다.


관장의 말대로 재능이 있었다. 올바르게 이끌어줄 스승도 있었고 아낌 없이 지원을 해주는 원장도 있었다.

방황했던 시간을 사춘기 시절의 일탈로 치부하고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영진은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떴다. 떨리던 몸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등과 복부에서 고통이 이따금 올라왔으나 애써 무시했다. 눈앞에 미소를 짓고 있는 마누엘을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관장은 사람을 지키다 죽었다. 어두운 밤 거리에 행인 두 명을 위협하고 있는 양아치 무리에게 다가갔고 자신과 행인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어느 한 명이 갑작스레 꺼내든 칼에 맞았다.


놈들은 관장이 칼에 찔리자마자 바퀴벌레처럼 흩어져 도망갔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신고를 받은 구급차가 빨리왔음에도 그랬다. 맞은 자리가 좋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길 위에서 죽었다.


자신과 똑같이 말이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그처럼 죽었다고 하는게 맞겠지. 영진은 작게 실소하며 눈을 감았다.

어째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는 몰랐다. 어쩌면 몸이 아파서 감성적이게 되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뒤로 체육관은 문을 닫았고 관장의 가족은 이사를 갔다. 영진은 다시 길을 잃고 방황했다.

1년 동안 잠잠했던 것의 반동인 것인지 사고는 더욱 규모가 커졌고 빈번해졌다. 원장은 다시 그를 다그쳤으나 이전처럼 불꽃 같지 않았다.

주먹은 올바르게 써야 한다. 관장은 항상 그렇게 말했었다.남을 고통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 쓰는 거라고 말이다.


영진은 이릴을 지키고 싶었다. 최후에 그런 자세를 취하게 된 것은 몸에 베인 습관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머리 한 구석에 박혀 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렙게 한 걸음 내딛었다. 춤추듯 가벼운 걸음이었다.


동시에 어깨가 움찔거렸다. 가벼운 잽이 마누엘을 향해졌다.

그러나 실린 힘은 잽이라고 평할 수는 없었다. 마누엘은 막는 대신 가볍게 몸을 뒤로 하며 피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제법 살벌했다.

영진은 잽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내딛고 있던 다리를 움직여 거리를 좁힌다. 뻗은 손을 빠르게 회수해 다시 한 번 잽을 날린다.

그리고는 크게 허리를 틀며 반대손으로 훅을 날린다. 잽, 그리고 원투. 기본적인 자세에서 약간의 변형이었다.


혹사 당하는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비틀린 복부가, 등이찢어질 듯 뜨거웠다.

하지만 영진은 이를 물며 주먹 날렸다. 체력을 조금 회복했다고 하나 사실상 승부는 이미 끝난 거나 다름 없었다.

다만 여전히 자신이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마누엘이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와서 측은지심이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자신을 상대로 이런 내기를 걸지 않았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으라 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농락하기 위해서 봐준 것이었다.

고양이가  잡은 먹잇감을 일부러 풀어주는 행위를 하는 것처럼, 좀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방심을 노려 승부수를 띄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 주먹에, 모든 것을 담아서.

주먹과 살이 맞닿는다.


“어?”


다음 순간 무슨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영진은 어째서 자신의 눈에 천장이 보이는 지 몰랐다.


몸은 부유하듯 둥실 거렸고 동시에 아래로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팔이 붙잡힌 것 같기도 했다.

쾅! 하고 굉음이 들려왔다. 영진은 등 뒤로 느껴지는 충격에 숨을 토해냈다. 커다랗게 떠진 눈으로 무덤덤한 표정의 마누엘이 비춰졌다.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있었다.


간단한 이야기였다. 제 주먹은 마누엘에게 닿지 못했다. 닿기 직전에 팔을 붙잡혔고들어매쳐졌다. 힘을 잔뜩 실어서 내질렀기 때문에 동작이 크고 굼떴다.


당연히 반격을 당할 게 분명한 공격이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자신보다 실력차가 클 때는 말이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하늘에 맡긴 공격이었다. 빠르나 늦으나 승부수를 던지지 않으면 패배가 확정되어 있는 싸움이다.

그리고 승부수를 던진 결과가 이것이었다. 영진은 땅에 누워 있었고 마누엘은  있었다. 조금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연신 기침을 토해낸다. 목이 따가웠고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기침 사이로 무언가 입가로 흘러 나오는 게 느껴졌다. 철 비린내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영진은 멍하니 숨을 몰아쉬며 천장을 바라봤다. 조명 빛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내가 졌구나. 그런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입가를 훑었다. 당연하게도 붉은 피가 선명하게 닦여 나왔다.


그것을 보다 고개를 돌려 이릴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녀는 안타까운 것을 보는 사람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보니 눈물을 훌쩍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리가 멍해서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런 것처럼 보였다.

영진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마누엘에게 말했다.

“...내가 졌어.”

머리 위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관중들 역시도 무어라 소리를 내지 않았다. 승패가 갈렸으니 환호성을 지르건 뭐건 반응이 나올 법도 했지만 그랬다.


영진은 의아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어 마누엘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빙긋 웃고 있었다. 영진이 이상함을 느끼며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뭐?”

“내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

“그게 무슨…”

내기의 내용은 피를 먼저 흘리게 하는 것이었다. 소량이기는 하나 피를 토해낸 영진이 패배한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부정했다.

“피를 흘리면 패배하는 것이지, 토해내는 게 조건이 아니잖나?”


“그게 무슨 헛소리, 윽?!”

궤변이다. 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내리꽂히는 주먹에 황급히 몸을 굴려 벗어났다.


빠르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마누엘을 노려봤다.


“이게 무슨 짓이야?”

“말했잖나. 아직 내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


영진은 흠칫 마누엘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기묘한 열기가 일렁거렸다. 그제야 영진은 깨달을 수 있었다.


마누엘은, 애시당초 내기에 제대로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영진이 발버둥 치는 꼴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커스장도, 관중들 역시도 모두 그것을 위한 것이었다.


영진이 패배를 시인해도 제 속에서 들끓고 있는 욕망을 모두 해소하기 전까지 풀어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영진은 이를 까득거렸다.


“좆같은 새끼.”


마누엘은 대답하는 대신 몸을 움직였다. 내기가 시작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둔중한 걸음으로 영진에게 달려들었다. 쿵쿵 거리며 뛰는 모습은 코끼리를 연상시켰다.


영진의 몸이라면 피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작고 날랬으니까.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이미 육신이 한계에 가까웠다. 누적된 데미지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힘을 끌어올렸다. 선공은 마누엘이었다. 그는 영진이 그랬던 것처럼 가벼운 주먹을 연달아 날렸다.


피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막는 것도 그리큰 힘이 들지 않았다. 자신의 복부를 강타하던 위력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로 약했다.

“큭!”

가드를 뚫고 들어온 주먹이 안면을 강타했다. 몸이 균형을 잃고 바닥을 굴렀으나 영진은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다시 자세를 잡을 시간도 없이 마누엘의 공격이 연거푸 이어졌다. 위력이나 속도나 아까보다 훨씬 약해졌으나 그럼에도 피하는 것이 힘들었다.

손을 들어 얼굴을 보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복부와 갈빗대, 옆구리로 수도 없이 공격이 들어왔다. 그것이 고통스러워 막으려고 손을 내리면 귀신 같이 틈을 쑤시고 들어왔다.


영진이 정타를 맞고 휘청거릴 때마다 조용하던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제야 쇼가 시작되었다는 것처럼 그들은 잔뜩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맞고만 있지말고 반격이라도 해봐라 멍청아!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공기 중에 섞여 들어왔다. 목소리 뿐만 아니라 주먹도 함께였다.

콧대를 울리며 얼굴이 아려왔다. 얼굴을 부여잡으며 떨리는 팔을 들어올렸다.


“그만, 그만해…”

짧은 사이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얼굴은 수려한 외모였던 것이 거짓말일 정도로 울긋불긋했고 맞은 부위 어느  곳 푸른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흐른 피가 새하얀 피부 위를 붉게 만들었다.


얼룩덜룩한 모습이 가련하기 짝이 없으나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내기는 이미 끝난지 오래였으나 누구도 그만둘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영진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으나 절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픔을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이미 옛날 옛적에 넘었다.


그런 가녀린 팔을 마누엘은 잡아 챘다. 그리고 쭉 당기며 자신의 팔꿈치를 들어올렸다.

우득,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악!”

환호성을 뚫고 고통스러운 비명이 천막 안을 가득 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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