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시작
세 명이서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저절로 모이게 했다. 때마침 마지막 멤버인 장소연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그녀들은 완전체가 되었다는 듯 주위로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내가 늦었나요?”
“아니야 장 간호사 그만 가자 근데 어디로 갈 거야?”
“선생님 우리 날씨도 추운데 따뜻한 곳으로 가요.”
“음 어디가 좋을까?”
은아가 고민을 하자 효선이 대신 말을 해주었다.
“오늘도 어차피 선생님 댁에서 다들 잘 거 아녀요? 그럼 선생님 집 근처로 가요~난 이미 집에다 전화 드렸어요. 오늘 선생님 집에 간다구~”
“아 이러다 강 박사님에게 찍히는 것 아냐 무남독녀 외동딸을 자꾸 외박시킨다고?”
“에이 선생님도 우리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는데요. 외로운 절 보살펴 준다면서요.”
“그래? 하여튼 그럼 대략 방향은 정해졌으니 출발하자고~ 고고~”
“고고~”
“고우~”
은아 먼저 소리치자 나머지 간호사들도 입을 맞추어 소리쳤다. 그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지던트 의사 몇이서 쭈뼛쭈뼛 그녀들 곁으로 다가왔다.
“저 김 선생님 오늘 어디 가시나요?”
“누구? 박 선생?”
“네 여기 권 선생하고 이 선생도 있습니다.”
“오늘 오프인가 보네?”
“네 다행히 이렇게 세 명은 내일 쉽니다. 이게 얼마 만에 쉬는 것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요즘은 레지 때도 쉬나보지?”
“선생님 때랑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 것 같네”
은아는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세 명의 의사 선생들을 보았다. 하나 같이 힘든 업무에 찌들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언제 씻었는지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다들 훈남 냄새가 솔솔 풍겼다.
“저 오늘 같은 날 같이 합석해도 될까요?”
박정건은 단도직입적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이상기와 권영묵이 무언의 눈길로 응원하였다.
“어디서 훈남 냄새를 풍기나 했더니 다들 이유가 있었네”
“헤헤 우리 병원 4대 미녀 분들이 아니십니까! 이런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뒷 일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세 명은 동시에 끝말을 외치며 은아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아는 의사들을 뒤로하고 같이 팔짱을 끼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았다. 그녀들을 눈빛은 은아 마음대로 하라는 것 같았다. 결정은 은아가 하고 자신들은 그 결정에 따르겠단 표시였다. 그러자 은아가 고개를 돌려 의사들을 보았다.
“시~러엇!!!”
“에에네?”
은아의 입에서 설마 싫다는 말이 나올 줄 몰랐는지 실망한 세 사람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은아의 입에서 미소가 그려지며 다음 말을 이었다.
“너네들이 왜 책임져 벌어도 내가 더 많이 버는데 나도 레지 시절 겪은 몸이야 오늘은 내가 쏠 테니 다 같이 가자~”
화끈한 은아의 말에 세 명은 기쁨에 찬 얼굴을 하였다.
“와~!!!”
“넵 감사합니다!~”
의사들은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자신들이 돈을 쏟아 부어도 모자랄 판에 은아가 쏘겠다고 하니 기쁨 두 배 행복 열배였다. 간호사들은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같이 가도 좋았고,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기네들의 최종 목적지는 은아의 집이기 때문이었고, 밤새 수다를 떨 계획이었다. 중간에 누가 끼어들든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음은 양을 찾게 되고 양도 음을 쫓게 되듯이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다들 좋았다.
하지만 이들과는 다르게 매서운 눈빛으로 의사들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당직을 서야하는 의사들과 노총각 의사들 그리고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수컷들은 그들을 할 수만 있다면 사지를 찢어버리겠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감히 우리의 여신님과 함께 네 저 인간들을~!”
“아 난 부럽다 부러워 난 언제 한 번 어울려 보나”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용기를 내어보는 건데”
“흑흑흑 난 왜 눈물이 날까”
부러움 반 시기심 반으로 여신 사인방과 합류한 의사들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더욱 강렬해 지자 의사들은 순간 오한이 드는지 몸을 떨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죽어도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그들의 눈빛을 무시해 버렸다.
“자자 그만하고 가자 누구? 이 선생이 차가 있던가? 아님 권 선생이 차가 있나?”
“저희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럼 누가 운전을 하든 나 따라와 강남 모란 아파트 알지?”
“네 당연하죠.”
“일단 그리로 와”
“네”
은아는 간호사들을 이끌고 병원 건물 밖으로 나섰다. 은아가 앞장을 서고 그 뒤에 세 명이 나란히 걸었다. 병원이 정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자 다들 어깨를 움츠렸다.
“12월 이라서 그런가 추워요. 언니”
“그러네 다들 감기 조심하고 시간 날 때 독감주사 맞아 알았지?”
“네 큰언니~”
세 명은 동시에 대답을 하였다. 병원 안에서는 선생님 또는 누구누구 간호사 하면 존칭에 대해 명확히 하였는데 병원을 나서자마자 언니 동생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니 처음 만났었던 일이 생각나는 효선이었다.
“큰언니 우리 처음 모인 날 기억해요?”
“글쎄 나는 잘”
“언니는 그것도 기억 못해요?”
“이 년들이 야 너희들도 내 나이 돼봐~ 기억이 가물가물해 하는 일도 얼마나 많은데”
“히히히 아직 서른네 살밖에 안됐으면서”
“맞아 그런데 웃긴 건 생긴 건 우리 중에 가장 어려보여 완전 동안에 고딩 포스라니깐”
“호호호 은지가 딱 맞는 말을 하네~”
“소연 언니는 언니가 제일 나이 들어 보인단 말인 거 몰라?”
“효선아 이왕이면 성숙미라고 불러주렴~”
“성숙미? 푸히히”
“하하하”
“호호호”
네 사람은 아직 주차장에 가지도 않았는데 무엇이 그렇게 웃긴 지 연신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들을 뒤따라오던 의사 세 명은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자 조금은 민망해졌다. 그러나 쉽사리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이렇게 같이 하게 된 것도 행운인데 자칫 마음을 상하게 해서 없던 일로 돌리까 그녀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은아는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를 돌아 박정건에게 소리쳤다.
“잘 따와~”
“넵 걱정 마십시오.”
은아의 차에 간호사들이 하나 둘 오르기 시작하고, 박정건 역시 자신의 차에 올랐다. 남자 의사들은 다들 차가 있었지만 정건의 차 하나로 움직이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정건의 차가 가장 좋았기 때문이었다. 은아는 차에 오르자마자 시동을 걸었다.
“언니 히터 틀어죠~”
“안 돼!!!”
“잉 왜에”
“피부 건조해져 너희들 같이 뽀송뽀송한 것들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나는 관리를 해 줘야 한다구”
“히잉 우리 중에 피부가 제일 좋으면서”
“야 원래 있는 사람이 더 하는 거야”
“추워”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은지가 자신을 팔로 몸을 감싸며 연신 춥다고 하였다. 그러자 은아가 뒷좌석의 열선을 틀어주며 말했다.
“곧 따뜻해 질거야 은지 너는 추위도 많이 타면서 만날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니 따뜻하게 입지 않고”
“큰언니도 참 추워도 패션은 지켜야죠 맵시가 얼마나 중요한데”
“네에 그러다 얼어 죽으세요~”
“칫 그러는 언니도 뭐 만만찮은데?”
“나야 추위를 덜 타니깐 괜찮네요~”
네 사람은 마치 자매처럼 이야기 꽇을 피웠다. 은아는 룸미러를 보며 뒤에 차가 잘 따라오나 확인하였다.
“뒤에 잘 따라오고 있나?”
그러자 소연이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정건의 차인지는 모르지만 한 대가 뒤쫓아 오고 있었다.
“잘 따라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언니”
“야 이년들아 너희도 이참에 저것들 중에 하나를 잡지 그러냐. 저렇게 네년들과 어울리기 위해 애쓰는데 그만 튕기고 하나 골라 특히 소연이 너! 너 그러다 내 꼴 난다.”
“언니도 참~”
그러면서 뒤를 돌아 따라오는 의사들을 보았다.
“싫지는 않는 가 보구나”
“난 빼주세요 큰언니 난 아직 어리다구요~”
“스물 셋이면 알거 다 알 텐데 빼긴 뭘 빼! 어떻게 우리들 중에 애인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생기긴 게 빠져 몸매가 빠져 부족한 거 하나 없는데 다들 왜 그런지 원”
“그러니 이렇게 다 모이는 거죠~”
“이게 다 큰언니 때문이에요.”
“그게 왜 내 탓이야?”
“앞에서 똥차가 가로막고 있으니 뒤에 있는 스포츠카가 못 가는 거 아녀요.”
“뭐 엇 똥차?”
“히히히”
“요것이 언니 보구 똥차라 했어?”
은아는 소연의 말장난에 맞장구치듯 차의 핸들을 이리 꺾었다. 저리 꺾었다 했다. 그러자 차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꺄악~~ 언니!! 무서워~”
“그만해요~ 사고 나겠어요.”
은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나게 차를 움직였다. 그러자 핸드폰이 울렸다. 뒤에서 따라오던 상기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네 김 샘 혹시 차에 이상이라도 있습니까? 제가 한 번 볼까요?-
의사들 중 차에 대해 관심도 많고 자가 수리를 할 정도로 취미와 관심을 가진 상기가 은아에게 잘 보이며 전화를 한 것이다.
“아냐 아무것도 아직 새 차라구”
-아니 차가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것 같아서..-
“아 장난 친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마”
-네-
“아 저기서 우회전 하면 돼 박 선생에게 그렇게 말해”
-네 알겠습니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30분 거리여서 가까웠다. 차가 큰 도로에서 작은 도로에 들어서자 좌우로 상가들이 레온사인을 빛내고 있었다.
“언니 동네는 좀 복잡해”
“대신에 고를 수 있는 여지가 많잖아~”
“아 나도 독립이나 할까? 언니랑 같은 동네 살면 좋을텐데”
소연은 혼자 살고 있는 은아가 부러운지 넋두리를 했다. 그러자 은아가 머리를 흔들었다.
“부모님 해주는 밥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 나처럼 쫓기듯 나오면 고생이니깐”
“쫓기듯?”
“내가 저번에도 이야기 했잖아 집에서 하도 결혼하라고 스트레스 주는 바람에 홧김에 나왔다고”
“히히 맞다 기억난다. 그래서 언니 힘들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집에 갔다가 어머님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