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103화. 물음
배에서 끔틀거리던 무언가는 벌써 내 목젖까지 올라와 있었다. 혀까지 올라와서는, 입을 통해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보라빛의 손 하나가 입술 너머로 튀어나와져 있는 모습이 내 눈 앞에서 보였다.
손가락을 꿈틀대던 손이 휙 돌려져서는 내 쪽을 바라봤다. 정확히 손바닥에 박혀져있던 눈알 하나가 말이다.
(사,살려줘!! 살려줘!!)
극한의 공포가 온 몸을 집어삼켰다.
내 어깨에 타나펠 님의 손이 올라오더니 이내 내 공포는 끝이났다. 나를 집어삼키려하던 손바닥의 눈도, 물에 비춰진 나와 사람들의 형상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막혔던 숨이 탁 트여왔다.
"헤으으윽ㅡ 헤으으으으윽ㅡ 콜록,콜록"
끈적거리는 침이 입에서 줄줄줄 흘러내려왔다. 흘러내린 침은 바닥을 타고 새차게 떨어대는 손을 향해 흘러갔다.
[두려웠나?]
조용하게 물어오는 타나펠 님의 물음에, 수전증마냥 미친듯이 떨어대는 손들을 마주 부여잡은 채로 간신히 답했다.
"그... 사람들은 대체..."
[일단 진정을 가라앉히고 난 연후에 답해주도록 하지]
그가 자신의 손을 내 이마에 갖다대었다. 갖다대고 얼마 안 있어 내 불안과 두려움은 일거에 소멸되어버렸다. 내가 왜 그것에 그런 마음이 든 것인지 의아해 할 정도로 안정되어져 갔다.
[이제 좀 진정이 됐나?]
"예, 이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좋아, 정자에 가 앉은 연후에 대화를 나누자고]
나는 그를 따라 정자로 가 앉았다. 사면이 뻥 뜷린 정자 너머로 저수지에 가득 들어찬 맑은 물들이 보여졌다. 애써 그 맑음을 보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했다.
[봤을 것이다. 물에 비춰진 네 모습과 수많은 생명체들의 모습이]
"주변의 사람들이 마치 저를 죽이려 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나?]
나를 흥미롭게 쳐다보는 그에게 모른다고 답해줬다. 이런 내 답변에 그는 저수지 쪽을 향해 손을 치켜들고서는, 휙휙 내저었다. 그러자 저수지 표면에서 그리스 신전과 흡사한 형태의 건물이 보여졌다. 화면은 이제 그 건물의 내부를 비춰주고 있었다.
건물 안에는 내가 소환됐을때 서있었던 제단과, 그 주변에 서있었던 병사들과 술사들의 모습이 보여왔다. 그들 중심에는 엘베 그 썅년이 서있었다.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이 년의 얼굴을 다시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차피 이건 허상일 뿐이다, 달려들어봤자 물에 빠질 뿐이야]
"......."
[저 여자가 죽일만큼 증오스럽나보군, 왜 그토록 증오 하는거지?]
저 엘베 미친 년은 나를 감옥에 가뒀다. 마야를 죽였다. 마야를 죽였다. 마야를... 그 어린 것을 죽여버렸다. 그년이라면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년이라면!!
[마야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는 너에게 어떤 의미였지?]
타나펠 님의 공허한 눈빛이 내게 날라들어왔다. 그 공허한 눈빛을 바라보니 입에서 속마음이 줄줄 흘러나왔다.
"마야는 영문도 모른채 소환돼서는 감옥에 갇힌 제게 희망이었습니다"
"개돼지처럼 우리에 처박혀 있던 상황 속에서 그 아이는 제게 구원 그 자체였습니다"
[구원... 흐흐흐흐, 구원이라?]
[그럼 너는 그 애에게 구원을 줬었나? 받은게 있으면 응당 갚아야되는거 아닌가?]
"......."
나는 그 애에게 구원을 줬었는가? 나는 그냥 그 애에게 구원을 구걸하는 놈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소녀에게 어른인 내가 비굴하게 구걸을 해댔다. 그 애에게서 관심과 동정을 받기 위해 애걸복걸해댔다.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온 아이에게, 나보다 한참이나 적은 삶을 살았던 아이에게 나는 찌질한 새끼마냥 동냥을 구해왔다.
거지한테 동냥해서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 하나 있었다.. 그 아이의 목숨을 잃게 만들어줬다.
[그래, 너는 그 애를 죽게 만들었지]
[잘 한 일이야, 고통에 찬 삶을 끝내줬으니 말이야]
숨이.. 막혀왔다.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도저히 고개를 빳빳히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내심 속으로는 그 애가 죽은 것에 대해 그런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고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도ㅡ
[너는 마야가 죽었다고 생각하나?]
[너는 예전부터 마야가 살아있기를 바라지 않았었나?]
[너도 역시 그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속으로 인정하고 있었지?]
"저는... 그.. 그렇ㅡ"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만약에 커즐린의 소굴에서 저주에 걸린 네놈에 의해 죽은 사람들 속에 마야라는 아이가 있었다면 어떻게 할텐가?]
"예?!"
몸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게,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그럴리가 없다!
[맞아, 그럴리가 없지]
[그 아이는 진작에 죽었거든]
그 말에 떨려오던 손이 멈춰졌다. 마야가 죽었다.
살아있기를 바랬던 아이가 죽었다.
[너는 만약에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구하러 갔을까?]
[힘들게 자리잡았던 터전을, 일터를, 가족을 버리고 과연 구하러 갔을까?]
아무 말도 못하는 내게 그는 계속해서 질문을 해왔다.
[3년 전 너가 소환됐을 때에는 그렇다쳐도, 1년.. 2년.. 흘러가면서 네 마음속에 그 아이의 생사를 찾기 위한 노력을 했었는가? 그냥 현실에 안주하여 머릿속에서 잊혀져 버린게 아닌가, 이 말이야]
[존재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여기지는 않았었나? 오크부락을 토벌하고 난 이후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테지, 내 말이 맞지?]
그랬다. 나는 릴리가 죽었다는 충격 탓에 내가 살아왔던 삶들을 되새김질해댔었다. 그 속에는 마야에 대한 것들도 속해있었다. 나는 그 소녀를 어쩌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야 죄책감이 덜 들테니 말이다.
[마야라는 이름의 소녀에 대한 건 넘어가고, 이제 너의 아내들에 대해서 말해볼까?]
[릴리라는 이름의 여성부터 시작ㅡ]
"으아아아악!!!!! 그만 해!!! 그만 하라고!!!!!! 씨발새끼야!!!!!!"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새끼의 말들로 인해 내 민낯이 드러나는게, 내 마음이 희롱당하고 있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서 앞에 놓여진 테이블을 밀어뜨려 계단 아래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숨이 턱 막혀오는 답답함이, 이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되지를 않았다.
"씨발! 나는 마야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그 아이가 살아있기를 바랬어! 그 아이가 살아있으면 언제든지 구하러 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근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씨발 어떻게 아냐고!!!! 알려만 준다면 당장 구하러 갔을거야! 개새끼처럼 달려가서 구했을 거라고!!"
"현실에 안주해서 머릿속에서 잊혀져버렸다고? 그래 새끼야! 근데 그게 뭐 잘못이야?! 그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는데, 나는 뭐 병신마냥 아무것도 안한채로 살아야 돼? 웃기지 마! 이 좆같은 새끼야!!!! 마야라면 내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았을거라고! 마야가 이런 나를 증오한다해도 어쩔 수 없는거야!! 자신은 죽었는데 나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으니깐 말이야!! 그리고 나는 마땅히 그 증오를 받아들일거야, 그게 내가 그 아이에 대한 평생 안고가야 할 속죄일테니깐 말이야!!!"
"그리고 뭐 씨발 고통에 찬 삶을 끝내준 것이 잘한 일이라고 했지? 지랄염병하네!!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안했다고!!! 나 같은 병신 새끼도 사는 마당에 그 아이가 죽는게 왜 잘한 일인건데? 마야도 살기 위해서 아둥바둥쳤다고, 나처럼 말이야!!! 왜 그 아이의 삶을 네가 뭔데 감 놔라 배 놔라하는거냐고, 이 대천사 개새꺄!!!"
눈에서 눈물이 뽑아져나왔다. 그가 나의, 마야에 대한 마음을 오염시킨 것에 대한 것으로 인함이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마야가 죽었다는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살아있기를 바랬는데, 죽었다. 나 때문에 죽었다. 착하고 순수한 어린 소녀가 죽어버렸다. 나같은 병신 개새끼 때문에 말이다.
바닥에 주저앉고서는 머리를 떨구었다. 두 손으로 뒷통수를 감싸쥐고서는 흐느꼈다. 미안함에 눈물이 멈춰지질 않았다. 타나펠의 말로 인해 그 아이에게 이런 마음과 저런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밀물마냥 물 밀듯이 몰려왔다.
[마야에 대한 너의 마음은 진심이었었나?]
[정말로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랬다면, 장소만 알았다면 구하러 갔을 거냔 말이다?]
위에서 떨어지는 그의 말들을 귀로 주숴담은 뒤, 또박또박 답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바치는데 구하러 갔을거다"
"그게 어디가 됐든지 간에 말이야, 이 씨발놈아"
[그 마음이 변치 않을 것임을 맹세하는가?]
"마야에 대한 내 마음은 진심이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불변의 마음이라고..."
[하하하하!!! 그래 그런 불변의 마음가짐을 잃지 말라고]
[그것이 언젠가 너에게 큰 도움이 될테니깐 말이야, 고개 들어]
고개가 강제적으로 들어올려졌다. 맑았던 하늘이 어느샌가 밤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모래알마냥 흩뿌려져 있는 별들이 자리한 밤하늘의 전경은 고스란히 저수지에 비춰졌다.
정자에서는 세른이 내뿜는 빛과 같은 초록색의 영롱한 빛깔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타나펠의 검은색 불꽃 안광이 흉흉히 빛나고 있었다.
[남자가 우면 쓰나?]
[비록 내가 창조한 생명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성별은 같으니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
애처럼 질질 짜댄 것이 부끄러워 눈가를 손으로 벅벅 문질러 닦아냈다.
[뭐, 나도 오래전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으니 뭐라 할 수는 없겠군]
[빨리 앉아, 할 얘기가 아주 많으니깐]
자리에 앉기전에 그에게 꼭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이성을 되찾은 상태로 물었다.
"마야는 정말로 죽은겁니까?"
[죽었어, 하지만 영혼을 빼내었지]
"영혼을 빼내다니. 그게 대체 무슨...?"
[너가 아끼던 아이였지 않는가?]
[그래서 내 특별히 그 아이에게 새로운 육체를 찾아줬지]
"그렇다면 그 아이는 살아있는 겁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벌써 만났지 않았는가? 투탕카멘의 보물과 영광을 만나지 않았던가?]
투탕카멘의 보물과 영광? 설마 호루스의 눈이 새겨진 문 너머의 공간에 있었던 여성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마야는 소녀였다. 한순간에 성인 여성으로 탈바꿈 될 일이 없다.
[좀 전에 내가 새로운 육체를 찾아줬다고 했었지]
[그 육체가 바로 투탕카멘의 딸의 육체다]
"투탕카멘의 딸..."
[자세한 것은 여기서 나간 뒤에, 그녀 본인에게 물어보도록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지. 너가 왜 여기에 있고, 나와 독대를 하고 있는지 말이야]
그의 말대로 일단 마야에 관한 일은 잠시 미뤄둬야겠다. 마야가 살아있다고 했으니 살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대화를 나누기로 하였다.
[방금 전 저수지에 비추었던 풍경, 자네가 어떻게 소환됐는줄 아는가?]
"엘베 년의 말을 들어본 바, 사람들을 제물로 삼아서 소환됐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래, 맞아. 자네 또한 수많은 생명체들을 제물로 삼아 소환당했지]
딱히 죄책감은 안들었다. 나는 억지로 소환됐을 뿐이지 잘못은 소환했던 놈들에게 있으니 말이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억지로 소환당한 것도 모잘라서 억지로 죄책감까지 떠안는것은 부당한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저수지에 비춰졌던 자네에게 달려드려는 생명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야. 자네에게 아주 깊은 증오를 품고있어, 그게 언젠가는 독으로 다가올테고 말야]
"제물이었던 사람들이 제게 해를 가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억울해서 뒤져버리겠다. 원한을 품는다면 리베왕국한테 풀 것이지 왜 애꿏은 나한테 푼단 말인가!
[자네는 아직 죽고 싶지 않겠지?]
[아내들과, 자식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을테지?]
"그렇습니다"
[그러기를 원한다면 자네에게 원한을 품은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
[그래야지만 나중에 뒷 탈이 없을 것이야]
"이미 죽어버린 자들인데 어떻게 죽이라는 말씀이신지...?"
[내 좋은 것을 주지]
그의 머리 위에 붕붕 떠있던 검은색 손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그렇게 꺼낸 것은 철퇴였다. 한 손으로 잡을 정도의 손잡이를 지녔고, 위로 올라갈수록 두툼해졌으며 끝에는 묵직한 쇠공이 박혀진 철퇴였다. 길이는 내 팔 길이보다 약간 짧은 정도 되었다.
검은색 손이 쥐고있던 철퇴를 내 발치 앞에 내던졌다. 내려다본 철퇴는 칠흑색으로써 묵직하고 흉악해보였다.
"이건 철퇴가 아닙니까?"
"이걸 왜 갑자기 저한테 주시는 겁니까?"
[죽은 자들을 죽이려면 그런 자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 무기가 바로 철퇴야, 어때 마음에 드나?]
이세계의 신과도 같은 존재에게 받은 무기. 딱 봐도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드디어 용사로서의 특혜를 받는것인가!
[모든 것을 부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니 그럴만도 하겠군]
[자네에게 준 철퇴는 에너지의 존재마저 박살내버릴 수 있어]
"에너지까지!"
철퇴를 냉큼 쥐고서는 들어올려보고자 했다. 들썩거리기만 할 뿐 들려지지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전력으로 들어올려보고자 했으나 실패로 끝나버렸다.
"타나펠 님, 들리지도 않는 무기를 도대체 어떻게 사용하라는 말씀이신지..."
[그건 자네가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려있어서 딱히 뭐라 해줄 말이 없군]
한 마디로 내가 강해져야지만 들을 수 있는 무기란 말인가? 줘도 먹지를 못하는 내 처지가 처량했다.
[지금은 내가 힘을 빌려주지]
[그걸 들고 자네에게 원한을 품은 생명체들을 죽이고 와]
한순간이었다. 그의 검은색 손이 내 몸을 우왁스럽게 잡고서는, 저수지로 내던져버렸다. 나는 저수지에 빠져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