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여우굴 속으로
그녀의 말에 주변의 남자들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한 숨을 쉬었다. 만약 속마음까지 보았다면 결코 그런 표정은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한동안 시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 할 게 분명했다.
“이렇게 예쁜데 남자들은 뭐하나 몰라 얼른 잡아가지 않고”
“아이 선생님두 참”
“나야 결혼해서 임자 있는 몸이라 치지만 강 샘은 안 그렇잖아. 아직 어린데 연애도 좀 하고 해야지”
“뭐 언젠간 하겠죠 선생님도 일 해요 일”
“일 해야지 그런데 오늘따라 환자도 좀 적네”
“그러게요. 평소에는 바쁘다가 왜 오늘만 이러는 건지”
“왜 바쁘면 시간이 잘 가니깐? 수상해 이거 점점”
“그런 거 없네요.”
효선은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피해 일을 찾으러 다녔다. 은아 역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지 환자를 봐야 했기에 시계를 볼 틈이 없다는 게 효선과는 달랐지만 속마음은 계속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집에 가서 뭐하지? 다른 동생들도 있는데 그냥 해 버릴까? 이미 다 봤는데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
“저 선생님?”
“아 응? 네네 아 미안해요. 잠시 생각을 한다고 다음 환자분 모셔요.”
“네 선생님”
은아의 담당 간호사가 환자를 데려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따라 은아 샘이 좀 이상하네. 자꾸 정신을 딴 곳에 파는 것 같은데 느낌인가? 환자를 보면서 이러신 적 없는데”
은아와 효선이 그렇게 기다리던 퇴근 시간이 되었다. 은아는 후배 의사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서둘러 퇴근 준비를 했다. 효선은 이미 진료실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언니 빨리 빨리 빨리 가자”
“너는 외국에서 살다온 얘가 빨리빨리 문화를 언제 배운 거야”
“배우긴 그냥 몸이 익힌 거지”
“자자 가자 가자 정말 옆에서 보채는데 정신이 없다.”
은아 역시 마음은 이미 집에 도착을 했는지 서두르는 기색이 확연했다.
“고고고”
효선이 팔을 번쩍 들며 앞장서고 은아가 뒤를 따랐다. 그녀들이 움직이니 당연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두 분만 가시네요? 어디 좋은데 가세요?”
“아 네 약속이 있어서요.”
“수고하세요.”
“네~”
지나가는 사람마다 말을 거는데 화도 낼 수 없고, 애만 타는 두 사람이었다. 그때 저번에 같이 술을 마셨다. 의사 3인방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선생님 어디 가시나요?”
“저희랑 같이 저녁이라도?”
“다른 두 분은 이미 퇴근 하셨죠? 내일이 오프라 그러던데 오늘 또 모이시나요? 그럼 저희도 같이 어떻게 안 될까요?”
확실히 다른 남성들보다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이는 3인방이었다. 한 번의 술자리를 같이 한 후 더욱 친하게 말을 걸었지만 다들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부풀어 올라 병원에서 소문 아닌 소문이 살짝 나기도 했었다.
“저 분들은 좋겠다. 우리 여신님들과 대화도 하고 밥도 먹고”
“척결대상이야!!!”
“맞아 저 쳐 죽일 놈들 감히 우리의 여신님을”
“난 부럽기만 한데”
3인방은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앞에 엄청난 미녀가 있는데 그것 정도야 하면 여유롭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은아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 효선 역시 눈빛이 썩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비켜 임마 나 급해”
“그럼 안녕히”
세 사람을 밀치듯 뿌리치며 병원을 나가는 두 사람이었다. 의사 3인방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헤 깔려 한참을 그곳에 서 방금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부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집에도 가고 잠도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뭔가 지나갔는데? 별일 아니겠지?”
“그...그럼 아무일 아닐거야”
“지워버리자 오늘 일은 잊어버리자 없었던 일이야. 암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어.”
최면을 거는 의사의 말을 입으로 되뇌이며 의사 3인방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병원을 나섰다. 당연히 그 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뭐야 저건 그럼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야 빨리 여신님들 스케줄 알아봐 다음 오프가 언젠지 그날이 D데이야”
“빨리 빨리”
“급하다 급해 스케줄이 어떻게 되나”
병원은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특히 수컷들의 움직임이 바빠졌고, 그것을 보는 여자들의 마음만 복잡할 뿐이었다. 4대여신이 없었다면 남자들의 이목을 충분히 끌 수 있을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하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으니 휴가때면 다들 성형외과를 찾아가곤 했었다. 은아와 효선은 다시금 병원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켰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언니 밟아~달려~”
“고우~비켜라 나에게 길을 열어 주거라~”
차에서 신나게 외치며 달리다 보니 금세 아파트에 도착했다. 워낙 가까운 거리기도 했지만 오늘 따라 차도 막히지 않아 평소보다 빨리 도착했다.
“올라가자 참 뭐 사갈거 없을까?”
“언니 그런 건 나중에 우선 집부터 가자~”
“그래 뭐 필요하면 치혁이랑 같이 나와서 사지 뭐~”
“응!”
차에서 급하게 내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것이 왜 이렇게 늦은지 몰랐다.
“별일 없겠지?”
“난 우선 치혁이 진료부터 해야 할까봐”
“맞다 괜찮겠지?”
“일단 가서 봐야지 그런데 병원장은 뭐길래 이걸 치혁이에게 주라는 거지?”
은아는 진료가방 말고 쇼핑백을 들어 효선에게 보여주었다.
“에? 난 언니 꺼 인줄 알았는데 아냐?”
“응 내꺼 아냐 병원장이 치혁이 주래”
“원장님이? 치혁이 우리랑 같이 사는 거 알아?”
“아니 모르지 어떻게 알아 그냥 치혁이가 나하고만 연락한다 했나봐 연락되는 가 물어 보길래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치혁이에게 전화번호를 줬다구 했지 그러니깐 연락 오면 이걸 주라던데”
“그래? 뭐지? 무거워?”
“응 좀 묵직해”
“줘봐 내가 들어 볼게”
은아는 쇼핑백을 효선에게 건네주었다. 효선은 쇼핑백을 들었다 놨다 하며 무게를 가늠하고 안에 무엇이 들었나 살펴보았다.
“뭔지 모르겠네. 상자 같은데 안에는 무엇인지”
“나도 살펴봤는데 뭐 포장을 뜯을 수 없으니 이제 곧 치혁이 보니깐 물어보자”
“응 언니”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이미 집인데도 빠른 걸음으로 현관문으로 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리리’ 소리가 나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은아와 효선이었다.
“어떻게 조용한데? 불도 안키고 뭐하는 거지?”
“자나봐 언니”
“그래? 그럼 조용 조용 다들 깰라”
겨울이다 보니 밤이 일찍 찾아와 거실은 어두웠다. 은아와 효선은 사람들이 깰까 싶어 조용히 들어오는데 거실에 소연과 은지 그리고 치혁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누워있었다.
“여기서 자나?”
은아가 불을 켜자 거실에 누워 자고 있는 세 사람이 그녀들의 눈에 들어왔다.
“어멋!”
“이런~!!!”
세 사람의 모습은 은아와 효선이 눈이 커질 대로 커져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연과 은지는 각각 치혁의 옆에 누워 치혁을 안고 자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지만 그녀들의 손의 위치가 문제였다.
둘 다 치혁의 바지 안쪽으로 손을 넣고 있어 손이 무엇을 하지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치혁은 옷을 얌전히 입고 있었지만 소연과 은지는 치마가 말려 올라가 허연 엉덩이를 그대로 노출 하고 있었다. 모로 누워있어 음부가 살짝 가려지긴 했지만 눈의 각도만 돌리면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무슨 상황?”
“그러게? 그런데 왜 난 화가 나는 것보다 부럽지?”
“...”
거실이 불이 켜지자 잠을 자던 세 사람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으으음 어 언니 오셨어요. 효선이 왔어”
“큰언니 오셨어요? 아 거실에서 잠들어 버렸네”
치혁은 이미 은아와 효선이 집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깨어나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현관문으로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분명 잠이 들었지만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상하긴 하지만 뭐 예민해 져서 그런 거겠지’
치혁은 일부러 자는 척을 하며 반응을 살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하~암 잘 잤다. 우웅 몸이 나른한 게 정말 잘 잤네”
“그러네요. 언니 몸이~”
둘은 일어나 앉아 어깨를 풀며 머리를 정돈했다. 은아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팔짱을 끼고 보는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야이 지지배들아 정신 좀 차려(너네들 끼리만 즐기고 좋았냐? 언니 빼고 하니깐 좋았어?)”
은아가 소리치자 소연과 은지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딱히 잘못 한 건 없지 싶은데 은아가 저러는 걸 보며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 그렇다고 은아의 목소리가 정말 화가 난 목소리도 아닌 것 같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네? 언니?”
“에엑?”
소연보다 은지가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며 급하게 치마를 내리려 했다.
“이..이게 어떻게 아~아잉”
“왜 그래 은지야 너 치마가 앗~!!!”
소연도 은지를 보고서야 자신의 상황이 파악되었다. 사실 이런다고 부끄럽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잠결에 이런 모습을 보이니 조금은 민망했다. 거기다 치혁이까지 있으니 둘은 금세 얼굴이 발갛게 변해버렸다.
둘은 아무리 치마를 내려도 내려오지 않아 당황을 하였다. 그러다 은지는 평소에도 발가벗고 지내는데 이게 뭐 어때서란 생각이 들었다. 은지가 치마를 내리기를 포기하자 소연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러는 게 더 웃긴 것 같아 이내 말려간 치마를 내버려두었다.
“뭐 이미 다 본 사이인데 세삼스럽게 이러는 게 좀 민망하네요.(뭐 어때 다 봤는데 치혁이도 다 같이 봤는데 어때서)”
은지는 태연하게 일어나 잠을 깨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다. 소연도 어깨를 으쓱이며 일어나 거실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허연 엉덩이를 그대로 들어낸 채 말이다.
“우와 우리 언니들 강심장 짱 나두 벗어야지~”
“이긍 못 말리겠네 정말”
그렇다고 다들 옷을 벗은 건 아니었다. 만약 그녀들만 있었다면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치혁이 있어 조금은 조심을 했다. 은아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씻고는 편안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효선 역시 은지가 들어간 욕실에 따라 들어가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나와 역시 집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소연과 은지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말려간 치마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치마 끝과 끝이 교모하게 엉겨있는 걸 발견했다. 이건 누가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생긴 것이었다. 소연과 은지는 동시에 치혁을 노려보며 인상을 썼다. 이제야 치혁이 장난을 친 걸 알아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