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여우굴 속으로
“치혁이 너 누나에게”
“너 너두 일루와 바지를 벗겨 줄테니”
치혁은 자는 척 하다 달려오는 소연과 은지를 피해 소파에 앉아 방어를 했다. 잠깐의 소란이 끝나고 넷과 청일점 치혁까지 거실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우리 이제 뭐하지?”
“밥 먹어야죠.”
은아의 질문에 은지는 당연한 듯 대꾸했다. 저녁때여서 밥은 먹어야 했다.
“나가서 먹을까?”
“그럼 치혁이 먹을 게 없잖아요. 죽 사놨으니깐 집에서 먹어요. 우린 뭐 언제나 그렇듯이 간단하게 시켜 먹구”
나가자는 말에 서로를 보다 치혁이 있다는 사실에 외식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우리 요즘 트랜스지방 과다 섭취인 거 몰라?”
“그럼 다른 거 시켜요 배달 책자 보니깐 찜 종류도 많던데”
“찜? 그럼 그럴까? 무슨 찜?”
“찜하면 갈비찜이나 닭찜이 최고지 안 그래 언니들?”
평소 갈비를 좋아하는 효선이 찜이란 말이 나오자 자동적으로 갈비를 떠올렸다.
“대구뽈찜도 괜찮은데”
“집에 밥은 있어?”
“달밥 있잖아요.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끝”
“에휴~이거 의사인 나부터 반성을 해야겠다. 우리 이제 요리해서 먹자 언제까지 시켜만 먹을래 몸에도 안 좋고 내가 어떡해서든 뭐라도 만들어야겠다.”
“안돼욧!”
“안돼!”
“오우 노노노”
“...?”
은아의 말에 세 여인은 동시에 손사레를 치며 은아를 말렸다. 치혁은 들은 이야기가 있어 새어나오는 웃음 겨우 참고 키득거렸다.
“이것들이 왜 내가 해 준 음식이 맛이 없어?!!”
“응”
“네”
“노코멘트에요 전”
은지를 빼고는 다들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 시켜먹자”
“얏호~”
“살았으~”
“난 뭐 먹을 것만 있으면 오케이”
역시나 이번에도 은지가 주문을 하였다. 치혁은 낮에 주문한 죽으로 저녁을 대신하기로 하고 저녁은 매꼼한 찜으로 결정을 하였다.
“집에 소주 있지?”
“당연하죠. 언니 술은 절대 떨어트리면 안된다면서요.”
“뭐 너희들도 좋아하고 야 너도 내 나이 되면 술이 친구야”
“언니도 참 그런데 언니 내일 출근 안 하세요?”
“에휴 해야지 그래도 오전 진료를 안 받아서 좀 늦게 가도 될 것 같아 아! 참 치혁아 이거 병원장이 너 주라던데?”
은아는 집에 들어와 하의실종을 한 소연과 은지를 보며 잊어버렸던 쇼핑백이 생각나 치혁에게 가져다주었다.
“뭐야 그거?”
“돈이요.”
치혁은 굳이 누나들에게까지 비밀을 만들고 싶지 않아 사실대로 말했다.
“돈?”
“무슨 돈?”
“아아~다행이다 돈을 받아서”
“언니 무슨 말이야 돈이라니?”
성격 급한 효선이 궁금한지 은아에게 물어왔다. 은아는 테이블에 손을 얹히고 효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통 이런 경우 특이한 케이스지 병원에서 잘 하지는 않는데 치혁이 경우 보호자가 없었기 때문에 몇 가지 실험을 할 수 있었어. 절대 일반적으로 그러지 않아. 너희들도 알잖아”
“그렇지 그랬다간 인권위원회니 뭐니 복잡해지니깐”
“보통은 환자나 지원자의 허락을 구한 다음에 소정의 금액을 보상으로 주지 근데 그 금액이 결코 소정은 아니야 꽤 괜찮지 겨우 며칠 고생한 대가치고는 크지”
“그건 우리도 아는 이야기잖아요.”
“치혁이가 그런 경우야 거기다 논문까지 나올 정도니 당연히 줘야할 돈이고, 그런데 난 원장이 이렇게 선선히 돈을 줄지는 몰랐어. 너희들도 알잖아 원장이 실력은 있지만 돈벌레인거”
“그거야 병원 사람들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래 그런데도 아무 말 못 하는 건 실력도 있거니와 다들 자기 목 지키기에 바쁘니깐 물론 거기에는 나도 포함되고”
“언니가 왜?”
“나도 알면서 치혁에게 아무 말 안했으니깐”
치혁은 테이블에 올려 진 은아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은아의 마음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을 재확인 하니 치혁이 도리어 은아에게 미안함이 몰려왔다. 자신에게 이렇게 방도 내어주고 따뜻하게 대해줬는데 자신에게 미안해하자 그러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누나 도리어 내가 고맙지 이렇게 방도 주고 보살펴 주고”
“그거야 내가(네가 좋으니깐 그렇지 너하고 자고 싶으니깐 이것도 사심이긴 한데 진심이기도 해 나랑 결혼해 달라는 말이 아니야 그 전까지만 같이 있고 싶어서 소유하지 않을게 대신 소유해줘)”
“말 안 해도 알아 그리고 이렇게 돈 받았잖아 그럼 된 거지 이걸로 난 대학 다닐 여유금도 생기고 일석이조지 뭐”
“그런 건가?”
“응”
치혁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야~타이밍 좋은데요. 딱 맞춰서 음식이 오네요.”
“얼른 받아와”
은아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은지가 일어나려 했다. 그런 은지의 팔을 치혁이 잡았다.
“내가 남잔데 그리고 제일 어린데 이제부터 심부름은 내가 다 할게. 방값은 줘도 안 받을테니 그거라도 할게”
치혁이 말을 마치곤 은지의 손에 들린 돈을 빼들고 현관으로 갔다.
“이거 효선인 영 꽝인데 치혁인 다른 걸 싹싹한게 아주 좋아”
은아가 손벽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방에서 먹을 준비를 하던 효선이 발끈했다.
“큰언니! 나 안 놀았어 이거 왜 이래”
“아아 미안 미안 효선아 말이 그렇다구 그리고 너 이제 막내 아니다 어리광 부리면 치혁이가 흉 본다”
“에비 흉봐도 괜찮네요.~”
“이긍 저 물건은 누가 가져갈까 심히 걱정된다.”
“난 아직 어려서 괜찮네~누구처럼 똥차는 아니니깐~”
소연과 은지와는 달리 은아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진짜 자매 같아 보여 치혁은 웃음을 지었다. 음식을 양손 가득히 들고 와서는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은지가 포장을 뜯는데 은아가 소리쳤다.
“효선아 소주 좀 가져와”
“챙겼~어!”
“역시”
치혁이 은지를 도와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날마다 이렇게 술을 마셔? 완전 알코올의존증 아냐?”
“아니거든요. 치혁님~오프날만 이러거든요. 매일 마시면 우리도 힘들거든요.”
“음 그렇구나. 하기사 매일 이렇게 마시면 몸이 축나도 축나겠다.”
“아니니깐 오해하지 말기를”
과장된 은아의 행동에 집안이 웃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음식이 다 차려지고 다 같이 자리에 둘러앉아 잔을 들었다. 이번에도 치혁은 소주잔에 물을 채워 아쉬움을 달랬다.
“자 치혁이 집에 온 기념으로~”
“이렇게 다 같이 모이니깐 정말 좋다~”
“이긍 그래서 넌 낮부터 술을 드셨세요?”
“아니에요 언니 그런 거”
소연과 은지가 얼굴을 붉히자 치혁이 중간에 나섰다.
“자자 절 이렇게 받아줘서 고맙습니다. 즐겁게 나가는 날까지 맘 상하지 않고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짠!”
치혁이 팔을 뻗자 네 명의 여자들도 잔을 들어 부딪쳤다.
“캬~좋다~ 이맛에 산다 내가”
은아가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치혁이 젓가락으로 고기를 한 점 집어 은아의 입에 넣어주었다.
“동생이 먹여주니깐 맛있죠?”
“완전 어떻게 남자인 내가 이것들 보다 훨씬 애교가 많니”
“내가 원래 눈치 하나는 끝내주거든 키키”
“확실히 여자들만 있다가 남자가 들어오니 집 분위기도 좋아지네”
치혁은 확실히 집안의 강자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살아가는데 아주 필요한 요소였기에 치혁의 처세술을 부렸다. 그런데 문제는 소연도 입을 벌리고 은지 효선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이든 때론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은아는 이미 받아먹었기에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치혁의 상황을 모른 척 했다.
“이거 참”
치혁은 할 수 없이 누나들의 입에 모두 음식을 넣어준 다음에야 죽을 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은아 누나 나 계속 죽만 먹어요?”
“오늘 다른 거 먹었어?”
“음...아니 죽만 먹은 것 같은데 물이랑”
치혁이 곰곰이 생각하고는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은지가 맞받아쳤다.
“아냐 너 맥주 마셨잖아”
“한 모금 마셨잖아. 많이도 아니구”
“맥주?”
“네 언니 낮에 좀 마셨어요. 그치 소연 언니”
“네 언니 치혁이가 낮에 저 몰래 조금 아주 조금 마시긴 했어요.”
“치혁인 어때 괜찮아? 배앓이 같은 건 없어?”
은아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오자 치혁이 팔을 양쪽으로 벌리며 말했다.
“전혀요. 아~무 이상 없는 걸!”
“그래 그럼 다른 음식들도 좀 먹어봐 우선 이것부...터는 좀 그러네 맵고 자극적이라”
“죽하고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조금만 먹어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응”
치혁은 계속 밍밍한 것만 먹어서 다른 음식이 당겼는데 은아가 허락을 하니 손이 빨라졌다. 어서 젓가락을 움직여 배달 온 음식을 입에 넣고 싶었다.
“자자 먹자 치혁이도 많이 먹어”
“응”
“네”
저녁을 먹는 건지 술을 마시는 건지 모를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
효선이 음식을 먹다 말고 젓가락을 입에 물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뭐가 이상한데?”
“몰라 그런데 무언가 좀 이상해 이질적인 기분? 뭐지? 치혁이 함께여서 그런가?”
“그렇겠지 변한 게 치혁이 밖에 더 있어?”
“아냐 아냐 무언가 있어?”
효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살폈다. 한참을 서성이듯 하더니 이내 은아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리고 찾았다는 듯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딱 하고 쳤다.
“찾았어!”
“뭔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모두의 시선이 효선의 입으로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