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89화. 미친 여자(2)
촌장의 집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거실에 놓여진, 다 헤진 가죽소파부터 시작해서 군데군데 흠집이 새겨진 원목테이블, 불길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벽난로. 해가 저무는 창문 밖의 분위기와 딱 어울렸다.
마을의 촌장이자 내 고용주인 리툼은 주방에 놓여진 식탁으로 우리들을 안내해줬다.
"정말 대단하구만!"
"그때는 정말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식탁에 앉고나서도 나와 그의 대화는 멈출 기미가 안보였다. 역시 피가 튀기고 살점이 난무하는 이야기는 남자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가보다.
그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 문득 뾰족한 무언가가 허벅지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랄라의 기다란 손가락이 연속적으로 내 허벅지를 찔러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뭔가 대단히 마음에 안들어하는 눈치였다.
아쉽지만 대화는 여기서 끝내야겠다.
때마침 음식이 나왔다.
"이야~! 정말 맛있겠습니다"
"차린건 없지만 많이 드시게나"
"이 인간이 진짜... 그럼 당신이 차려요!"
"왜 또 화를 내고 그래... 웃자고 해본 말이야"
자신 아내의 말에 깨갱하는 그를 보니 흐뭇했다.
지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아버지도 만약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저랬을까?)
(...... 지나간 일, 생각해봤자 마음만 아프지)
큰 접시에 놓여진 고기덩이를 잘라서 랄라의 접시에 얹어 두었다. 이런 내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고서는 포크로 고기를 찍어 먹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식사를 할려 했는데 무심결에 루이즈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무안했는지 황급히 고기를 썰어내어 자신의 빈 접시에 담아냈다. 그녀가 자꾸 저렇게 나오니깐 나도 덩달아 무안해지는게 참..
(다 좋은데 성격이 문제란 말이지)
고기를 입 안 가득 욱여넣고서는, 생각했다.
-
쾅쾅쾅!
식사를 마치고나서 소파에 앉아있던 그때,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미친년이 또!"
리툼은 화를 내면서 문으로 걸어갔다.
그가 문을 열자마자 떡진 흑발의 긴 머리를 한 여성이 대뜸 소리를 질러댔다.
"아기가 없어요!!"
"내 아기가!! 내 아기가!!!"
"미친년아, 하루가 멀다하고 맨날 이렇게 찾아와서 개지랄을 떠는것도 지겹지 않냐?!!!!"
"아기!! 내 아기 돌려줘!!!!"
"네가 가져갔잖아!!!!!"
긴 머리 여성은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잡으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행태에 그가 잔뜩 화가 났는지 욕설을 크게 뱉어내면서 그 여성을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야 이 씨발년아, 니 애기 죽었다고!!"
"올해 초에 역병걸려서 뒤졌다고!!"
"아니야... 아니야!!!!"
여성은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씩씩거리는 그에게 물었다.
"촌장 님, 저 여자는 대체 뭐하는 여자입니까?"
"보는대로 미친 년이네, 미친 년"
"아기는..."
"올해 초에 생긴 역병 탓에 저 년의 아이가 죽었거든"
"그래서 내가 억지로 뺏어다 땅에 묻었는데, 그 일때문에 계속 밤마다 나를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야"
"불쌍하다..."
루이즈의 나지막한 말에 마음속으로 공감을 표했다.
눈 앞에서 아이를 잃었으니 얼마나 상심이 크랴.
랄라도 덩달아 침울해져 있었다. 그녀의 배를 쓰다듬어주며 리툼에게 물었다.
"촌장님, 저 여성한테 가족은 있습니까?"
옷깃을 매만지고 있던 그는, 내 물음에 답해줬다.
"없어, 남편은 괴물한테 죽고, 아들 하나는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죽었어"
"마지막으로 남은 딸 하나는 앞에서 말했다시피 역병 걸려 죽었고 말이야"
"그거 참 안됐군요"
"그러게나 말이야"
"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긴 하는데, 맨날 저러니깐..."
"당신이 참아요"
"가족을 모두 잃었으니 오죽하겠어요"
주방정리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의 말에 그는 고개를 약하게 끄덕이고서는, 식탁에 앉아 장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저기요, 아까 그 여성분 저기서 춤추고 있는데요..."
루이즈가 창문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확인해보니 진짜로 춤을 추고 있었다. 정상적인 춤이 아닌 미친 사람만이 흉내낼 수 있는 춤이었다.
"놔두시게, 한참동안 저 지랄 떨다가 돌아가니깐"
"집은 어디에 있습니까?"
"공동묘지 부근의 자그마한 오두막 집이 있어, 거기가 저 여자 집일세"
"용케도 스켈레톤들한테 들키지 않았군요"
"그러게나 말이야"
"어쩌면 미친 사람한테는 공격을 안 하는 걸지도 모르지"
촌장의 말을 들으며 밖을 쳐다봤다.
여성은 제 풀에 지쳤는지 쓸쓸히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 뒷 모습이 너무 처량해보였다.
"힘드시겠다..."
루이즈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그녀는 매우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죠"
그녀에게 한 마디 툭 내뱉은 후 랄라를 데리고 촌장이 빌려준 별채로 향했다. 루이즈도 얼마안있어 우리 뒤를 쫓아왔다.
-
부스럭ㅡ 부스럭ㅡ
달이 차오르는 밤, 랄라와 같은 침대에 누어 같은 이불을 덮고 있는 중이다. 묘지에서 있었던 그녀의 약속을 실천하고자 이불 속에서 그녀의 젖가슴을 주물러주었다. 루이즈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만져댔다.
"랄라, 기분 좋아?"
"그쪽 말고 조금 더 아래..."
"여기?"
"으응, 흐응~"
(젖꼭지 윗 부분보다는 아래 부분을 건드리는 걸 더 좋아하는구나)
(뇌에 저장해두자)
그녀의 등을 뒤에서 안고서는 양 손으로 말랑말랑한 찹쌀떡을 열심히 빚어댔다. 이따금씩 꼬집기도 하고, 비벼주기도 하면서 잘 빚어주었다.
"랄라, 나 젖 빨래"
"정말 애라니깐"
그녀가 등을 침대에 대자마자 헐레벌떡, 그녀의 젖꼭지를 물어재꼈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빨다가 점차 혀로 맛을 음미하면서 빨았다.
흐뭇하게 빨던 도중 그녀의 물음이 들려왔다.
"모유도 안나오는데 맛있어?"
젖꼭지 빨기를 중단하고서는 되물었다.
"랄라는 내 꼬추 맛있어?"
"응"
"왜, 빨아줘?"
말보다는 행동이 앞섰다.
서둘러 바지를 내리려했다.
쾅ㅡ! 쾅ㅡ!
"뭐지?"
한참 좋을 때에 왠 방해란 말인가?!
반즈음 내렸던 바지를 올리고서는 검을 집어들었다. 랄라도 가슴팍을 여미고서는 나를 따라 나섰다.
루이즈만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채로 침대에 꼼짝않은채로 누워있었다.
"루이즈 씨, 빨리 일어나세요"
"앞의 무슨 일 터졌나봅니다"
미동도 않자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저기요, 빨리 일어나시라니깐요?"
"자ㅡ 잠깐만요! 오,옷좀!"
(옷? 아~ 다 벗고 자는 취향이신가보구만)
"그럼 옷 입고 얼른 나오세요"
"예! 금방 나갈게요!"
"빨리 안나오면 뺨 맞을 줄 알아라"
랄라의 살벌한 말을 들으면서 문을 열고, 본채로 향했다. 가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현관문은 박살나 있었고, 촌장이 아까 그 미친 여성과 대치 중에 있었다. 미친 여성은 칼을 꼬나쥔 채로 자빠져있는 그의 가슴팍을 향해 내리꽂을려 했고, 그는 여성의 칼 든 손을 두 손으로 부여잡은채 기를 쓰며 막아내고 있었다.
재빨리 달려가 여성의 옆구리를 강하게 발로 차버렸다. 퍽 소리가 나면서 옆으로 날라가버리고서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잘왔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뒤질 뻔 봤구만!"
그는 내가 내민 손을 잡으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여성은 앙상한 팔로 바닥을 지탱하면서 일어나려했다.
"고.레오 자네, 저 년 좀 여기서 쫓아내주시게"
"그러죠"
다가가려하는 내게 여성은 칼을 휘둘렀다. 발로 칼을 쥔 손을 걷어차니, 여성이 쥔 칼이 저만치 날라가버렸다. 위험요소도 사라졌겠다, 여성을 번쩍 들어올려서 길 한복판에 내둥댕이 쳐버렸다.
바닥에 엎어진 여성에게 말했다.
"이봐요, 당신 심정은 이해하는데 애꿏은 사람한테 화풀이 하면 안되지"
"피 보기 전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
여성은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 입으로 아기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단어들만 중얼거려댔다.
"밀리야.. 밀리야.. 내 밀리.. 내 아가.."
"하아ㅡ"
마음이 언짢아져서 그냥 뒤돌아섰다. 다시 거실로 돌아와서 여성이 있는 곳을 쳐다보니, 여성은 공동묘지로 가는 길목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살다살다 별 꼴을 다보네, 에이 썅!"
리툼은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자신의 아내가 내민 수건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소란이 진정된지 얼마 안 되어서 루이즈가 벌게진 얼굴로 헐레벌떡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야! 나한테 뒤지게 처 맞을래?"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죄,죄송해요..."
루이즈를 화내는 랄라. 그 모습을 쳐다보면서 이내 부서진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내가 고쳐야 될 듯 싶다.
(스켈레톤도 때려잡아줘, 목숨도 구해줘, 문도 고쳐줘.. 일 존나 꼬이네)
"하아..."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 뭐, 씨발
< -- 103. 추가 토벌 -- >
어젯 밤 있었던 소란탓에 얼마 자지도 못한 채 아침식사를 했다. 딱히 피곤하지는 않았다. 불침번으로 다져진 몸, 그깟 잠 제대로 못잔게 어디 한 두번인가. 일상이었다.
"정말 고맙구만, 자네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지 못할 뻔 봤어"
촌장의 말에 호탕하게 답했다.
"당연한 일을 했을뿐입니다"
"아닐세, 아니야"
"내 뭔가 보답이라도 하고 싶은데..."
손으로 턱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그를 보며 전부터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아는 인형 제단사 한 번 만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형 재단사?"
"왜? 우리 마을이랑 거래를 맺어달라는겐가?"
"인형을 만들려면 천하고 솜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럴려면 좋은 품질의 것이 필요한데, 여기 네스 마을이 이 부근에서 가장 뛰어난 방직소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한 번 만나보겠네, 어디로 가면 되겠나?"
"교국에 들르시면은 제가 속한 아침의 모험가 조합으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좋네, 좋아!"
"그런데 내가 보답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자네가 나를 보답하는구만?"
"그러면 안되지, 안되고 말고. 오늘 나랑 같이 가세"
그는 내가 부탁한 것도 들어줄 겸 해서 우리들을 마차에 태워서 교국까지 데리고 가준다고 했다. 그래주면 매우 고마운 일이므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임무는 힘들게 걷는 일이 없어서 좋구만.
아침식사를 마치고 갈 준비를 서두르던 도중, 현관 문에서 다급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촌장님! 촌장님!"
덜컥ㅡ
"이 놈이 아침 댓바람부터 뭔 일이길래ㅡ"
"촌장님, 묘지에 스켈레톤들이 또 나타났습니다!"
"뭣이?!"
"저번보다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지금 이리로 내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씨발!"
본채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들으면서 짐을 쌌다.
"저기... 우리가 토벌해야되는거 아니에요?"
루이즈의 물음에 답해줬다.
"돈을 추가적으로 지불하면 토벌해주고, 지불안해주면 토벌 안해주고"
"우리는 할 거 다했습니다"
(양심이 있다면 공짜로 해달라 하지는 않겠지)
배낭을 매고 별채를 나서려하자 촌장이 우리들을 불러세웠다.
"이보게 자네들, 스켈레톤들 좀 토벌해 주겠나?"
"돈은 추가적으로 지불함세"
"얼마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저기 산비탈에서 스켈레톤들이 걸어나오고 있는게 눈으로 보였다. 촌장은 겁을 잔뜩 집어먹었는지 손가락을 대동하면서 알려줬다.
"열 닢의 다섯 닢 더 지불하겠네!"
"빨리 저놈좀 처리해주시게! 조금 있으면 방직소 앞까지 내려오겠어!!!"
"촌장님, 딴소리... 안하실거라 믿겠습니다"
배낭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서둘러 스켈레톤들을 향해 달려갔다. 옆에는 랄라가 같이 달리고 있었으며 루이즈는 다리가 긴 만큼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었다. 또 어제처럼 난동부리면서 혼자 다 해먹을 모양인가보다.
(우리들이야 좋지만서도 지금은 고용주가 앞에서 보고 있으니 돈 값은 해야지!)
"루이즈 씨!! 우리가 할테니깐 루이즈 씨는 싸우시지 마시고 그냥 시선만 끌어주십쇼!!"
"예!!"
이번에 그녀는 훌륭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냈다. 그녀가 몽둥이를 흔들어대자 스켈레톤들은 그녀를 향해 달려갔고, 그 틈을 노려 우리들은 검과 주먹을 빼들며 공격해 들어갔다.
"뒤져어어!!"
검으로 스켈레톤들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옆에서 달려드는 놈을 발차기로 밀어뜨리고서는 곧바로 발로 놈의 대갈통을 바스라뜨려버렸다.
"존나 약한 새끼들이!"
내 검과 랄라의 주먹 앞에서 놈들은 힘 한 번 제대로 못내고서는, 뼛조각을 튀기며 부서져갔다. 숨을 돌리면서 루이즈를 쳐다보니, 그녀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주변의 있던 스켈레톤들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알면서 하는 행동이면 무서울 것 같고, 모르면서 하는 행동이라고 해도 무서울 것 같다. 힘이 기술을 뛰어넘는게 바로 저런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