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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1화입니다 (1/75)



〈 1화 〉1화입니다

가난이 모여든 동네는 밤이 되면  치 앞을 볼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차로 몇  거리 밖에 되지 않는 도시에서 뿜어내는 휘양찬란한 불빛과는 대조되게 말이다.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이 있었기는 했으나 켜져 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달조차 고개를 내밀지 않은 거리 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깡패나 범죄자, 소위 질이 좋지 못한 이. 혹은 그렇게 될 인간.


양지로 나오지 못하고 음지 속에서 사는이들이 그러했다.


그런 이들이 모여 있는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밤은 시끄러웠다.

가로등이 깜빡이는 골목 안쪽에서 두 사람이 뒤엉켜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상대를 깔아 뭉개고 가슴 위로 올라탄 남자가 사정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후우.”

주먹질을 해대던 남자가 숨을 토해내며 몸을 일으켰다. 쓰러진 상대는 이미 정신을 놓고 간헐적으로 움찔거리기만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모습을 보다 품을 뒤져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아침만 해도 꽉차있던 것이 돗대만 남아 있다. 그것을 익숙하게 입에  뒤 불을 붙이며 빈 담뱃갑을 구겨 아무렇게나 던졌다.

한숨처럼 내뱉은 연기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몇 번 들이마시고 나니 금세 짧아져 필터 밖에 남지 않았다. 남자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털어버리며 거리로 나왔다.


남자의 이름은 영진이었다. 그는 이 거리에서 이름난 싸움꾼이었다. 허구언날 쌈박질을 해대니 유명해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도 늘 그렇듯 시비가 붙었고 영진은 승리했다.


그렇지만 영진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덤벼들었던 양아치가 별 볼일 없는 놈인 것도 그랬지만, 유난히 깜깜한 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마치 자신이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인생처럼 보여서 더욱 그랬다.

영진은 고아였다. 부모님은 사고로 일찍 죽었고 일가친척들은 영진을 거부했다.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물론 영진의 부모가 남긴 유산은 사이좋게 갈라먹은 뒤였다.

그렇게 핏줄에게도 완전히 버려지자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영진은 자립할 수 있는 나이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보육원으로 오게 되는 아이들은 보통  종류로 나뉘어졌다. 부모가 없다는 사실에 의기소침해지거나 아니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폭력적이게 되거나.

영진은 후자였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들, 동정과 무시 같은 것들을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싸움꾼의 기질이 있었던 탓에 영진은 금방 사람들에게 문제아라고 불리게되었다.

나이가 차고 보육원을 나왔을 영진은 그 주위에서 꽤 이름을 날리는 불량배가 되어 있었다. 그때쯤부터는 영진을 무시하거나 비아냥 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법은 멀었고 주먹은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영진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혼자였고 가난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으며 멋 모르고 시비를 걸어대는 양아치를 때려눕히는 것이 영진의 일과였다.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일상을 유지할 것이었다.

죽을 때 까지. 사색에 잠겨 있던 영진은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불규칙하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 잘 보이지 않는 어둠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냥 누워있지 그랬어?”

미약하게나마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엉망진창인 모습이 보였다.방금 전 영진의 주먹에 의식을 놓았던 남자였다. 헉헉거리며 숨을 가쁘게 쉬는 꼴이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진은 굳이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 뚜둑 거리며 손을 푼 영진이 가볍게 땅을 박차며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엔 푹 자라고!”


주먹이 쇄도한다. 매서운 공격에도 남자는 그것을 피하거나 등을 돌려 도망치는 대신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 모습에 영진이 잠시 움찔했으나그래봤자 걸어다니는 시체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무언가를 꺼내드는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거리 위로 커다란 타격음이 울려퍼진다.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거리를 비췄다. 어둠에 가려져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영진은 두 다리로 서있었다.

“크힉, 키히힉!”


하지만 쓰러진 남자는 콜록 거리면서도 웃었다. 평소라면 거리가 떠나가라 웃는 남자를 발로 짓밟았을 영진이었으나 지금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없었다.

“이런 씹…”



복부 쪽이 화끈거린다. 데인 정도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불에 타고 있는 듯한 고통이 스멀스멀 위로 올라왔다. 영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복부에 박혀있는 나이프를 바라봤다. 살을 헤집고 박혀 있는 쇠의 느낌이 너무도 생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칼을 뽑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기에 그것을 뽑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진의 얼굴에서 점점 핏기가 사라져갔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한 건 분명했다.


‘병원, 병원으로 가야해.’


하지만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에 병원이 있을리 없었다. 적어도 번화가로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당장 택시를 불러 탄다고 하더라도 수십 분 이상은 걸릴 것이었다.


그럼에도 영진은 천천히 발걸음을 병원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인생의 대부분을 어두운 길을 걷는 것처럼 살아왔다. 부모님을 죽게 만든 녀석은 살아서 아직 감옥에 있었고 곧 출소할 예정이었다. 언젠가 티비로 봤던 휴양지에도 가볼 생각이었다.


생각이 뒤죽박죽 떠오르는 것을 느끼던 영진의 몸이 흔들렸다. 발을 헛디뎌 쓰러질 뻔 했으나 담벼락에 부딪혀 쓰러지지는 않았으나 그게 전부였다.


영진은 시야가 가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뜨겁던 복부에서부터 오한이 느껴진다. 그 상태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추위가 곧바로 전신으로 퍼졌고 영진의 초점이 사라졌다.

영원한 어둠이 영진을 감쌌다.

-


 옛날 마왕이라 불리던 자가 있었다. 그는 세상을 부수고자 하였고 서로 대립하던 인간들은 코앞에 닥친 멸망을 이겨내기 위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들의 신 역시도 멸망을 막기 위해 용사라 불리는 영웅을 내려주었다.

오랜 싸움 끝에 용사의 손에 마왕은토벌되었으나 그는 죽어가며 세상에 저주를 뿌렸다. 그때부터 마물이 생겨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상은 마왕의 저주를 완전히 뿌리치지 못했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이릴은 가만히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그녀가 타고있는 마차는 도시 알레스로 향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도시이지만  지하에는 다른 세계가펼쳐져 있었다.

온갖 향락과 국가에서 허락하지 않는 불법적인 시설들이 모여 있는 지하도시.

‘낙원’. 그곳에는 노예경매소가 존재했다. 이릴이 타고 있는 마차의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이릴을 포함한 마차 안의모든 인원들은 노예였다. 각기 노예가 된 사정은 달랐으나 개중에 온전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그녀 혼자 뿐이었다. 나머지는 넋을 놓았거나 지독한 일을 겪고 감정을 잃어 반응하지 않는 인형처럼 되어버렸다.


이릴의 정신력이 특출난 건 아니었다. 물론  속에 흐르는 엘프의 피가 아주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수 없으나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아직 정신을 붙잡고 있는 건 눈앞에 누워 있는  때문이었다.


누워있는 사람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여인였으나 귀가 있어야할 곳이 매끈했고 그 대신 머리 위에 길고 커다란 귀가 솟아나 있었다. 마치 토끼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은 머리 위에 귀가 돋아나지 않는다. 눈앞의 여인는 먼 옛날 마왕이 남긴 저주에서 태어난 마물이었다. 백토 공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괴물.


그러나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모습은 평범한 여인처럼 보였다. 팔다리도 가늘고 말라서 유약하게 보였다.


마치 고향에 두고  어린 동생처럼. 이릴은 백토 공주에게 연민을 품었고 동시에 동생을 겹쳐보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이름도 모르고 말도 섞지 않은 여인에게 호의가 솟았다.

‘늦지 않게 깨어나야할 텐데…’

이릴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그녀가 겪지 않길 바랬다. 그러니 깨어나서 주의할 점을 알려주고 익히게 할 생각이었다. 익숙해진다면 교육을 빙자한 고문을 받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소원이 이루어졌다. 잠들어있던 여인의 눈꺼풀이 작게 떨리더니 곧 완전히 눈을 떴다.


‘예쁘다.’

여인의 눈동자는 자색이었다. 이릴은 마치 보석 같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씨발, 여긴 어디야?”


그녀가 입을 열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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