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7화입니다. (7/75)



〈 7화 〉7화입니다.

판자 사이로 보이는 세상은 평화로웠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띄었고 듣기 좋은 시끌벅적함이 거리를 매웠다. 마차는 그들을 지나쳐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시끌벅적한 소음이 점차 줄어들고 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거리는 점점 어두워졌다.하늘에 태양이 떠있었으나 미로처럼 세워져 있는 건물들의 그림자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차는 주춤거리는 것 없이 익숙한  거리를 누볐다.

이윽고 몸이 아래로 기운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모습이 마치 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같았다. 구불거리며 땅으로 내려가다 곧 평지에 도달한다.

그것을 기점으로 보이는 세상이 뒤집어지듯 바뀌었다.

어두웠던 공간이 한순간 불빛으로 환하게 빛났고 적막하기만 했던 고요함은 어느새 시끌벅적한 소음으로 가득찼다.

사람들의 웃음과 신기해하는 감탄어린 목소리. 그리고 간혹 들려오는 미세한 비명에 영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적당히 시끄러울 소음들이었으나 영진에게는 그것들이 수십 배 증폭되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시끄러워 죽겠네.”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니까.”


이릴은 이전에 한 번 보았던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가면을 쓴 행인들이 거리를 노니었다. 저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귀족일 것이었다.

애초에 이곳은 귀족을 위해 세워진 도시였다. 법과 도덕적윤리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

사람들은  지하도시를 ‘낙원’이라고 불렀다.

“낙원이 아니라 심연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곳이지만.”


이릴은 어두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일찍이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노예가 아닌 귀족의 자격으로 말이다. 단 하루의 방문으로 이릴은 낙원이 어떤 곳인지를 알  있었다.

짐승들의 도시. 음습한 감정과 치부를 가리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는 공간이 바로 낙원의 실체라고.


이곳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노예를 사고 파는 경매소의 존재는 오히려 준법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영진과 이릴의 처지가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결국 노예경매소 또한 낙원의 일부분이었으니까.


계속해서 굴러가던 마차가 거대한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시끄러운 소음도 한순간 사라졌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영진이 그제야 살겠다는  얼굴을 피며 말했다.


“도착했나.”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렛대를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능숙하게 판자를 제거하고는 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가장 안쪽에서부터 멍하니 넋을 놓고있는 노예들을 하나씩 들쳐 매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것을  번 반복하자 곧 마차 안에는 이릴과 영진 밖에 남지 않았다.

남자는 저를 뻔히 노려보는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진을 들쳐맸다.


“이런, 씹.”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왔으나 참아야한다는 이릴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반대편 어깨에 들쳐매어진 이릴 역시도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참아야 기회가 온다고. 영진은 속으로 온갖 된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거대한 천막 아래에 마차 여러 대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마차 안에서 자신들처럼 노예들이 거구의 남자들에게 이끌려 나오고 있었다. 노예를 들쳐맨 이들은 곧 열려 있는 문을 통해서 또다시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감옥이 있었다. 노예들이 갇혀 있는 감옥.

‘젠장, 더럽게 복잡한 곳이잖아.’


지하의 지하에 가두어 놓다니. 철저하기는 더럽게 철저했다. 이래서야 탈주하는  꿈에도  꿀 일이 아닌가.

남자들은 노예들을 감옥 안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쳤다. 영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개새끼가!’

둔부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저도 모르게 상소리가 나올 뻔 했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속으로 삼킬 수 있었다.


다른 노예들은 통각이라는 것이 없는 건지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않았다.

“아파라… 영진은 괜찮...은 것 같지는 않네.”


마찬가지로 내팽겨졌던 이릴이 엉덩이를 매만지며 그렇게 말했다.

영진의 눈이 누구 하나 잡아 죽일 것처럼 이글거렸으니 당연했다. 실제로 느끼는 감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탈출하면 다 죽었어.”


남자들이 철창을 닫고 사라지자 영진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미 영진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누군가 쿡 찌르기만 하면 바로 터질 정도로 말이다.

심호흡하며 겨우 화를 가라앉힌 뒤에야 이릴에게 말했다.

“좋아, 다시정리해보자고.”

영진과 이릴이 세운 탈출 계획은 이러했다.

경매에 오르기 전, 몸단장을 하는 시간을 노려탈출을 감행한다. 그때쯤이면 경비도 허술할 것이고 영진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밧줄 역시도 풀려 있을 테니 어렵지 않게 노예 경매소를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가장중요한 건 낙원에서 어떻게 빠져나가느냐 였다. 다행인 것은 이릴이 낙원을 방문해봤기에 출구가 어디있는지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정대로 하면 되겠지.”

“예정대로 라고 할지 헛점 투성이지만 말이야.”


이릴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두 사람이 세운 작전에는 큰 맹점이 있었다.

우선 첫번째, 정말로 경매에 오르기  노예들이 몸단장 하는 시간이 존재하는지. 두번째로는 여전히 낙원의 출입구가 이릴이 기억하는 그 장소가 맞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전자는 어디까지나 이릴의 기억을 기반한 추측에 불과했다.

그녀가 보았던 노예 경매에서 비교적 깨끗한 모습으로 단상에 오르던 노예들의 모습에서 몸단장을 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한 것이었다. 즉, 확실하지 않은 정보였다. 어쩌면 경매 마다 다를 지도 몰랐다.


게다가 후자에 경우에는 이릴이 낙원을 방문한 것이 벌써 몇  전의 이야기였다. 여전히 그 장소에 출입구가 존재할 거라는 생각은 너무 낙관적인 것이었다.


이릴의 그런 불안에도 영진은 말했다.


“뭐가 됐건 때려 부수고 나가면 그만이야.”

“세구지오에게 졌으면서…”

“시끄러워!”


영진이 씩씩거리며 소리치기는 했으나 그녀 역시도 세구지오가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릴처럼 불안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제대로 붙었으면 내가 이겼을 테니까!’

그때 영진은 체력적으로 소모가 심한 상태였다.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느라 생긴 부상 때문에 운신도 자유롭지 못했다. 반대로 세구지오는? 체력적으로도, 상처도 하나 없이 멀쩡한상태였다.

만신창이인 사람과 멀쩡한 사람이붙으면 멀쩡한 쪽이 이기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세구지오를 먼저 처치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었다.

잔챙이들이야 만신창이로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말이다. 영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철창 너머로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였다. 음울한 눈을 하고 있었고 오랫동안 잠을 안자기라도 한 건지 눈 밑이 거뭇했다. 어깨는 왜소했으나 팔다리가 길었다.

그는 썩은 동태 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철창 안을 훑었다.

“뭐야,  멸치 같은 새끼는.”

영진은  꼴을 보며 비웃었다.

 주먹거리도 안되어 보이는 놈의 눈빛이야 우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달랐다.

그의 시선이 닿는 노예들이 몸을 떨며 구석으로 숨어 들었다. 어느 한 노예는 그 눈빛에 견디지 못하고발작하더니  정신을 잃었다.

마치 천적을 만난 피식자들처럼 노예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소란스러운 주위에 영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이릴, 이것들은 또 왜 이래?”


이릴? 영진이 고개를 돌리자 시선을 내리깔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이릴의 모습이 보였다.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영진은 작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남자가 무엇이기에 이런 반응들을 보인단 말인가.

한참을 떨고 있던 이릴이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그 사람이야.”


“그 사람이라니?”


“찾았다.”

이릴을 재촉 하려던 영진 머리 위로 들려오는 기분 나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철창 앞까지 다가온 남자가 누런 이를 보이며 그녀에게 미소 지었다.

“너구나, 세구지오가 말한 녀석이.”


세구지오를 운운하는 것을 보면 리베치오와 관계 있는 녀석인 듯 싶었다. 영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냐, 넌?”


“옆에 귀족 아가씨가 설명해주지 않던? 아가씨 오랜만이야, 그렇지? 대답은 안해도 돼. 보아하니  지낸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정신이 이상한 놈인가?’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짓거리를 하는 남자를 보며 영진이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는 그 뒤로도 지리멸렬한 말들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바깥 날씨를 이야기하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얘기를 했다.

영진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것처럼 홀로 일장연설을 하는 남자를 끔찍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고 널뛰기 하듯 이리저리 뛰었다.정신병자의 말을 듣는 기분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그것을 끊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약쟁이랑 정신병자는 가까이 하지도,관여되지도 말라고. 눈앞의 남자는 그런 부류였다.


끝나지 않을  같은 이야기에도 끝이 찾아왔다.

갑작스레 시작했던 것처럼 갑작스레 이야기를 끊은 남자는 몸을 굳히더니 이내 철창에 달라붙어 영진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 내가 누구냐고 했던가? 난 말이지, 어느 왕국의 고명한 고문기술자였다네. 왕국의 반역자들과 타국의 첩자들의 살을 저미며 다시는 왕국을 탐하지 못하게 하는 게 내 일이었지. 하지만 그런 각고의 노력에도 왕국은 멸망하고 말았다네. 참으로 애석한 일이야.”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나는 리베치오의 조교사, 한스라고 한다."

철창을 열며 들어온 정신병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잘 부탁하지."

멱살을 잡혀 끌어올려진다.왜소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괴력. 영진은 발버둥치려 했으나 이릴의 말을 떠올렸다.


아직은, 얌전히 있어야한다고 했던가.

영진은 쏘아내듯 침을 뱉었다. 묽은 침이 한스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정도면 얌전한 축에 들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하마."

"참으로 당돌한 년이구나."


 사람이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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