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83화. 결혼식 (85/106)



〈 85화 〉83화. 결혼식

< -- 95. 결혼식 -- >





결혼식날이 왔다.
옷을 한껏 꾸며입은 그녀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나 또한 이번만큼은 검은색의 고급 외투로 몸을 뒤덮었다. 오늘은 내 인생 가장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정중한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한다.


결혼식은 신성한 의식이다.

"오빠  지금 완전 설레!"
"내 평생 소원이 결혼식 치르는 거였거든!"
"첫사랑인 남자와 이렇게 결혼을 하다니 꿈만 같아"

루나의 볼뽀뽀 세례에 기분이 하늘로 승천하기 일보직전이다.


"나... 이런 복장은 처음입어보는데"
"부끄러워..."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릴리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루나가 답했다.


"왜~ 언니 예쁘구만"

"그래도... 뭐랄까 너무 화려하다고 해야할까..."

"언니는 너무 소소해서 탈이야"
"가끔씩은 이렇게 화사하게 꾸며줘야지 오빠도 좋아라하지"
"안그래, 오빠?"


"물론이지!"


수수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릴리가 이렇게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느낌이라든가 분위기가 확 달라보였다. 마치 수컷을 유혹하는 암컷의 모습 그 자체라고 해야할까...

"남편, 이러고 걸어가야 되는거야?"
"같은 조합 모험가가 보게 된다면 왠지 좀 그럴 것 같은데..."

"랄라 언니는 안예쁘니깐 걱정할거 없다!"

"이 년이 꼭 말을 해도!"

큼지막한 가슴을 가진 랄라와 델타가 입은 드레스는, 앞부분만이 유독 튀어나와 있었다. 다른 남성들이  모습을 보면 필시 그녀들에게 음욕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는 안되지.

"걱정마, 랄라"
"너희들이 걸어갈 일은 없어"
"마차를 준비해뒀으니깐"

"마차?"


네 명의 아내들이 모두 내게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면서 물어왔다.


"내가 아는 사람한테 말해놔서 마차를 빌렸거든"
"마부도 있으니깐 너희들은 나하고 같이 오붓하게 마차에 타서 가면 돼"


"오빠 최고~!"


"레오, 너무 무리하는건 아니야?"

"남편, 능력 좋은데?"

"마차가 뭐야?"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녀들.
하지만 그녀들의 눈빛속에는 흥분과 기쁨의 빛이 놓여져 있었다.
마리모에게 부탁하길 정말 잘한 일인듯 싶다.

방을 나가 여관을 빠져나오자 맞은  대로에 큼지막한 마차가 서있었다. 검은색의 마차에는 제국의 국기가 노란빛으로 새겨져 있었고, 마부의 머리에는 정중앙에 깃이 꽂힌 투구를 쓰고 있었다.

"저기 타면 돼"
"어때 마음에 들어?"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녀들을 이끌고, 손수 문을 열어주며 안에 들여보내줬다. 마차의 내부는 화려함과 예술의 극치였다.

"내가 이걸 타는 날이 있을줄이야..."


루나는 거의 까무러치기 일보직전이었고, 릴리나 랄라는 엉덩이를 뒤척이며 괜히 흠집이라도 날까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델타는 너무 좋아하길래 품에 꽉 붙들어맸다.

마부가 있는 방향의 벽을 두들기자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마차는 처음 타보는지라 기분이 색달랐다. 창문 너머로 보여지는 익숙한 풍경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들의 드레스 가슴팍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식날에만 있을 가슴골이 파인 드레스... 침이 꼴까닥 삼켜졌다.

"남편, 커졌어"
"만져줄까?"

품에 안겨있던 델타가 내 몸의 변화를 느꼈는지 엉덩이를 들썩였다. 비벼오는 그녀의 엉덩이에 하체가 덜덜덜 떨려왔다.


"델타야, 마음은 고마운데 지금은 안돼"
"그러니깐 제발 엉덩이는..."
(당장이라도 넣고 싶은게, 미쳐버리겠네)

가까스로 그녀의 엉덩이 떨림이 멈춰졌고,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고나서 아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멈춰라!"


내성벽 성문에 다다랐는지 밖에서 남성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신원확인을 할 모양인가보다. 창문을 통해  외침의 주인공이 교단기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신원확인이 있겠다"

"무슨 신원확인? 형씨는  국기가 안보이는가?"


그의 옆에 서있던 제국 군단병이 턱짓으로 우리쪽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마차의 새겨진 자신들의 국기를.

"신원확인의 예외는 없습니다"


"존나 답답하게들 사시네"
"우리는 뭐 병신새끼야, 그냥 보내게?"
"다 이유가 있으니깐 보내라는거잖아"

"내성은 교황님이 거주하시는 신성한 공간입니다"
"만약 불순한 자가 들어오면ㅡ"


"씨발, 그래서 우리 제국이 불순하다 이 말이냐?"

군단병의 말에 옆에 서있던 제국 병사들이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교국의 방위는 교단과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이 같이 맡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싸움은 종종 일어나곤 한다.

아무래도 이번 기싸움의 승자는 제국군인 것 같다.

"그건.. 아닙니다"
"끄응........ 들어가라"

멈춰졌던 마차가 다시 움직였다. 방금 전 벌어진 사태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릴리만 조금 표정이 굳어있었는데 랄라가 해준 어깨동무에 금새 표정을 풀고서는 호호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마부가 보내는 두드림 소리에 도착했음을 인지했다.

"내리자"


"벌써 왔어?"
"...... 좀 아쉽다"

"오빠가 나중에 다시 태워줄게"

"아니야, 그럴 필요는ㅡ"

루나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쓸어주자, 그녀는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벌렸던 입을 닫았다.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통통한 입술의 촉감이 꽤나 좋았다.


"자 내  잡아"

"레오는 신사구나"

그녀들보다 먼저 내려서, 그녀들의 손을 잡아 밖으로 나오게끔 돌봐주었다.

아르베 대성당의 정문.
두 팔을 벌린채 자애롭게 쳐다보는 대천사 아르베.
아르베 대천사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처럼 예뻤을까?
어찌됐든 그녀는 실제로 존재했다.
바로 내가 대천사 이퀼리브리오님에게 권능을 부여받았으니깐 말이다.


 옆에 놓여진 금색 줄을 잡아당겼다.

딸랑ㅡ 딸랑ㅡ

문이 열리더니 수녀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쩐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다행히도 이번에는 성녀님이 아니었다.


"결혼식을 올릴려고 합니다"
"오늘로 날을 잡아놨었는데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고.레오입니다, 옆에는ㅡ"


아내들의 이름을 말해줬다. 그녀가 보는 명단에 적혀져 있는 우리들의 이름을 찾은 것인지, 수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근한 목소리로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아르베 대성당은 웅장하고 경건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길 정도의 자태를 뽐내었다. 양 옆의 계단참으로 인해 만들어진 정원을 지나쳐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는 널찍한 장소 한가운데에 연단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연단 뒤에는 널찍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자리해 밖에서 뿜어져나오는 햇빛을  공간에 다시 뿜어내고 있었다. 많은 기부금을 내야지 잡을 수 있는 특별 식장이다.


기부금이 좀 상당했지만 내 인생의 두 번 다시는 없을 식이니깐 아깝지 않다. 특히 그녀들이 이렇게 좋아한다면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마워, 남편... 레오 오빠"

에매랄드 같은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루나는, 내게 살포시 안겼다. 옆에 있던 그녀들도 저마다 감동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그녀들이 마음에 든다면 그깟 기부금 얼마든지 낼 수 있다. 나를 평생 사랑해줄, 내가 평생 사랑해줘야할 여성들이니깐.



-



연단에 선 수녀님이 엄숙한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맹세를 나눌 것을 요구했다.


"신랑 고.레오는 신부 디맨시아 릴리, 라그란 루나, 플레타 랄라, 델타를 아내로 맞이하여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아내들과 아내들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의 방벽이 되어줄 것을 아르베 대천사님께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신부 디맨시아 릴리, 라그란 루나, 플레타 랄라, 델타는 신랑 고.레오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가장의 조력자로서 가정에 충실할 것을 아르베 대천사님께 맹세합니까?"


그녀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진심을 다해 말했다.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신랑 고.레오는 신부 디맨시아 릴리, 라그란 루나, 플레타 랄라, 델타를 아내로 맞이하여 진심을 다해 사랑할 것과 아껴줄 것,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줄 것, 부정을 제외한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내치치 않을 것을 아르베 대천사님께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신부 디맨시아 릴리, 라그란 루나, 플레타 랄라, 델타는 신랑 고.레오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존중해주며, 부정을 절대로 저지르지 않을 것을 아르베 대천사님께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신랑 고.레오는 남편으로써의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아르베 대천사님께 맹세합니다"


"신부 디맨시아 릴리, 라그란 루나, 플레타 랄라, 델타는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아르베 대천사님께 맹세합니다"

"남편은 아내들의 손가락에 반지를 껴주시기를"


아름다운 그녀들의 앞에 무릎을 끓고 반지를 껴주었다. 결혼식을 위해 그녀들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미리 빼둔 상태이다. 한 명씩 차례대로 정성스럽게 껴주었다.


"남편은 아내들의 어깨에 망토를 걸쳐주시기를"


가녀린 어깨들에 망토를 하나하나 걸쳐줬다. 망토에 박힌 내 문장이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맹세의 입맞춤을 해주시기를"

"사랑해"

그녀들에게 찐득한 입맞춤이 아닌 담백하면서도 강렬한 입맞춤을 선사해주었다. 아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장소가  분위기가 마치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결혼이 성사됐습니다"
"대천사 아르베님이 당신들을 굽어 살피시길"

수녀의 축복과 함께 결혼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끝난 후 아내들을 찬찬히 둘러보니 내 문장이 박힌 반지와 망토를 걸친 우아한 여성들이  앞에 다소곳이 서있었다.

"릴리, 루나, 랄라, 델타"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사랑한다, 내 아내들"

두 팔을 활짝 벌리니 그 안으로 아내들이 뛰어들어왔다.
제 2의 이세계 인생이 시작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