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98화. 대천사의 성역
< -- 112. 대천사의 성역 -- >
3년 전 걸어나왔던 곳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아래로 끝 없이 이어져 있는 계단들의 모습에 눈 앞이 아찔해져왔다.
(이 많은 계단을 올라왔다니... 그것도 리치하고 한 판 승부를 벌인 후에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이지 독한 녀석인게 틀림없나보다)
이러한 내 생각을 읽은것인지 릴리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레오, 이 많은 수의 계단을 올라왔다고?"
"그것도 리치하고 싸운 직후에 말이야?"
"남편 대단하지?"
답해주면서 그녀의 등 허리를 손으로 쓸어주었다.
"많이 힘들었지? 레오"
남편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내의 눈길에 성욕이 들끓어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된다.
한참을 내려가도 끝이 안보였다. 바닥이 나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릴리도 이즈음되니깐 힘에 부친 것인지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녀의 앞에 등을 보인 채로 무릎을 끓었다.
"등에 업혀"
"레오도 힘들잖아... 그럴 필요 없어"
"그러지 말고, 자 빨리"
나의 재촉에 릴리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내 등에 업혀왔다. 그녀의 젖가슴과 가벼움이 동시에 느껴져 왔다. 이러고 있자니 피로가 싹 풀리는게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릴리 언니 부럽다~"
부러워하는 목소리를 내는 델타에게 나중에 업혀주겠다고 하니 반색을 해왔다.
그렇게 또 한참을 내려갔을까, 드디어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왼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바닥에 도달했다.
멜레나를 내려놓고 리치를 향해 달려갔던 길.
리치와 한 판 승부를 벌였던 길.
그 길이 내 눈 앞에 다시 펼쳐져 있었다.
"내가 리치를 없앴다고는 하지만 혹시 또 다른 리치가 나타났을지 모르니깐 조심해"
주의 사항을 말해주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리치를 없앴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 장소에는 리치가 들고있던 지팡이가 부식된 채 바닥에 널부러져있었다.
나는 릴리에게 손가락으로 지팡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릴리, 이 지팡이 쓸 수 있는거야?"
"응, 놀랍게도 아직 쓸 수 있어"
답한 후 릴리는 그 지팡이를 자신의 손에 쥐여보았다. 지팡이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이에 그녀는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걸음을 놀렸다. 이제 저 지팡이는 릴리의 것이다.
기다란 통로를 내리 걸었다. 멜레나를 업고 달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뒤에서는 리치가 죽일 듯이 쫓아왔었던 모습이 또렷이 기억났다.
"저기가 성으로 들어가는 문이야"
손가락으로 반즈음 열려져있는 문을 가리켰다. 조금만 더 가면 성 안으로 들어간다.
검을 빼들고 신중하고 차분하게 걸음을 놀렸다.
끼이이익ㅡ
녹슨 경첩소리를 내지르는 문을 활짝 열어 재끼니, 문을 발견하고 좋아했던 순간에 날라왔던 화살이 아직도 벽에 꽂혀져 있음이 보여졌다. 근 3년간 이곳을 방문한 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처음이었다.
부서지고 금이 간 천장에서 세른이 내뿜는 빛줄기가 안을 환히 비추어 줬다.
"저기요... 그... 리치 없는거 확실하죠?"
"썅년이, 없다잖아!"
"우리 남편 못믿어?!"
"죄,죄송해요!"
겁 먹은 목소리를 내며 묻는 루이즈에게 랄라가 버럭 소리를 지르니, 그녀는 사과와 함께 입을 꾹 다물었다.
귀를 연신 쫑긋거리고 있는 랄라에게 물었다.
"랄라, 뭐 들리는 거 없어?"
"아니, 아무것도"
"이 성에 우리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무장한 스켈레톤들이 도열해있었던 곳으로 그녀들을 안내했다.
복도 곳곳마다 스켈레톤들의 뼛조각과 가루가 널려있었다. 분명 리치의 소멸과 함께 같이 무너져 내렸나보다. 이 놈들의 갑옷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안 보였다. 설마 그것도 체내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었던 건가?
만약에 그런거라면 매우 아쉽다. 팔면 돈벌이가 쏠쏠한텐데 말이다.
벽에 걸려있는 촛대와 부식되어져가는 목재 가구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박살이 나버린 채로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스켈레톤들로 가득 들어차 있던 거대한 공간은 현재 뼛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어두운 색의 대리석 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바닥은 하얀 뼛가루로 하얗게 물들어져버렸다.
"놀라워... 어떻게 절벽 안에 이런 거대한 고성이 존재할 수가 있었던 거지?"
릴리는 감탄을 연발하면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만지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성역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일테다. 델타는 이리저리 만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남편, 남편, 이거 뭐야?"
"이 허연거 뭐야?"
"스켈레톤들의 잔해니깐 만지면 더러워"
"손 탁탁 털자"
"털어줘"
하얀 가루가 묻은 델타의 손바닥을 털어주면서 투탕카멘이 숨겨놓은 유물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에 잠겼다. 이 광활한 곳 어딘가에 숨겨놓았을텐데, 그걸 어떻게 찾을지 심히 난감스러웠다.
"남편, 여기 문이 있는데?"
랄라의 말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진짜로 문이 있었다.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여니 어둠이 자리해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혀 올 정도의 어둠이었다.
벽에서 촛대를 뽑아내어 불을 붙였다. 그걸로 안을 비추니 널찍한 공간의 바닥 한 가운데에 구멍이 뻥 뜷려있었다. 뻥 뜷린 구멍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소용돌이 계단이 나있었다.
"우와... 여기는 내려가면 위험할 것 같아요"
"나중에ㅡ"
"너 먼저 내려가봐"
랄라의 명령에 루이즈는 몸이 얼음처럼 굳히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는, 초조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게... 저 먼저 내려가라는 말씀... 이신지?"
"돈 받은 값은 해야 될 거 아니야?"
"받기 싫으면 내려가지 말든가"
"... 해,해볼게요!"
그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녀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녀가 들고있는 촛대를 통해, 그녀가 지금 어디까지 내려갔는지 파악이 가능했다.
"저기요~! 괜찮을 것 같아요~!"
"내려오셔도 될 것 같아요~!"
계단을 다 내려왔는지 구멍 밑에서 루이즈의 우렁 찬 목소리가 올라왔다. 아내들을 먼저 내려보내고 나는 맨 마지막으로 내려갔다. 뒤에 혹시라도 스켈레톤같은 녀석이 나타나면 바로 반격에 나서고자 공격할 준비를 상시 갖추면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오니 루이즈가 앞에 나있는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서는, 내 아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곳도 들어가실건가요?"
"딱봐도 위험해보이는데... 차라리 위에서부터 조사해보는게 어떨까요?"
"번거롭게 왜 그렇게 해?"
"나불대지 말고 앞장서라"
"네에......"
어깨가 축 쳐져있는 루이즈를 보며 나는 휴식을 취하고 난 뒤,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아내들은 내 말에 따라주었으며 루이즈도 마침 잘됐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띠운 채로 바닥에 철푸덕 주저 앉았다.
나도 바닥에 앉아 위를 올려다봤다. 소용돌이 계단으로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다시 올라 갈 생각을 하니 앞이 막막했다. 배낭에 챙겨온 수통을 꺼내 마시려 하자 델타가 내 무릎에 앉아 젖가슴을 내밀었다.
"남편, 물 말고 내거 마셔"
"내게 더 맛있어!"
"델타야, 루이즈 씨도 있는데 그건 좀 그렇지"
"야, 딴 데 보고 있어라"
랄라의 말에 루이즈는 나를 등진 채로 재깍 몸을 돌렸다. 이러면 문제 없지.
웃통을 까고 젖가슴을 드러낸 델타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젖꼭지를 집고서는, 내 입술에 밀어넣었다.
빨았다. 예전에는 싱거운 맛이었지만 지금은 달콤하면서 풍부한 맛이 났다.
아내의 젖을 통해 목을 가득 축이고 나서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해 토의를 했다.
"이곳에 투트 앙크 아멘의 유물이 숨겨져 있다면 필시 그것을 지키는 자들도 있을 거야"
"우린 그것을 조심해야 돼, 고성이나 유적 같은 곳에서 신화의 시대에 살았던 괴물들이 나타났다는 사례들을 들은 적이 있어"
"그럼 릴리, 너가 스켈레톤을 만들어서 선두로 내세우는건 어때?"
"나도 그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나와라, 리카르본!"
릴리가 바닥에 뼈들을 뿌리고서는 주문을 읊으니, 뼈들이 부르르 떨리다가 이내 짐승형 스켈레톤으로 변모했다.
"대단하다!"
스켈레톤의 등장에 델타는 놀라워하면서 만지작댔다. 그리고 나는 이 녀석들의 등에 촛대를 꽂아두었다. 이제 릴리가 명령만 내리면 된다.
"리카르본 가!"
"위험이 감지되면 즉각 나한테 달려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켈레톤들은 어둠이 퍼진 구멍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등에 매인 촛대가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환히 비춰주고 있었다.
"따라가보자"
내 말에 루이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선두로 나섰다. 맨 앞에 자신이 아니라 스켈레톤들이 있으니깐 한시름 고민을 덜게 되어 좋았을 것이다.
사람 세 명이 나란히 걸어갈 정도의 폭을 지닌 길을 걸어가던 중, 나는 루이즈에게 물어보았다.
"루이즈 씨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제국령 남서쪽에 위치한 오티스 도시 근처의 변방 시골마을에서 살다가 이쪽으로 넘어왔어요"
루이즈는 자기 고향 얘기로 인해 신이 난 것인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제 마을이 치즈하고 우유를 만들어 파는데 어찌나 맛있는지 오티스 근방에서는 명물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어요"
"포도도 재배하고, 그 포도로 와인도 만들었는데 그게 또 사람들한테 그렇게 인기가 있지 뭐에요"
"야 그만 말해, 시끄러워"
"랄라, 그러면 안돼"
"루이즈 씨, 좀 더 얘기해주세요"
무뚝뚝한 랄라의 제지에 다물어졌던 루이즈의 입이 릴리의 도움에 힘 입어 다시 열렸다.
"저희 부모님이 포도도 재배하고 치즈도 만들었어요"
"저는 항상 옆에서 구경하면서 거들어주곤 했어요, 특히 아빠가 난쟁이셔서... 그게 왜 난쟁이족 남자들은 다 작잖아요"
"알고 있어요, 난쟁이족 남자는 작고 여자는 키가 크다고 들었어요"
"헤헤헤, 맞아요, 그래서 항상 아빠가 저한테 선반에 놓여진 그릇 좀 꺼내달라고 했어요, 엄마가 키가 크셔가주고 선반을 높이 만들어놨거든요"
"항상 꺼내드릴때마다 치즈랑 바꿔주곤 하셨는데..."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릴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떠올리신건가요?"
"예?... 예에... 8년 전에 마왕군이 침입해서..."
"아..."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저는 운좋게 살았지만요"
"뭐... 그때는 모두 힘든 시기였잖아요?"
"무슨 말인지 이해해요, 저도 디트리런에 있었을 때 남자들이 징병되던 날의 기억이 선명해요"
"여성들이 흘린 눈물이 온 도시를 뒤덮고 있던 장면이 잊혀지질 않아요"
릴리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가 다시 풀려졌다. 그 날의 기억이 그녀에게는 정말이지 참혹했었나보다.
"제 마을도 상황이 딱 그랬었는데... 사람 사는데는 어딜가나 다 똑같나봐요"
"그러게요, 그래서 루이즈 씨는 그 날... 이후로 어떻게 지내셨나요?"
"제가 키가 크잖아요, 힘도 좀 쎄고, 그래서 허드렛일 하면서 입에 풀 칠 할정도로만 살다가 우연히 모험가라는 직업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서 지금은 모험가가 됐어요"
"동메달레스트만 돼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돈 많이 버시면 뭐 하실려고요?"
"자그마한 목장 하나 차려서 제가 살던 마을의 치즈하고 포도주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다음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사는 게 제 꿈이에요"
"꼭 이루시기를 기도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이후로도 그녀들의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성격이나 여타 다른 면에서 릴리와 루이즈는 서로 죽이 잘 맞아떨어졌다. 현재 티격태격하고 있는 랄라와 델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탁ㅡ 탁ㅡ 탁ㅡ 탁ㅡ
갑자기 앞에서 릴리의 스켈레톤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위험이 감지되면 릴리에게 돌아오게끔 되있었지? 그렇다는 말은...)
검을 앞으로 향하고서는, 치켜들었다.
"랄라, 앞의 뭐 들려오는거 없어?"
내 물음에 그녀는 서둘러 답해줬다.
"뭔가가 걸어오고 있어, 덩치가 꽤 상당한 것 같아!"
"릴리, 내가 공격하면 스켈레톤들이 후방을 노리게끔 해줘"
"알겠어! 나만 믿어!"
"루이즈 씨, 릴리를 잘 지켜주세요"
"예! 걱정마세요!"
"랄라랑 델타는 내 등 뒤로 와"
그녀들은 내 등 뒤에 와 전방을 주시했다.
산맥에서의 전투와 똑같은 대형을 갖추었다.
우리 셋이 뭉치면 두려울 게 없다.
거기에 릴리까지 있으니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치링ㅡ! 터벅ㅡ
이집트 벽화에서 보았던 아누비스가 우리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머리는 자칼에 몸통은 인간인 생명체.. 아누비스 말고는 떠오르는게 없었다.
이 앞에 투탕카멘의 유물이 반드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