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68화. 위기일발 (68/106)



〈 68화 〉68화. 위기일발

< -- 78. 도망 -- >




대대장이 도착한 뒤, 병사들은 진지내에서 대열을 갖추고 섰다. 인원파악을 해보니 전체 병력의 절반이 사라져있었다. 파비오는 이 참담한 결과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는, 병사들에게 신속히 재정비를 갖출 것을 지시했다.


'하피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가가 자신들도 너희들과 같이 이곳을 떠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이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하룻밤 사이의 병력이 반절로 줄어버린것으로 인한 충격이 컸나보다.


집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2대대는 진지를 불태운 후 행군길에 나섰다. 흡혈귀와 모험가는 대열 후미에서 후방을 경계하며 걸음을 놀렸고, 하피들은 공중을 선회하며 나아갔다. 행군 속도는 빨랐으나 괴물들의 울부짖음은 그보다  빨리 찾아왔다. 다시 한  전투가 치뤄졌다. 그렇게 4~ 5번가량의 소규모 전투를 치르고나니 마음속에서 살아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꼼짝없이 놈들의 소굴에 걸어 들어온 셈이다. 병사들의 표정에는 피로와 절망의 빛이 역력했다. 어떤 병사는 하늘을 날라다니고 있는 하피를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무적의 군대라지만 이런 답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다.


"씨발, 이번 임무 끝나면 한동안 쉴거야"


랄라의 말에 적극 공감했다.

"남편이랑 결혼식도 하고 성교도 하고"
"존나 할거 많은데?"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희망으로 가득 찬 그녀의 말이 내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난 남편하고 아기 만들기 할거야"


후드를 깊게 눌러쓴 델타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자 귀 밝은 랄라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풋!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설마 네가 먼저 남편의 아이를 가질려고?"


"난 아내인데?"
"뭐 잘못됐어?"

"나는 세 번째, 너는 네 번째"
"그러니 내가 먼저 남편의 아이를 가지는게 맞지"


"그런게 어딨어?!"


"여깄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아내 때려치우든가"
"뭘 모르나본데 그게 암묵적인 규칙이라고, 규!칙!"

"정말 그래?"

촉촉해진 눈가로 날 쳐다보는 그녀에게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가 해준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

"오빠, 아이는 몇명 낳는게 좋겠어?"


침대에서  품에 안긴채로 루나는 내게 물어왔다.

"루나랑은 서른 명정도 낳고 싶은데"

"저,정말?... 그건 히,힘들것 같은데"


"거짓말이야, 그러니깐 그리 겁먹지 않아도 돼"


"휴우ㅡ 사실 엄... 그 여자가 나 낳을때 엄청 고생했다고 아빠한테서 들었거든"
"그래서 좀 무서운 감이 없지 않아 있어"
"그렇다고 아기 낳는게 싫다는건 아니고... 엄청 기쁜데... 내 생각엔 다섯 명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물론 오빠가 더 낳고 싶다고 원한다면 낳아줄 수 있는데..."


(다섯 명이라... 루나는 강인한 여성이구나)
"다섯 명이든 열 명이든 루나랑 아이를 가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는데"


루나에게 답한 뒤, 진한 입맞춤을 했다. 이런 내 답변에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 젖꼭지를 간지럽히면서 입술을 떼고 물었다.

"언니는 몇 명 낳고 싶대?"

"아마도 루나 너랑 똑같지 않을까?"


옆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릴리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며 답해줬다.

"흐음~ 릴리 언니한테는 언제 씨앗을 심게 해줄거야?"


"집 사고난 후에 아이를 가질 계획이긴 한데, 만약 릴리가 지금 당장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다면 아이를 가지고나서 집을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 릴리 언니가 빨리 아이를 낳아야지 나도 낳는데 말이지"

"루나 너가 먼저ㅡ"


"그건 안돼"

그녀의 단호한 말에 하려던 말을 입에 꾹 담아눌렀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어봤다.


"왜 안되는데?"


"대천사님들도 위아래가 있다구, 어떻게 내가 언니보다 먼저 낳겠어?"

"그런게 있어?"


"여자들만의 암묵적인 규칙이야"


 말의 입을 닫고서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여자들만의 세계에 남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분명 아르베 회당에서 배운 것이겠지.

--


"알겠어?"

랄라는 델타에게 소근거리며 그런 비슷한 내용들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델타는 뚱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부정하려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의 뜻을 보이고 있었다.

"랄라, 빨리 낳아"


"싫은데? 그건 내 마음이지"

"비겁해! 치사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델타는 씩씩대며 속사포같이 말을 뱉어냈다. 그러나 랄라는 귀를 손으로 막는 시늉을 하며 안들린다며 놀려댔다.

그녀들의 이런 귀여운 모습들을 보니 피로가 싹 날라갔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저 멀리 앞에서 괴상한 비명이 대기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난 직후 행군하고 있던 병사들의 좌측 대열이 날라드는 검은색의 거대한 무언가에 의해 박살이 나버렸다.

"뭐,뭐,뭐야?!!!"

"위험해에에에!!!!!!"


델타가 순간적으로 날 옆으로 밀침과 동시에 내가 있던 자리로 그 무언가가 날라들었다. 땅바닥이 쩌적하고 갈라진 그곳에서는, 끈적끈적한 검은 액체가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밀치면서 내 품에 안겨진 그녀를 껴안은 채 다리를 버둥대면서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던 도중 뒷통수에서 느껴지는 뭉클한 감촉에 고개를 돌아보니, 아까전의 밀침으로 같이 넘어진 것인지 랄라가 뒷통수를 어루만지며 상체를 일으키려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그 공격, 델타가 밀쳐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였다.

"젠장... 젠장... 젠장... 이게 대체......."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로. 그래서 더욱 그녀를 껴안고서는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여성의 부드럽고 따뜻한 살결이 남성으로써의 욕망을 부추겼고, 결과적으로는 이성이 다시 되돌아오게끔 만들었다.

본대를 쳐다보니 그곳에서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거대한 액체 덩어리에서 무수히 많은 촉수가 뻗어나와 병사들을 유린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국군의 깃대는 자취를 감추었으며 기병들은 말을 잃은 채 땅을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기병이 아니었다.

본대는 무너졌다. 이제는 각자 살길을 도모해야 한다.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


"분대별 퇴각하라!!!"

지옥도에서 들려오는 외침소리, 파비오의 것이다. 투구의 벗겨진 그의 짧은 머리가 무섭게 날라오는 촉수를 가까스로 피하고 있었다.

"랄라, 델타!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돼!"


좋은 냄새 난다며 입을 헤벌쭉하고 있는 델타를 강제로 품에서 떼어내어 일으켜 세운 뒤, 랄라가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무운을 빈다!"


대대장은 그 말과 함께 백부장들과 같이 거대한 덩어리를 향해 돌격했다. 병사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함이 틀림없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랐지만 애써 억누르고 힘차게 도망쳤다. 그들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발걸음을 놀리면서 주변 곳곳을 쳐다보니 병사들이 방패를 버리고, 투구를 내던지며 두 다리만을 놀려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괴물들에 손에 의해 도륙당해버렸다.

쓰러진 전우를 도와주려다 되려 당하는 자, 괴물들과 엎드락뒤치락 하며 몸을 굴려대는 자가 지천에 널려있었다. 문득 하피들이 걱정돼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녀들은 벌써 저만치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 나 꽉 잡아!!"

옆에서 달리고 있던 델타의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언제 로브를 벗은건지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맞다, 델타는 하피였지)
"랄라! 내  잡아!!"


손을 내민 그녀의 손을 붙잡은 후 델타의 허리를 꽉 부둥켜 안았다.


"남편, 꽉 잡고 있어야 돼!!"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가 뭐야?"


그 말과 동시에 델타는 거대한 두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 올랐다. 오른 팔로 한쪽 옆구리에 랄라를 꽉 껴안았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다른 한 팔로 강하게 둘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옥도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편, 저건 대체 뭘까?"


랄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거대한 검은색 덩어리를 쳐다봤다. 놈은 대대장과 백부장들을 해치운 것인지 앞을 향해 꾸물꾸물 기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 혹시 마왕은 아닐까?"


알도가 했던 말, 대대장이 우려했던 사항. 산맥 깊은 곳에 마왕이 숨어있다는 말.


"마왕이 틀림없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왕말고는 저런 괴물이 있을리가 없잖아?"


"저게 마왕... 남편, 우리 그냥 교국으로 돌아가면 안될까?"
"어차피 임무도 개쪽난 마당에 더 해봤자 득될거 하나 없잖아?"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마음이 흔들렀다. 하지만 나중에 닥칠 후폭풍때문에라도 이런 식으로 복귀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탈주는 불가하다.


"도망친 모험가들이 어떻게 됐는지 봤잖아"
"일단 숙영지에 도착하고난 연후에 결정하자"

"남편 뜻이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그녀의 옆구리를 안은 팔에 힘을 더욱 굳건히 줬다.

"랄라는 겁쟁이~"


대화를 엿듣고 있던 델타는 웃음을 터뜨리며 랄라를 약올렸다. 그러자 랄라는 이마에 핏대를 바짝 세우며 말했다.

"새대가리는 닥치시지"


"뭐야?! 누구 때문에 살았는데?!"

"남편한테 하는 소리야?"


"뭐,뭐,뭐?!! 아,아니야!!!!"
"남편,  남편한테 한거 아니야! 저 늑대년한테! 늑대년한테!"

"알아, 델타 마음 내가 다 아니깐 지금은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것에만 집중하자"

"역시 남편이 최고야!"
"저 바보 늑대년은 겁쟁이고!"


"저 씨발년이 진짜!!!"


(너희들은 하늘에서도 싸우냐...)


그녀들의 허리에 안은 팔에 힘을 단단히 줬다.




< -- 79. 뜻밖의 재회 -- >





"남편 이제 어디로 가면 돼?"

델타의 물음에 생각에 잠겼다. 땅이 아닌 하늘이고, 하늘의 길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절벽울타리가 떠올랐다. 일단 그곳에 가서   돌린 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야겠다.

"절벽울타리 알아?"

"예~전에 그 마왕군이 점령한데?"


"맞아, 거기"
"거기로 가자"


"절벽울타리로!"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그녀는 엄청난 속도로 날라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죽을 맛이었다. 랄라는 그녀에게 욕이란 욕은 다 퍼붓고 있는 중이었다. 왠만하면 아내들 앞에서 욕은 자제할려고 했지만 이건 도저히 못참겠다.


"뒤지겠다!!!!"

다행히도 뒤지기 직전에 절벽울타리에 당도했다. 모험가 생활을 하면서 한 번 와본적이 있는지라 딱히 감회가 남다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있다고 한다면 3년전과 똑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이 곳에 다시 오게 되어 감회가 색다르다고 해야할까...

"왔느냐?"


갑자기 위에서 들려오는 매혹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리니 '하피의 어머니'가 하늘에서 날고 있었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자신의 가슴에 내 얼굴을 묻고서는, 뒷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니나다를까 델타는 으르렁거리면서 날 황급히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서 떼어냈다.


"어머니! 뭐하시는 거예요?!"


"뭐하다니?"
"딸의 수컷이 힘들어보이길래 달래준것뿐이다"


"달래도 제가 달래요!"

"남편, 혹시 이 년하고도 그렇고 그런 관계는 아니겠지?"


귓가에 대고 스산한 목소리로 묻는 랄라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그럴리가... 그냥 장모 사위의 관계일 뿐이라고"


"...... 믿어도 돼?"
"저년하고 성교 안했다는것에 아르베님께 맹세할 수 있어?"

".......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근데 내가 자발적으로 한게 아니라 장모님이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ㅡ"


"그만 말해도 돼"
"어떻게 된 사정인지 대강 이해가 갔으니깐"
"하여튼간 남편 꼬추 맛은 알아가주고"


(근데 지금 이럴때가 아닌데)


말다툼을 하고 있는 랄라와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과 내 자지를 쪼물락거리고 있는 랄라의 행동에 방금전까지만 해도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있었는지 분간이 잘 안갔다.


(뭐, 사람이  긴장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바지를 풀어헤치고 자지를 꺼내니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완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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