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90화. 어둠
스켈레톤 토벌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뼈다귀 새끼들 상대하는건 이제 눈 감고도 한다. 3년 전 만났던 리치와 놈의 스켈레톤들은... 그건 예외고.
발치에 닿은 허연 두개골을 쳐다보며 새삼 나 자신이 강해졌다는 것이 체감됐다.
(권능의 효과 한 번 탁월하구만)
세 번째 권능의 효과, 성장 및 수련 속도 두 배 증가. 실질적으로는 모험가 경력 3년이지만 권능 탓에 경력이 6년이 쌓인거나 진배없었다. 앞으로 3년만 더하면 과연 얼마나 더 강해져있을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남편, 무슨 생각해?"
랄라가 다가와서는, 내 몸에 묻은 뼛조각들을 떼어내주며 말했다.
"나의 강함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 중에 있었어"
"뭔 소리래?"
"어제 꼬추 못 빨려서 그런거야?"
"... 그런가봐"
"덩치 큰 애라니깐... 집에 가서 잔뜩 빨아줄테니깐 참아"
"랄라야 사랑한다"
"당연히 사랑해야지"
"야! 이거 치워놔라!!"
"예!!"
그녀의 외침에 루이즈는 서둘러 바닥에 널브러진 뼛조각들을 자루에 담아넣기 시작했다. 그런 루이즈를 내버려둔 채 우리들은 리툼에게 갔다. 그는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들을 반겼다.
"자네들이 일찍 가버렸더라면 큰일 날 뻔 봤구만 그래"
"이래서 손님들한테 식사를 대접하라고 어르신들께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해주신거였구만"
"그러게나 말입니다"
"헌데 돈은...?"
"그게 말이지, 영 불안해서 말이야"
"오늘 하루동안만 이곳에서 머물면 안되겠는가? 오늘처럼 불쑥 나타나면 큰일이지 않는가? 왜 나타났는지 조사도 해주면 좋겠네만"
"비용만 지불하시면 문제 없습니다"
"지불하고 말고, 내 어음증 하나 써주겠네"
거리낌 없이 말하는 그의 말투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갈 날이 하루 미뤄져서 아쉽긴 했지만 지금은 그와의 관계를 좋게 형성해나가는게 중요하다. 여기서 일 잘해주면 그가 나중에 좋은 소문을 퍼뜨릴 줄 누가 알겠는가? 아침의 개새끼로 명성이 자자하긴 했지만 기왕이면 이달의 모험가로 불리어지고 싶다.
저 멀리서 루이즈가 우리쪽으로 뛰어와서는 주머니를 바닥에 툭 놓으며 답했다.
"다, 허억ㅡ 허억ㅡ 치웠어요, 허억ㅡ"
"주머니는 저기 구석에다 두시고, 지금 바로 묘지로 갈 준비 하시면 됩니다"
"예? 지금... 끝났는데..."
"그래서 안갈거야?"
랄라의 살벌한 말에 그녀는 냉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어제처럼 늦게 나오면 뺨때기 맞을 줄 알아라"
"예......"
주머니를 쥔 채 털레털레 걸어가는 그녀의 어깨가 착 가라앉아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내가 신입 모험가였을때의 기억이 떠올라 랄라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랄라, 너무 그러지 마"
"루이즈 씨는 아직 신입이고 하니깐 그럴ㅡ"
"내가 아니라 지금 저 여자 편드는거야, 남편?"
스산하게 물어오는 그녀를 보며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니지! 내가 설마 그럴까봐?!"
옆구리를 손으로 쓰다듬어주니 그제서야 그녀는 표정을 풀었다. 그건 그렇고 옆구리 살 너무 부드러운데?
하염없이 쓰다듬다가 루이즈가 다시 돌아오자마 그제서야 옆구리에서 손을 뗐다.
-
공동묘지에 도착해보니 그곳에는 스켈레톤들 몇몇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제 분명히 다 토벌해놨는데 어디서 이렇게 기어나오는건지. 단숨에 부셔버리고 주변을 조사했다.
땅바닥에는 놈들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발자국을 따라가보니 모두 한 방향에서 걸어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앞에는 미친여자가 살고 있다는 집이 놓여져 있었다.
"남편, 혹시 어제 그 여자가 스켈레톤들을 부린게 아닐까?"
"그럴수도.. 네크로맨서인가?"
랄라의 물음에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었다. 그 여자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고, 촌장인 리툼한테 원한이 많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네크로맨서건 아니건간에 현재 그 여성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똑똑똑
문을 두들겼으나 안에는 인기척도 느껴지질 않았다. 문을 여니 그대로 열렸다.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내부를 확인했다. 바닥에는 흙과 쓰레기들로 한가득이었고, 가구들은 하나같이 엎어져서 박살이 나있었다. 접시들은 조각조각 분해되었으며 식칼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어제 들고 왔던 식칼이 테이블에 꽂혀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없는 모양인데?"
"으윽, 냄새"
랄라는 발로 쓰레기들 걷어차내면서 말했고, 루이즈는 코를 손으로 움켜잡으면서 인상을 찡그러뜨렸다. 나는 꽂혀진 식칼을 뽑아내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날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어제 촌장의 몸에는 베인 자국이 없었어, 그렇다면 이건 대체 누구 피지?)
칼날에서 흘러내린 피는 테이블에서 바닥까지 흘러내려져 있었다. 방울 져서 떨어진 핏자국들이 한 방향으로 길게 나있었다. 핏방울이 끓긴 지점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존재해 있었다.
"랄라 이리와봐"
"루이즈 씨도 이리와보세요"
그녀들은 내 부름에 걸어와서는 계단을 쳐다봤다. 랄라가 바닥에 있던 나뭇조각을 발로 차서 계단 아래에 나있는 문을 맞추었다.
콰드득ㅡ!
문이 부서지더니 이내 바닥으로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내려가보자"
나랑 랄라가 내려가려 하자 루이즈가 겁 먹은 목소리를 내며 물어왔다.
"내려가시게요?!"
"그래야 되겠죠?"
"아... 안내려가면 안될까요?"
"닥쳐라"
어김없이 날라오는 랄라의 답변에 그녀는 마지못해 우리 뒤를 따랐다.
끼익ㅡ 끼익ㅡ
계단이 오래 됐는지 발을 딛을 때마다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부서진 문의 잔해를 넘어서 안으로 들어가니 온갖 날짐승들의 시체가 즐비해있었다. 시체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우웨에에엑ㅡ!!"
루이즈는 참지 못한채 결국 바닥에 아침에 먹었던 것들을 게워버렸다. 랄라가 걱정됐다. 그녀는 코가 예민하다.
"랄라, 괜찮아?"
그녀를 쳐다보니, 벌써 손가락으로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나가있을래?"
"아닝"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그녀를 보며 빨리 조사하고 이곳을 나가야만 되겠다.
지하실은 크기가 좀 됐다. 어딘가에 창문이 있는것인지 찬바람이 생생하고 불어왔다. 문에서 들어오는 빛 하나에만 의지한 채 어둠 속을 파고들었다.
몇 걸음을 더 걷자 앞에 검은 천으로 덮여진 요람이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저것은 불길하다고, 위험하다고 말이다.
고개를 돌리자 랄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손을 잡고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려 뒤돌아서는 순간 들짐승 시체들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시체들이.. 시체들이 일어나요!!!"
"루이즈 씨,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세요!!"
루이즈는 덩치와는 안어울리게 매우 소녀스럽게 문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와 랄라는 문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중간중간 우리들을 방해하는 들짐승들을 박살내버리면서 내달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바닥이 푹 꺼져가기 시작했다. 안에서부터 빠르게 우리가 내달리는 쪽으로 무너져내려갔다. 문이 바로 코앞이었다. 하지만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랄라, 밖에서 보자"
"꼭 살아돌아갈테니깐 기다리고 있어줘"
나는 그녀를 향해 달려드려는 들짐승을 향해 강하게 태클을 걸면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사히 문 밖으로 나간, 랄라의 놀란 얼굴과 함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남펴ㅡ"
내가 서있던 바닥이 푹 꺼졌다.
< -- 104. 어둠 -- >
"끄으으응..."
온 몸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씨이이발... 대가리야"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칠흑색이어서 시야분간이 전혀안됐다. 신발에서는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허리를 숙여 바닥을 만져보니 물 같은 액체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액체가 묻은 손가락을 코에 대보니ㅡ
"씨발! 뭔 좆같은 냄새야!"
"정신 확 깨게 해버리네?!"
냄새 덕분에 확 깬 정신으로 상황을 재빨리 파악해들어갔다. 바닥이 꺼지면서 나는 아래로 떨어졌다. 놀랍게도 지하실 아래에 또 지하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애초에 여기가 무슨 공간인지 전혀 모르겠다. 위에서와 똑같이 찬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이 들어오는 곳에 출구가 있을지도 몰라)
찬바람을 직격으로 맞으면서 걸음을 놀렸다.
위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진짜 한 줄기였다. 그래도 그 빛 덕분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여기가 지옥이 아니라 현세라는 것에 말이다.
빛줄기로 인해서 바닥에 있던 액체가 검은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무슨 액체인지 전혀 짐작이 안갔다. 그저 구역질나는 냄새라는 것 밖에는.
검을 뽑고서는 빛줄기에 갖다댔다. 예리한 검날에 의해 빛줄기가 튕겨져나가면서 주변을 비춰주었다. 미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주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돌벽, 종유석, 박쥐들, 동굴이었다. 그리고 내 맞은편에 구멍이 나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구멍으로 찬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횃불이 필요했다. 검날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도중 돌벽 틈에 횃불대가 꽂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재빨리 그쪽으로 가서 횃불대를 뽑은 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는 불을 붙여댔다. 베스티어 악어 토벌전에서 릴리가 부서뜨린 부싯돌을 통해 불을 붙이기를 시도했다.
그녀가 부서뜨린 부싯돌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기 위해 서코트 안쪽 깊숙이 간직해두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고보니 부싯돌을 부서뜨렸을 때 그녀의 표정이 얼마나 귀여웠었는지 새삼 내 여자가 되고나니깐 그 모든 것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졌다.
(랄라, 걱정마)
(빨리 네 곁으로 돌아갈테니깐)
불이 붙자마자 횃불대 안에 있던 나무조각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횃불의 존재로 인해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는 칠흑같은 어둠을 단신으로 뜷고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앞으로, 맞은편에 있는 구멍을 향해 걸어갔다.
한참을 걷자 액체로 인해 발이 불려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액체가 낑겨들어와서는 자리를 잡았다. 불쾌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지만 견디면서 묵묵히 걸어갔다.
찰박ㅡ 찰박ㅡ 터벅, 터벅
이제는 액체가 이닌 딱딱한 바닥만이 느껴졌다. 이제 좀 살겠다.
횃불을 바닥에 놓아두고, 신발을 벗어내어 안에 가득 들어찬 물을 쏟아내버렸다. 신발을 벗으니 한결 기분이 상쾌했으나 다시 이동하기 위해서 서둘러 신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넓은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발소리가 안에 널리 울려퍼졌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통해 느껴졌다. 검은 요람을 보았을때와 똑같은 감정이 생겨났다.
위험하다.
화르륵ㅡ!
갑자기 횃불대에 놓여진 불이 치솟아 올랐다.
공중에 아이만한 체형의 스켈레톤이 떠올라있었다. 공허한 검은색 눈구멍이 나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불이 갑자기 꺼졌다.
[꺄하하하하ㅡ! 꺄하하하하ㅡ!]
아이의 천진난만한, 그것도 소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검 손잡이를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공포감이다. 이 동굴안에 나와 저 스켈레톤밖에는 없었다. 단 둘뿐인 이 상황이 무서웠다.
(괜찮아, 나한테는 권능이 있으니깐)
"어이, 거기 공중에 떠있는 친구!!"
"나랑 친구하지 않을래? 같이 놀자고!!"
첫 번째 권능을 발현했다.
웃음이 딱 멈춰졌다. 소녀의 가녀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친구... 나 너랑 친구?]
"꿀꺽... 으응... 우리는 친구야"
[친구.. 친구!.. 친구!!.. 친구!!!!!!!!!!]
순간 횃불대에 불길이 치솟았다. 공중에 떠있던 스켈레톤은 어느샌가 살이 덕지덕지 붙어져있었고 두개골에서는 머리카락이 바닥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게 자라나 있었다. 점점 살아있었을 때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얼굴피부는 있지만 눈은 없는 소녀가 말했다.
[나랑 놀자!! 우린 친구잖아!!]
[나랑 놀아줘!!!!!]
머리카락의 여러갈래가 내게로 날라들어왔다. 불로 그 머리카락을 지지면서 피했다.
[아얏!! 나한테 왜 그래!!!!]
[죽어!! 죽어!!!!!!]
수백개의 머리카락이 내게로 날라들어왔다. 불로서는 역부족이었고, 그 결과 내 검과 내 팔, 내 다리가 소녀의 머리카락에 의해 붙들려졌다.
(젠장! 친구한테 이러기 있기냐!!)
머리카락이 어찌나 억센지 아둥바둥해도 끓어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두 번째 권능을 써야되는건가? 하루에 한 번, 3분이다. 그 3분이 지나도 저 소녀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가망이 없다. 반드시 3분안에 쓰러뜨려야만 한다.
"얌마! 나랑 대등ㅡ"
"밀리야!"
미친 여성이 나와 소녀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