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사기남 너 병신이지?
병원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떡해 해야 우연인 척 만나지?”
병원에 들어가 바로 사기남을 만나면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치혁은 병원 밖에서 서성이면 우연히 만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때마침 무슨 이유인지 사기남이 휠체어를 타고 병원 로비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좋았어 일단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은 다음에 행동을 결정하자”
치혁은 시선을 사기남에게 두지 않고 다른 곳에 향하게 하고는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큰 키를 자랑하는 치혁을 사기남은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어어(저놈은 분명 아까 낮에 나에게 잡아야 해 내가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겠어)”
치혁은 사기남의 생각을 읽고는 눈을 마주치며 놀라는 척을 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병원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잠 잠깐만 치혁아 잠깐만 기다려!”
치혁은 막 병원 입구의 문에 손을 대려고 하는데 뒤에서 사기남이 부르는 소리에 마지못해 행동을 멈추는 척 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멀리서도 보일만큼 크게 한 숨을 쉬었다.
“어~휴~”
치혁은 사기남에게 다가가지 않고 사기남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고 또 의심을 피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치혁아 잠깐만 잠깐만 이야기 좀 하자 응 제발 부탁한다.”
“에휴 제가 왜요? 아까는 저에게 욕하면서 소리까지 치셨잖아요. 전 이만 가 볼게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치혁의 팔을 붙잡으면 사기남이 애원했다.
“치혁아 좀 전에는 미안했다. 응 잠시만 이야기 좀 하자 응? 이렇게 부탁한다.”
사기남은 필사적으로 치혁에게 매달렸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도 않았지만 그것을 바로 알아맞힌 치혁이 그저 신기했다. 치혁은 더 이상 튕기지 않고 사기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치혁아 어디로 갈까 어디 가서 잠깐이면 되니깐”
“그냥 저기 로비에서 말씀하시죠.”
“그 그 그래 너 편할대로 하자”
치혁은 방금 전까지 박아쥬와 놀아난 사실을 사기남이 알까 싶어 저절로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래도 웃음을 꾹 참고는 사기남을 뒤따랐다. 만약 웃으면 혹시라도 의심을 살지도 몰랐다.
하여 일부러 휠체어도 밀어주지 않고 건성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로비에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에 마주앉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먼저 사기남이 입을 열었다.
“있잖아 아침에 어떻게 알았어? 내가 사고가 날지 네가 분명 말 했잖아. 나에게 큰일이 생길 거라구 병원에서 치료 받으면서 생각했는데 우연이라고, 그런데 우연이 아닌 것 같아(정말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무서워)”
“말씀 드렸잖아요. 사람의 운명이 보인다고”
“지 진짜야? 그럼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것인지도 보였던 거야?(진짜였어 아님 설명이 되지 않아)”
“아침에 분명히 말씀 드렸는데요. 저도 솔직히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고요. 서로 얼굴을 보면 이야기하기에 편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치혁이 정색을 하며 지난 과거를 상기시키듯 사기남에게 말하였다.
“그 그래 그렇지 그래도 아침에 그랬잖아 말해야 한다고 네가 그랬잖아(붙잡아야 해 어떡해서든 무조건)”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전 분명 경고를 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아니었나요?”
“그 그게...”
치혁이 추궁하는 자세로 물어오니 사기남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다 정말 치혁이 그냥 돌아가 버릴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 누가 봐도 티가 났다.
“할 말 없으면 전 이만 가도 될까요?”
“아 아니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치혁의 손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이대로 보내면 정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두렵기만 했다.
“아니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자 응 나 무서워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넌 알잖아 혹시 안다면 막을 방법도 있을 거 아냐(제발 부탁한다.)”
“흠 알긴 알지만 정확히는 몰라요. 단지 좋지 않은 일인 건 분명해요. 그렇게 보이니깐요.”
“그래? 그럼 또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혹시 내가 3대 독자인 건 알고 있나? 우리 아쥬가 아기를 가지지 못하는 것도 다 내 액운 때문인가 아 대를 이어야 하는데)”
‘뭐야 이거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치더니 완전 박아쥬에게 당하고 있었네 박아쥬가 피임을 하는 줄 몰랐던 거야?’
치혁은 속으로 박아쥬를 생각하면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냥 신혼을 즐기려고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사기남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가장 큰 문제는”
“문제는? 뭔데?”
“대가 기남 형 대에 끊어질지 몰라요. 뒤에 할아버지가 계신데 몹시 노하고 있군요. 형 대에 대가 끊어지게 생겼다고, 오 3대 독자셨군요.”
“헉 그걸 어떻게 너 정말 보이니? 어디 어디?”
사기남은 치혁의 말에 자신의 등 뒤를 돌아 봤지만 사기남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치혁의 눈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치혁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사기남의 뒤를 가리키며 치혁은 연기에 집중했다.
“저기 있어요. 아 형 눈에는 당연히 안 보이죠. 다 보이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지 그렇겠지 네 눈에는 보이겠지(진짜야 방송에서 봐도 안 믿었는데 진짜였어. 그럼 내 속마음도 읽을 수 있나? 그건 아니겠지. 대신 나에게 관련된 일은 보인단 말인데 설마 재작년에 우리 할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것도 알까?)”
“흠 하나 이야기를 하면 가까우신 분 중에 속이 안 좋으신 분이 있군요. 배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걸 보니 위장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안타깝지만 돌아가셨군요. 최근 한 2년 정도?”
“어떻게? 그걸 치혁아 나 좀 살려주라 응 내가 부탁한다. 저번에 너에게 그렇게 한 거 정말 사과할게 그때 못 받은 월급 내가 지금 당장 줄게”
“흠 생각 같아서는 그냥 돌아가고 싶지만 그래도 그러면 나 역시 화를 면하지 못 할테니깐 그렇게 하죠.”
“그래 고맙다 치혁아”
그 다음부터는 완전 치혁의 페이스였다. 지금 사기남은 치혁이 팥으로 메주를 만든다고 해도 믿을 심정이었다.
“우선 조상신부터 달래야 해요. 그리고 집에서 치성도 드려야 하고 그런데 그러려면 흠...”
“뭐? 뭐가 필요한데”
“혹시나 오해 하실까 싶어서 말씀드리기가 좀 그러네요. 그래도 뭐 선택은 형 몫이니깐 당연히 정성이 필요하죠. 정성은 곧 돈을 의미하기도 하구요.”
“돈?”
치혁은 사기남의 눈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역시나 마음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치혁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미지의 공포로부터 지켜내기에는 사기남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 그깟 돈이 뭐가 중요해 내가 살아야 중요한 거지(전재산을 달라면 무슨 문제가 있겠지만 아니라면 주지 얼마든지)”
“형 무슨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제 말은 정성이라고 했진 뭐 형 전 재산을 받쳐야한다. 이런 말은 아니에요.”
“아하~아 그렇지(역시 진짜였어. 만약 사기치려고 하면 이러지 않을 거야)”
“그런데 어쩌죠? 제가 가봐야 하는데 형이 지금 병원에 있으니 어떻게 해야할 지”
“너 전화기 없어? 있었잖아”
“형이 돈을 안 주는 바람에 집에서도 쫓겨나고 그래서 그냥 절로 갔던 거에요. 이제 다시 가야해요. 돈도 없고 해서 서울에 잘 곳도 없어요.”
“기다려봐 내가 당장 필요한 만큼 줄게 아니지 얼마지 너에게 주지 않은 돈이 7개월 인가? 그래 2,500만원 주면 되겠네 하루 일단을 10만원으로 쳐서 내가 지금 당장 찾아서 줄게”
“정말요?”
“그래 그 돈이면 당분간 서울에 있을 수 있잖아. 아니 뭔 돈을 써 그냥 우리 집에서 머물면 돼 우리 아쥬가 잘 해 줄거야 참 착한 여자거든”
“아 결혼하셨어요?”
“응 저번 달에 좋은 여자야”
“그렇군요. 축하드려요.(좋기는 완전 색골이더만 참 너도 인생 불쌍하다)”
“기다려봐 아쥬가 곧 올 때가 되었을텐데 왜 안 오지 전화를 해 볼게”
사기남은 전화기를 들어 자신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상대 쪽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지 음성사서함으로 계속 들어갔다.
“어 이상하다. 볼 일 보고 온다고 했는데”
“오시겠죠.(오기는 지금 발가벗고 침대에 쓰러져 있는데 오려면 한 시간은 더 걸리겠다.)”
“어 어떡하지(아 치혁일 그냥 보내면 안 되는데)”
“우선 저도 볼 일을 보고 다시 올게요.”
“그냥 가려는 건 아니지?”
치혁의 말에 사기남은 얼굴이 울상이 되어버렸다.
“아니에요. 볼 일만 보고 다시 올게요.(항상 사기만 치다보니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네 참 너도 불쌍하게 산다.)”
“정말이지? 꼭이다.”
“걱정 마세요. 그럼 이따가 보죠.”
“그래 기다린다 꼭 다시 와야 해 알지 아 참 돈을 찾아서 줘야지”
“이따가 주세요. 주신다 했으니 찾아 놓으시면 되잖아요.”
“그래 알았어. 정말 고맙다.(나 같으면 돈부터 받았을 건데 진짜인가봐 정말 계속 믿기지가 않지만 사실이었어. 아 그나만 다행이다.)”
“아참 돈 찾으실 때 제가 말 한 정성도 같이 찾으세요. 그래야 두 번 하는 수고를 덜죠.”
“아 맞네 그래 고마워 그...런데 얼마나 준비하면 될까?”
“흠 저도 사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를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데 그냥 100만원 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뭐 100만원 겨우 그거 가지고 될까?(너무 적은 거 아냐 그러다 더 잘 못되면 어떡하지?)”
“저도 솔직히 좀 뭐 스님에게 찾아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천만 원대로 성금을 하긴 하는데 제가 뭘 아나요. 다만 정!성!이니깐 정!성!만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 그럼 나도 한 3천만 원이면 되지 않을까? 너무 적으면 도리어 더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잖아. 그래 그 정도가 딱 좋겠다.”
“뭐 그거야 형 마음대로 하세요. 백만 원이든 천만 원이든 정성만 들어가면 되니깐 말이죠.”
치혁은 그렇게 말을 하며 사기남에게서 몸을 돌렸다. 정말 자신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사기남의 마음을 완전 뒤흔들어 버렸다.
‘후후 확실히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 끝내주는 일이네’
치혁이 돌아서 병원을 나가자 사기남은 전화기를 붙잡고 매달렸다.
“치혁이 놈 뭐 백만 원? 누굴 바보로 아나 그랬다가 귀신이 더 화를 내면 어쩌려고 내가 당하면 바보지 그런데 3천만 원이면 충분할까? 더 내야 하지 않을까?”
사기남은 3천만 원도 모자란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대에서 대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감돌아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쥬는 뭐 한다고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치혁이 말한 한 시간이 지나고 박아쥬가 병원에 나타났다. 치혁을 만날 때와는 정반대의 옷차림으로 수수하고 청순한 모습이었다.
손에는 보자기를 들고 있었는데 딱 봐도 음식을 싸온 모양이었다. 사기남은 병실로 돌아가지 않고 로비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박아쥬가 병원에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정말 아쥬는 멀리서도 눈에 뜨인다니깐 나 정말 결혼 잘 한 것 같아. 아쥬야 나 여기 있어”
“어머 오빠 많이 다쳤어? 이게 무슨 일이야”
박아쥬는 로비에 있는 사기남을 발견하고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면 뛰어왔다.
“그게 조금 사고가 났어”
“아잉 속상해 어쩜 좋아”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어? 무슨 일이길래?”
“힝 오빠 병원에 있다는데 뭐라도 만들어야 겠어서 시장에 가서 최고로 좋은 재료만 골랐어. 오빠가 아프면 안 되잖아. 보양시켜 주려고”
“정말?”
박아쥬가 손에 들고 온 찬합 통을 보여주자 사기남은 감동을 먹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