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75화. 재회
< -- 86. 재회 -- >
"누구냐?"
복면을 쓴 인영은 칼날 끝을 들이밀며 내게 물어왔다.
"그러는 니는 누군데?"
"닥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씨발! 너희들 누구야!!"
랄라의 외침에 칼날 끝이 내 목젖에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놈은 중성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외쳤다. 목소리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분간이 안갔다. 앞의 놈이 고함을 질러댔다.
"닥쳐! 조용히 하라고"
"이 녀석 목에 피분수 내버리기 전에"
"젠장..."
뒤에서 살기를 내뿜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델타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일단 답해야겠다. 그러고나서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될 것이다. 뒤에 이와 같은 놈들이 더 있었다.
"나는... 카밀란스 산맥에서 전투를 끝마치고 돌아온 모험가다"
"카밀란스 산맥?"
"데르트 제국이 고용한 모험가냐?"
(이 녀석들이 비아데나르면... 아니, 그럴리가 없지)
(그 녀석들이 이런 곳을 알았다면 진작에 막았을 거야)
"대답해라"
날카로운 칼 끝으로 인해 목에서 피가 송글송글 맺혀지는게 느껴졌다.
"죽여버릴테다!!"
"랄라, 가만있어!"
"남편..."
"이제보니 부부사이인가 보군?"
"모험가 부부인가?"
"그래"
"우리들은 데르트 제국에게서 받은 청원의뢰를 마치고 복귀하는 참이다"
"왜 굳이 이곳으로 복귀하려는 거지?"
"그야 깜깜한 밤이니 성문은 닫혀있을테고"
"도시가 코앞에 있는데 밖에서 잘 수는 없을테니 이리로 몰래 들어가려는 것이다"
"모험가의 징표는 어디있지?"
"여깄다"
손을 천천히 목걸이에 가져다대고서는, 들어보여주었다. 철동전이 달빛에 의해 음영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철동전인가... 저 년들도 꺼내보라고 해"
"랄라, 꺼내서 보여줘"
그녀는 내 말에 따라 동메달이 달린 자신의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저 년은 왜 안보여주는거지?"
칼날을 흔들며 델타를 가리켰다. 여기서 델타의 정체를 들켰다가는 큰일이다. 어떻하지?
(카밀란스 산맥... 임무 마치고 복귀... 도중에...)
"이 여성은 모험가가 아니야"
"복귀하던 도중 고블린한테 쫓기고 있던 걸 우연히 발견해서 구해준거다"
"쫓겨? 눈빛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지금 피곤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거든"
"그래? 옷좀 벗으라고 해봐"
"뭐?"
"옷 벗으라고, 무기라든가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지금 알몸에 로브만 걸치고 있는 상태다. 옷을 벗게되면 알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오직 남편인 나만이 아내의 몸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씨발 새끼가 감히 어따대고 그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려대!!!
"... 그건 안되는데"
"뭐? 안된다고?"
"죽고 싶은거ㅡ"
순간적인 속도로 칼날을 손으로 부여잡았다. 당황한 놈은 검을 잡은 손을 놓고서는 나를 제압할려 했으나 랄라의 주먹이 더 빨랐다. 그녀의 주먹이 놈의 복부에 강하게 꽂혔고, 그 틈을 노려 나는 놈의 멱살을 움켜쥔 채 잡은 칼날을, 놈의 목에다 갖다대고 위협했다.
"씨발 새끼들아, 닥치고 내가 묻는 말에 답해"
"안그러면 이놈 모가지를 썰어버리겠다"
놈이 아까 말했던 옷 벗으라는 말에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칼날을 잡은 장갑 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픔보다는 분노의 감정이 들끓었다. 랄라에게 이 새끼 가면 좀 벗겨달라 말했다.
가면을 벗기자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라... 남자였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부러뜨렸을 것이다. 분노가 좀 가라앉았다.
"크흠... 뭐, 좋게좋게 가자고"
"보아하니 너희들도 이곳을 지나가길 원하고 나도 이곳을 지나가길 원해"
"그러니 서로 싸우지말자고"
검을 꼬나쥔 복면인들은 내 말에 전투자세를 취했다. 이러면 곤란하기 때문에 여성의 목을 쥐어진 손아귀에 힘을 더 주었다. 반반하고 어린티를 벗지 못한게 아마도 이 무리의 막내일 것이다.
녀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채 발만 동동거렸다. 그때 무리 한가운데에서 장신의 여성이 앞으로 나오더니 복면을 벗었다. 놀랍게도 유하연을 구하기 위해 임라리스가 파견한 '루딘 에라' 였다.
"오랜만이군, 모험가"
"네년은.. 여기에 왜 있는거냐?"
"유하연은 어떻게 했지? 설마 여기에ㅡ"
"맞다, 유하연 씨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말도 안끝났는데 먼저 그녀가 답해버리니 당황했다. 씨발년이 훅 들어오네.
"미친 년아! 왜 여기에 데려온거야!!"
"걸리면 나나 그년이나 다 죽는다고!!"
"촛불 밑의 촛농은 잘 보여지지 않는 법"
"설마 교국에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할 걸?"
(개또라이년인가?)
"씨발 년아, 누구 사람 하나 피 말릴려고 작정했냐?"
그녀는 적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가 그녀를 살려줬을때부터 이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길래 선택을 잘했어야지"
저 년의 갸름한 턱선을 주먹으로 으스러뜨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저년의 실력과 뒤에 있는 복면인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하나같이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뭐 좀 물어보자"
"유하연을 데리고 간지 몇 주는 지났는데, 왜 여기있는거냐?"
"산맥에서 여기까지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말이야? 오다가 집이라도 짓고 온거냐?"
"난데없이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어찌됐든!"
"그 아이를 풀어줘라, 서로 정체도 안 마당에 굳이 잡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
"닥쳐, 내가 미쳤냐, 풀어주게?"
"뭐 안풀어준다면 어쩔 수 없고"
"너 이곳 출입문 어딨는지 알고있지? 안내 좀 해봐봐"
좆같긴 했지만 여기서 지체하는것은 위험하다. 랄라에게 철창문을 끼우라고 부탁한 뒤, 놈들에게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하수로의 출입문을 안내해줬다. 내 우람한 팔뚝에 목이 졸려진 여성은 저항을 포기한것인지 가만히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유하연... 씨는 어디있는거냐?"
"분명 여기있을텐데"
그러고보니 이 에라라는 년한테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만 그녀의 존재를 잊고있었다. 앞서 걷고있던 에라는 자신의 옆에 서있던 복면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그리고 앞으로 그녀의 이름은 '스텔라'다"
"그렇게 부르라고"
그 복면인은 복면을 벗고 나를 쳐다봤다. 일자로 반듯하게 잘려진 눈썹까지 오는 앞머리, '유하연'이다. 그녀의 검은색 긴 생머리는 목까지 오는 단발머리로 변해있었다. 볼에는 정체불명의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아,안녕하세요..."
"... 예"
다시 만나니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나는 그녀를 죽이려 했고, 그녀는 내가 죽이려는 것을 이제는 다 알게 되버린 상황이니 그럴 수 밖에.
대화는 그걸로 끝이 났고,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로 갈 길을 갔다. 물론 내가 가르쳐준 방향을 향해 움직였지만 말이다. 퀴퀴하고 냄새나는 하수로를 한참동안 걷자 저 앞에서 사람 한 명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뜷려있었다. 그곳이 출입문이다.
출입문에 당도하자 랄라와 델타부터 먼저 들어가게 했다. 그 다음이 유하연과 복면인들, 다음이 인질로 잡고 있는 여성,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갔다.
길게 이어진 어두운 구멍 안을 기어가면서 마침내 도시 안으로 빠져나왔다. 하수로의 출입문은 도시 내의 세워진 공동묘지 부근이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구멍을 빠져나오고나서 인질로 잡고 있던 여성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다시 아내들의 곁으로 돌아가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려 하는 그때였다. 루딘 에라가 나를 멈춰세워버리게끔 만드는 말을 지껄였다.
"너, 유하연 씨를 책임지고 맡아줘라"
"뭐야?"
황당무개한 말에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내가 왜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한단 말인가!
"양심없는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새끼냐?!"
"너가 살려준 목숨, 너가 책임지는게 옳은 일 아닌가?"
"너가 말한 그 고귀하신 기사 나으리인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만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있는 그녀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옆에 유하연이 눈물젖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모습에 분노를 거두고는 물었다.
"임라리스 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시냐?"
"임라리스 님도 애초에 이 교국에서 그녀를 살아가게끔 하라고 명하셨다"
"가까운 곳에서 챙겨주시고 싶으신 것이겠지"
"너 지금 이 도시에 반디트가 와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하는 말이냐?"
"반디트가 설마 집 곳곳을 쑤시면서 그녀를 찾으려 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네놈만 입을 잘 다물고 있으면 말야"
"만약 허튼 수작을 부렸다가는 너나 네놈과 가까운 자들이 무사하지는 못할거야"
(씨발... 돌겠네)
"말하면 나도 뒤지는데 뭐하러 그딴 수작을 부리겠냐?"
"하아ㅡ... 유하연 씨, 이리로 오세요"
그녀는 에라를 한 번 스윽 쳐다보다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춤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랄라의 흉흉한 눈빛에 오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지 말라고 부탁한 뒤,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정기적으로 사람을 보내 무사히 지내고 있는지 확인할테니 잘 책임지라고!"
"임라리스 님의 뜻을 거스르면... 알지?"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도 안 한 채 귀를 후벼파면서 몸을 돌려 말랑말랑 여관으로 향했다. 일 존나 꼬였다.
-
여관으로 가면서 델타는 유하연에게 연신 질문을 해대었다.
"너 뭐하는 암컷이야?"
"예?... 저,저는 그러니깐... 인형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유하연은 내 눈치를 계속 살피면서 우물쭈물 답했다. 랄라는 그런 그녀를 탐탁치 않아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인형? 그게 뭐야?"
"아 그게 뭐냐면ㅡ"
"델타, 그 년한테 말걸지마"
"왜?"
"네 번째?"
"치잇ㅡ!"
랄라의 말에 델타는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내게 안겨왔다. 유하연은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여관에 도착하기까지 아무런 말도 안했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걸어가면서 말랑말랑 여관의 도착한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여관의 중앙 홀은 테이블에 곯아떨어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었다. 접수처에 말리온만이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도둑고양이마냥 걸어가 그를 깨웠다.
"얌마, 말리온"
"쩝... 쩝..."
"얌마, 일어나봐"
"나 고.레오다"
"고.... 레.. 오?"
졸린 눈을 한채로 날 보던 그는 단숨에 눈이 커지더니 반갑게 인사할려 했다. 손으로 입을 가로막고, 방 하나 좀 빌리겠다고 말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오는 그에게 나중에 설명해주겠다며, 내가 온 사실은 비밀로 해달라며 부탁하고나서 열쇠를 받아들고 3층으로 올라갔다.
내 방은 릴리와 루나가 자고 있을테니 들어가는 것은 무리다. 애초에 그녀들이 내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3층의 방 하나를 열고 들어가 유하연과 델타를 들여보냈다.
"남편, 어디가?"
델타의 물음에 남은 일 좀 처리하러 갔다오겠다고 말했다. 자신도 갈거라고 떼를 쓰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 유하연에게는... 그냥 얌전히 있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녀와 같이 있으니 껄끄러워져서 황급히 방을 나섰다. 맞은편에 릴리와 루나가 있을 방의 방문이 보여졌다.
내 방, 그녀들이 자고 있을 방.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들을 껴안고 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애써 억눌렀다.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있던 랄라를 이끌고 다시 하수도로 갔다.
하수도를 통해 도시 밖으로 나간 연후 아침이 되자마자 성문을 통해 들어가면 완벽 범죄 성공이다. 무사히 하수도를 이용해 도시 밖으로 나갔다. 에라의 무리들은 없었다. 동이 틀때까지 성벽밑에서 기다렸다가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성문으로 달려가 신분증을 보여주고 들어갔다.
그리운 교국의 냄새, 집으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아내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있는 곳이 내 집이다. 한달음에 말랑말랑 여관에 도착해서 3층까지 쏜살같이 올라가 그녀들의 방문을 두드렸다. 랄라는 델타네가 있는 방으로 들여보냈다. 일단은...
방문너머에서 누구냐고 묻자 고.레오라고 답했다. 마침내 방문이 열리고 그녀들의 얼굴이 보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들이 젖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면서 서있었다.
"오... 오빠?"
"레오..."
"보고 싶었다, 릴리, 루나야"
두 팔로 그녀들을 와락 끌어안고서는 번쩍 들어올렸다. 나보다 체구가 한참 작은 그녀들은 다리가 붕 떠진채로 내게 안겨들어 왔다. 그녀들과 진한 입맞춤을 하면서 침대로 걸어갔다.
잠옷을 입은 상태인 그녀들의 젖가슴을 만지면서 입술을 탐닉했다. 양 옆에서 아내들의 몸을 희롱하니 흥분이 기대 이상을 뛰어넘어 최고조에 이르렀다. 금방이라도 바지가 터져나갈 정도로 고간이 부풀어 올랐다.
다급한 마음에 그녀들의 옷을 벗기려 하니 릴리가 내 손을 잡으면서 자애롭게 말했다.
"레오, 일단 씻고나서 하자"
"욕조에서 옷 벗고 기다리고 있어"
루나가 끼어들며 말을 이어갔다.
"나하고 언니가 물 가져올테니깐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참을 수 있지, 오빠?"
입맛을 다시고 있는 나를 내버려둔채 방문으로 걸어나가는 그녀들의 등을 쳐다봤다. 갑자기 맞은 편 방에 있을 그녀들이 떠올랐다. 랄라와 루나를 불러세웠다.
"왜, 레오?"
"오빠, 잔뜩 하게 해줄테니깐 일단 씻고 난 뒤에 하자"
"오빠 지금 피투성이야"
"아니, 그런게 아니고... 그러니깐"
나를 쳐다보는 매혹적인 그녀들의 눈빛에 입안이 말라갔다. 그래도 말해야 된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맞은 편 방에 있는 그녀들의 존재를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