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70화. 생사의 기로 (70/106)



〈 70화 〉70화. 생사의 기로

시간이 점차 지나갈수록 숙영지로 복귀하는 병사들의 숫자가 늘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는 거의 반토막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제국은 이번 임무를 반드시 완수해야만 손해를 매꿀 수 있을 것이다.

"남편, 숲속에 놈들 엄청 많아"

델타의 말에 긴장이 밀려왔다. 감각이 예민한 그녀가 한 말이니 틀림없이 맞을 것이다.


"마왕보다는 괴물놈들이 먼저 오는 것 같은데?"


귀를 쫑긋세우고 있는 랄라의 말에 목책 너머의 숲속을 주시했다. 캄캄해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달빛에 비춰지는 나무들밖에 안보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어봤다.


"랄라야, 놈들은 지금 어디즈음이야?"

"피해!"

그녀는 별안간 날 바닥에 밀쳐서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다. 그러자마자 순식간에 길쭉한 창 하나가 내가 서있던 그 자리를 꿰뜷고 들어갔다.

"지금 바로 앞"

앞을 주시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과 뒤늦은 답변에 목책너머를 쳐다봤다. 괴물들이 득시글하게 모여있었다. 그 수가 얼마 전 2대대와 싸웠던 괴물들의 수의 갑절은 족히 넘었다.


"산맥에 있는 괴물이란 괴물은 전부 모인건가..."


"전투준비!!"


넋을 놓은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와중, 백부장들의 고성에 병사들이 바삐 목책 위로 올라왔다. 10개 군단이 집합된 숙영지인만큼 목책의 길이또한 상당했다. 목책 위에는 병사들이 빼곡히 들어차있는 상황이다.


망루에는 거대한 석궁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그 주변을 병사들이 방패로 둘러싸며 보호하는 중이었다. 석궁 옆에는 아르베 교단의 수녀들도 포진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이 숙영지 내를 가득 채웠다. 사방이 온통 괴물놈들에 의해 포위된 상태이다. 검을 검집에서 뽑은 뒤,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뒤지지 않는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랄라, 델타"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어"


"남편을 놔두고 내가 어딜 가겠어?"

"겁쟁이가 갑자기 용감해졌네?"

"하아ㅡ 내가 참아야지"


델타의 비꼬는 말에 랄라는 한숨을 푹 내쉬며 미간을 주물렀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약하게 두어번 두드리면서 델타에게 랄라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해줬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천진난만한 그녀가 말을 듣기에는 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쿠우우우웅!!!!]

굉음이 들리더니 괴물들이 일시에 이곳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침을 튀기면서, 흙먼지를 흩뿌리면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발리스타!!"

백부장들의 성난 외침에 망루 위에서 병사들이 분주히 거대한 석궁에 거대한 화살을 꽂고 있었다. 옆에서 수녀들은 발리스타라 불린 무기에 손을 올리고서는 주문을 읊조리고 있었다.


"당겨라!!"

앞열의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후열의 병사들이 활시위에 화살을 매겼다. 화살촉에는 불길이 활활 치솟고 있었다.


"쏴라!!"

녀석들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마자 명령이 내려짐과 동시에 크고 작은 화살들이 놈들에게 날라들었다. 불화살은 땅바닥에 꽂혀 주변을 밝히거나 놈들의 몸에 꽂혀서는 타들어가는 비명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다. 거대한 화살은 앞의 놈과 뒤의 놈, 그 뒤의 놈까지 한 번에 꿰뜷어 버릴정도로 위력이 상당했다.

쉴 새 없이 날렸다. 그럴수록 놈들은 광분해했고 동료들의 시체를 방패로 삼으면서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날라드는 창들은 병사들의 방패와 몸에 박혀들어갔다.

쿵!!

덩치 큰 괴물들이 목책과 충돌하면서 엄청난 소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수녀들의 주문과 병사들의 피땀으로 만든 목책은 무너지지 않은  견고함을 유지했다.

"조준하지 말고 그냥 쏴!"
"놈들이 목책을 부수게 두지 마라!!!"

여기저기서 노성과 고함이 함께 들려왔다. 나는 큼지막한 돌맹이를 들어다 목책 위로 떨궈뜨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단말마가 생겨났다.

쿵! 쿵! 쿵!


별안간 하늘에서 돌들이 떨어지더니 병사들의 머리를 가격했다. 위를 쳐다보니 그렘린이 추악한 외모로 미소를 지은 채 돌맹이를 집어던지고 있었다. 위에서 바라봤을때 우리들은 놈에게 꽤나 재미난 장난감으로 여겨질 것이다.

 한 놈이 돌을 집어던지려던 찰나였다.

[꾸웨에에에엑!!!!!!!]

갑자기 뿜어지는 밝은색의  빛이 놈의 몸을 녹아버리게 만들었다. 망루위에서 수녀들이 위로 치켜올린 지팡이에서 흰 빛이 솟아나고 있었다.

화가 난 그렘린들이 수녀들에게 다가가자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그녀들을 방패로 감싸주었다.

"오우거다!! 저 녀석을 당장 쓰러뜨려!!"


앞에서 오우거 네 마리가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게 보였다. 투창과 화살을 날려봤으나 놈의 두꺼운 피부에는 어림도 없었다. 망루는 그렘린들에게 둘러싸여 있어가주고 지원을 바라기 힘들었다.


그렇게 오우거는 막힘없이 목책 앞으로 다가와서는, 거대한 주먹으로 목책 위를 강하게 내려쳤다.  주먹이 병사들 위로 들이닥치려는 그 순간 쌍두 독수리 투구를  군단장이 검을 내질러 한 번에 놈의 손모가지를 잘라버렸다. 비명을 지르며 난동을 피우는 녀석의 앞에 수녀들이 성스러운 방어막을 시전해 뒤로 자빠뜨리게 만들었다.


다른 오우거들도  녀석과 똑같은 꼴을 당하고 있었다.

괴물놈들은 쉴새 없이 올라왔고, 그럴때마다 내 검에도 피가 잔뜩 묻어났다. 랄라는 건틀렛에 피묻은 살점을 덕지덕지 붙인 채로 싸우고 있었으며 델타는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발로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팟ㅡ!


사투를 벌이던 도중 공중에서 하늘색의 구체가 떠오르더니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그러자 괴물들은 머리를 감싸쥐며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이때를 노려 우리들은 녀석들을 집요하게 공격하였고, 기병들은 목책 밖으로 돌진해나가 목책앞에 달라붙은 녀석들을 쓸어버렸다.


중기병들의 육중한 돌진력 앞에 괴물들은 머리가 으깨지고 살이 짖뭉개진채 터져나갔다.

대천사의 광명이 시전되는  순간을 노려 녀석들을 많이 죽여놔야한다. 한참을 그렇게 검을 내지르고 있는데 문득 밝음이 점차 줄어드는게 눈에 보였다. 설마 주문지속이 떨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고 살펴보니 검은색의 액체덩어리들이 구체에 달라붙어서는,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슈웅ㅡ!


귓가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서있던 목책이 점차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목책에서 검은색의 날카로운 것이 흐물흐물하며 빼내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중심을 잡으려 했으나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면서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벌떡 일어난 뒤, 랄라와 델타의 모습을 찾아댔다. 다행히도 그녀들은 땅바닥에 엎어져서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얼른 달려가 그녀들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목책은 부서졌고, 부서진 틈을 괴물들이 매꾸었다. 이곳이 뜷리면 나머지 곳도 손쓸새도 없이 무너질 것이다.


"15군단, 따라와라!"

군단장이 자신의 군단을 이끌고 목책 아래로 내려와 괴물들의 틈바구니를 비집어가며 들어갔다. 병사와 괴물은 서로가 한 덩어리가 된채로 엎치락 뒤치락했다. 그 틈바구니를 빠져나온 괴물들은  손에 죽었으며 그녀들의 손에 의해 목이 분질러졌다.


하늘에서 백색 구체가 사라졌다. 그러자 또 다시 대천사의 광명이 하늘에 떠올랐다. 병사들의 보호를 받고있는 수녀들이 사지를 떨어대며 기도를 읊어대고 있었다. 그녀들의 주변에는 혼절한 수녀들이 여럿 됐다.


(젠장, 상황이 점점 더 불리해져가고 있잖아!)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 측이 우세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뜷릴락 말락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버텨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늘에서 이번에는 돌이 아닌 사람이 떨어졌다. 그렘린이 자신이 잡은 병사들을 허공에서 흩뿌려대고 있는 중이다.


박살난 병사의 두개골을 보니 정신이  들었다. 불리해지건 나발이건 살기위해서는 지금은 싸우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전투는 계속됐다.


"랄라, 비켜!"


그녀의 어깨를 잡고  쪽으로 끌어당긴 뒤, 하늘에서 땅으로 돌진해오는 그렘린의 목젖을 검으로 단숨에 찔러넣었다. 델타가 괴력으로 날려버린 오크에게 다가가 숨을 완전히 끓어버렸다.

후각이 피냄새에 완전히 적응했다. 세상이 온통 빨갰다. 그런데도 전투는 끝날 기미가 안보였다. 괴물녀석들도 그렇고 병사새끼들도 그렇고, 다 초인들인지 악착같이 싸워대는 모습에 헛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남편, 옆ㅡ"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맞고 날라가버리는 바람에 랄라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듣지 못했다. 천막을 무너뜨리고 나서야, 바닥에 엎져서 몸을 후들거리고 나서야 그녀가 하려 했던 말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고개를 힘겹게 들어올려 나를 날려버린 놈을 쳐다봤다. 2대대를 박살내버렸던 검은색 액체 덩어리였다.

"커억ㅡ!"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치다가 갈비뼈에서 둔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날라가면서 갈비뼈의 금이 갔나보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육수마냥 줄줄 흘러나왔다.

"후우ㅡ 후우ㅡ"
(할  있다, 할  있다)
(고.레오 너란 새끼는 이것보다 더한 아픔도 겪었잖냐?! 할 수 있다고)


천막의 지지대를 지팡이 삼아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나의 아내들은 내게로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고, 병사들은 새로 등장한 무지막지한 괴물에 의해 수수깡 마냥 허망하게 부서져 버리고 있었다.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어?"

"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마"

"남편, 이마에서 식은땀 많이 나..."


소매자락으로 내 이마를 훔쳐내는 델타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맙다, 델타야"

그 말을 짤막하게 뱉어내고서는, 앞의 광경을 쳐다보았다. 병사도 모자라 백부장까지 합세했음에도 당해내질 못했다. 대대장과 군단장들이 검을 빼들고 맹렬히 돌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다른 데로 가서 싸우자"
"저기는 암만봐도 우리들이 끼어들 자리가 아닌  같아"

"알겠어... 정말 괜찮은거 맞지?"


"괜찮대도"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까무라치기 일보직전이지만 아내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아프더라도 전투가 끝난 직후에 아파해야  것이다.


"빨리 가자"
"이러다 괴물들 밥 될라!"


목책 위로 엎어진 오우거 시체를 짓밟고 올라오는 괴물들을 향해 달려갔다.





< -- 81. 생사의 기로 -- >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검은색 액체 덩어리의 죽음과 함께 괴물 녀석들은 물러났다. 대장이 죽었으니 지레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는 것일거다. 하지만  놈은 대장이지 진짜 우두머리는 아니다. 우두머리는 4군단 숙영지에서 봤던 그 녀석이 진짜일 것이다.

(이제는 어쩌지,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교국에 있을 아내들 얼굴도 못보고 죽게 생겼구나)


답답한 마음에 속으로 울분을 토해냈다. 그러다가 갈비뼈에서 욱신거리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크읍ㅡ!"

"왜 그래? 어디 아파?"


화들짝 놀라며 묻는 랄라에게 그냥 피곤해서 그랬던 것 뿐이라며 안심시켰다. 볼일 좀 보고 오겠다며 그녀의 곁을 떠나 수녀들이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씨바알! 내 손! 내 손!!!"


"죽여줘!! 차라리 죽여줘!!"


천막에 도착해보니 나보다 상태가 더 심각한 병사들이 곡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수녀들은 눈 밑이 거무스름해진 채로 다리를 후들후들 떨어대며 치유를 걸어주었다. 가뜩이나 치료인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겨우 갈비뼈에 금간거로 왔다는 것에 대해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사지가 멀쩡한 병사가 눈에 보이질 않았다.


사지 멀쩡한데다 갈비뼈도 어디 도망가지 않았으니 나는 그들보다 나았다. 숨을 쉴때마다 통증이 밀려와 숨을 참으면서 다시 그녀들에게로 향했다.




-




"남편, 정말로 괜찮은거 맞지?"
"혹시 아까전의 날라갔을 때 어디 부러지거나ㅡ"

"아,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래"

"......."

랄라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윽고 내 다리를 두 손으로 주물러줬다. 다리에서 머리까지 올라오는 노곤함에 정신이 날라갈 지경이었다.

"졸리면  무릎배고 한 숨 잘래?"
"자 일로 누워"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 그녀가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따랐다. 뒷통수에서 그녀의 따뜻한 허벅지살이 느껴졌다. 이마를 쓸어넘겨주는 그녀의 손길이 기분좋았다.

"남편,  물려줄까?"

"이 년이 사람들 다보는데 젖을 왜물려?!"


"남편 목 마를거 아니야"
"포루로 년은 정말 무식하다"


"정말이지 정신 확 돌아버리게 만드는 년이네"
"야 이 씨ㅡ"

"랄라, 델타  잠시 눈 좀 붙일게"

랄라는 내 양쪽 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바꿔 물었다.


"어? 어어... 미안, 시끄러웠지?"


"아니 별로"
(오히려 마음이  편한걸...)

마지막 말은 잠에 들면서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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